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칠드런 초이스라는 모임이 있다. 영어로 Children of Choice.
초이스 에듀 근로 장학생들의 모임 이름이다. 말 그대로 초이스의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2기를 배출했고 현재 근로 장학생으로 활동 중인 3기가 합류하면 처음으로 스무 명이 넘는다.
아직은 이십 대 초반 젊은이들의 작은 모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
사상 최악의 고난도 시험으로 악명 높았던 재작년 수능 시험에서 차점자와 사상 최고의 점수 차로 만점을 받았던 강경준이 현재 회장으로 활동 중이며, 작년 수능에서 건우 동생 최동우를 제외하고 전원 만점의 신화를 썼던 2기 근로 장학생들도 전원 칠드런 초이스 멤버다.
이들에겐 근로 장학생이라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최동우를 제외하고 집안 환경이 넉넉하지 않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건우를 가장 존경했다.
이러한 공통점은 칠드런 초이스 모임을 굉장히 친근하면서 끈끈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그때부턴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대접을 받는다. 권한이 늘어나는 만큼 책임질 일도 많다. 더는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여전히 용돈을 받으며 학교생활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나 학비를 벌기 시작한다.
칠드런 초이스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학생들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만큼 두 배 세 배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초이스 에듀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매달 지원해주지만 그 돈으로 가족들까지 생활하려면 상당히 빠듯하다.
다행히 초이스 에듀 근로 장학생들은 과외 시장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수능 시험 성적이 매우 우수했던 것도 있지만, 건우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진정한 수제자들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같은 학교 같은 과 친구들보다 서너 배 가까운 과외비를 주겠다는 학부모도 많았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고등학생일 때는 몰랐지만 건우라는 이름은 과외 시장에서도 프리패스처럼 통했다.
대학 진학 후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심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이런 행운을 가져다준 건우에 대한 고마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칠드런 초이스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봉사활동을 다니고 모임 내에서 논의할 일이 생기면 술을 마시지 않고 카페나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모습은 건전하고 성실한 모임의 표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기는 일 년 이상 지금 생활을 유지했고 2기도 1기를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회의 시간에 ‘최건우 선생님 은혜에 보답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우리가 최건우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러게. 나 또한 예전부터 생각했던 문제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더라. 선물을 드리고 싶어도 뭐가 필요하신지 알아야 드리지.’
‘맞아. 솔직히 선생님은 돈을 잘 버셔서 웬만한 선물은 눈에 안 들어오실지도 몰라.’
‘동우야, 우리가 선생님에게 드릴 선물 같은 게 있을까? 뭔가 필요하신 거라든지.’
‘우리 형? 음, 글쎄. 필요한 건 금방금방 사는 스타일이라서 나도 우리 형한테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뭐든 우리가 선물하는 건 고맙게 쓸걸? 형들도 우리 형을 가까이서 봐서 어떤 성격인지 잘 알잖아.’
‘알지,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야. 별 도움이 안 됐지만.’
‘그런데 꼭 물질적인 선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 성격을 보면 우리가 어떤 선물을 해드려도 굉장히 좋아해 주시겠지만 사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물질적인 선물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설마 마음이 담긴 편지라든지 정성이 들어간 종이학 백 개 이런 걸 선물로 드리자는 건 아니지?’
‘뭐라는 거야. 그런 건 여자 친구한테나 해줘, 괜히 선생님 눈 버리지 말고.’
‘그럼 어떤 선물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애들 공부를 도와주는 건 어때?’
‘뭐? 어떤 애들을 말하는 거야?’
‘어떤 애들이긴, 초이스 에듀 애들을 말하는 거지.’
‘근로 장학생 3기 애들?’
‘걔들도 좋고, 다른 희망자가 있어도 괜찮고.’
‘그래서? 애들을 모아서 어떻게 할 건데? 우리가 그 애들을 직접 가르치자고?’
‘가르친다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의미에 가까워. 우리가 아무리 이리저리 과외를 하며 애들 가르치는 실력을 키웠다고 해도 최건우 선생님이나 다른 과목 선생님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발끝도 못 따라가지.’
‘그러니까 뭔가 새로운 걸 가르치지 말고 마무리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야. 다들 자기 나름대로 노하우 한두 개는 가지고 있지 않아?’
‘노하우는 모르겠고 작년에 썼던 정리집은 가지고 있어.’
‘그래, 그거 좋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양서훈 네 정리 노트는 끝내줬지. 그걸 복사해서 나눠주는 것만 해도 애들한테는 큰 도움이 될걸?’
‘정말 그럴까?’
‘당연하지! 나도 작년에 네 정리노트를 보면서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어. 그거 아니었으면 만점도 못 받은 바보 라인에 나도 동우와 함게 들어갔을지도 몰라.’
‘야! 왜 잘 나가다가 갑자기 나를 걸고넘어져?’
‘크크크, 쏘리!’
‘아, 진짜! 내가 마음이 넓어서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건 좋은데 어디서 그걸 할 건데? 번거롭게 카페나 스터디룸을 빌려서 가르쳐줄 순 없잖아.’
‘최건우 선생님에게는 비밀로 하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부탁하면 안 될까? 희망자에 한해서만 우리 노하우를 가르쳐주겠다고 하면 싫어하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때?’
‘음…, 강제적이 아니고 희망자만 도와주겠다고 하면 반대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최건우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하나같이 좋은 분들이라 우리 마음을 이해해주실 거야.’
‘나는 찬성! 특강반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특강반을 만들자.’
‘나도,’
‘나도나도.’
‘완전 찬성합니다.’
이렇듯 칠드런 초이스 공부방의 시작은 갑작스러웠다.
그러나 그 결말이 얼마나 창대할지는 회의에 참석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건우에게 사사받은 수능시험 고득점자들이 만든 노하우는, 건우조차 놀랄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냈다.
***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제게 보답하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공부방을 만들었다는 거죠?”
“네, 대표님.”
“근로 장학생들만 대상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고요?”
“네.”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그건 잘했네요.”
“차별 없이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두 받은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편견 없이 베풀 줄 아는 여유를 가졌다는 뜻이니까요.”
사실 그렇다. 칠드런 초이스라는 모임 자체가 근로장학생에서 시작한 만큼 다른 일반 학생들보다 현 근로장학생들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근로장학생들만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고 해도 틀린 건 아니었다.
베푸는 대상을 정하는 건 베푸는 사람 마음이고,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칠드런 초이스 학생들은 ‘비슷한 처지의 내 사람’이라는 동질성에서 오는 좁은 인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건우는 공부방이라는 걸 만들어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던 모습보다 그 과정이 더 대견했다.
“호호호. 대표님도 참 대단하세요. 결과보다 애들 마음가짐을 더 생각하시는 걸 보니.”
“인성은 모자란데 공부만 잘해서는 사회에 마이너스만 되니까요.”
건우는 예전 삶에서 자신을 차갑게 외면했던 두 동생을 떠올리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땐 그렇게 싸가지 없는 어른으로 자랐지만 지금의 두 동생은 그때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반듯하고 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대표님 나이가 아직 이십 대 초반 맞으신 거죠? 누가 보면 한 마흔은 된 교육 전문가인 줄 알겠어요.”
“칭찬이신 거죠?”
“물론 칭찬이죠. 호호호.”
“그런데 손 실장님. 이번에 만점자가 이렇게 늘어난 게 그 아이들이 운영한 공부방 때문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도출된 건가요?”
“역시 그 질문을 하실 줄 알았어요. 저도 아무 근거도 없이 그 아이들이 운영한 공부방을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이번 가채점에서 만점이 나온 학생 서른한 명 중에 공부방 출신이 스물여섯 명이더라고요. 이 정도면 확실한 근거가 되겠죠?”
“허! 스물여섯 명이요?”
초이스 에듀에서 만점자가 과하게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건 초이스 에듀가 특별했던 것이지 올해 수능 시험이 작년과 비교해 쉬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만점자는 마흔 명 내외. 그런데 칠드런 초이스에서 운영한 공부방에서만 만점자가 스물여섯 명이나 나왔다는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삶까지 포함하면 이십오 년 가까이 학원 강사 생활을 했던 건우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네. 대표님도 놀라셨죠?”
“혹시… 애들이 허위로 만점이라고 말한 건 아니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수험표 뒤편에 정답을 적어 왔더라고요. 그걸로 채점했는데 만점이 아니라면, OMR 카드를 잘못 기재한 거겠죠.”
“휴… 언론사에서 난리가 나겠군요.”
“그렇겠죠.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이겠지만 며칠은 시끄러울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고를 친 우리 애들은 뭐를 하고 있나요?”
“그게… 공부방에 모여서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녀석들도 뭔가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던데요?”
“사고는 무슨, 당연히 잘한 일이죠. 어쨌거나 제게 준 선물인데 감사히 받아야지 않겠어요?”
“어쩌시려고요?”
“그동안 고생했다고 특등급 한우라도 실컷 사주려고요.”
“어머. 그 녀석들 오늘 횡재했네요. 이따 저도 들러도 되죠?”
“그럼요. 전부 연락 돌리세요. 오늘은 우리 학원 직원들 전체 소고기 회식입니다.”
***
[초이스 에듀 가채점 결과는 충격 그 자체!]
초이스 에듀가 공식적으로 가채점 결과를 발표한 건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소식통에 의하면 올해 수능 시험에서 만점자를 서른 명이나 배출했다고 충격을 주고 있다.
(중략)
[기가 싱크빅의 완패!]
올해 수능 시험에서 초이스 에듀를 넘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던 기가 싱크빅은, 그러나 가채점 결과에서 엄청난 격차를 보이며 패배하고 말았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올해 수능시험에서 초이스 에듀는 서른 명이 넘는 만점자를 배출한 반면 기가 싱크빅은 한 명의 만점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가채점 결과여서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초이스 에듀 관계자는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해서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편 기가 싱크빅은 가채점 결과를 믿을 수 없으며 수능 시험 난이도를 봤을 때 만점자가 열 명 이상은 나오기 힘들 거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초이스 에듀가 대규모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건데…(중략)
- ㅋㅋㅋ 대규모 사기란다. 보름에서 한 달 뒤면 들통 날 일인데 초이스 에듀가 총 맞았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냐?
└ 이번에는 초이스 에듀를 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결과는 30:1. 기가 싱크빅 어쩔?
└ 쪽바리 학원 주제에 초이스 에듀한테 덤빈 것부터가 웃긴 일이었지. 최건우가 이번에 제대로 발라줘서 완전 통쾌함.
└ 이야기 들어보니 기가 싱크빅은 학생들이 빠져나가서 한 반에 5명도 안 됐다고 함. 거의 일대일 과외 수준이었는데 그렇게 해도 만점자가 한 명밖에 안 나옴. 완전 허접학원 인증!
- 확실한 건 아닌데 초이스 에듀에서는 근로장학생 출신들이 무료로 공부방을 만들어 운영했는데 거기서 만점자가 무더기로 나왔다고 함. 그게 사실이면 진짜 대박.
└ ㅋㅋㅋㅋㅋ. 설마 아니겠지. 그게 사실이면 기가 싱크빅 스타 강사들이 초이스 에듀 출신 학원생들한테 발린 거 아님?
└ 그냥 초이스 에듀 출신 학원생들은 아니고 최건우 대표 수제자라고 할 수 있음.
└ 아무리 수제자라고 해도 학생이잖아. 평소에 스타강사라고 엄청나게 목에 힘주고 다니던데, 알고 보니 최건우 수제자보다 못한 거였음. 진짜 기가 싱크빅은 다니지 말아야겠다.
└ 거긴 이미 쪽바리 학원으로 낙인찍혀서 애들도 잘 안 가려고 함. 혹시나 소수 정예로 배우면 성적이 오를까 싶어 남은 애들이 있는데 결과는 OMG.
- 아!!! 통쾌하다. 쪽바리 학원이 발려서. 기분 좋으신 분들 달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