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13화 (213/256)

제213화

건우의 목소리에 강한 분노가 어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봤다면 당장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로 격앙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조유미는 그런 건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전혀 심각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다행히 안 죽였네?”

“그럴 수 없잖아. 그 두 놈을 죽이면 내 인생도 같이 끝인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내가 왜 해?”

“역시 그렇지? 네가 그동안 재산이 얼만데? 아니지. 앞으로 모을 재산이 얼만데, 그걸 생각해서라도 절대 사고를 치면 안 되지. 다행히 이성은 살아 있었네.”

“헐…, 그게 끝이야?”

“그럼 내가 뭐 어쩌길 바란 거야?”

“정신과 상담의잖아. 나는 곧 사고를 칠지도 모르는 굉장히 위험한 인간이고. 말려야지. 아니면 진정되게 다독여주던가.”

“난 여기 네 상담의로 온 게 아니라 네 친구로 온 거야. 그래서 상담료도 안 받잖아.”

“대신 거액의 자문료를 받잖아.”

“어머. 그건 초이스 에듀 상담소를 맡으면서 받는 돈이지 널 상담하라고 받는 돈이 아니야. 공과 사는 정확하게 하시죠.”

조유미는 건우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절대 상담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 사이의 대화라고 표현했다.

건우를 위해서였다.

“너무하네, 친구. 정신과 의사로서 걱정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널 너무 믿거든.”

“왜, 내가 그런 미친 짓은 절대 안 할 것 같아?”

“응, 절대. 네가 말하는 그 꿈이라는 것 말이야. 정말 예지몽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과학적 근거 따위 다 버리고 그냥 사실이라고 쳐 보자.”

“오, 예전에는 완전히 헛소리 취급하더니 많이 발전했네.”

처음에 조유미는 건우가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으로 정신 착란 같은 걸 겪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잖아. 내가 너라고 생각해봤어. 굉장히 불행한 일을 겪었어. 현실과 혼동될 만큼 사실적이었지만 깨어나 보니 꿈이야. 꿈에서는 마흔이었는데 깨어나니 스물인 거지. 얼마나 좋아, 불행을 바꿀 기회잖아.”

“그래 맞아.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살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야.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나갈 거잖아. 교육 타운도 그 일환이고. 그렇게 기적처럼 얻은 기회를 고작, 고작이라고 표현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너를 불행하게 만든 인간들 때문에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돼. 넌 절대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면?”

“복수야 당연히 하겠지. 네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차라리 거액의 돈으로 어마무시한 킬러를 고용해서 네가 말한 ‘두 놈’을 단숨에 죽이는 게 현명한 방법일걸? 직접 죽여 살인죄로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생각지도 못한 킬러 이야기에 건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와, 그런 방법은 생각하지도 못했어. 역시 친구의 조언이라서 그런가 과격하네.”

“하지만 이 방법도 안 쓸 거잖아.”

“그렇지. 그건 너무 쉬워. 난 내가 겪었던 고통의 반의반이라도 그놈들이 겪었으면 좋겠거든.”“그래, 그게 진짜 복수지. 너라면 그럴 것 같았어.”

“그런데 안 물어보네.”

“뭘?”

“그냥 꿈에서 겪은 일이잖아. 실제로는 그놈들이 나쁜 놈이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건 네가 알아서 잘 조사해볼 거잖아. 그런 것도 안 알아보고 무작정 복수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거든.”

조유미가 보기에 건우는 답답할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이다. 자신이 건우였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고 흥청망청 쓰며 화려하게 살았을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바른 생활 사나이인 건우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단지 꿈에서 나쁜 일을 했다는 이유로 해코지할 리가 없다.

“위험하네.”

“뭐가?”

“너 너무 위험하다고. 날 너무 잘 알잖아.”

“호호호. 한때 너의 정신과 상담의이자 친구인데 그 정도도 모를까.”

“그렇긴 한데 날 너무 잘 아니까 투정도 못 부리잖아.”

“다행히 기분이 좀 풀렸나 보네.”

“응, 많이. 역시 널 부르길 잘한 것 같아. 진짜 미칠 듯이 짜증이 났는데 거짓말처럼 그게 다 가라앉았어.”

“원하면 매일 이렇게 기분을 풀어줄 수도 있는데.”

“뭐라는 거야, 얘가.”

조유미가 은근히 묻자 건우가 기겁을 했다.

“뭘 그렇게 정색해?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너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여간 그놈의 결벽증하고는. 나처럼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어디 흔한 줄 알아?”

“미안하지만 넌 날 너무 잘 알아. 연애를 하려면 서로에 대한 신비감이 있어야지. 너처럼 나에 대해 낱낱이 다 아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칫! 까칠한 녀석 같으니. 뭐, 어쨌든 이제 진정된 것 같으니 그럼 난 이만 간다.”

조유미는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풀렸다고 해서 고민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럴 땐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왜 밥이라도 먹고 가지.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됐어. 데이트 중이었는데 너 때문에 급하게 왔단 말이야. 다시 가야지, 우리 자기 기다리는데.”

“뭐야? 애인 생겼어?”

“왜? 애인 생겼다니까 아쉬워?”

“아니 좋아서 그러지. 내 친구가 독수공방을 끝내고 애인이 생겼는데 얼마나 기쁜 일이야.”

“됐거든. 그렇게 기쁜 일인 걸 알면 너도 연애 좀 해. 혈기왕성한 이십 대 초반 남자가 너무 연애를 안 해도 병 된다. 너 정말 그러다가 평생 연애 한 번 못하고 혼자 살 수도 있어.”

“아이고, 아주 악담을 해라.”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나도 때 되면 하겠지, 뭐. 지금은 일이 좋아서 다른 생각이 안 나. 어쨌든 오늘 고마웠어. 데이트 잘하고.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얼굴이나 보자.”

“누구? 우리 자기랑 너랑?”

무슨 헛소리냐는 듯 조유미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응.”

“싫어. 나 보기도 아까운 시간에 너랑 같이 왜 봐.”

“헐, 단호한 것 좀 봐.”

”호호호. 나 간다. 안녕.“

웃으며 손을 흔든 조유미는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갑자기 적막해진 사무실. 웃음을 짓던 건우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연애라…. 내가 그걸 다시 할 일이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많이 물어본다. 연애는 하지 않느냐고. 여자 친구가 없으면 소개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가끔은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안 그래도 성폭행범으로 몰려 나락으로 떨어졌던 경험이 있는 건우로서는 그런 눈에 보이는 접근법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중에는 사심 없이 호감만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본단 말인가? 100명 중 99명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인데.

“칫! 이러다 정말 평생 유미 말처럼 평생 혼자 사는 거 아닌지 몰라. 에휴….”

***

[교육 타운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들]

천문학적인 공사비에 전국을 강타했던 기부 열풍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육 타운이 첫 삽을 떴다.

이번 교육 타운 기공식에는 정계, 재계, 교육계, 연예계, 스포츠, 외교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해 최건우 대표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면면은 누가 봐도 정말 화려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은 일명 마이크로소프트 라인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빌 게이츠와 사이트 카푸르 마이크로소프트 현 회장 외 마이크로소프트 이사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화려하기 그지없는 해외 명사들이 참석해 교육 타운 기공식을 화려하게 빛냈다.

해외 명사는 마이크로소프트 라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최근 ‘초이 와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버거퀸의 브래드 체이스 사장과 그의 오른팔인 데니 이사도 직접 한국을 찾았다.

브래드 체이스 사장은 이번 기공식에 방문한 모든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초이 와퍼 세트’ 쿠폰을 무료로 나눠주며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 덕분에 기공식은 떠들썩한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최건우 대표와의 생물학 대담 동영상으로 유명해진 스트리 교수도 직접 한국을 찾았다. 이미 8년 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스트리 교수는 최건우 대표와의 대화 이후 영감을 얻어 신물질을 개발, 발표했는데 바로 그것 덕분에 그의 생애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한편, 스트리 교수의 방한이 단순히 교육 타운 축하를 위한 목적이 아닐 거라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하버드대에 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스트리 교수는 최건우 대표에게 굉장히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며, 최 대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번 신물질 개발은 없었을 거라 단언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번 방한에서 신물질 개발 도움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 관계자는 예측했다.

한국대학교 생물학과 조명태 교수는 스트리 교수가 개발한 신물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트리 교수가 발견한 미생물 RSFE-325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세포를 숙주 삼지 않고 다른 바이러스를 숙주 삼아 생식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생식능력이 없다. 그러니 미생물 RSFE-325가 다른 바이러스를 숙주로 삼는다고 해도 생식을 하지 못해야 정상인데,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인데 바이러스가 아닌, 그렇다고 박테리아라고 정의 내리기도 어려운 미생물이 RSFE-325이다.

스트리 교수는 이 미생물이 바이러스 중에도 RNA 바이러스만을 숙주로 삼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만약 RSFE-325가 RNA 바이러스를 숙주로 삼아 없앤다면 RNA 바이러스와 관련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이게 가능해진다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중대한 발견이 된다. 왜냐하면, RNA 바이러스는 인류의 숙적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질병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감기, 소아마비, 독감, 간염, 풍진, 홍역, 볼거리 같은 질병뿐만 아니라 사스, 메르스, 에볼라, 에이즈 같은 무시무시한 질병에도 전부 RNA 바이러스가 관련되어 있다.

이 질병 모두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중 한두 개의 질병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난 성과임은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스트리 교수의 신물질 연구가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문에 의하면(100% 확인된 사실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감기, 독감, 에이즈 치료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감기를 예방할 수는 없지만 하루 이틀 안에 치료는 가능하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만 가능해도 인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감기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질병 사망률 1위인 암도 사실은 암 자체로 사망하는 경우보다 암세포에 의해 몸이 약해진 사이 감기에 걸려 폐렴 등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지금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은 전부 스트리 교수를 모셔가려고 안달이 난 상황이다. 수조 원의 연구비를 제공하겠다는 회사들도 줄을 섰다.

그런데 이 엄청난 발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최건우 대표다.’

조명태 교수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 시대(빌 게이츠)와 다음 시대(스트리 교수) 최고의 부자를 한 자리에서 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이 게 만든 사람이 최건우 대표다.

그의 놀라운 해외 인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틴 나이트 주한 미국 대사, 커티스 주한 미군 사령관을 비롯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명 해외 인사들도 기공식에 상당히 많이 참석했다.

국내 인맥 또한 대단하다.

재계 서열 2위인 동지그룹의 차기 총수로 확정된 고현호 전무와 그의 오른팔인 마동수 이사가 직접 참석했다. 그리고 교육 타운의 설립 취지를 적극 지지하는 특급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도 참석해 기공식 자리를 빛냈다.

그리고 최건우 대표와 손을 잡고 여주시에 세계가 주목하는 교육 타운을 유치한 장문오 시장도 당연히 참석했다.

그는 초이스 에듀와의 협상을 통해 2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정치력과 행정력 두 부분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 사실을 기반으로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중략)

아직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열린 기공식이지만 세계와 국내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육 타운의 미래를 축하해줬다.

그들의 기운을 받아 여주 교육 타운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할 훌륭한 교육 기관이 되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 하나일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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