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그리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용씨 가문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우선 겉으로 드러난 용씨 가문은 어떤 곳인가?
사실 이것도 정확하진 않지만 필자가 조사한 것만 밝히자면 용씨 가문은 20여 개의 사학재단과 그에 속한 100여 개의 초·중·고등·대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 교육 재벌이다.
100여 곳의 학교에서 1년에 배출하는 졸업생만 5만 명.(정확하진 않다. 학교당 매년 졸업생을 500명으로 잡았고, 학교가 100개 있으니 곱하기 100을 했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최소 5% 이상은 용씨 가문이 운영하는 학교를 거쳐 간다. 그중 실력이 뛰어난 학생은 재단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으며 졸업한다.
일명 용학생(용씨 가문 장학생을 항간에는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은 사회에 진출해서도 용씨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그들은 용씨 가문의 서포트를 받으며 각자 자리에서 승승장구한다.
분야는 다양하다. 법원, 검찰, 경찰, 행정, 세무 등의 중요 분야에서 요직을 꿰차고 있으며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중에서도 최소 10% 이상은 용학생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보유한 재산도 어마어마하다. 용씨 가문이 보유한 재산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학교들은 대부분 각 도시 핵심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 부지인 만큼 땅이 넓어서 각 학교 평균 부동산 가치만 해도 500억 원을 가볍게 넘는다고 한다.(용씨 가문이 소유한 대학교 중에는 부동산 가격만 1조 원에 육박하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그중 강남과 명동 인근에 있는 대학은 평당 가격만 5,000만 원이 넘는다.)
단순 수치화하면 평균 500억에 100개 학교다. 500억에 100을 곱하면 5조 원이다.
웬만한 대기업의 시가총액보다 부동산 가치가 더 높다. 더군다나 시가총액의 20%도 안 되는 주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과 달리 용씨 가문은 해당 부동산 소유권을 100% 가지고 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건 학교 가치를 단순히 땅값으로만 매겼는데도 5조 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학교 가치는 단순히 땅값으로만 계산하기 어렵다. 얼마나 많은 건물이 있느냐, 학교 레벨이 얼마나 되느냐에 등에 따라 땅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심지어 순수 땅값보다 열 배 이상 되는 학교도 상당하다.
그런 것까지 계산한다면 용씨 가문이 재산이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용씨 가문은 대체 어떻게 그만한 재산을 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기업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학교 사업은 꾸준한 수익이 보장될지는 몰라도 제조업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순 없다.
물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땅값이 오른 것이 재산 증가의 일등공신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가문이 학교를 백여 개나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역사적 계기가 있었지 않았을까? 필자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새롭게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격변의 역사’라고 할 만큼 부침이 많았던 만큼, 우리가 모르는 틈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믿었다.
광복, 6·25, 군사쿠데타, 10·26, 민주화 운동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했던 순간 속에서 용씨 가문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들 가문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있어도 모범적인 교육 사업으로 사회공헌을 하는 훌륭한 가문이라는 설명이 전부였다.
백 개에 육박하는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가문인데, 어떻게 그 과정을 수록한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도서관을 전부 뒤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가정이 잘못됐다면?’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거지?’
‘격변의 역사 속이 아닐 수도 있나?’
‘그건 아니다. 평범한 시기였다면 한 가문이 백 개가 넘는 학교를 소유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조사한 것보다 좀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하나? 그럼 남는 건 일제 강점기밖에 없는데….’
이런 추론을 가지고 용씨 가문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하자 지금껏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의 치부가 하나둘씩 드러났다.
용씨 가문은 구한말 국정을 농단하던 권문세족 중 하나였다.
당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 등의 외세 입김이 강해지던 시기였고 용씨 가문은 일진회에 속해 일본과 손을 잡고 한일병탄에 앞장섰다.
알다시피 일진회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돕고, 만주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정보를 파악해 일본군에 제공했다.
그리고 을사늑약 체결 당시에는 일본에 외교권을 넘기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고종이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을 목적으로 벌인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때는, 고종한테 황제 자리에서 떠날 것을 요구했다.
그 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의병 투쟁이 활발해지자, 일진회는 자위단을 조직해 의병 진압에까지 앞장섰다. 일본군이나 경찰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 것이다. 또 군대 해산 뒤에 있는 다이쇼 왕세자(이른바 황태자)의 서울 방문 때는 환영의 뜻으로 서울 남대문에 대형 아치를 세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일병탄에 앞장섰던 일진회가 일제강점이 시작된 지 보름 후 경무통감부에 의해 해산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대상은 모든 한국인 정치단체였고 일진회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서인지 용씨 가문만은 일본에 버림받지 않고 일제 강점 시기에도 계속 승승장구했다.
일설에 의하면(이 부분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설에 불과하다.) 당시 용씨 가문의 가주에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그녀를 초대 조선 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첩으로 바쳤다고 한다.
용씨 가문 소유의 학교들은 그렇게 일본의 비호를 받으며 세워졌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아니라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선 선견자라고 친일행적을 정당화했다.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놀라울 만큼 대표적인 친일 가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반공주의자 변신하는 경악스러운 임기응변을 선보이며 한국의 교육계 대부로 자리잡아버렸다.
그 이후 수많은 근현대사의 급변기에도 용씨 가문은 그들이 배출한 용학생들을 방패 삼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구축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청산하고 싶어도 청산하기 너무나 어렵게 됐다.
앞서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학생들의 5%가 용씨 가문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용학생들이 용씨 가문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는 행동대라면 일반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체 그들의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었다.
아무 죄가 없는 그 학생들이 상처받을까 봐 친일 학교라고 공격하기도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100개 학교 전부를 폐쇄하고 싶지만 법적으로 힘들고 5%나 되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생각해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짜증이 나는 건 기가 싱크빅이다.
기가 싱크빅은 이번 사태의 주범인 용현철의 아버지 용선재가 운영하는 학원이다.
학교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사설 학원은 오롯이 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가장 극악한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 용씨 가문의 직계인 용선재가 운영하는 학원을 굳이 다닐 필요가 있을까?
그래, 백번 양보해 올해는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내년부터는 제발 기가 싱크빅만큼은 다니지 말자.
용현철에게 개돼지 소리 듣기 싫으면, 제발!!!
P.S) 나는 현 시국이 안타까운 역사학도다. 어떤 정치적 의도 없이 100% 사실에 입각해 이 글을 썼다. 제일 밑에 이 글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첨부해놨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 헐, 대박! 이분 진짜 배운 분.
- 글이 너무 길어 댓글 먼저 보러 내려오신 분들, 올라가서 천천히 일독하시기 바랍니다.
- 위에 댓글 보고 다시 읽어보고 왔습니다. 안 읽었으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길어서 안 읽힐 줄 알았는데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용씨 가문이 운영하는 학교들을 밝혀주시면 안 되나요?
└ 나도 궁금하긴 한데 한편으론 그 학교에 다니는 죄 없는 학생들이 비난받을까 봐 호기심을 접을까 합니다.
└ 글쓴이의 말처럼 일반학생들이 방패막이가 된 셈이네요. 이것까지 의도했다면 용씨 가문은 진짜 무서운 인간들입니다.
- 에이, 진짜. 나 기가 싱크빅 출신인데. 우리 대학엔 기가 싱크빅 출신 모임도 있다. 이제 이걸 없애야 하나?
└ 모르고 했는데 어쩔 수 있나요?
└ 모르고 한 건 안타까운데 그렇다고 기가 싱크빅 이름 아래 모임을 계속 유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 기가 싱크빅 출신들보면 자기들이 무슨 명문고등학교 동문인 것처럼 어깨에 힘주고 다녀서 별로였다. 별로 친분도 없는데 굳이 모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웃김.
└ 서로 도와주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나쁠 수도 있음. 차별 없이 모두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특정학원, 특정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도와주는 것부터가 떼거리 문화의 시작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커서 사회 나가면 학연 지연을 따지죠.
└ 프로 불편러인가?
└ 불편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겁니다.
└ 이런 걸로 싸우지 맙시다. 그러니까 용현철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고 개돼지라고 한 겁니다.
- 휴우우… 전 기가 싱크빅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제 수능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우리 학원이 친일가문 소속이라고 하니 답답해서 공부가 안 됩니다.
└ 공부하기 싫은 핑계입니다. 그냥 정신차리고 공부하세요.
└ ㅋㅋㅋㅋㅋ 팩폭 오진다.
└ 정 마음에 걸리면 학원은 그만 다니고 초이스 에듀 인강만 열심히 파세요. 지금은 아는 걸 복습하는 단계지 새로운 걸 공부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 우와. 진짜 속 터져서 못 살겠다. 용씨 가문 재산 뺏을 방법 없나요?
└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법조계도 다를 바 없습니다. 친일파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중이죠. 용학생들도 상당수가 포진되어 있어 법으로 어떻게 하긴 어려울 겁니다.
└ 진짜 더러운 세상이네요.
- 짜증나면 장문오 시장 지지하세요. 독립 운동가 집안입니다. 용씨 가문을 비롯한 친일 가문들과 사이가 안 좋아서 대통령이 되는 걸 기를 쓰고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싸움입니다. 한 손 보태주세요.
└ 동참합니다.
└ 나도 동참.
└ 동참!!!!!!!!!!!!!
└ 동차아아아아아암~
└ 동원참치..
└ 아 진짜, 잘 나가다기도 꼭 한 명씩 개드립 치는 애들이 있음. 동…원예비군...;;
└ 아 쫌, 제발! 아재개그 극혐.
***
“당신, 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딴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는 거야!”
평소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용선재이지만 지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현철이를 나만 키웠어요? 왜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애 키우는 거라도 잘해야지,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어머, 이이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요? 당신은 당신 혼자 힘으로 학원을 지금처럼 키웠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내가 안 도와줬으면 어림도 없었어요. 우리 친정이랑 금숙이가 도움을 받으려고 내가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그런 소리를 해요?”
“그럼 잘하던가!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아? 우리 집만 타격이 아니라 내 본가와 당신 친구가 있는 청와대까지 완전 개판이 났다고. 그런데 이게 다 누구 때문에 당신이 되도 않은 일을 꾸며서 그런 거잖아.”
용선재는 큰소리로 버럭버럭 대드는 조순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꾸민 일로 대한민국이 온통 난리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나 잘 되자고 한 일이냐고요. 현철이 잘 되자고 한 일이지. 그러기에 가주 자리를 왜 동생에게 빼앗겨서 현철이까지 자기 몫을 차지하지 못하게 만드느냐고요!”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가주 자리를 내가 맡았으면 당신이랑 결혼했을 것 같아!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라.”
“지금 우리 집 무시하는 거예요?”
“어휴, 이 화상아. 그 머리로 일을 꾸몄으니 상황이 이 지경이 됐지.”
“뭐예요? 지금 말 다했어요?”
“그래 말 다했다. 내가 언제 당신 집을 무시했어. 현실을 말한 거지. 당신처럼 간섭받기 싫어하는 사람이 문중 제사만 수십 개가 있는 자리에 들어왔을 거라고? 그런 게 싫어서 나랑 결혼한 거잖아. 아니야?”
“그, 그건 그렇지만.”
3대 언론사 중 하나인 조순희의 친정집을 부족하다고 하긴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예쁨받으며 제멋대로 자란 그녀의 성격이 문제였지.
“그러니까 애초에 그 자린 당신 몫도 현철이 몫도 아니었다고. 우리가 돈이 적어? 그냥 그렇게 마음 편하게 살면 되는 일인데 왜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 우리나라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드느냐고.”
“아까도 이야기했잖아요.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옛날 이야기해서 뭐해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중요하지.”
조목조목 따지는 논리적인 이야기에 조순희의 어투도 수그러들었다.
그녀는 욕심이 많은 게 문제지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그랬으면 애초에 그런 많은 비리들을 저지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지금은 방법 없어. 처남한테 가서 이번 일 막아달라고 무조건 빌어. 눈물을 흘리든 손이 발이 되게 빌든 무조건 빌어. 나도 내 동생을 통해서 다른 언론사를 찾아가 부탁할 거야. 우선 언론부터 막아야 해. 그게 우리가 살 길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