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49화 (249/256)

제249화

역대급 만점자 배출에 언론의 관심이 전부 초이스 에듀로 몰리자, 그 틈을 타 몰래 움직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순희와 용현철이었다.

초이스 에듀의 어마어마한 성공은 곧 용선재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가 싱크빅이 망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딴 학원보다는 자신들의 안위가 훨씬 중요했다.

“엄마,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정말 아직 출국 정지가 안 된 거야?”

“그럼, 금숙이를 통해서 확인한 거니까 확실해.”

“금숙이 이모랑 아직 연락해? 나 때문에 의절한 거 아니야?”

조순희의 입에서 황금숙 이야기가 나오자 용현철이 놀란 듯 물었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두 사람이 의절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알고 있었다.

“좀 어색해지긴 했지만 내가 열심히 사과한 덕분에 의절은 피했어. 걔랑 나랑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쉽게 의절할 것 같아?”

“나는, 나도 용서해준대?”

“그건 힘들 거야. 금숙이가 네 얼굴은 다시 안 보고 싶다고 하더라.”

“에이, 금숙이 이모 은근히 쪼잔하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연히 나도 피해자라고!”

“그러게 당분간만이라도 조용히 있으라고 했잖아.”

“나름 철저하게 준비하고 갔단 말이야. 그런데 그놈이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있을 줄 알았나, 뭐”

“어미 엎질러진 물이야.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대체 엄마는 누구 편이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말에 조순희가 용현철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없어서야.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냐오냐하고 키우긴 했지만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망나니로 자랄 줄은 몰랐다.

후회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매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이미 머리가 커버린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리 만무했다.

세상을 뒤집을 엄청난 사건을 만들었는데도 자숙은커녕 깡패들까지 동원해 사태를 더 키운 게 용현철이다.

그런 그에게 반성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미로서 아들이 감옥에 갇히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해외도피였다.

세상이 아무리 그녀와 아들을 향해 미친 듯이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구속만 되지 않으면 처벌받을 일은 만무했다.

다행히 황금숙이 도와주기로 했다. 황금숙 입장에서도 용현철이 구속되지 않는 게 좋았다.

이번 일이 이렇게까지 어렵게 된 건 용현철의 녹취록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가장 중요한 증인인 용현철을 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녹취록이 공개되어버렸으니 아예 없는 걸로 만들긴 어렵겠지만, 만약 상황이 악화되어 재판까지 간다고 해도 황금숙은 이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갈 자신이 있었다.

“누구 편이긴, 당연히 네 편이니까 이렇게 야반도주를 하고 있는 거잖아.”

조순희는 분명 아들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철없는 행동에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삐딱하게 나올 거야? 자꾸 이러면 공항에 안 가고 여기서 누워버린다!”

“뭐?”

“그러니까 짱나게 하지 말라고.”

뭐라고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몰래 빠져나가는 게 누구 때문인데, 대체 뭘 믿고 배짱을 부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용현철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조순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체념을 했다.

“휴우…. 현철아, 엄마가 미안해. 그러니까 화 풀고 같이 공항에 가자, 응?”

“됐어, 엄마 혼자 가.”

“널 두고 엄마 혼자 어떻게 가? 엄마가 사과할 테니까 같이 공항에 가자. 이대로 있으면 구속될지도 몰라. 금숙이가 막아주는 것도 이번 주까지라고 했어. 그러니까, 응?”

“알았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

성질을 부리던 용현철도 구속은 무서웠는지, 강짜를 부리던 행동을 그만두고 재빨리 차에 올랐다.

***

“어! 저것들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아직 해가 뜨기엔 이른 새벽 5시. 은밀하게 용선재 집을 감시하던 초이스 시큐리티 직원 한 명이 당황한 듯 새된 소리를 냈다.

“응? 왜 무슨 일 있어?”

그의 목소리에 잠이 깬 동료가 눈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조순희랑 용현철이 지금 차를 타고 집을 빠져나갔어.”

“뭐? 이 시간에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일로?”

“그거야 나도 모르지.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나와서는 바로 차를 타고 떠나버리더라.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지금 당장 그 차 뒤에 따라 붙어. 난 지금 바로 위에다가 전화 넣을 테니까.”

***

Rrrr.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으로 밤새 잠든 근육을 풀어주던 건우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차지훈이었다.

“네, 차 실장님.”

- 죄송합니다. 제가 대표님 단잠을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 전화드렸습니다,

“아니요. 일어난 지 좀 됐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주셨어요?”

- 용선재 집을 감시하고 있던 직원에게 연락이 왔는데, 새벽 다섯 시쯤 조순희와 용현철이 은밀히 집을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조금 있으면 수능 이슈가 가라앉을 테니 미리 몸을 피하려는 건가요?”

차지훈의 보고를 들은 건우는 두 사람이 언론의 관심을 피하려고 미리 몸을 숨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 처음엔 직원도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미행을 시작했는데 이동방향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올림픽대로를 타길래 일산 쪽으로 움직이나 했는데 방화대교에서 갑자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신공항톨게이트를 지났다고 합니다.

“음…. 거기까지 지났으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한다는 건데 설마 해외로 도피하려는 건 아니겠죠? 용현철에 대한 출국정지 명령은 아직 안 내려갔죠?”

건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미간을 문질렀다.

- 네, 대표님. 동영상을 공개하고 즉시 체포될 줄 알았는데 용씨 가문이 도왔는지 아니면 청와대의 힘인지 아직 구속 영장도 발부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이대로 해외로 나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죠?”

- 보통은 해당 국가의 협조를 얻어 범인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만 두 사람은 뒷배가 보통이 아니니 다를 겁니다. 구속영장이 나와도 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사실을 지금 곧 언론에 알린다면요?”

- 그렇게 되면 인터넷상으로야 시끄러워지겠지만 두 사람은 이미 떠난 다음이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느 나라로 가는 겁니까?”

- 목적지가 인천국제공항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서 아직 조사 중입니다. 아! 잠시만요, 대표님. 뭐? 벌써 나왔어? 알았어, 고생했어. 대표님. 방금 종수가 조사한 내용을 가져왔는데 오전 07시 30분 미국행 비행기를 예약했다고 합니다.

“미국이요? 유명하지 않은 나라로 가서 조용히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런 일은 차지훈에게 판단을 맡기는 편이었다.

- 현장에서 한 가지 의견이 들어왔는데 이걸 실행에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도 쉽게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무슨 의견이길래요?”

- 일부러 간단한 접촉사고를 내서 비행기를 놓치게 하자고 하네요.

“안 됩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 과정에서 만에 하나라도 조순희나 용현철이 다친다면 모든 비난을 우리가 받을 수도 있습니다.”

- 저도 그것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사고를 낸 사람이 초이스 시큐리티 직원이라면 기자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을 겁니다.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걸로 하시죠. 현장 요원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비행기 타는 것까지만 확인해달라고 해주세요. 저도 지금부터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차지훈과의 통화를 끝낸 건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국이라 미국. 구속영장도 아직 안 나온 상황에서 두 사람의 출국을 막는 건 이미 늦었어. 지금 언론에 알려서 억지로 구속영장을 나오게 만든다고 해도 빨라야 오늘 오후야.’

‘생각해보면 미국은 나쁜 선택이 아니야. 거긴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서 마음먹고 숨어버리면 미국 경찰들도 찾기가 쉽지 않아. 그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열성적으로 두 사람을 찾아줄 리도 없고.’

‘그럼 어떻게 하지? 마이크로소프트에 부탁해서 두 사람을 미행하게 만들까? 그래, 그게 제일 낫겠다. 미국은 범인 인도 협정이 잘 되어 있으니까 행선지만 파악하면 한국으로 데려오는 건 어렵지 않아.’

생각을 마친 건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비드 하워드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무 책임자이기도 하다.

다행히 시간은 딱 적당했다. 한국은 이른 아침이지만 시애틀은 오후 1시밖에 되지 않았다.

Rrrr.

- 오, 초이!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안녕하세요, 하워드.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 뭐든지 말씀하세요. 회장님도 초이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라고 하셨어요. 마이크로소프트를 넘겨달라는 부탁 말고는. 하하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를 넘겨받기엔 제가 너무 바쁘거든요.”

- 이런. 그렇다고 하니까 왠지 아쉽네요. 초이라면 함께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부탁할 게 뭐죠?

농담을 섞은 미국식 인사가 끝나자 데이비드 하워드는 그제야 용건을 물었다.

“미국시각으로 내일 아침에 한국 사람 두 명이 미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을 고용해 그 두 사람 행선지를 파악해주셨으면 해요. 가능한가요?”

- 그런 일이라면 어렵지 않죠. 이름만 말씀해주세요. 그런데 미행을 원하는 사람이 범죄자인가요?

“아직은 아니에요. 구속영장이 나오기 전에 도망을 치는 바람에 일이 어렵게 됐어요. 아무리 서둘러도 오늘 오후에야 구속 영장이 나올 것 같거든요.”

- 저런,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런데 초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 초이의 최종 목적은 두 사람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죠.”

- 그럼 번거롭게 사람을 써서 행선지를 파악할 필요 없이 공항에서 곧바로 돌려보내는 건 어떨까요?

“네? 어떻게요?”

그런 쉬운 방법이 있었다면 이렇게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어렵지 않아요. 입국 심사대에서 입국을 거부하면 됩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 오, 초이! 대체 우리 마이크로소프트를 어떻게 보는 겁니까? 미국에서라면 한국의 최고 권력자도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게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혹시 원하세요?

“물론이죠. 당연히 원해요.”

- 하하하. 오케이, 접수했습니다. 입국금지를 원하는 두 사람의 영문 이름과 타고 오는 항공편을 알려주세요. 그럼 모레까지 한국으로 배송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하워드.”

- 천만의 말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

역대급 만점자 배출로 떠들썩했던 수능 이슈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최소 하루 이틀은 더 갈 수 있었지만 조순희와 용현철이 긁어 부스럼을 일으킨 덕분이다.

건우의 지시를 받은 차지훈은 두 사람의 도주 소식을 재빨리 언론사에 퍼트렸다. 입국이 거부된 조순희와 용현철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곧바로 체포되도록 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언론사들은 차지훈이 던진 떡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조순희, 용현철 야반도주.]

[결백을 주장하던 두 사람이 선택한 건 해외도피. 결국 스스로 범죄를 인정한 셈]

[이상한 검찰, 그들은 과연 조순희와 용현철의 해외도피를 정말 몰랐을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경찰과 경찰, 아직 용현철에 대한 수사도 시작 안 해.]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해외로 도망가버리면 그만인가?]

[납치 시도와 살인 교사 혐의가 동영상에 명백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찰 조사도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 떠밀려 그동안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던 경찰과 검찰이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동안 굼뜨게 행동했던 것이 신기하리만치 빠르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그 사실을 두고 언론은 또다시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사후 약방문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니,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라는 식의 날 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언론의 공격에 검·경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히리라는 믿음 하나로.

그러나 몇 시간 후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은 경찰과 검찰의 여유를 순식간에 앗아가버리고 말았다.

[충격 속보! 조순희, 용현철 미국 입국 거부. 내일 안으로 한국 귀국 예정]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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