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94화 (194/256)

제194화

[교육부 대변인 曰 ‘우리신문’ 보도 내용에 매우 실망했다. 굉장한 유감을 표한다.]

비밀유지 조항을 어기고 하지 말아야 할 내용까지 인터뷰한 교수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참, 나쁜 사람이다. 우리신문은 당장 기사를 삭제하고 인터뷰에 응한 출제위원이 누군지 밝히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조치에 들어가겠다.

- 동양일보 김상훈 기자

- 참, 나쁜 사람? ㅋㅋㅋㅋㅋㅋ

- 와. 미치겠다. 지금 내부고발자 안 밝히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거임?

└ 교육부 제정신이 아닌 듯. 이 정도면 거의 막가자는 수준.

└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수준.

└ 적반하장.

└ 객반위주.

└ 후안무치.

└ 내로남불.

└ 뭐냐, 내로남불은….

- 지금 내가 기사를 제대로 읽은 거 맞지? 내 눈이 의심스럽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잘못을 밝힌 사람을 고소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이상한 건가?

└ 참, 나쁜 교육부라서 그런 겁니다.

└ 세상이 미친 겁니다.

- 우린 실수고 넌 불법이야. 그러니까 우린 아무 잘못 없고 너만 나쁜 놈이야. 교육부 빼애애애애애애액!

- 저런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암담하다. 한국교육과정연구원장은 사표 냈다면서? 그런데 왜 교육부 장관은 아직 사표 안 냄?

└ 이건 사표 수리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검찰이 수사해야 할 사안임.

- 우와! 정말 미친 코리아다. 우리나라는 정말 안 썩은 데가 없구나. 진심 이민 가고 싶다.

***

“누군지 찾아냈어?”

우리신문 인터뷰 기사에 화가 난 교육부 장관이 보좌관을 닦달했다.

“아직 알아보는 중입니다.”

“고작 사람 하나 찾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600명 중 1명을 찾는 일이라서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교수라면서? 그럼 대상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거 아니야.”

“우리신문의 말을 신뢰하기 힘듭니다. 발고자의 신분을 감추려고 일부러 교수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조사 중입니다.”

“인터뷰를 보면 우리가 문제를 새로 만들라고 했을 때 우려를 표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때 반발했던 놈 중에 있을 확률이 높아. 그쪽으로 한번 알아봐.”

어차피 장관 자리에서는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대형 사고가 일어났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긴 힘들다.

하지만 그 전에 배신자(?)는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교육계는 생각보다 좁아서 한 발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장관직을 그만둬야 할 처지라고 해도 교수 한 명쯤 매장시킬 힘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도 안 되면 집안의 힘이라도 빌릴 각오였다. 이완종 장관의 집안은 교육계에서 굉장히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알겠습니다. 장관님.”

***

“죄송합니다, 교수님.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는데 역시 한계가 있더군요. 인맥으로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건 저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우가 윤현희 교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윤현희는 물리학과 교수로 2017학년도 수능시험 출제위원이었으며 우리신문에 교육부의 행태를 고발한 내부고발자이기도 했다.

“아니에요. 이미 예상한 일이잖아요. 우리나라엔 원피아(원전 마피아), 해피아(해양수산부 마피아), 철피아(철도 마피아)만 있는 게 아닌 걸요. 어떻게 보면 교피아(교육 마피아)야말로 가장 오래된 적폐 세력이에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를 좀먹으며 존재해왔으니까요. 오래된 만큼 우리나라 곳곳에 굉장히 깊고 단단하게 포진되어 있어요.”

“이번 일을 겪고 보니 깊고 단단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솔직히 대표님이 보신 건 그냥 빙산의 일각일 거예요. 교피아는 굉장히 방대해요. 저는 원피아, 해피아, 철피아 같은 집단도 전부 교피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거든요. 교피아에 속했던 사람이 원전에 가면 원피아가 되는 거예요. 교피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비슷한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이익을 독식하죠.”

“그런 곳이 왜 원피아나 철피아 같은 집단보다 덜 알려졌을까요?”

원피아, 철피아, 관피아(관료 마피아) 이런 단어는 들어봐도 교피아는 건우에게 낯설었다. 처음엔 관피아의 일종이 아닌가 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교피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정식 사전에는 없고 이용자들이 직접 단어를 등록하는 ‘오픈사전’에만 그 뜻이 설명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교육부 출신 관료들의 이기적 집단을 일컫는 신조어로, 퇴직 후 관계단체나 기업에 전관예우로 재취업하는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되어있었다. 이 설명이 정확하다면 교피아는 관피아의 일종이다.

하지만 윤현희가 말하는 교피아는 그런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다. 그건 겉으로 드러난 교피아의 일부 모습일 뿐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을 만도 해요. 제가 말한 교피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피아와는 많이 다른 형태니까요. 단순히 기업과의 유착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굉장히 조심성 많고 은밀해요.”

“그럼 정확히 어떤 조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이 세운 사학재단들이 교피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라면 광복 이후 당연히 청산되었어야 하는데, 대표님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잖아요.”

청산은커녕 친일파는 광복 이후에도 계속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일례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던 친일파 경찰들의 상당수가 광복 이후에도 원래의 직위를 유지했었다.

사회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역사적 단죄를 피해간 것이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녀의 말처럼 일제 강점기에 교피아가 시작했다면 그 역사만 해도 100여 년 가까이 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교육계에 깊게 뿌리박혀 암약하며 한국 현대사를 망쳐왔다는 생각이 들자 건우는 알 수 없는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맞습니다. 오죽했으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교피아가 그 말의 일등공신이에요. 친일을 대가로 얻은 사학재단을 이용해 지금껏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그게 전부면 다행인데 사학재단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교육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죠.”

“정말 믿고 싶지 않은 말이네요.”

“대표님은 학원 사업만 했기 때문에 그들의 진짜 무서움을 못 느끼셨을 거예요. 하지만 사학재단들과 이권이 엇갈리는 순간 달라질 겁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릴지도 몰라요.”

건우는 교육 타운 건설을 앞두고 있다. 그곳에 여러 형태의 학교를 세워 학생들이 그 안에서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신이 원하는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윤현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교피아라는 집단이 왠지 그 꿈을 이루는 데 굉장히 큰 방해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학원 사업이 제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그럴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까지 보여주신 최 대표님의 행보를 보면 학원 사업으로 만족하실 것 같지 않았거든요. 더 원대한 꿈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를테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비슷한 꿈이 있긴 했는데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서워졌거든요.”

“정말 그런가요? 오히려 승부욕이 생기시는 건 아니고요?”

건우의 엄살 섞인 말에 윤현희가 정곡을 찔렀다.

“아…. 하하. 글쎄요. 그건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죠?”

“대표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세계교육과 크레이듀를 무너뜨리셨어요. 그 과정에서 다른 곳도 아니고 와룡그룹을 휘청이게 했잖아요. 이미 기적을 만드셨어요. 한 번 하셨는데 또 한 번 기적을 이뤄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어요? 최 대표님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너무 무거운 소식을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는 타이밍에 교피아가 튀어나왔다. 이쯤이면 됐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절반도 오지 않은 거였다.

건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답답함과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안도감이 뒤섞인 한숨이었다.

“그들은 학맥과 인맥으로 똘똘 뭉친 조직이에요. 그걸 무력화할 방법만 찾아낸다면 의외로 쉽게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대표님은 이미 많은 걸 쌓아두셨으니까요. 지금은 예전처럼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겪어보니 학맥과 인맥이 정말 무섭긴 했습니다. 우리신문사로 당장 교수님 정체를 밝히라는 압박이 들어오는데, 이대로 계속 버티다가는 신문사가 금방 망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더군요. 우리신문은 제 부탁을 들어준 것뿐인데 망하게 둘 순 없지 않습니까. 더는 피해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교수님 정보를 풀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학맥과 인맥을 이용해 다방면에서 들어오는 압박은 초이스 시큐리티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때를 봐서 정체를 밝히자고 이미 약속했었지만 그래도 건우는 윤현희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니에요. 생각보다 더 오래 막아주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덕분에 큰 분란 없이 떠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없는 저를 설득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다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정말 홀가분해졌어요.”

교피아의 무서움을 알던 윤현희는 절대 내부고발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모든 걸 잃을 각오가 아니라면 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그런 그녀를 설득한 사람이 건우였다.

거액의 돈을 제안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윤현희의 증언에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있는 진실만 말했다고 해도 초이스 에듀로부터 돈을 받고 초이스 에듀에 유리한 쪽으로 증언하는 걸 누가 믿어주겠는가?

고심 끝에 건우는 미국 대학 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한국보다 3배 많은 연봉과 고급 주택을 대학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갈등하고 있던 그녀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부탁해 얻은 자리였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사안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비밀스럽게 구해 준 교수직이었기 때문에 이번 일로 건우와 윤현희 사이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조건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어쨌거나 평생을 산 정든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음. 나중에 가서는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은 개운해요. 앓던 이를 뽑은 느낌이랄까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미국에 가셔서도 우리는 계속 모르는 사이입니다. 혹시 다른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고생스럽더라도 잘 판단해서 적당히 받아주시면 됩니다.”

“그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한국을 떠날 각오로 벌인 일입니다. 그런 만큼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죠. 저보다는 최 대표님이 고생하실 것 같네요. 언제가 됐든 교피아를 직접 상대하셔야 할 테니까요.”

“지금 당장 적대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마주치게 된다면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교수님 덕분에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미국에서 대표님의 선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꼭 해내실 겁니다.”

“하하하.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요. 조심히 가십시오.”

건우와 윤현희는 잠시 서로를 응시하다가 웃으며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차 팀장님.”

윤현희가 자리를 떠나자 멀찍이 떨어져 대기하고 있던 차지훈을 불렀다.

“네, 대표님.”

“혹시 교피아를 아십니까?”

“음…. 그 이름을 윤 교수가 알려주신 겁니까?”

잠시 망설이던 차지훈이 그렇게 물었다.

“네. 언젠가 제가 하려는 교육 사업에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교수님 말로는 원피아, 철피아 같은 집단의 원조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건우는 윤현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차지훈에게 옮겼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교피아가 어떤 집단인지 확실하게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마 그 말이 사실일 겁니다.”

“좀 더 자세하게는 모르십니까?”

“네. 제가 아는 것도 윤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친일파 놈들이 교육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광복 이후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워낙 조직이 방대해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모든 교육기관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우리가 그들과 적대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건우의 물음에 차지훈은 아까보다 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건우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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