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10화 (210/256)

제210화

이번 기공식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자들이 몰려왔다.

2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 들어가는 대공사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이미 넘칠 만큼 관심을 받았지만, 거기에 4조 원이나 되는 기부금이 조성되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언론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얼마 후 톱 연예인의 열애 소식이 터졌지만, 그 뉴스도 고작 하루 반짝하고 말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연예인의 열애 소식마저 순식간에 묻힐 정도로 교육 타운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와 함께 잠잠했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투자를 안 받겠다고 하더니 기부로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것이다. 머지않아 최건우가 4조 원을 몽땅 들고 튈 거라는 악의적인 논조의 글도 SNS를 통해 조금씩 퍼졌다. 마치 과거에 유행했던 괴담처럼.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하기로 한 5조 원과 주식 담보 조건으로 빌려주기로 한 5조 원까지 포함하면 무려 14조 원이다. 상상조차 안 가는 무지막지한 돈이 아직 공사를 시작도 안 한 건우의 손에 곧 쥐여질 예정이다. 그 정도면 명예를 뒤로한 채 모든 걸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14조 원이면 부모든 자식이든 모두 내팽개치고 도망갈 수 있는 돈이다.”

“웃기지 마라. 그동안 최건우 대표가 기부한 돈이 얼만데 그러느냐. 돈에 집착할 사람이었으면 기부하지도 않았다.”

“멍멍이 소리한다. 그게 다 쇼다.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쯤 된다고 본다. 지금까지 기부한 돈을 모두 합쳐도 1조 원이 넘을까? 뭐, 그래! 백번 양보해서 1조 원을 기부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것 덕분에 한 방에 14조 원을 모았잖아. 1조 투자해서 14조 먹는 거면 과하게 남는 장사지.”

“자꾸 14조 원을 강조하는데 그런 식으로 숫자 장난을 치지 마라.”

“으잉? 난 그냥 팩트만 말했을 뿐인데 무슨 숫자 장난?”

“네 연봉이 1,500만 원이라고 쳐. 물론 네가 하는 짓을 보면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벌 것 같긴 하지만….”

“왜 이래. 나 연봉 2,000만 원은 넘거든!”

“아이고, 그래 많이 받아서 좋겠다. 요즘은 댓글 알바로 돈을 많이 받나 보네.”

“뭐래. 나 댓글 알바하는 거 아니거든!”

“뭐,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연봉이 1,500만 원이라고 해서 매년 1월에 1,500만 원을 한 번에 주는 건 아니잖아. 매달 125만 원씩 나눠서 주지.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야. 한 번에 그 많은 돈을 왜 줘? 10년에 걸친 공사인데.”

“그래도 초기 공사비가 많이 들어서 그중에 절반은 미리 지급해야 할걸? 10조 원에 절반이면 5조 원이고 거기에 4조 원을 더하면 9조 원이야. 그 돈만 해도 도망가고 남지.”

“그런데 왜 10조 원이야? 마이크로소프트는 5조 원만 투자하기로 했어. 나머지 5조 원은 최건우 대표가 공사비를 제때 마련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예비비야. 그걸 같이 포함하면 안 되지.”

“알았어 내가 양보할게. 5조 원은 뺄 게.”

“뭘 양보한다는 거야? 팩트 좋아하더니 이제 와서 팩트가 아니니까 양보를 해?”

“까다롭게 굴기는. 어쨌든 내가 백번 양보해서 2조 원만 초기 투자받는다고 해도 기부금 4조 원을 포함하면 6조 원이거든!”

“어휴. 정말 한심하네. 최건우 대표가 며칠 전에 기부금 대해 약속한 거 기사로 못 봤어? 그 돈은 은행에 넣어 놓고 공사비에 보태지 않겠다고 했어. 나중에 학생들 장학금으로 사용하겠다는데 4조 원을 어떻게 빼가?”

“그…그래도 2조 원이 남잖아! 2조면 사기 칠 만하지!”

“뭐라는 거야, 정말. 최건우 대표가 가진 주식을 담보로 5조 원을 빌려줄 수 있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약속했어. 돈이 필요하면 그 주식 팔아서 5조 원을 만들면 되는데 고작 2조 원 때문에 사기를 쳐?”

“아, 몰라! 두고 봐! 두고 보면 알잖아. 분명 사기 칠 거라니까.”

“여기 궁예 같은 놈이 또 있었네. 어휴, 지금까지 너랑 말을 섞은 내가 병신이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 정신병자야!”

“어! 지금 도망가는 거야? 패배를 인정하는 거지? 응? 어, 진짜 갔네. 오예! 내가 이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식의 논쟁이 인터넷상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건우 관련 비방 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던 팬카페도 악플러들의 궤변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무대응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 기자들만 신이 나서 이런 이상한 논쟁까지 기삿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이슈가 되었던 건 기부 그 자체였다.

4조 원의 기부금. 놀라운 건 그중 1조 원은 기부펀드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Gun4」라는 팬카페에서 기부펀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했다.

하나는 최후의 발버둥이라는 관점. 사람들은 「Gun4」를 일반 팬카페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차피 안 될 거 한 번 제대로 질러나 보자는 의미로 1계좌당 가격을 1,000만 원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해당 카페 운영진들이 관종이라서 그렇다는 견해. 그래서 그냥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계좌를 만들어 언론의 관심이나 끌어보자는 수작이니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추측은 모두 어긋났다. 기부펀드를 연 은행이 자발적으로 500계좌를 신청했고, 「Gun4」 카페 회원들이 하나둘 입금을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100억을 돌파한 것이다.

처음엔 잠깐 반짝이고 말겠거니 했지만, 유명 아나운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윤시연이 동참을 선언하며 연예인들 사이에 기부펀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한때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과 달리 직접 돈을 내야 하지만, 톱스타들에게 1,000만 원은 그리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었다.

‘이번엔 누가 했다더라. 다음엔 누굴 지목했다더라.’

‘둘이 안 친하던데 일부러 지목한 건가? 그래도 지목당했으니 싫어도 동참할 거다.’

‘돈을 적게 버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서 동참 안 하면 이미지 제대로 추락한다.’

언론은 이런 가십을 전부 기사로 실었고, 교육 타운은 싫든 좋든 매일같이 이슈의 중심에 섰다.

한계는 있었다. 아무리 연예인들이 동참한다고 해도 1,000억 원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연예인의 진짜 힘은 돈이 아니라 유명세였다.

그들의 참여로 기부펀드가 더욱 유명해지자 그동안 1,000억 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러워 교육 타운 기부에 나서지 못하던 기업이나 유명세를 노리는 기업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적게는 1,000만 원부터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기업들이 내놓는 금액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순식간에 1,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그렇게 끝났으면 잠깐 이슈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부펀드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마감된 게 문제였다. 뒤늦게 기부를 마음먹은 사람들은 기부펀드가 마감됐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아쉬운 마음에 기부펀드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원래 기부펀드를 담당하던 은행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고, 그 사이 최고은행이 재빨리 두 번째 기부펀드를 만들었다. 최고은행은 광고 효과를 노리며 원래 기부펀드를 담당했던 은행보다 더 많은 1,000계좌를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부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신력이 있는 은행이라면 누가 주체가 되든 상관없었다. 기부펀드가 새로 개설되길 기다리던 사람들은 당연히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기부펀드가 마감되어 아쉽네요. 50계좌 넣을 생각이었는데 ㅠㅜ’라고 허언성 SNS를 남겼던 연예인도 있었다. 두 번째 기부펀드가 열렸으니 빨리 입금하고 인증샷을 남기라는 네티즌들의 요구에 눈물을 머금고 5억 원을 기부해야만 했다.

두 번째 기부펀드 마감은 첫 번째보다 더 빨랐다. 진짜 열풍이 시작된 것이다. 분위기가 과열되며 기업이나 이름 있는 연예인 중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은 큰 부담을 느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마감이 될 줄 알았는데, 후속 기부펀드가 만들어지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기부해야 할 돈이라면 괜한 욕을 먹기 전에 미리 내놓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 번째 기부펀드가 만들어졌다. 다른 은행들이 나서기 전에 유명증권회사가 재빨리 나선 것이다. 그 회사는 당연하다는 듯 100억 원을 기탁했고, 기부를 희망하는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유명증권회사로 몰렸다.

기부펀드가 계속 이어가면서 기부 형태도 달라졌다. 그동안은 기업과 연예인 그리고 유명 스포츠스타 등이 주를 이뤘는데, 세 번째부터는 친구나 가족들이 함께 돈을 모아 1,000만 원을 만드는 경우도 생겨난 것이다. 술이나 커피를 줄여 교육 타운에 기부하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면서, 술집과 카페의 매출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됐다.

돼지 저금통을 뜯은 아이, 몰래 모아 놓은 비상금을 내놓은 남편, 10년 동안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을 모두 기부펀드에 넣은 할아버지.

이렇게 기부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이 기삿거리가 되고 화제가 되었다. 나이 많은 한 기자는 ‘평화의 댐’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적극적이었던 건 처음 본다고 평하기도 했다.

동지그룹의 5,000억 원 기부와 기부펀드를 모두 기획했던 마동수도, 남편이 하면 나도 하겠다며 동참한 윤시연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커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온 나라가 기부에 빠져 있는 가운데 네 번째, 다섯 번째 기부펀드가 순식간에 마감되었고, 여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도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갈수록 기부 펀드 마감 달성 시간이 더뎌졌다. 아무리 삼삼오오 모여 힘을 합친다고 해도 1,000만 원은 절대 쉽게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자 과연 다음 기부펀드를 만드는 곳이 나올지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좋은 의도로 시작됐던 일이 어느새 폭탄 돌리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대학에 가면 MT 등에서 자주 하는 게임이 있다. 이른바 눈치 게임.

한 사람이 ‘일’이라고 외치면서 게임은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그다음 숫자를 불러야 한다.

만약 열 명이 있다면, 눈치를 보며 재빨리 일부터 십까지 숫자를 외친다. 한 사람당 한 번만 부를 수 있고 아홉 번 안에 숫자를 부르지 못한 마지막 남은 사람이 술래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술래가 되는 경우는 50%도 안 된다. 술래가 되기 싫다는 생각에 다급히 다음 숫자를 부르다가 다른 사람과 겹치는 일이 생기는데, 그땐 그들 모두가 술래가 된다.

기부펀드에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재고 있던 두 은행이 동시에 기부펀드 개설을 선언한 것이다.

계좌가 두 곳으로 나뉘면서 기부자도 두 곳으로 갈라졌다. 누적액도 눈에 띄게 확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더뎌지고 있었는데 두 곳으로 나누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100억 원 이상씩 누적될 때는 언론도 신이 나서 보도를 했는데, 1/10은커녕 1/100까지 누적액이 감소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른 뉴스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언론의 보도가 줄어들자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사라졌다. 기부액도 당연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뒤늦게 기부펀드에 뛰어든 두 은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을 지어야 했다.

모두들 마지막 기부펀드는 실패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8,000억 원이나 모았으니,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바로 이때 아직 1/3도 채우지 못한 두 곳의 펀드에 남은 잔액을 한꺼번에 없애버린 사람이 등장했다. 한 번에 채워진 돈이 무려 1,400억 원에 가까웠지만 그의 재력을 생각하면 절대 부담이 될 금액이 아니었다.

마지막 기부자가 바로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교육 타운의 유일한 투자자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때아닌 기부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 걸 보고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기부금이 늘어나고 자금이 탄탄해질수록 교육 타운의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그런데 유일한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빌 게이츠의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기부 소식에 식었던 언론의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이 아니고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기부에 동참했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세계 최고 부자의 기부 동참!’

‘빌 게이츠가 선택한 교육 타운.’

‘불세출의 천재가 선택한 교육 타운, 그곳에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나오나?’

세계 최고 부자의 등장으로 기부 펀드 관련 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두 번째 떡밥이 던져졌다.

[‘빌 게이츠, 전격 방한!’]

[교육 타운 기공식에 참여하는 세계 최고의 부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세기가 떴다.]

[마이크로소프트 임원들 한국에 총 집합.]

[마이크로소프트 임원들이 한국에 몰려오는 이유는?]

[미국 유명 가수와 배우도 마이크로소프트 전용기에 함께 탑승. 그들은 누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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