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88화 (188/256)

제188화

수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건우의 사무실에 손다정 팀장, 차지훈 팀장, 안우현 팀장이 모였다. 건우의 최측근만 모인 긴급회의였다.

“교육부 움직임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루머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역시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긴급한 소식인데 참석자들의 반응은 영 밋밋했다. 소식을 전하는 차지훈도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말하는 건 아닌 표정이었다.

“대표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상대 쪽에서 죽이려고 달려드는데, 그냥 목을 내놓고 기다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게요.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텐데 이런 일을 벌여서 제 무덤을 파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부의 작태가 한심하다는 듯 안우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처음 계획대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건우는 팀 앨버트로스는 교육부와 관련한 이상한 루머가 돌 때부터 이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육부가 수능 특강반의 예상 문제집을 기다렸다면, 건우는 교육부의 그런 선택을 역으로 기다렸다.

“수능 문제지와 답안지 인쇄는 언제부터 시작된다고 했죠?”

“수능일 닷새 전에 인쇄에 들어가고, 사흘 전부터 전국에 배부가 시작됩니다.”

“인쇄에 들어가면 교육부도 결정을 돌이킬 수 없는 거죠?”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생각을 정리할 겸 최종 확인차 묻는 것이었다.

“네. 인쇄가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게 됩니다.”

“그럼 인쇄에 들어가는 날 학생들에게 진짜 예상 문제집을 배부하도록 하세요. 시간이 촉박하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못 볼 분량이 절대 아니니까요.”

특강반에 미리 배포한 예상 문제집은 일종의 페이크였다. 그리고 새롭게 나눠줄 예상 문제집은 페이크 문제집을 입수한 교육부가 꼼수를 부릴 것을 대비해 만든 맞춤형 문제집이었다.

교육부의 행태를 대비하고 만든 문제집이기 때문에, 그들이 예상대로만 움직인다면 적중률이 대폭 올라가게 된다.

예를 들어 청록파 시인 문제 출제가 확실하다면 페이크 문제집에는 조지훈과 박두진의 시를 넣어, 출제자가 어쩔 수 없이 박목월을 다루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청록파란 <청록집>을 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세 명의 시인을 말한다.

그래서 안우현이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텐데 이런 일을 벌여서 제 무덤을 팠다’고 표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인쇄소에 우리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지금 바로 연락해서 새로운 예상 문제집 인쇄를 지시하겠습니다.”

***

이번 해는 유독 이슈가 많았다. 그 이슈의 중심에는 거의 건우가 있었다.

아이돌 가수와의 열애설, 사교육 반대 시위, 모의고사 난이도 조절 실패, 라이브 스트리밍 무료 서비스 선언 외에도 한동안 떠들썩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의 상당수가 건우와 연관되어 있었다.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11월, 대한민국은 두 가지의 커다란 이슈로 또다시 들썩이고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수능시험이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와룡그룹을 상대로 청구한 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건우가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다.

지금 현재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있는 것은 초이스 에듀가 엄청난 이익을 보장해주던 퓨처 앱을 무슨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겼느냐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명석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건우가 그냥 아무런 대가도 그냥 팔았을 리는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퓨처 앱의 가치를 따져봤을 때 최소 수천억 원대의 대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견부터 미국의 CIA가 건우를 납치해 억지로 계약을 하게 만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까지.

인터넷상에서는 그야말로 별의별 의견이 중구난방으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모 인기 사이트에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의 의견이 게시물로 올라와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최건우 대표는 퓨처 앱을 왜 팔아야 했을까?]

무식한 인간들이 존나게 부족한 지식으로 제 딴에는 확실한 의견이랍시고 쓴 개헛소리를 인터넷상에 도배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어이가 없어서 하품만 나온다.

무식한 너희를 위해 형이 쉽게 정리해줄게. 무식한 너희가 과연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건우 대표가 존나게 잘나가는 퓨처 앱을 왜 마이크로소프트에 팔아야만 했을까?

돈이 아쉬워서? 그건 정말 개소리다. 그 양반이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 줄은 아냐? 형이 대충 계산해봤는데 최소 5,000억 원이다.

물론 2,000억 원 넘는 돈을 매년 기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3,000억 원이 조금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인 건 분명하다. 게다가 이건 내가 최소로 잡은 금액이다.

그런 최건우 대표가 과연 돈이 아쉬워서 팔았을까? 퓨처 앱의 잠재적 가치를 생각해보면 최소 조 단위의 돈을 벌 수 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있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너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게 뭐냐고? 퓨처 앱을 실제로 개발한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의 전신이 바로 코니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무릎을 탁 치는 좀 똑똑한 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 인간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며 황당해하고 있겠지.

무식한 놈들. 그래서 형이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원래의 코니 애플리케이션은 꽤 잘나가는 앱 개발 업체였다. 지식경제부 대상을 받은 유명한 게임도 개발했었어. 그런데 갑자기 대기업 투자자가 나타나면서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야.

다른 곳도 아니고 대기업이야. 그러니 믿을만했겠지. 당시 사장인 홍민수는 그 대기업의 투자 약속만 믿고 무리한 연구개발을 시작했어.

그런데 아뿔싸! 투자를 약속했던 투자자가 갑자기 투자계획을 철회한 거야. 이유는 연구개발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거였는데. X발. 돈을 줘야 연구개발을 하지. 돈도 안 주고 성공하길 기다렸다가 성공하면 그때 돈을 준다는 게 말이나 돼?

홍민수 사장이 말이야 개발 능력은 좋은데 경영능력은 좀 멍청해. 엔지니어로만 뛰어난 거지. 아무튼, 우리의 멍청한 홍민수 사장은 대기업의 거짓말만 믿고 열심히 연구개발만 하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게 됐어.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인 꼴이 된 거야.

빚을 져가며 연구개발을 했는데 돈이 안 들어와. 그럼 어떻게 되겠어? 회사는 당연히 빚더미에 오르고 파산 직전에 이르게 돼. 그런데 더 웃긴 건 바로 그때 투자를 약속했던 대기업 투자자가 코니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인력들만 쏙 빼서 가버렸어.

완전 개양아치들만 하는 비열한 짓을 그 대기업이 한 거야.

이쯤 되면 그 대기업이 누군지 알겠지? 그래도 모른다고? 어휴. 넌 인마 글 자체를 읽지를 마. 쯧.

그래도 어쩌겠어? 마음 넓은 형이 친절하게 설명해줘야지. 바로 그 대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와 특허권 분쟁을 하고 있는 와룡그룹이라 이 말씀이야.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렇다면 내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정확하게 말하면 와룡그룹의 계열사인 크레이듀가 바로 양아치 투자자였어. 그리고 투자를 철회한 덕분에 돈 한 푼 안 들이고 핵심 연구원과 핵심 기술들을 빼낸 것이고.

억울한데 배후에 와룡그룹이라는 어마무시한 대기업이 버티고 있으니, 망하기 직전에 몰린 홍민수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바로 그때 홍민수 사장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최건우 대표야. 그리고 홍민수 사장이 최건우 대표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 바로 ‘퓨처’야.

그런데 대기업 그 개양아치 새끼들이 이번에 또다시 양아치 짓을 벌인 거야.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한번 양아치는 영원한 양아치인 거지.

그게 바로 크리에이터라는 앱이야. 힘들게 퓨처라는 앱을 개발해놨더니, 양아치 짓으로 빼간 핵심 연구원들을 데리고 그것과 비슷한 앱을 그대로 베낀 거야.

더 어이없는 건 남의 것을 베낀 주제에 정부에게 공인 인증까지 받았다는 거야. 그 바람에 우리나라 국·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짝퉁 프로그램으로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어.

얼핏 듣기로 퓨처 앱을 개발하는 데에만 최소 수백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짝퉁 프로그램이 뻔뻔하게 자기들이야말로 진퉁이라고 국가의 공인까지 받는다면 최건우 대표의 심정이 어떻겠어?

당연히 빡 돌겠지? 최건우 대표가 기부도 많이 하고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좋은 사람이긴 한데 개호구는 아니야.

악성 루머를 퍼트리던 악플러들을 전부 찾아내 기어코 벌금까지 물게 만들었던 사람이야. 가족 욕을 하던 놈 중에는 빨간 줄을 그은 경우도 있고, 헛소리를 다루다가 문을 닫은 신문사도 있었어.

그런 최 대표가 크레이듀의 양아치 짓에 가만히 있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봐.

사실 크리에이터가 출시되기 전부터 그 앱이 정부 인증을 받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어. 베타 버전도 안 나온 앱을 정부가 공인 인증을 한다? 말이 안 되거든. 그런데도 말이 되게 만들었다는 건 작당 모의가 있었다는 뜻이야.

나도 아는 걸 최 대표가 모를 리가 있겠어? 그렇지만 학원 운영하는 최 대표가 거대기업인 와룡그룹과 직접 맞서기는 어려웠을 거야.

이대로 크리에이터가 출시되면 짝퉁이 진퉁을 짝퉁으로 만들어버릴 상황인데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래서 와룡그룹쯤은 개허접으로 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팔아 버린 거야. 완전 이판사판 아니었겠어?

우리나라는 참 좆 같은 게 약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야. 최건우 대표 정도 되는 사람도 대기업의 횡포 앞에서는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이거든. 그래서 형은 최 대표의 그런 판단을 적극 지지해.

그러니 이 무식한 것들아. 특히 CIA가 납치해서 억지로 도장을 찍게 만들었다는 놈, 국부 유출을 했다고 우기며 비난하는 놈들. 밥은 먹고 다니냐? 생각 좀 하고 살자.

솔직히 난 그동안 최 대표가 그냥 공붓벌레 샌님인 줄 알았어. 그런데 이번 일을 보고 그 양반의 배짱에 완전히 반했다.

와룡그룹 하나 엿 먹이려고 수조 원의 미래가치를 포기한 거거든. X발. 존나 멋지지 않냐?

한때 유행했던 싱하형 말투의 게시물이었다.

거만하면서도 건들거리는 뉘앙스가 다분히 느껴지는 글이었지만 대중들은 그래서 오히려 그 글에 열광했다. 속 시원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초이스 에듀가 마이크로소프트에 특허권을 넘긴 시기는 크리에이터가 개발이 되기 훨씬 이전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대중들은 예전부터 악덕 기업으로 유명했던 와룡그룹이 또다시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원래 나쁜 놈이 또다시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마음껏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대중이 아끼고 사랑한 건우가 피해자라는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처음에는 재판으로 시간을 질질 끌며 협상을 통해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와룡그룹과 크레이듀는 대중들이 일제히 터트린 엄청난 분노에 당황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들도, 와룡그룹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 건우는 퓨처 앱에 대한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완전히 넘긴 것이 아니었다.

초이스 에듀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합작해 MS Choice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초이스 애플리케이션이 보유한 모든 특허권도 함께 이전되었다. 퓨처 앱도 당연히 포함됐다.

그리고 건우는 MS Choice의 절반 가까운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 와룡그룹에 엿을 먹이기 위해 수조 원의 미래 가치를 포기했다는 표현은 사실 틀린 말이었다.

***

“하하하. 종수 이 자식. 하여간 사람 속 벅벅 긁으며 글 쓰는 데는 도사라니까. 상황을 다 알고 읽는데도 막 짜증이 날 정도니 모르고 읽는 사람은 어떻겠어? 수고했어.”

“에이. 수고는요, 무슨. 저한테 이 정도 일은 누워서 떡 먹기죠. 제 경험상 대중들은 읽고 싶어하는 글을 읽게 해줄 때 가장 열광하거든요.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했으니 얼마나 마음 편하게 욕을 할 수 있겠어요?”

인터넷에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하고 있는 ‘최건우 대표는 퓨처 앱을 왜 팔아야 했을까?’라는 글은 우연히 올라온 게 아니라 정보팀 윤종수의 작품이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건 컴퓨터 해킹만큼이나 그가 자신 있어 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수능 시험을 코앞에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룡그룹’, ‘크레이듀’, ‘특허권침해’, ‘크리에이터’ 등의 단어가 검색어 순위 최상위권을 도배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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