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195화 (195/256)

제195화

“그래도 해야 한다면요?”

“매우 힘듭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반을 모두 잃으실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요?”

건우의 두 눈은 단호했다. 건우는 교피아라는 말을 들으며 운명 같은 걸 느꼈다. 마치 자신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대척점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꼭 하셔야 합니까?”

“차 팀장님은 제 목표가 뭔지 아시죠?”

“교육의 평등. 교육에서만큼은 학생들이 어떤 차별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대표님의 최종 목표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윤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사실이라면 교피아는 교육을 미끼로 아이들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있는 집 아이들에게만 더 많은 혜택을 주려고 하는 조직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제가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우리나라 교육계에 교피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교육은 워낙 민감한 문제라 망하게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망하는 순간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들도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지금껏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교육을 방패막이로 살아남았습니다.”

맹수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기까지 하다. 차지훈이 생각하는 교피아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더더욱 싫어지네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제가 가진 모든 기반을 잃는다고 해도 거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제 재산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억지를 부려 제 재산을 가져간다고 해도 제겐 마이크로소프트가 있고 MS Choice가 있습니다. 그 가치만 해도 수조 원입니다. 싸움에서 지면 저랑 같이 미국으로 가시죠. 손 팀장님이랑 풍족하게 알콩달콩 살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한껏 긴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온 손다정 이야기에 차지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휴…. 대표님은 처음부터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으셨던 거군요. 위험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정 씨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저는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어쩌겠나. 자신의 보스인 건우가 원한다는데.

“하하. 이젠 대놓고 인정하시네요. 초이스 에듀에서 가장 믿는 두 분이 인연이 돼서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이게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피아만 없어지면 제 인생도 탄탄대로겠군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됩니까, 대표님?”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등에 업었다고 해도 우리 초이스 에듀가 가진 힘은 사실 많이 부족합니다. 아직 내실을 다질 때입니다. 지금은 교피아에 대한 대강의 개요만 파악하면 됩니다. 어떤 세력이 주축이고 우리나라 정치권과 재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그 부분만 먼저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위험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조사해주세요.”

“그럼요.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

“윤 교수 걔는 어떻게 됐어?”

이완종 교육부 장관이 심통한 표정으로 보좌관에게 물었다.

“A 대학에 연락해서 윤현희 교수를 파면하라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A 대학은 뭐래?”

“당연히 장관님 뜻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수가 된 이후 고분고분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눈에 거슬려 하던 차였다고 합니다. 장관님이 좋은 명분을 주셔서 굉장히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쯧쯧. 여하튼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당연히 새기 마련이라니까. 어쩌다 그런 것이 교수가 되어서는….”

“그런데 장관님. 대중들 눈치도 있어서 파면은 어렵고 해임으로 했으면 하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A 대학은 국립이라서 교수는 공무원 신분이다. 공무원법상 파면과 해임은 배제징계라고 하는데 해임이 파면보다는 조금 약한 징계다.

조금 약하다고는 하지만 둘 모두 공무원 관계로부터 배제, 즉 해고되는 건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해임은 파면에 비해 공무원결격사유가 좀 더 짧고 퇴직급여와 퇴직수당을 전액 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고 중징계는 피해서 내리겠다는 건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욕을 덜 먹겠다는 의도였다.

이미 임용된 교수를, 그것도 공무원 신분인 사람을 자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윤현희가 비밀유지 서약을 어겼다고 하긴 어렵다. 수능 문제와 관련한 내용도 아니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교육부 장관에게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단순히 장관이라는 자리 때문이 아니다. 그의 집안이 한국에서 가장 큰 사학재단 중 하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교피아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가문이다. 한편으론 대표적인 친일가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여간, 요즘은 SNS다 뭐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아서 사람 하나 징계 주는 것도 예전처럼 쉽지 않아.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변해서, 이젠 개뿔 가진 거 없는 천한 놈들 눈치까지 봐야 할 지경이라니. 됐어. 그냥 해임하라고 해. 해임이나 파면이나 잘리는 건 매한가지잖아. 괜히 이걸로 A 대학에 부담을 줄 순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소송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수능 출제위원이 되면 합숙에 들어가기 전에 비밀유지 서약이라는 걸 한다. 교육부는 그걸 빌미로 내부 고발자인 윤현희를 압박하고 있다.

억지에 가깝지만 그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다시는 배신을 꿈꾸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게 중요했다.

“그것도 계속 진행해. 얼마가 됐던 손해배상 받아내고, 소송비 부담시키고, 방법을 찾아내서 벌금까지 물도록 만들어. 그 배은망덕한 것이 나를 찾아와서 피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빌도록 철저히 망가뜨려. 알겠어?”

띠링.

“아! 죄송합니다, 장관님. 윤현희와 관련된 문자인데, 그런데 이게 내용이 좀….”

“뭐, 윤현희? 무슨 내용인데, 표정이 그래?”

문자를 확인하던 보좌관이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변하자 이완종 장관이 다급히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윤현희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미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뭐,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갑자기 거기 교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받은 문자라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걔가 그럴 능력이 돼?”

A 대학 물리학과는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것도 여성이 교수가 되는 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 사실을 이완종 장관만 모를 뿐이었다.

“그래도 A 대학 물리학과 교수인데, 그냥 운으로 따낸 건 아닐 겁니다.”

“그럼 A 대학은? 걔들은 그것도 모르고 징계 위원회를 열려고 한 거야?”

“오전에도 통화했는데 그때까지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허허, 맹랑하네. 지금까지 그걸 믿고 그렇게 까분 거였어? 어차피 미국으로 갈 거니까 우리가 A 대학 교수 자리를 자르든 말든 무섭지 않아서?”

집안의 힘까지 동원해 A 대학에 압력을 넣었는데, 당사자는 애초에 그 자리에 미련이 없었다는 듯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 장관은 마치 닭을 쫓다가 지붕만 쳐다보는 개 신세가 된 것처럼 더러운 기분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거 어떻게 제재할 방법 없어? 법을 어겨서 A 대학에서 해임된 범법자다. 그런 자격 미달인 인간을 너희 대학 교수로 임용하는 건 큰 실수를 하는 거다. 학교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임용 취소를 해라. 그런 공문은 보낼 수 있잖아?”

윤현희가 이대로 미국으로 떠나버리면 그녀를 본보기 삼아 다른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했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남은 사람들이다.

윤현희의 이번 행동은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행동을 했는데도 미국으로 떠나 잘 살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 미국으로 가버리니 괜찮네?’

‘뭐야? 잘난 척하더니 한국에서만 왕이었어?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나도 다른 나라 교수 자리가 들어오면 윤현희처럼 폭탄 하나 터트리고 떠날까?’

이런 인식이 진짜 문제다. 이렇게 되면 제2, 제3의 윤현희도 나올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아주 작은 변화에 불과하겠지만, 무심코 그냥 방치한 작은 틈에 커다란 둑도 무너질 수 있는 게 세상사다.

“거긴 A 대학과 달라서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은 우리 압력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과연 그 말을 들을지….”

“그래도 모르니까 해봐.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공문을 발송하면 제 놈들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거 아니야? 어떻게든 우리에게 반기를 든 것에 대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고, 어떻게든. 알겠어?”

“네. 장관님.”

“그리고 최건우에 대해 형님은 뭐라고 하셔?”

이완종 장관은 가문의 일원일 뿐이고 진짜 주인이자 적장자는 그의 형이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장관님의 실패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래서 형님은 최건우를 이대로 두고 보신대?”

“그래 봐야 사교육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문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별도의 제재는 없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자기 혼자 고고한 척하기는. 최건우 그놈은 굉장히 영악해. 좋은 머리 하나로 와룡그룹까지 흔들었던 놈이라고. 이대로 커 나가게 뒀다간 나중엔 형님도 감당하기 힘들지 몰라. 위험해. 그런 놈은 더 자라기 전에 뿌리째 뽑아야 해.”

“이미 회장님께서 결정을 내리신 사안입니다.”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바꿀 수 없다는 의미였다. 보좌관이긴 하지만 그 또한 이완종 장관 가문의 소속원이었다.

“휴…. 그걸 형님 혼자 결정했을 린 없고, 원로회에서 또 태클을 걸었겠군. 최건우가 대중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으니 함부로 건드리기 무서운 거야. 겁 많은 늙은이들 같으니. 어쩔 수 없지. 나도 지은 죄가 있으니 고개를 숙여야지. 알았다고, 당분간 조용히 자숙하며 지내겠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장관님.”

***

[수능 성적 발표. 그리고 자신의 말을 당당히 증명한 최건우 대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능 성적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교육부가 총 11개 문항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 보름만의 일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9개 문항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했고 나머지 2개 문항은 전원 정답으로 처리할 것이라 발표했다.

수능 시험에 대한 신뢰성을 흔들어버린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그로 인해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일선 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집단 멘붕 상태로 몰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재시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일단 시간이 촉박했다. 지금부터 아무리 빨리 수능 시험 출제를 준비한다고 해도 내년 3월 전까지 대학 입시를 완료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정말 서두르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시간에 쫓겨 또다시 수능 문제에 오류가 생기면 그땐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엄청난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교육부 장관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및 10여 명의 관련 책임자들이 일괄 사표를 내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정말 우여곡절 끝에 점수가 발표됐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평이했다. 사상 최악의 불수능이라 불렸던 작년보다 많이 쉬워졌다고는 해도 다행히 변별력을 잃을 만큼 물수능도 아니었다. 난이도 자체는 적정선을 잘 지켰다는 평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 2017학년도 수능시험에서 10명의 만점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초이스 에듀는 자신들의 학원이 9명의 만점자를 배출했음을 언론에 알렸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총 만점자 중 90%를 한 학원에서 배출했다는 건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초이스 에듀가 보여준 엄청난 수능 적중률을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진짜 놀라운 소식은 따로 있었다. 바로 9명 중 6명이 초이스 에듀 근로장학생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50여 일 전 최건우 대표는 초이스 에듀 동영상 강의를 열심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올해 근로 장학생들은 수능 특강반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또한,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해 수능을 앞둔 친동생과도 따로 떨어져 사는 결단을 보였다.

그리고 최건우 대표는 이번 결과를 통해 자신의 말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초이스 에듀의 근로 장학생은 성적 장학생과 예체능계 장학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7명의 성적 장학생 중 무려 6명이 만점을 받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나머지 1명은 1문제를 틀려 만점을 놓쳤는데, 그 학생이 바로 최건우 대표 동생이라고 한다.

- 미래를 함께하는 우리신문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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