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정치계의 괴인으로 알려진 장문오 시장도 놀랄만한 계획에 쉽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는 건우의 교육 타운 계획에 3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난 9월 건우가 만든 교과서가 미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투자금 액수를 2조 원 더 늘렸다.
단순히 호응이 좋아서 그런 과감한 결정을 한 게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퓨처 앱과 건우의 새로운 커리큘럼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다. 그 덕분에 새로운 교과서에 대한 폭발적인 호응은 곧바로 윈도폰의 폭발적인 매출증대로 이어졌다.
그동안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 쳐도 애플과 안드로이드에 밀려 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초이스 에듀와의 제휴 하나로 스마트폰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애플과 안드로이드에 크게 못 미치지만 시장 점유율이 늘었고 적자가 줄어들었다는 사실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너무나도 확연하게 결과가 나타나자 그동안 건우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사들도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3조도 많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2~3배로 투자액을 늘려야 한다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5조 원도 건우가 단호하게 못을 박아서 그 선에서 정해진 것이지 만약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버려뒀다면 투자액은 그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네. 5조 원 맞습니다. 서류철 뒤에 보면 초이스 에듀와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투자 협정서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거길 보시면 5조 원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돈을 전부 교육 타운을 만드는 데 투자한다는 말씀입니까? 5조 원을 모두 다요?”
“아니요.”
건우가 고개를 저었는데도 장문오 시장은 실망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사실 전부도 필요 없다. 그 돈의 반만 교육 타운에 투자되어도 여주시의 경기는 확 살아난다. 그렇게 되면 딱히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럼 절반 정도만 투자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5조 원은 투자금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저는 10년 계획으로 교육 타운에 20조 원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허…. 얼마요? 20조요? 저기 최 대표님. 저는 그런 농담을 들으려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닙니다. 이런 식의 황당한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으면 여길 나오지도 않았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던 장문오 시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건우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세부 계획서를 읽어보고 판단해주시지요.”
“후…. 좋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 대표가 제게 사기 칠 이유는 없으니 한번 읽어는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문오 시장은 건우가 건넨 세부 계획서를 마지못한 얼굴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은 실망에서 놀라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때부터 시장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간간이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꼬박 1시간이 지났는데도 장문오 시장은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손에서 땀이 나는지 몇 번이고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렀다. 그런 순간조차도 시선은 세부 계획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세부 계획서는 그만큼 흥미로우면서도 방대했다.
건우는 시시각각 변하는 장문오 시장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입니까?”
마지막 종이까지 모두 확인한 장문오 시장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한 시간 만에 처음 낸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목이 탔는지 테이블에 놓인 물을 쭉 들이켰다.
“사실입니다. 혹시 계획서에서 제가 사기를 칠 구석이 보였습니까?”
“아니요. 전혀 없더군요.”
이런 계획으로 사기를 치려면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런데 건우가 건넨 세부 계획서에는 그게 없었다.
땅은 이미 마련했고,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5조 원의 거액을 투자받기로 했다. 거기에 건우와 초이스 에듀가 남은 15조 원을 분담한다.
감언이설로 상대를 속여 투자받고 그걸 떼먹어야 사기인데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투자도 받을 계획이 없다. 투자를 받지 않으니 돈을 떼먹을 일은 애초에 발생할 수조차 없다.
“아직도 제 말이 의심스러우십니까?”
“그건 아닌데 정말 남은 15조 원을 최 대표님이 감당할 수 있는 겁니까?”
“계획서에서 보셨던 것처럼 국내와 해외 매출이 월 2천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1년이면 2조 5천억 원입니다. 굉장한 고부가가치 사업이라 그중 절반 이상은 교육 타운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장문오 시장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계획서만 봤을 땐 충분히 가능해 보이긴 한다. 그런데도 금액이 너무 커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2천억 원도 2조 원도 아니고 무려 20조 원이다. 10년에 걸쳐서 투자한다고 하지만 그런 거액은 우리나라 최고 그룹인 S그룹도 부담스러워할 규모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주식과 MS 초이스 주식을 담보로 잡으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언제든지 5조 원까지 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 수익도 발생합니다. 교육 타운을 조성하는 동안 아파트와 주택 그리고 상가를 지어서 분양할 예정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최소 3조 원 이상의 투자금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여주의 교육 타운 부지는 아름다운 남한강을 끼고 있어 사람이 사는 거주지로도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아이들이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추가된다면 아파트와 주택을 분양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다.
“그도 그렇긴 하죠. 하지만 최 대표님은 수능 특강반을 폐지하고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전환했지 않습니까? 가장 큰 수익처를 두 개나 포기한 건데 매출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학원 근로 장학생들이 너무나도 좋은 성과를 거둬줘서 수능 특강반 폐지 때문에 타격받을 일은 거의 없지 않나 싶습니다. 6명이나 만점을 받았거든요.”
“아! 저도 그 기사 봤습니다. 최 대표님 동생만 만점을 받지 못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전부 만점을 받았다는…. 이런, 최 대표님에게는 아픈 소식을 수도 있는데 제가 눈치 없이 이야길 꺼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수능 앞두고 한 달간 뒷바라지도 못 해줬는데 불평불만 없이 성실히 준비해서 그런 좋은 성적을 거둔 동생입니다. 저는 제 동생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미안한 기색을 짓는 장 시장에게 건우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은우와 투닥거릴 때는 초딩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동우는 건우가 예전 삶에서 보았던 동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이 든 모습이다.
예전의 까칠하고 제멋대로 굴던 동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수다쟁이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작년과 비교해 올해 근로 장학생들 사이가 유난히 좋았던 것도 동우의 힘이 컸다.
그 덕분에 작년 근로 장학생이 건우를 고마운 선생님으로 존경하면서도 어려워한다면 올해 근로 장학생은 건우를 친형, 친오빠처럼 편하고 친근하게 생각했다.
“그건 맞습니다. 사실 전국 11등을 보고 희대의 멍청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저도 대표님 동생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어쨌든 제 동생과 다른 근로 장학생 아이들이 수능 시험을 잘 봐준 덕분에 특강반 폐지는 큰 타격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기가싱크빅, 크레이듀, 세계교육 그리고 우리 초이스 에듀가 사교육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교육을 인수한 크레이듀를 우리 초이스 에듀가 다시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규모가 크던 네 학원 중 세 학원이 초이스 에듀 이름으로 합쳐진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초이스 에듀가 사교육 시장에서 완전히 독보적인 위치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
“그럼 매출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건우의 차분한 설명에 장 시장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사실 한국 시장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은 다릅니다. 미국의 경우 올 상반기 월평균 매출이 삼백억 원이었는데 9월이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1월 매출은 천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고, 내년에는 영국과 호주를 비롯해 영어 문화권 국가에 제가 만든 교과서가 공급됩니다.”
“아…! 전 세계 영어 문화권 국가에 최 대표님 교과서가 보급되면 동영상 강의 매출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겠군요.”
“우리 학원 팀 앨버트로스 분석으로는 지금보다 최소 3배 이상 매출이 오를 거라고 합니다. 지금은 영어권 국가 위주이지만 그 외 유럽 국가, 그리고 중국과도 교과서 공급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교육 타운을 짓는 데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부족하지 않은 게 아니라 건우의 설명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지금 같은 교육 타운을 몇 개는 더 지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향후 10년 안에 한국 최고의 부자는 S그룹 총수가 아니라 건우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장문오 시장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최건우 대표는 대체 왜 이런 것까지 내게 설명하는 걸까? 그냥 투자액에 거품이 없다는 것만 내게 알려도 충분했을 텐데. 돈을 많이 벌게 된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이십 대 초반 남자의 허세?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기엔 최 대표 성격은 너무 담백해. 지금도 흥분기 하나 없이 여유가 넘쳐.’
이제 정부의 압력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10년간 20조 원이라는 거액이 여주시에 흘러들어온다. 경마장이나 카지노 같은 혐오 시설이 아니라 누구나 선호하는 교육 시설이다.
지금까지는 쌀과 아웃렛이 여주를 대표했다면 앞으로 10년 후엔 건우가 건설할 교육 타운이 여주의 상징이 될 게 분명했다.
돈이 몰리고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눈부시게 발전할 10년 후의 여주가 상상이 됐다. 투자가 끝나도 걱정이 없다. 그때부터는 교육 타운이 여주의 경제를 받쳐줄 테니까.
좋으면서도 아쉬웠다. 여주는 장문오 시장의 고향이다. 발전하는 여주는 좋지만 갑자기 할 일을 빼앗긴 느낌이다. 이젠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여주는 멋진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그래요. 절대 부족하지 않겠군요. 오히려 남겠죠. 저기, 최 대표님.”
“네, 시장님.”
“굳이 이런 사실까지 제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뭐 때문일 것 같습니까?”
이렇게 반문했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건우도 인정한 셈이다.
“돈 많이 번다고 제게 자랑할 성격은 아니신 것 같고. 뭡니까? 저는 최 대표님이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진 정신없이 공부했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돈을 버느라 바빴습니다.”
“그게 이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 대표님뿐만 아니라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최 대표님은 이미 우리나라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요.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는 몰라도 저 같은 정치인보다 대표님이 훨씬 훌륭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장문오 시장은 건우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의 압박도 무릅쓰고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제가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많은 분들이 제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초이스 에듀를 지금처럼 키울 수 있었지요. 그러니 그때 받았던 도움을 형편이 어려운 다른 분들에게 돌려드리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긴 한데, 상식이 상식이 아닌 세상이라서요.”
“그걸 저는 몰랐습니다. 상식적으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특히 이번 정권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상식적으로 행동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저와 정부 사이는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예전 삶에서 건우는 학원 강사로 성공하기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이번 정권이 어땠는지 기억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삶을 다시 시작한 후 이번 정권을 바라보는 건우의 시선은 기묘(奇妙)했다. 이상하고 묘하다는 뜻이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로부터 압박이 들어왔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제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이 없는 무소속 시장입니다. 큰 대도시도 아니고 여주라는 작은 도시의.”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정권과 관계 개선을 하든지, 아니면….”
“아니면?”
“저와 맞지 않는 정권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밀어주든지.”
건우의 말이 끝나자 순간 무거운 기운이 시장실에 내려앉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