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07화 (207/256)

제207화

“당연하죠. 사람은 믿어도 돈은 믿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교육 타운 건설 문제는 백우찬 이사가 전부 담당하고 자금 결제는 우리가 직접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안 생기죠.”

“허긴. 아무리 좋은 사람도 조 단위의 돈이 눈앞에 보이면 흔들릴 수 있어. 기부금까지 관리하려면 김 팀장 정말 힘들겠다.”

“어휴. 말도 마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동수 이사가 정말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 양반도 좋은 일을 하려고 그런 거였는데 너무 원망하지는 마.”

“절대 아닐걸요!”

차지훈의 위로에 김완태는 평소답지 않게 정색했다.

“절대 아니라고? 왜?”

“그 양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몰라, 내가 별명까지 어떻게 알아? 눈치가 엄청 빠르고 잔머리가 비상하게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맞습니다. 그래서 ‘잔머리 대마왕’이라는 별명까지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잔머리는 알겠는데 대마왕은 왜? 그냥 잔머리가 좋다는 의미로?”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사악하고, 음흉하고, 의뭉스럽고. 아무튼 대마왕 같은 성격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물론 김완태는 마동수가 자신의 별명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에이, 아무려면 사악한 사람이 설마 5,000억 원이나 기부하고 하겠어?”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이걸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왜 그냥 친구들끼리 하는 말 있잖아요. 넌 정말 사악한 녀석이다. 이렇게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짓궂은 녀석들한테 많이 쓰는 말이었지.”

“네, 맞아요! 짓궂다. 바로 그런 느낌의 사악함요.”

“그런 의미에서 잔머리 대마왕이다? 그러고 보니 장난기가 꽤 많아 보이긴 하더라. 꼭 그게 아니라도 수완이 대단하잖아. 상식적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를 안 할 수가 있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꼼수를 부려 해결한다고 하잖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대마왕처럼 보일 것 같아.”

차지훈도 이번에 마동수에 대해 조사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그가 그동안 이뤄낸 업적은 건우와 또 다른 의미로 정말 대단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마동수 이사가 우리 순진한 대표님을 꼬신 거라니까요. 애초의 계획처럼 기부도 투자라고 생각하고 안 받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왜 갑자기 기부액을 받아서는 일을 이렇게 키우는 건지….”

“김 팀장 너, 아무리 그래도 네가 잠깐 힘들다고 기부액을 받지 말자고 하면 안 되지. 그게 전부 학생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텐데.”

“헤헤헤. 드, 들켰나요? 저도 좋은 일을 한다는 취지는 정말 좋은데, 업무가 너무 고단하다보니…. 하하하.”

“쉿! 두 사람 만담은 이제 그만. 대표님 들어오세요.”

주거니 받거니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차지훈과 김완태 사이에 손다정이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건우가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또 회의가 시작된다. 차지훈과 김완태는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쭉 들이켰다.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

「Gun4」라는 이름이 있다. 총이 네 개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원칙적인 발음은 [건포]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건사]가 더 정확하다. 표기를 「Gun4」라고 해놓고 [건사]라고 읽어야 한다는 게 웃기만 줄임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건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건우의 팬카페 이름이다.

이걸 줄여서「Gun4」라고 부른다. 일부 회원들은 [건사]가 너무 아재스럽다면서 [건포]라고 읽기도 한다. 그건 각자의 취향이다.

거기에 대한 제재는 물론 없다. 건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게 중요하지, 발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게 운영진의 입장이다.

한때는 발음을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게시판이 과열될 정도로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 싸움에 가담한 사람은 모두 잘렸다. 운영진도 몇몇 있었지만 모두 잘렸다.

다양성의 존중. 건우가 수업 중간중간에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그의 팬카페인 「Gun4」의 가장 중요한 회칙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쓸데없는 발음 논쟁을 벌였다는 건 건우의 진정한 팬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Gun4」매니저의 판단이었다.

그때 그 논쟁으로 잘린 사람만 5,000명이 넘는다. 그중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정도의 정말 짧은 댓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매니저는 어떤 사정도 봐주지 않고 전부 쳐냈다.

너무나도 단호한 조치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새로운 팬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대로 「Gun4」가 무너지는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카페 매니저의 선택은 옳았다. 강력한 자정 작업을 통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솎아내자 카페는 더욱 활기를 띠었고 기업가, 법조인, 의사, 교수 등 팬카페에서는 잘 보기 힘든 직업군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Gun4」는 건우의 팬카페 중 최고의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자금력만큼은 최강이다. 그를 기반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팬클럽이다.

그런 「Gun4」에서 운영진 긴급회의가 열렸다. 다들 바빠서 평소엔 직접 모이지 않고 카페 채팅창을 통해 운영진 회의를 한다.

- 안녕하십니까. 김수민 님이 제안한 안건을 검토한 결과 긴급회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수민 님이면 항상 재미있는 안건을 올려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기획을 하셨는지 기대됩니다.

-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김수민 님이 직접 해주실 겁니다. 김수민 님, 설명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십니까, 김수민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코자 이번에도 굉장히 흥미로운 기획을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온라인 카페는 본명 대신 별명을 쓰는 곳도 많지만 「Gun4」는 이름을 사용한다. 굳이 익명성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이유인데, 사람 이름이라면 가명을 써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방금 인사한 김수민은 매니저와 함께 「Gun4」를 지탱해온 존재다. 매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흥미로운 기획을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카페의 아이디어 뱅크나 다름없다.

그의 직업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카페 봉사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사비로 적극 지원하는 등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며, 중견기업 사장이라는 소문이 도는 게 전부였다.

카페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해서 다른 운영진들은 기업 사장이 맨날 카페에서 상주해도 괜찮으냐고 걱정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 일을 등한시하는 건 아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 많은 만큼 세 개의 모니터 중 하나에 카페 창을 열어놓고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 오! 굉장히 자신감 있는 모습인데요. 기대됩니다. 뭔가요? 궁금합니다. 어서 내놓으세요!

- 그래요, 뜸들이지 말고 어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ㅎㅎㅎ

- 워워. 다들 진정하세요. 지금 당장 말씀드리겠습니다.

- 뭔데요? 뭔데요? ㅋㅋ

- 허리! 허리!!!!

- 여러분. 잠시 지방방송 좀 꺼주시고요. 김수민 씨, 계속 말씀해주세요.

- 이번에 최건우 대표님이 교육 타운 계획을 발표한 건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뜻에 역시 최 대표님이구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기업들의 성화에 기부를 받기로 하긴 했는데 그 액수를 1,000억 원 이상으로 정한 부분입니다. 어쩔 수 상황은 이해하지만 최 대표님의 좋은 뜻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쉬웠습니다.

- 그건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다. 최 대표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이상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거든요.

- 맞아요. 소액까지 기부를 받았으면 ‘아니라더니 결국 감성팔이로 돈을 받아가는구나. 그 봐라, 딱 봐도 사기다’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걸요?

- 저도 동감해요. 기업에서 자진해서 돈을 내고 네이밍 사용권을 가져간 것까지는 괜찮지만 더 소액을 받으면 분명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 그래도 아쉽긴 하네요. 1,000억 원이 아니라 한 100억 원 정도 됐으면 우리 카페 이름으로 기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정말 왜 그렇게 꼬인 사람들이 많은지 몰라요.

이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기업가나 전문직 회원이 많은 카페인 만큼 100억 원 정도는 큰마음 먹고 노력하면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1,000만 원씩 1,000명만 내도 100억 원인데, 「Gun4」에는 그 정도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러나 1,000억 원은 차원이 다르다. 사회 환원이나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집이나 차를 팔아 기부금을 마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자기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의 행복도 도와줄 수 있다.’

「Gun4」 운영진들이 생각하는 중요 원칙 중 하나다.

- 역시 우리 카페 회원님들답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우리도 과감하게 1,000억 원을 모아보는 게 어떨까요?

- 헐...........................

- 쿨럭쿨럭.

- ㅋㅋㅋㅋㅋㅋㅋ. 김수민니뮤.. ㅠㅜㅠㅜㅠㅜㅠㅜ

- 저기 노, 농담 아니신 거죠?

김수민도 이 반응을 예상하지 못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 물론 카페에서만 하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부 펀드를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 ㅇ.ㅇ 기부펀드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갑자기 끌리네요.

- 오오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습니다. 전 찬성!!

- 괜찮은 것 같아요. 너무 금액이 커서 망설이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기부 펀드를 만들어 서로 부담을 줄인다면 동참하는 사람이 꽤 있을 거라고 믿어요!

- 한 계좌당 얼마를 받을 생각이세요?

- 1,000만 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적은 돈까지 모아서 기부펀드를 만들면 최 대표님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기도 해서요. 깔끔하게 딱 10,000계좌만 모집하고 기부 펀드를 마감할 생각입니다.

- 돈 관리는 직접 하실 생각이세요?

- 아니요. 절대 그러면 안 되죠. 공신력 있는 은행에 맡겨 투명하게 관리할 생각입니다. 제가 거래하고 있는 은행에 이야기를 해봤는데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되면 자기들 은행 이름으로 500계좌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 우와! 역시 김수민 님이다. 500계좌면 50억이잖아요. 은행에서 정말 그걸 내겠대요?

- 네. 본사 은행장님이 확답해준 내용입니다. 그 은행도 교육 타운에 기부하고 싶었는데 1,000억 원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부 펀드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하니까 옳다구나 하고 한 발 끼겠다고 하더군요.

- 그러고 보니 그 은행도 손해는 아닐 것 같네요. 교육 타운 기부 펀드를 만든다면 분명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고 은행 이름도 자연스럽게 노출될 테니까요.

- 그것까지 고려하시고 은행과 이야기를 나눈 거겠죠?

- 하하하. 슬쩍 언론 이야기를 풀긴 했죠. 그랬더니 덥석 물더라고요.

- 우와와. 프로 낚시꾼이군요. 회사 사장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요. 김수민 씨가 「Gun4」에 계셔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 크윽. 부끄럽습니다.

- 그런데 기부 펀드 조성에 성공해서 최 대표님에게 돈을 전달하게 되면 무슨 조건을 말씀하실 건가요? 「Gun4」이름을 사용하면 좋지만 우리 카페 회원이 아는 사람들도 동참할 테니 어려울 것 같은데요.

- 안 그래도 그 문제를 고민해봤습니다. 다른 기부자들의 양해를 구해서 「Gun4」 이름을 사용할까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기부 펀드의 의미가 희석될 것 같아 관뒀습니다.

- 잘 생각하셨어요. 한두 푼도 아니고 한 사람당 최소 1,000만 원을 기부하는 일인데 「Gun4」를 쓰겠다고 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예요.

- 그럼 어떻게 하죠? 네이밍 사용권을 포기해야 하나요?

- 그럴 수야 없죠. 다들 네이밍을 사용하는데 우리만 안 하겠다고 하면 그것도 최 대표님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 그럼 좋은 방법이 있나요?

- 그래서 제가 또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교육 타운이라고는 하나 ‘타운’이라고 하기엔 좀 큽니다. 규모가 여의도급 도시입니다. 최 대표님 성향상 나무도 많이 심을 테죠?

- 당연히 그렇겠죠. 명색이 교육 타운인데 회색 건물만 가득 채워놓지는 않으시겠죠.

- 그럼요. 최 대표님이라면 나무가 가득한 자연 친화적인 교육 환경을 만드실 걸요?

-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무에 기부자 이름을 하나씩 걸어두는 건 어떨까요? 이게 건물에 이름을 짓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오오오오오오. 역시 역시 우리의 아이디어 뱅크 김수민 씨입니다. 정말 괜찮은 생각인데요?

- 그러게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김수민 씨는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아요. ㅎㅎㅎ

- 흐흐흐. 머리는 평범한데 잔머리가 좀 특출납니다.

- 겸손하시기는. 창의성이 좋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반인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걸 척척 내놓으시는 거죠. 부럽습니다. 기업 사장님만 아니면 제가 스카우트하고 싶을 정도예요.

- 조건만 맞으면 옮길 수는 있는데 제 몸값이 좀 많이 비쌉니다.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 ㅠㅠㅠㅜㅠㅠㅠㅜ. 아니요. 저는 김수민 님에 비하면 가난한 변호사라서요.

- 정현미 님이 가난한 변호사라니요. 그거 너무 하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로 알고 있는데, 그럴 리가요.

- ㅠㅠㅜㅠㅜㅠㅜ. 맞아요, 이혼 전문 변호사.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고 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항상 느끼지만, 정현미 님은 너무 솔직하심 ㅋㅋㅋㅋㅋ

- 자, 그럼! 기부 펀드 조성에 다들 찬성하시는 겁니까?

- 네, 찬성합니다.

- 저도요.

- 찬성요.

- 무조건 찬성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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