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늘리면 좋긴 한데 가장 큰 문제는 강사 확보입니다. 실력 좋은 강사들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설사 구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과연 지방으로 내려가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지방 학원의 반발도 생각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초이스 에듀 때문에 폐업하는 학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여기서 마구잡이로 분점을 늘리긴 어렵습니다.”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다. 덩치가 커진 초이스 에듀는 예전처럼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러기엔 고려할 상황이 너무 많았다.
“지금 회의를 지켜보고 있자니 갑자기 영화 스파이더맨의 오글거리는 대사가 생각나네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학원이 커졌다고 좋아했더니, 꼭 좋아할 일만도 아니네요. 스파이더맨이 된 기분이에요.”
안우현의 푸념 섞인 농담에 참석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한 마디에 경직된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음. 여러 의견 잘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부터 지방 분점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왔습니다.”
분위기가 바뀌자 참관만 하고 있던 건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 뭔가 좋은 해결책이 있는 겁니까?”
“방금 손다정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에 분점을 늘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눈높이에 맞는 강사를 구하는 게 쉽진 않거든요. 분점이라고 해도 초이스 에듀라는 이름을 내걸고 가르치는 건데 자격 미달인 사람을 강사로 채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 웬만큼 실력이 안 되면 우리 학원의 이름만 깎아먹게 됩니다. 그럴 바에는 분점을 안 만드는 게 낫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실력 있는 강사가 지방 중소 도시에 가지 않으려는 것도 문제입니다.”
“돈이 있어도 갈 사람이 없으니 원.”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네요. 그런데 인력 문제 말고도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본점을 지방으로 옮기고 싶지만….”
“어휴, 그건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서울에 있는 학부형들이 전부 들고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직원들이 깜짝 놀라 건우를 말렸다.
“역시 그렇죠?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를 만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네?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요? 그건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의 등장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물어보겠습니다. 저와 강사님들이 아무리 쉽게 강의를 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흠…. 그건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대로’라는 의미는 거의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뜻이겠죠?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는, 일단 학교에서 교사들이 하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은 전체 중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이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고교 과정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그것도 많이 잡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딱 한 번만 수업을 듣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학생이 과연 1%나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0.1%나 될까요?”
굉장히 박한 평가였지만 대부분 그 말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초이스 에듀 온라인 강의는 얼마나 될까요?”
“학교 수업 이후 두 번째 듣는 강의일 테고, 강의 수준도 높으니…. 음…. 대략 5%? 이건 너무 짠가? 그렇지만 아무리 많아도 10%는 안 넘어갈 것 같습니다. 뭐, 두 번 세 번 알아들을 때까지 반복해서 계속 듣는다면 20%까지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 그 정도 끈기가 있을지는 잘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가 아무리 고퀄리티라고 해도 1대1 강습이 아닌 이상 학생들이 수업을 이해하든 못하든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겠죠?”
“솔직히 그런 일은 예전부터 자주 있었습니다. 수포(수학포기)자, 물포(물리포기)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수학과 과학은 암기 과목과 달리 이해를 하지 못하면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여러 명을 한꺼번에 가르쳐야 하는 학교나 학원 사정상 모든 학생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가 없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고, 알아듣지 못하는 강의에 흥미를 잃은 학생은 수학이나 과학을 포기하고 암기 과목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니까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를 만들자는 겁니다.”
“대체 그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라는 게 뭐하는 곳인데요?”
“학생들은 교습소에 와서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나면 대기하고 있는 강사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상세히 다시 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사실 저도 강의할 때 너무 쉬운 건 시간 관계상 그냥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에서는 그런 걸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줘서 학생들이 수학이나 과학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죠.”
“그럼 우리가 내보내는 강의를 가지고 교습소에서 재강의를 하는 개념인 거네요?”
“재강의라기보다는 보충강의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오호. 그렇게만 되면 수포자나 물포자들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겠는데요?”
“대표님. 어떻게 보면 하청이나 마찬가지인데 하려는 학원이 있을까요? 다른 강사의 강의를 보충 설명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을 도울 기회인데 자존심 때문에 꺼린다면 저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하는 학원이 없으면 우리가 교습소를 직접 차려도 됩니다.”
“직접 차린다고요?”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10여 군데의 중급 도시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할 생각이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많이 필요 없습니다. 한 반에 많은 학생을 받을 건 아니기 때문에 작은 강의실 몇 개에 시청각 시설만 잘 꾸미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반응이 좋으면 교습소를 하겠다는 신청자도 생기겠죠.”
다른 학원이 한다면 시큰둥하게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이스 에듀라면 다르다. 지방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초이스 에듀라는 이름만 보고 일단 등록하고 볼 것이다.
교습소면 어떻고 학원이면 어떤가? 그들은 건우가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서 직접 강의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강남 사람들도 들어가고 싶어 안달인 초이스 에듀에 소속되고 싶은 것이다.
그게 지금 건우라는 이름이 가진 위상이다.
“그렇다면 강사들은 어떻게 모집할 생각이십니까? 교습소라고 해도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 할 텐데, 그런 강사들이 남의 강의에 보충 설명하는 일을 하려고 할까요?”
“없다면 우리가 만들면 됩니다.”
“허, 어떻게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냉정하게 말해 남의 강의에 보충 설명하는 게 교습소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대단한 강의 실력은 필요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조근조근 설명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애초에 소수 반을 운영한다고 하신 겁니까?”
“네. 제가 생각할 때는 10명 정도가 적당한데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보장하려면 20명까지는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타강사에게는 전혀 눈에 차지 않는 일이겠지만, 지방의 보습학원 강사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강사 교육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일종의 연수원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곳에 교습소 강의 희망자들을 모아놓고 저나 다른 라이브 스트리밍 강사들이 교육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강의를 했고, 어떤 의미가 생략됐으며, 어떤 내용이 중요한 건지 상세하게 설명할 시간을 가질 겁니다.”
“완전히 교습소에 최적화된 강사를 만들어낼 생각이신 거네요?”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정말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별도 선발해서 분점으로 보낼 계획입니다만, 그건 나중 일이겠죠. 아직 정확한 기간은 정하지 않았는데, 한 달이면 한 달 동안 교육해서 무사히 통과한 사람에게만 자격증을 발급하겠습니다.”
“그럼 자격증을 발급받은 사람만 교습소를 운영할 수 있는 겁니까?”
“사실 교습소는 아무나 운영할 수 있습니다. 우리 허락 없이 라이브 스트리밍 강의를 틀어주고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고 해서 법적으로 제재하긴 어렵습니다. 대신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공식적으로 초이스 에듀 소속이 됩니다.”
교육을 하고 자격증을 나눠주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교습소 강사의 실력 향상, 그리고 두 번째는 사설 교습소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에 대한 견제.
오직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초이스 에듀 이름을 가지고 교습소를 운영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대외적인 목적이고, 건우의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자격증 하나로 교육계의 헤게모니를 거머쥐는 것.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처음에는 사소하게 시작된다. 1기가 나오고, 2기가 나오고, 3기가 나오고. 시간이 갈수록 초이스 에듀 공식 자격증을 가진 점점 강사들이 늘어나게 된다.
초이스 에듀가 지금의 성과를 계속 유지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공식 자격증이 있는 강사를 찾기 마련이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꼭 교습소에서만 일할 필요가 없다. 처음엔 교습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실력을 키우면 좀 더 큰물에 진출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강사는 자신의 경력란에 ‘초이스 에듀 교습소 출신’, ‘초이스 에듀 공식 강사 자격증 소지’라는 두 개의 경력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실력은 비슷한데 위 두 개의 경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다면 학생들은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초이스 에듀가 여전히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두 개의 경력이 더 있는 사람을 학생들은 선택할 것이다.
매해 강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늘어나고 그들이 성장해 더 큰 학원의 강사 자리까지 점령한다면, 어느 순간 초이스 에듀 자격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 날이 오게 된다.
이게 바로 건우가 그린 큰그림이다.
물론 생각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교습소가 최선이다.
큰 그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건우에게는 나쁠 게 없다.
“공식적으로 초이스 에듀 소속이 된다는 것은 초이스 에듀 이름을 걸고 개별적으로 교습소를 운영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한 학급에 최대 20명밖에 못 받는데 한 개만 있어서는 곤란하잖아요.”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라…? 이거 왠지 대박 아니면 쪽박일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안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건우가 피식 웃었다. 그라면 자신의 뜻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텐데 모르는 척 의뭉을 떠는 게 재미있었다.
“이왕이면 대박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안우현 팀장님?”
“하하하. 그렇죠? 저도 대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교습소 세부 계획은 안우현 팀장님과 손다정 팀장님이 수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해산하겠습니다.”
***
2017년 3월.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추위가 2월의 마지막 날과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따뜻한 봄이 시작되었다.
여주시 남쪽 강변에 자리하고 있던 수풀 가득했던 들판은 이곳만 아직 겨울인 양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혼바위 아래 지역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단상과 수많은 의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사상 최대 규모의 교육 타운이 들어선다. 물론 아직은 대규모 공사를 위해 다져놓기만 했기 때문에 황무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고 10년 후가 되면 이곳은 세계의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진다. 오직 교육만을 위한.
아직 대략적인 조감도만 발표됐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호사가들은 세계 최고의 자연 친화적 도시가 될 거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오늘 이곳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있는, 그 모든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이 열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