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33화 (233/256)

제233화

- 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

└ 무슨 냄새? 네 ㅈ냄새?

└ 알바생퀴는 꺼져 주셈.

- 진짜 이상하다. 비밀리에 압수수색을 했다는데 기자들은 대체 어떻게 안 거임?

└ ㅇㅇ. 그것도 지금 정권과 친한 언론만 미리 알았다는 게 굉장히 수상함.

- 음모론 같은데 음모론 같지 않음. 솔직히 정부 애들이 좀 멍청해 보임. 굳이 자기들하고 친한 기자들만 알려준 이유를 모르겠음. 이건 완전히 정부가 개입했다는 걸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 ㅋㅋㅋㅋㅋㅋ 차라리 언론사 전체에 연락했으면 몰랐을 텐데, 자기들하고 친한 기자들만 불러서 상황이 꼬였다고 본다. 이걸 보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함.

└ 네. 다음 설명충

- 이건 그냥 최건우 죽이기로 보인다. 수능 문제로 투닥거릴 때부터 정부가 최건우를 찍은 것 같더니 결국 이런 짓까지 하네.

└ 이번이 좀 노골적이긴 하지만 사실 최건우 죽이기는 이미 예전부터 시작됐어.

└ 응? 그건 무슨 말이죠?

└ 최건우랑 친분이 있는 연예인이 몇 명 있는데 걔네들 지금 전부 지상파 방송에 못 나오고 있습니다. 방송국 말로는 시청률이 안 나와서 그렇다고 하는데 최소 중박은 치던 프로그램도 포함됐습니다. 한마디로 시청률 때문에 그렇다는 건 개소리죠.

└ 헐!!!!! 정말입니까?

└ 에이. 이건 진짜 음모론인 듯. 아무리 쫌생이라도 최건우랑 친하다는 이유로 연예인들을 하차시킬까?

└ 옐로우 레이디, 소진성, 김판석, 엠씨 그레잇, 이미희, 유종태. 이 사람들 전부 A급 이상 연예인들인데 지금 지상파에서 활동 못 하고 있습니다.

└ 엥?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최근에 무슨 여행 프로그램인가에서 소진성이랑 이미희 봤어요.

└ ‘친구야 놀자’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거 지상파가 아니라 케이블입니다. 퀄리티가 좋고 워낙 인기가 많아서 지상파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죠.

└ 대박! 나 방금 검색해봤는데 위에 연예인 중에 지상파에 나오는 사람 한 명도 없음. 저기서 제일 못 나가던 사람도 쇼프로그램 고정 두세 개는 나가고 있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잘림. 특히 옐로우 레이디는 지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치졸하다. 치졸함의 끝을 보여주는 듯.

└ 으아! 사스가 헬조선인가.

└ 옐로우 레이디 정말 불쌍하다. 예전에 최건우랑 열애설이 터져서 개욕먹었는데 이번엔 또 최건우랑 친하다는 이유로 중국으로 쫓겨났네. 전생에 둘이 원수였나? 보는 내가 다 안타깝다.

└ 소문이 진짜였나 보네요. 요즘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연예인들을 관리한다고 들었거든요. 최건우 말고 찍어 놓은 사람이 또 있다고 하던데.

└ 헉! 다른 사람도 있어요? 누군데요?

└ 확실한 건 아닌데 장문오 시장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 헛! 장문오 시장이면 거의 정치적 보복 아닌가요? 사실이면 이건 정말 심한데.

└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예전에 우리 류통(류명훈 대통령) 따르던 연예인 중에 십여 명이 장문오 시장 지지 선언 비슷한 걸 했거든요. 노골적인 건 아니고 SNS에서 ‘장문오 시장님을 응원합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는데 그리고 얼마 안 있다고 영화나 TV에서 퇴출당함.

└ 역시 SNS는 인생의 낭비. 퍼거슨 경의 말씀은 이번에도 옳았습니다.

└ 우리나라는 연예인이 공인에 가까워서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걸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지 그 이유로 보복하는 건 정말 아니지. 우리나라가 북한도 아니고.

└ 미쳤다, 미쳤어. 씨바. 헬조선 만세다.

└ 정몽주니어의 의문의 1승.

└ 전명우를 찍은 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 상식적인 사람일 줄 알았는데 쪼잔한 찐따였네.

***

“조사 끝난 거야, 윤 팀장?”

차지훈은 초이스 시큐리티의 온라인 책임자인 윤종수가 웃으며 들어오는 걸 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실장님.”

“정황 증거 같은 거 안 돼. 필요한 건 팩트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지금 상황에 확실한 거 아니면 찌라시 취급당하는 거 설마 제가 모르겠습니까?”

“우선 설명부터 듣자. 판단은 나중에 하고.”

“실장님이 되고 나서 성격이 더 까칠하게 변하신 거 아세요?”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윤종수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의 잠금을 해제했다.

“당연히 그냥 해야죠. 일단 국민들로부터 제일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부분부터 조사했습니다.”

“입시비리?”

정치 문제는 아무리 논란이 일어도 남의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게 국민들로 제일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제일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아시안게임 관련 비리는 좁게는 조정 선수들, 넓게 봐도 엘리트 스포츠를 하는 전체 운동선수들만 해당된다.

군 면제 문제는 남자만 해당하고, 임용시험 비리는 임용시험 준비를 했던 사람만 피해자다.

그렇지만 대학 입시비리는 특정 누군가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내 자식이, 내 조카가 내 손주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분노할 수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윤종수는 그래서 입시비리 문제를 가장 먼저 파고들었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된 제16회 아시안게임은 11월 12일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강대학교 체육교육과 체육특기생 수시모집은 9월에 원서접수가 있었습니다.”

“그럼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건 수시 원서 접수 때 넣지 못했겠네?”

“그렇죠. 참고로 한강대학교는 원서 접수에 적힌 수상경력만 인정하는 게 학칙입니다.”

“오케이! 그럼 용현철이 한강대학교에 들어갈 때 인정받은 수상 경력은 조정 에이트 부문 단체상이 전부겠네?”

“넵”

“거기까진 좋아. 그다음은? 당연히 탈락자들의 수상경력을 조사했겠지?”

“그럼요. 이론만 본다면 몰라도 실기까지 포함하면 스포츠 쪽으로는 서울대학교보다 잘나가는 곳이 한강대학교입니다. 그런 만큼 탈락자 스펙도 정말 화려했습니다. 탈락했던 학생 중 제일 수상경력이 화려했던 학생은 태권도 국가대표였는데 고등학교 때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메달이 열 개가 넘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커다란 대회에서는 아직 메달이 없지만 고등학생이 국제대회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국내대회가 아니라 국제대회에서 그렇게 많은 메달을 땄는데 한강대학교에서 탈락했다고?”

“대신 단체 우승밖에 없는 용현철이 합격했죠.”

“이런 빌어먹을. 걔는 그래서 대학을 못 간 거야?”

“설마요. 한강대학교보다 레벨이 조금 떨어지는 다른 대학교에 합격해서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습니다.”

“쯧!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차지훈인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학생만큼은 아니라도 탈락자 중에 국제대회 수상자가 두 명 더 있었습니다. 국내대회 우승 경력은 넘칠 만큼 많고요.”

“단체 우승 몇 개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

“당연하죠. 용현철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조정을 시작했고 대회에 나간 건 3학년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3월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우승했는데도 3, 5, 7. 9 이렇게 네 번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탈락자 중 상위권 열 명은 우승 횟수가 최소 10회입니다. 그것도 개인전으로.”

“개인전하고 단체전하고 점수가 다른 거야?”

“2009년까지는 그랬는데 2010년 9월 초에 갑자기 규정이 바뀌어서 개인전하고 단체전하고 점수가 같아지긴 했습니다. 냄새가 나죠?”

“설마 용현철 하나 때문에 한강대학교 입시 규정이 바뀐 거야?”

차지훈은 속으로 뭐 이런 개막장이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용현철 말고는 이유가 없습니다. 조사해봤는데 바뀐 규정 수혜자가 용현철 딱 한 명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짜고 친 고스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탈락한 애들 상위 열 명 점수는 어땠어?”

“제일 못한 애가 500점 만점에 400점 이상이었습니다. 용현철은 300점 초반이고요.”

“그런데도 용현철이 합격한 거야? 대체 무슨 수로?”

“학강대학교 체육특기생 수시는 수상 경력 점수랑 면접 점수가 전부입니다. 수상 경력 점수 500점, 면접 점수 500점. 그런데 수상 경력 점수는 지원자 중 거의 꼴찌였던 용현철이 면접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탈락한 학생 중 면접 점수를 제일 잘 받은 애가 250점이고요.”

“수상경력에서 만점을 받아도 750점이네, 용현철은 800점이 넘는데.”

“그래서 용현철이 합격한 겁니다. 그것도 간당간당이 아니라 상위권 성적으로요.”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구나. 돈 많은 재벌 집도 그렇게는 안 하는데. 차라리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말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영부인이 끼었다는 게 어처구니없고 쪽팔렸다.

“너무 열 내지 마세요. 그래 봤자 황금숙과 조순희가 벌인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 미치겠는 거야. 대한민국 전체가 미친 두 여자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 은밀하게 언론에 퍼트릴 수 있지?”

“그럼요. 안 그래도 이미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댓글 부대가 동원한 걸 보니까 이번 일에 국정원도 개입한 것 같은데 그대로 돌려줘야죠.”

“너도 댓글 부대를 동원하려는 건 아니지? 그거 위험해.”

“설마 그러겠어요? 제 주특기가 온라인 아닙니까? 대표님이 선물해주신 거액의 서버를 이용해서 하루 온종일 용현철 이야기만 돌게 만들려고요.”

“좋아. 그대로 추진해봐. 이번 일 터지면 다음 폭탄도 곧바로 준비하고, 알았지?”

“넵.”

***

“안녕하십니까, HTBS 뉴스 배동진입니다. 여러분은 대학 입시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시험을 보고 점수에 따라 대학에 들어간다. 예전 입시 제도는 이렇게 단순했지만 최근에는 수시라는 입학제도가 생기면서 대학에 들어갈 방법이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른데 천편일률적인 시험 하나로 학생을 평가한다는 게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에서 시작한 것이 수시입니다. 취지는 좋으나 입시 방법이 많아진 만큼 꼼수도 많아져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얄팍한 꼼수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한 노골적인 압박으로 대학을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화제입니다.

바로 한강대학교에서 일어난 의혹인데요, 한강대학교는 우리나라 체육 분야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라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이선진 기자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선진 기자.”

“네, 이선진입니다. 저는 지금 한강대학교 정문 앞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한강대학교 학생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확하게 내용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건의 시작은 용 모 군이 한강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용 모 군의 어머니인 조순희 씨가 전명우 대통령의 부인인 황금숙 여사의 절친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시 비리 의혹이 있는 용 모 군의 어머니 조순희 씨가 황금숙 여사의 절친인 사실이 왜 문제가 되나요?”

“이번 문제에 황금숙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정황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개인의 욕심으로 일어난 비리가 아니라 정치인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황금숙 여사가 한강대학교에 압력을 넣어 용 모 군이 체육교육과에 합격하도록 힘을 썼다는 뜻인 겁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혹은 그렇습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한강대학교 총장이 2010년 7~8월에 여러 차례 청와대를 방문해 황금숙 여사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항상 조순희 씨가 함께 배석했고요.”

“그 자리에서 황금숙 여사와 조순희 씨가 한강대 총장에게 청탁을 넣었다는 게 한강대 학생들의 주장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학 측은 이번 의혹에 대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요구하는 채점 결과는 아직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간문제일 뿐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내용은 채점 결과가 밝혀져야 알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다른 소식을 전해드리고 한강대학교 문제는 10분 후 심층 취재로 보다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TV가 꺼졌다.

건우가 차지훈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아직 폭탄이 세 방이 더 남았으니 앞으로도 기대해주십시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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