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22화 (222/256)

제222화

“상도덕이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초이스 에듀에서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라는 사업을 시작해. 명분은 그럴듯해. 동영상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보충 수업을 해주겠다는 취지니까. 그렇지만 그 교습소 하나 때문에 지방에 있는 동네 학원들은 모두 문을 닫게 생겼어.”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범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황금숙은 굉장히 바쁘다. 남편을 대신을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많은 만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복지 등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통달해야 한다.

그러나 말은 통달해야 한다고 하지만, 분야가 너무 방대한 만큼 사실상 수박 겉핥기식에 가까운 지식만 가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다. 그러니 친구인 조순희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게 전부다.

“맞아, 딱 그거야.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범. 다른 학원들도 먹고 살게 해줘야 하는데 최 대표는 너무 어려서 그런지 그런 작은 시장까지 욕심을 내고 있어. 요즘 들어 지방 학원들은 최건우 때문에 죽겠다고 난리야.”

“그건 문제가 있네. 그런데 너희 남편 학원은 괜찮은 거야?”

“우린 그나마 큰 학원이라서 버티고 있어. 인터넷을 통해 일대일 학습을 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꽤 괜찮아. 그것 덕분에 숨통이 좀 트였어.”

그 사업 자체가 초이스 에듀의 후광 덕분인 건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네 남편 학원은 괜찮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네. 그런데 최건우 대표라는 사람 정말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네가 아니라도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 난 처음에 어린 나이에 기부도 많이 한다고 해서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닌가 봐.”

황금숙에게서 조순희가 바라는 반응이 나왔다. 조순희는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샌님 같은 얼굴로 사람들을 속인 거지 뭐. 솔직히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초이스 에듀가 사교육 시장 전체를 먹든 말든 그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고 봐. 그렇지만 정치는 다르잖아. 아직 서른도 안 된 어린 녀석이 정치판에 기웃거린다는 게 말이나 돼? 국민들이 오냐오냐해주니까 건방이 하늘을 찌른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흠… 그건 나도 고민하고 있던 문제야. 당에서도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거든.”

“역시 그렇지?”

정확하게 따지면 황금숙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 고민해야 할 문제였지만 두 사람 모두 지금 상황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제는 명분이야. 세상이 바뀌었잖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것도 모두 옛말이야. 교육부가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가 대판 깨진 것도 마음에 걸려.”

황금숙은 아둔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다. 조순희에게 틈을 보이는 건 그녀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냉철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잘생긴 것 말고는 크게 내세울 것 없는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황금숙이 판단하기에 건우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최근 행보가 못마땅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우리 시댁에서 나서기로 했어.”

“뭐? 정말 용씨 가문에서 나서기로 했다고??”

“너도 알잖아. 장문오 시장과 우리 시댁이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지금까지는 조심스럽게 관망했는데 최근에 장문오 시장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걸 보면서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

“그쪽 모임 전체가 합의한 거야? 아니면 순희 네 시댁만 단독으로 나서는 거야?”

‘그쪽 모임’이란 용씨 가문이 속한 다섯 명의 원탁 모임을 말한다. 정치계에서 오래 구른 만큼 황금숙도 그 모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없었으면 남편인 전명우가 대통령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동의를 얻어내는 데 조순희의 도움이 컸다.

정확하게 말하면 암묵적인 동의라기보다는 대한당 내 경선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전부였지만, 원탁 모임의 지지를 업고 있다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던 경쟁자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우리 시동생 의견이 곧 그쪽 모임 의중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조순희는 ‘용선국’이라는 이름 대신 시동생이라고 표현했다.

“아, 그랬지? 그럼 순희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혹시….”

“그럴 리가 있니? 그쪽에서 공식적으로 사람을 보낼 거야. 그러기 전에 네가 미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거야.”

“역시 내겐 너밖에 없다. 순희야. 고마워.”

“난 언제나 그랬잖아. 뭘 새삼스럽게.”

“호호호. 그냥 좋아서 그래.”

“우린 친구잖아.”

“그래 넌 내게 둘도 없는 친구지.”

“그런데 네 생각은 어때?”

“어떤 생각? 최건우 문제?”

“응.”

“그쪽 모임이 나서겠다고 했으면 더는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없을 것 같긴 해. 우리 남편이랑 여당까지 힘을 합치면 굳이 명분을 찾을 필요도 없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

황금숙의 말에 조순희는 빙그레 웃었다. 이로써 조순희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달성하게 됐다.

원탁 모임, 현 정권, 그리고 대한당. 크게 보면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서로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입장이 다르고 원하는 이권이 다른 만큼 완벽하게 같은 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미묘하게 다른 점 때문에 갈등이 생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건우의 파격적인 행보에 그들은 더 이상 작은 이권을 놓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큰 이권을 탐내는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조순희는 잠시 혼자만의 상상에 빠졌다. 세 곳이 힘을 합친 만큼 건우의 몰락은 기정사실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무너진 초이스 에듀를 인수할 곳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가 싱크빅 밖에 없다.

초이스 에듀가 가진 이권의 절반만 가져온다고 해도 기가 싱크빅은 웬만한 대기업도 부럽지 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그녀만의 즐거운 상상일 뿐이지만 말이다.

***

“대표님. 아무래도 정부가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에 대한 제재를 가하려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차지훈이 행정부에 심어둔 라인을 통해 어렵게 얻어낸 정보를 건우에게 전했다.

“명목은요?”

“골목상권 침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교습소가 골목상권 침해라…. 참 유치하게 나오는군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해서 굉장히 무서운 한 방을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최근 차지훈을 통해 많은 정보를 들었다. 용선재가 교피아의 대표 가문인 용씨 가문의 친족이라는 것과 그의 아내가 현 대통령의 부인인 황금숙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교피아 수뇌 회의이라고 할 수 있는 원탁 모임이 있은 후 조순희가 청와대에 자주 드나드는 걸로 봐서 뭔가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정보팀의 분석도 들었다.

정확하게 뭔지는 알 수 없으니 강력한 폭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조심성이 많은 건지 시작은 생각보다 미약했다.

“권투로 치면 잽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살살 맛만 보다가 어느 순간 카운터펀치를 날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카운터펀치가 어떤 걸지 궁금하긴 합니다.”

“긴장되지 않으십니까? 교피아와 현 정권과 여당이 힘을 모았습니다. 대한민국 권력의 3분의 2는 대표님을 적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한국에 있는 기반을 전부 날려도 미국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습니다. 떵떵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받는 젊은 사업가가 유명세를 떨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전 세계 교과서의 흐름을 바꿀 새로운 커리큘럼을 제시한 천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제시한 불세출의 사업가.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뉴욕의 월스트리트 가에서는 건우를 이미 그렇게 평하고 하고 있었다.

“그때 저를 데려가 주신다는 약속도 그대로이신 거죠? 손다정 실장도 같이.”

“당연하죠. 거기서도 사업을 할 건데 제가 제일 신뢰하는 두 분은 싫다고 해도 데려갈 겁니다.”

“하하하. 말씀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그래도 이대로 그냥 당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책 마련을 할까요?”

“물론 그렇게 해야죠. 지금 와서 교습소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실 포기하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방법이다. 비난을 쉽게 피할 수 있고 손해가 크게 없다. 거기에 들어간 투자액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초이스 에듀 인증 강사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 연수를 받은 인원만 천 명이 넘는다.

그들은 건우와 초이스 에듀의 이름을 믿고 확실하지 않은 사업에 모험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제재한다고 그 사업을 포기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배신행위가 된다.

정부에서 어떤 압박이 들어와도 건우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문제는 정부가 억지를 부리면 막기 쉽지 않을 거라는데 있습니다. 교피아까지 나섰으니 언론 또한 절반 이상은 대표님에게서 돌아설 겁니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여론까지 등을 돌리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진다. 포기할 수 없다면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애초에 하려던 계획을 좀 더 빨리 실행하면 됩니다.”

“애초에 하려던 계획이라니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교습소를 운영하고 강사를 고용하는 형태지만 나중에는 교습소 운영권을 강사에게 전부 넘길 계획이었습니다.”

“아, 그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운영권을 넘기는 대신 강사 교육은 계속 맡아 자격 없는 사람들을 솎아내겠다고 하셨죠?”

“네. 아닌 사람들이 교습소를 운영한다고 해도 말릴 방법은 없습니다만, 초이스 에듀가 인증한 강사라는 타이틀 없이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겁니다.”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는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 지방에도 분점을 내달라는 요구가 거세지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힘들어 차선책으로 내놓은 해결책이다.

“우리가 라이브 스트리밍 교습소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골목상권 침해라는 누명은 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교습소를 차리는데도 돈이 들지 않습니까? 작게나마 상가를 임대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보증료와 인테리어 비용도 절대 적은 건 아닙니다.”

“강사들에게는 그 정도 비용도 부담이 될까요?”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보습학원 강사 출신입니다. 교습소 위치는 학생들이 많아야 하는 곳이니 임대료가 절대 싸지 않을 것이고 시청각 시설을 설비를 완비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1억 정도는 있어야 교습소를 운영할 수 있을 겁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학생들이 드나들기 어려운 곳에 교습소를 차릴 순 없다. 그러려면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이라야 하는데 그런 데는 임대료가 꽤 비싸다.

“이번에 교육받은 인원이 1,479명입니다. 대략 1,500명으로 잡고 한 사람당 1억 원이면 총 1,500억 원이 들겠군요.”

“설마 그 돈을 공짜로 주시려고요?”

“에이, 제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1,500억 원이나 되는 돈을 그렇게 내줄 순 없죠.”

이번에 지원했던 강사들 대부분은 신체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다. 정확한 기준 없이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무작정 돈을 퍼줬다가는 건우가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고 있어도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 번 이렇게 지원해주면 건우가 하는 사업마다 공짜를 바라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건우의 기부 목적은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것이지 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돕는 게 아니다.

“그럼 왜…?”

“대출은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무이자가 됐든 그게 힘들면 아니면 은행권보다 아주 적은 이자만 받든, 강사들에게 최대한 부담이 없는 방법으로 대출을 해준다면 교습소 운영을 포기하진 않겠죠?”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무이자에 가깝게 대출해준다면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갚으면 되는 일인데.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은행보다 이자가 싸면 그걸로 다른 짓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비슷한 일이 있기도 했고요.”

“돈으로 안 주면 되지 않습니까? 임대보증료와 인테리어 비용을 우리가 해당 업체에 직접 지급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준비할까요?”

“네. 아직 공식화는 하지 말고 정부가 골목상권 침해라며 규제를 시작하겠다고 하면 그때 언론에 알리는 것으로 하시죠?”

정부의 견제에 처음부터 강하게 대처하겠다는 의미였다.

“저도 찬성합니다. 시작부터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만만하게 보고 덤비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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