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82화 (182/256)

제182화

[학교는 지금 KGT 열풍]

얼마 전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시작된 KGT 열풍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지금은 열풍보다는 광풍이라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위인 ATT(All Time Telecom)와 2위인 C-Mobile에 밀려 통신사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KGT가 이 같은 반전을 보이기 시작한 건, 초이스 에듀와 손을 잡고 전국 중·고등학교에 무료와이파이 존 설치를 선언한 이후부터였다.

지금까지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 무료 와이파이 존을 설치한 통신사는 있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중·고등학교에 무료 와이파이 존을 설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일이었다.

KGT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파격이 파격으로 그친다면 그건 깜짝 쇼에 불과하다. 하지만 KGT는 한발 더 나아갔다. ‘퓨처팩’ 데이터 요금제가 바로 그것이다.

퓨처팩은 초이스 에듀에서 서비스하는 퓨처 앱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리 데이터 요금제다.

일반적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한 달에 6만 원 이상 책정되지만 퓨처팩은 데이터 사용을 퓨처 앱으로 국한하는 대신 1만 5천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선택했다.

퓨처 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는 동영상 강의 시청이다. 그만큼 데이터 소모가 심하다. KGT는 적자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가격 할인을 단행했다.

KGT 파격적인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내민 카드는 가족 할인.

해당 학생이 가족 1명과 연계하면 5천 원 할인, 2명은 만 원 할인, 3명이면 완전 무료로 퓨처팩을 이용할 결합 상품이다.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약정이 끝난 학생과 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KGT도 몰려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최건우 대표가 지원 사격을 하며 KGT 열풍은 광풍으로 돌변했다.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전환하면서 1년에 천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료 서비스를 계속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까지 생각하면 1년에 1조 원 가까운 돈을 포기한 셈이다.

나로서도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바로 그때 나를 지지하고 손을 내밀어 준 기업이 바로 KGT와 동지그룹이다. 무료 서비스를 하며 광고를 넣는다고 비난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어떤 광고 효과도 증명된 게 없는 우리 방송에 도움을 결정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KGT와 동지그룹 바로 두 기업 덕분에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료 스트리밍 방송에 광고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생겼을 때 최건우 대표가 남긴 호소문이었다.

이 글이 올라오고 나서부터 양강 체제였던 통신 사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최건우 대표 지지자들을 필두로 아직 약정이 남은 수많은 사람들이 KGT로 통신사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위약금을 물거나 투 폰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과감성을 보였다. 좋은 기업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손해는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KGT 광풍.

KGT는 이에 힘입어 5%밖에 안 되던 점유율을 순식간에 25%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20%가 올랐다. 20%면 전체 6천만 전체 가입자 중 약 천이백만 명에 이르는 수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하루에 20만 명 이상씩 KGT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추세대로라면 2위 업체인 C-Mobile을 따라잡는 건 당연하고 1위인 ATT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해 보일 정도다.

KGT가 보여준 이러한 광풍 덕분에 초이스 에듀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 광고를 넣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후략….

- 역시 갓 건우! 찬양하자.

- ㅋㅋㅋ 이젠 망하기 직전의 다른 회사까지 하드캐리하는 갓 건우.

└ KGT가 망하기 직전인 건 인정하는데 동지그룹은 원래 잘 나갔음.

└ 아까 뉴스를 보니까 올해 동지그룹 누적 매출이 와룡그룹 누적 매출을 완전히 넘어섰다고 함. 동지그룹 2위 등극.

└ ㅆㅂ. 이러다 S그룹까지 넘어서는 거 아님?

└ 당장은 힘듦. 와룡그룹이랑 동지그룹 합쳐도 S그룹한텐 안 됨.

└ 그건 모를 일. 갓 건우와 갓 동수가 만났잖아. 진짜 천재와 꼼수의 천재가 만났으니 뭔가 엄청난 일을 벌일지도 모름.

- 나도 오늘 KGT로 옮김. 직원들 엄청나게 친절함. 직원들과 같이 찍은 인증샷 첨부 + 사진1.jpg

└ ㅋㅋㅋ 이젠 KGT로 옮긴 것까지 인증샷을 올려야 하는 거임?

└ 히잉. 나도 인증샷 찍어 올걸.

└ 왠지 유행으로 번질 것 같은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시 후 이 글은 성지가 됩니다.

***

C-Mobile 중역 회의실.

C-Mobile은 ATT에 이어 대한민국 2위의 통신업체이다. 2위라고는 하지만 점유율 면에서 ATT와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ATT는 49%, C-Mobile은 46%, KGT가 5%로, 사실상 ATT와 C-Mobile이 대한민국 통신 업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양강구도가 얼마 전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KGT의 무서운 약진이 문제였다. KGT는 순식간에 5%에서 25%의 점유율로 올라섰다. 그로 인해 ATT는 5% 하락한 44%, C-Mobile은 15% 하락해 31%가 됐다.

25%이 KGT와 고작 6% 차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41%까지 벌어졌던 두 회사 차이가 단숨에 턱밑까지 좁혀졌다.

“대책 마련을 하라고 했더니 어떻게 된 겁니까?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거 맞습니까!”

C-Mobile 사장이 앞에 있는 책상을 쾅쾅 내리찍으며 고함을 지르자 회의에 참석했던 중역들이 일시에 고개를 숙였다.

“왜 다들 말이 없어요. 이봐요, 장 이사.”

“네, 네 사장님.”

“ATT는 고작 5%밖에 안 떨어졌는데 우리는 왜 15%나 떨어진 겁니까? 네?”

사장도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KGT의 돌풍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받아들였다.

때를 잘 탔고 최근 들어 대한민국 전체에서 돌풍의 핵이 된 초이스 에듀와 손을 잡은 게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게 C-Mobile이 아니라 KGT라는 게 배가 아프지만 그것보다 더 열 받는 건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ATT는 굉장히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3%밖에 차이 안 나던 두 회사의 점유율이 13%나 벌어져 버렸다.

이런 분위기가 유지되면 양강 구도는 무너지고 만다. 사람의 인식이란 무섭다. 그동안 C-Mobile이 양강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그게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게… 사실 사장님. ATT는 반독점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49%를 유지한 면이 있었습니다.”

“뭐라? 그러니까 그동안 양강구도를 유지한 건,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ATT가 봐줘서다?”

냉정하게 말해 장 이사의 말은 완벽한 팩트였다. 과거 반독점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ATT가 전체 점유율의 70%까지 차지한 적도 있었다.

그땐 1극강 1중 1약 체제였는데 반독점법이 발의되면서 그 구도가 무너졌다. 따지고 보면 C-Mobile은 반독점법의 가장 큰 수혜자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게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C-Mobile 사장 앞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다.

“아!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내 귀로 분명 들었는데 못 들은 걸로 해달라? 장 이사가 이제는 나를 노망난 노인네로 취급하는 겁니까?”

“사…장님. 오해이십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됐습니다. 우리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부족한 장 이사와 이야기를 더 해봐야 뭐하겠습니까? 그만하고 넘어갑시다.”

“사장님. 제가….”

“어허. 그냥 넘어가자니까.”

짜증 섞인 사장의 말에 회의실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쯧쯧. 다들 뭐 하고 있습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연봉을 주고 있는데, 밥값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얼어붙은 분위기 때문에 한참이나 침묵이 흘렀다. 그 와중에 사장과 눈이 마주친 차 이사가 마지못해 발언권을 요청했다.

“저… 사장님.”

“그래. 차 이사. 뭔가 좋은 의견이 있습니까?”

“최건우 대표가 운영하는 초이스 에듀의 라이벌 학원으로 꼽히는 곳 중에 크레이듀라는 곳이 있습니다.”

“크레이듀?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초이스 에듀처럼 일반 학원인 겁니까?”

“네. 그렇긴 한데 크레이듀는 사실 와룡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입니다.”

“와룡그룹이요? 오호, 계속해보세요.”

최근 동지그룹에 밀리긴 했지만 와룡그룹은 여전히 재계 서열 3위의 거대 기업이다. 10위권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C-Mobile 모기업과는 급이 다른 곳이다.

그런 곳의 계열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크레이듀는 그냥 그런 학원이 될 수 없게 된다.

“거기서 얼마 전 크리에이터라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초이스 에듀의 퓨처 앱에 대항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놀라운 건 그 크리에이터가 정부 인증을 받고 전국 국·공립학교에 배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그 잘난 최건우도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퓨처 앱은 무료라서 배포 같은 걸 안 해도 각자 알아서 다운로드 하면 되지만 그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서요?”

“얼마 전에 우리도 KGT의 퓨처팩과 비슷한 요금제를 만들려다가 초이스 에듀의 거절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에이터가 나온 마당에 굳이 초이스 에듀에 집착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퓨처팩과 비슷한 요금제를 크리에이터와 손잡고 만들면 됩니다.”

C-Mobile 입장에서 KGT의 퓨처팩을 보면 학생들을 미끼로 고객을 유치를 하는 정말 치사한(?) 요금제였다.

그러니 그들의 상승세를 막으려면 똑같이 치사한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는 게 차 이사의 생각이었다.

“일명 크리에이터팩 같은 걸 만들자?”

“그렇습니다, 사장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애들을 미끼로 고객을 유치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해주면 됩니다. 게다가 크리에이터는 퓨처 앱과 달리 국가가 공인해준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전국에 있는 국·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전부 크리에이터를 쓸 텐데 그 파급력을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럴 듯한 의견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역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학원가에서 건우가 차지하는 위치.

퓨처 앱이 좋아서가 아니라 건우의 압도적인 실력 때문에 학생들이 몰린다는 걸, 통신 분야에서만 전문가인 C-Mobile 중역들은 알지 못했다.

“크레이듀에서 우리 요청을 받아들일까요?”

“크레이듀 실무책임자인 박유하 이사와 제가 좀 압니다. 제가 이야기하면 흔쾌히 받아줄 겁니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크레이듀가 우리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가 있으면 학생들이 더욱 몰릴 텐데 왜 거절하겠습니까?”

“그렇군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 일은 차 이사가 맡아서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차 이사님, 수고 좀 해주십시오.”

“네. 맡겨만 주십시오, 사장님.”

***

- 첫 만남

동우, 정우, 은우는 학교를 마치면 초이스 에듀로 오는 게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원래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로 했는데 언젠가부터 거의 매일 학원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집에 가도 건우가 없다. 학원 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오후 열 시에 강의를 마치고 빨리 집에 와도 오후 열 시 삼십 분이다. 더욱이 요즘은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동우도 학원에 살다시피 한다.

그럼 정우와 은우만 남는데, 둘 사이는 분명 친한데 이상하게 대화가 별로 없다. 그럴 바에는 학원에 가서 동우와 투닥거리는 게 더 재미있다.

동우와 투닥거리는 게 재미있는 건 은우고 그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는 건 정우다.

둘째, 학원에서 주는 밥이 굉장히 맛있다.

호텔 주방장이던 윤 셰프가 학생들의 건강과 맛을 모두 잡은 음식을 매일 같이 푸짐하게 내놓는다. 고모나 할머니 음식 솜씨가 나쁘진 않지만 아직 어린 정우와 은우는 소박한 집밥보다 화려한 급식이 더 좋았다.

셋째, 건우가 동생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부방이 너무너무 좋아서다.

공부하는 곳이 좋아야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누구보다 동생들을 잘 알고 있는 건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부방을 동우, 정우, 은우는 집보다 더 편안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오늘도 세 사람은 어김없이 공부방에 출근(?)했다. 동우와 정우는 한창 공부 중이고 숙제를 마친 은우는 헤드폰을 끼고 옐로우 레이디의 실시간 공연 영상을 보느라 정신없었다.

은우는 요즘 옐로우 레이디, 특히 스칼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얼마 전, 건우의 아랫집에 잠시 머물렀던 옐로우 레이디 멤버들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세 동생과 스칼라의 만남은, 건우의 식사 초대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정작 여자 아이돌의 등장을 좋아해야 할 동우와 정우는 시큰둥했고, 은우 혼자 방방 뛰며 스칼라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동우와 정우에게 스칼라는 예전부터 알고 지낸 선머슴 같은 동네 누나였다. 덕분에 은우 혼자 스칼라를 독차지했고 그날부터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금방 친해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옐로우 레이디는 골드 스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금방 재기에 성공했다. 늪 매니지먼트 시절에도 꽤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지금 인기는 그때와 차원이 달랐다.

원래 가지고 있던 실력에 골드 스타 소속 연예인들의 지원 사격이 더해지면서 한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이름을 알리며 한류열풍의 중심이 되는 중이었다.

자신과 친한 네 명의 언니들이 톱스타라는 사실이 뿌듯한 은우는 거의 매일같이 그녀들의 영상에 빠져 있었다.

예전의 건우라면 공부하라고 다그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자기 일만 다 하면 동생들이 뭘 하던 간섭하지 않았다.

덜컥.

공부방의 문이 열리고 건우가 들어왔다. 쉬는 시간에 찾아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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