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11화 (211/256)

제211화

기공식에 빌 게이츠와 사이티 카푸르 현 회장을 비롯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운영진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에 온라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준공식도 아니고 기공식이다. 건물이 다 완성된 시점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세계 최고의 부자와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기업 수뇌부들이 참석한다는 건, 그들이 교육 타운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기자들과 네티즌들은 집단 멘붕 상태에 빠졌다. 교육 타운을 그냥 무상 교육을 하며 인재를 양성해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그들로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5조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는 것부터 이상했다. 거기에 추가로 5조 원의 지급 보증까지 섰다. 만약 교육 타운이 정말 단순한 인재 양성 기관이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결정이었다.

뭔가 확실한 반대급부가 있지 않은 이상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리가 없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이스 에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침묵한 건 아니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반대급부 따위는 없다고 밝혔는데도 믿지를 않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알아내기 위해 기자들은 일제히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당사자들이 기공식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사소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기공식에 참여한 기자들이 전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초이스 에듀는 기부펀드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초청장을 발송했다. 거기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많이 포함되었다. 물론 허허벌판에서 하는 기공식 따위에 참석 의사를 밝힌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이 빌 게이츠와 함께 내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참여를 결정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최근 정치권에서 태풍의 눈이 된 장문오 시장의 참석은 당연했고, 그가 홀로 관심을 받게 둘 수는 다른 당의 대권 주자들도 참여하면서 정치부 기자까지 여주로 내려왔다.

사회 분야부터 문화, 교육, 스포츠, 연예, 정치 분야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공식은 뜨거운 취재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대한민국에 있는 기자 중 절반 이상은 이곳에 몰려들었다고 생각될 만큼 엄청난 취재 인원이었다. 교육 타운에 대한 관심이 높아 구경꾼들도 상당히 몰렸는데 그런 사람들보다 기자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구경 온 사람보다 기자들이 더 많을 수가 있지?”

동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이번 기공식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건우는 동생들과 함께 있었다.

서울대 국문학과에 수석 합격하며 ‘멍청이’ 타이틀을 힘겹게 떼어낸 동우, 열심히 자기만의 꿈을 찾고 있는 정우, 건우를 세상에서 최고로 생각하고 놀기 좋아하는 은우.

회귀 전 세상에서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밝고 명랑해진 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건우는 행복했다.

예전의 불행했던 삶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다시는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누구도 건우에게서 행복을 빼앗을 수 없는 단단한 성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이 바로 교육 타운이었다.

“그러게. 나도 이렇게 많은 기자들은 처음 본다.”

“아까 보니까 정말 별의별 종류의 기자들이 다 왔더라. 기자 백화점이 따로 없을 정도야.”

“음… 요리 전문 기자들은 없지 않을까?”

건우와 동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우가 끼어들었다.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 네가 아직 못 봤구나. 저기 봐라, 요리 전문 기자들도 왔으니까.”

“정말? 어디에? 난 못 봤는데. 장난치는 거 아니야?”

“어허. 인석이 이 형을 어떻게 보고. 저기 봐, 저기 카페테리아에 기자들 안 보여? 음식 앞에 두고 사진 찍고 있잖아.”

“아, 맞다! 거기 윤 셰프님이 계셨지.”

이번 기공식에는 음식도 당연히 제공한다. 그리고 요리는 출장뷔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초이스 에듀 식당을 총괄하고 있는 윤대엽 셰프가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천 명이 훌쩍 넘는 엄청난 인원이 참석했지만, 초이스 에듀 식당에서 밥을 먹는 학생들은 그것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식당 직원들이 총출동했다. 건우는 그들을 위해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 공간을 제공했다.

윤대엽 셰프는 특급 호텔 총주방장으로 있다가 건우의 식당 운영 계획을 듣고 자진해서 초이스 에듀로 온 사람이다.

비록 호텔은 떠났지만 절대 노력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호텔 요리와 학생식당용 요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존의 학생 식당과는 차원이 다른, 맛있으면서도 필요 영양소가 가득 담긴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응이 좋았던 요리는 혼자 독점하지 않고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친절하게 설명을 남겼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데 만들기도 쉬운 레시피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남긴 레시피를 따라 하는 학생 식당들이 늘어났지만, 만들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가정에서 따라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대중들이 호응하기 시작하자 TV에서도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자신이 만든 레시피를 널리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 윤대엽 셰프는 방송국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고정으로 나가는 프로그램만 3개가 됐다. 더 많은 요청이 들어왔지만 더 이상은 초이스 에듀 식당 일에 지장을 줄 수 있어 거절했다.

TV에 출연하면서 윤대엽 셰프의 명성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과거에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유명했지만 지금은 전 국민이 알아보는 국민 셰프로 등극한 것이다.

그런 그가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그것도 야외에서 직접 만드는 모습을 취재할 기회를 기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지금 저기도 취재 열기가 장난 아니야. 음식 사진 찍는다고 조명까지 동원하더라.”

“와, 역시! 윤 셰프님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그러게. 요즘 TV에 나오는 요리사님 중에 제일 인기가 많으시잖아.

“실력도 좋은데 입담도 좋으시잖아.”

“난 TV에서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잖아, 되게 과묵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말씀을 정말 잘하셔서.”

“식당에서는 무게 잡으시느라고 그런 거고, 따로 만났을 땐 정말 좋으신 분이야.”

정우는 요리사를 꿈꾼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윤대엽 셰프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야 따로 만날 일이 없으니 그런 면이 있으신지 몰랐지.”

“그런데 요리 전문 기자까지 왔으면 정말 온갖 종류의 기자들이 다 모인 거네.”

“그래도 없는 기자가 있어!”

정우의 중얼거림에 옆에 앉아 있던 은우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무슨 기자가 없을 것 같은데?”

“동물 전문 기자!”

“오! 그럴듯한데. 아무리 그래도 동물 전문 기자는 여기 안 왔겠지?”

“그거야 모를 일이지.”

“왜? 작은형은 동물 전문 기자도 왔을 것 같아?”

“생각을 해봐라. 아무리 자연 친화적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해도, 자연과 친화적인 거지 자연적인 건 아니잖아.”

동우가 씨익 웃었다. 뭔가 장난을 치고 싶을 때 나오는 행동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지금껏 여기서 아무 걱정 없이 살던 동물들이 교육 타운 공사 때문에 떠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그런 동물들을 취재하러 기자들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

“헐…. 그건 좀 너무 오버 아니야? 아예 큰형이 자연파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그래.”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가본데,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연 파괴를 하고 있는 거란다.”

“뭐라는 거야, 정말. 큰형. 큰형 생각은 어때? 작은형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우가 억울한 표정으로 건우에게 물었다. 동우의 말이 뭔가 이상한 건 알겠다는데 마땅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우가 웃으며 동우의 말을 반박하려는 순간 불청객이 그들 사이로 나타났다.

“하하하. 축하합니다, 최건우 대표님. 아직 조감도밖에 못 봤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정말 멋진 교육 타운이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여기가 초이스 그룹의 시작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불청객처럼 동생들과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사람은 용선재 대표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호감 가는 사람 좋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용선재 대표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따뜻한 오후의 봄볕과 남한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황금빛 향연만으로도 이곳은 충분히 환상적인 곳이었다.

이 멋진 자연환경에 조감도에서 발표한 것과 같은 자연 친화적인 건물이 들어선다면, 꿈에서나 그렸던 그런 멋진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게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용 대표님. 그런데 초이스 그룹이라는 말씀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전히 학원을 운영하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장차 대규모 교육 타운의 주인이 될 분이지 않습니까? 액면 가치만 해도 20조 원이 넘는 곳을 소유하게 되시는 건데, 그 정도면 우리나라의 대그룹들과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이라고 하시니 민망하네요. 아직 여기에 제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갔거든요. 하하하. 사실 저는 교육 타운의 주인이 제가 아니라 여기서 공부할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포터일 뿐이죠.”

교육 타운의 주인. 듣기에 따라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말이었다.

건우는 최대한 듣기 좋게 부드럽게 표현을 바꿨다. 스물세 살 답지 않은 노련함이었다.

예전에는 꽤 친분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건우는 오늘따라 용선재 대표에게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꼈다.

돈으로 교육 타운을 평가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예전에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못 알아본 건가 의아함이 들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박유하 이사의 말 때문에 없던 선입견이 생긴 건지 아니면 이제야 그의 참모습을 보게 된 건지.

“마이크로소프트도 최 대표님 하나를 믿고 투자를 결정했을 텐데 민망하다니요. 오직 한 사람만 보고 10조 원을 내놓겠다고 하는 경우가 또 다시 나오기나 할까요?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아차차. 이런, 제가 바쁘신 분 붙잡고 갑자기 너무 오버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건우와 용선재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동안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학원 관계자들도 두 사람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잔뜩 주눅이 들었다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용선재 대표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낸 것이다.

“아닙니다, 용 대표님. 안 그래도 오늘 기공식에 참석해주셔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워낙 유명해지셔서, 앞으로는 최 대표님의 얼굴을 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껏해야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예전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제가 좀 많이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서운합니다, 용 대표님. 저도 학원 강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가 싱크빅과 용 대표님은 제가 가장 닮고 싶었던 롤모델이었습니다. 용 대표님이 훌륭하게 기반을 잘 닦아주신 덕분에 제가 꿈꾸던 일을 훨씬 빨리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열일 제쳐놓고 달려가겠습니다.”

“세상에, 저를요? 천하의 최건우 대표님이 저를 롤모델로 삼으셨다고요?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 가족이나 학원생들에게 들려주면 저는 엄청난 거짓말쟁이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꼭 증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서로를 칭찬하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겉모습은 다른 이들 눈에 굉장히 훈훈해 보였다.

한때는 부동의 1위. 지금도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가 싱크빅.

2위 자리를 강력히 위협하던 세계교육이나 크레이듀가 자멸하면서 어부지리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하지만, 초이스 에듀와 동업 형식으로 시작했던 퓨처 앱을 이용한 온라인 가정방문 서비스가 대박을 치면서 매달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경쟁자이면서 동업자인 두 사람.

처음부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자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선의의 경쟁을 하는 두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바라고 용선재 대표가 일부러 친분이 있는 기자를 대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옆에 분은 누구십니까? 낯이 많이 익은 것 같은데.”

“아, 이 친구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제 수행원입니다. 뭐하나? 최 대표님에게 인사 안 드리고.”

“안녕하십니까, 최건우 대표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김승악이라고 합니다.”

용선재 대표의 재촉에 김승악이라는 남자가 한발 나서서 인사를 했다.

“아, 예….”

상당히 순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건우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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