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화
초이스 에듀에 대한 강압적인 압수수색 논란으로 검찰총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강력한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던 사람 중에 현 검찰총장인 서장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엔 아무도 서장수를 검찰총장감으로 보지 않았다. 능력은 있지만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아서였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를 끌어줄 확실한 정치적 끈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애매한 포지션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만들었다.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현 정권은 사실상 끝났다는 평이 많아서 후보자 중 누구도 반쪽짜리 총장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장수 입장에서야 반쪽이든 뭐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초탈한 듯한 그의 선택은 예상외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지금까지 마땅한 정치적 끈이 없던 서장수에게 건우라는 강력한 티타늄 끈이 내려왔고, 서장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찰, 황금숙 구속영장 청구]
[법원,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 구속영장 발부]
[황금숙 전격 구속]
[황금숙 그녀는 누구인가? 퍼스트레이디의 추락. 어제의 영부인이 오늘은 수의를 입다.]
[철의 여인으로까지 불렸던 황금숙은 어쩌다 구속까지 됐을까?]
[여당, 검찰의 강력 수사 의지에 굉장히 당혹.]
[이장길 대한당 의원, 이번 검찰 수사는 매우 치사한 정치적 탄압이다.]
대한당 원내대표인 이장길 의원은 검찰의 황금숙 구속 수사에 대하여 굉장히 유감의 뜻을 표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영부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온 황금숙 여사에 대한 예우를 생각한다면 불구속으로 수사를 진행해도 충분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억지에 가깝게 구속수사를 진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일명 용현철 게이트로 불거진 이번 사태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전명우 전 대통령이 하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 정도면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황금숙 여사를 무리하게 구속한 것은 당사자에 대한 굉장한 모욕이며 정치적 도의에 어긋나는 보복행위라고 생각한다.’라며 매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한편 검찰은 황금숙이 저지른 비리 중에는 대한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건이 여럿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중략)
- 기본을 지키는 언론, 오늘신문
- 정치적 탄압이래. 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지금 여당이 어딘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심지어 이번 검찰총장은 여당이 추천해서 전명우가 임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정치적 탄압이 말이 되냐?
└ 솔직히 전명우가 대통령직 그만두자마자 동정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역시 헬조선인가 싶었는데 검찰이 이렇게 중심을 잡아줄 줄이야. 그동안 욕해서 미안. 투명한 수사 부탁합니다.
- 전명우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전명우 마누라를 수사할 줄이야. 이건 진짜 아이러니다.
└ 전명우가 임명했기 때문에 검찰총장이 보은 차원에서 마누라를 수사하는 것일 수도.
└ 헐, 결초보은인가요?????
└ ㅋㅋㅋㅋㅋㅋ 개소린데 쫌 웃겼다.
- 역시 검찰 애들이 머리가 좋아. 솔직히 대한당인 이번 대선에서 힘들다는 걸 깨닫고 민국당에 잘보이려고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제발 공정한 수사 좀 해라.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면 절대 가만 안 있는다.
└ ㅋㅋㅋㅋㅋ. 네가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인터넷 댓글로 찌질거리는 놈이 무슨 힘이 있다고? 풉!
└ 힘이 없긴 왜 없어? 대선이 이제 50일도 안 남았는데. 절대 가만 안 있는 게 어떤 건지 투표로 보여준다.
└ 나도 장문오 시장님을 지지합니다.
└ 대한당 아웃, 장문오 만쉐~
***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국무총리가 임시로 그 역할을 대신하며 60일 이내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두 달은 절대 긴 시간이 아니다. 차라리 탄핵이었다면 국회 탄핵 찬반 투표 이후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기까지 석 달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겠지만, 이번처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하야의 경우는 오롯이 60일 안에 모든 걸 다 끝내야 한다.
정당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후보들이 후보자 등록을 하면,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한다. 그렇게 뽑힌 각 정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들은 이십여 일간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벌인다.
선거는 선거운동이 끝난 다음 날 실시하고, 대통령 보궐 선거의 경우는 당선자가 결정되는 즉시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민국당은 장문오가 무난하게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한당은 이장길 원내대표가 후보로 선출되었다.
다른 당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후보를 뽑았고 무소속 후보도 있었지만, 여론 조사를 보면 처음부터 장문오와 이장길의 이파전이었다.
처음에는 장문오가 앞서나갔다. 용현철 게이트로 정치인들의 비리에 심한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은 후보들의 화려한 언변이나 번득이는 명석함보다 ‘인간적인 됨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 바로 장문오였다.
국민들은 도덕적으로 흠결을 찾아보기 힘든, 그가 가진 청렴하고 곧은 이미지에 큰 호감을 느꼈다.
용씨 가문의 친일 논쟁이 수그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초반 지지율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정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을 뽑는 대회가 아니었다. 노련한 이장길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듯 쭉 뻗어갈 것만 같았던 장문오의 지지율은 점차 하락세를 그리고 말았다.
장문오와 그의 측근들은 정직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40년을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이장길과 상대하려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자 이장길과 대한당은 자신들의 특기를 내보였다.
색깔론, 지역감정 조장, 북핵 문제 등 수많은 논란거리를 가져와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장문오 선거운동본부는 대한당의 그런 네거티브 전략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며 조금씩 지지율을 깎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표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차이는 결국 오차범위 안으로까지 좁혀지고 말았다.
“축하드립니다. 후보님.”
언론사들이 공개한 대통령 후보자 지지율 기사를 보며 한 측근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하하. 강 의원님, 축하는 아직 이르지요. 아직 장문오를 따라잡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면 투표 당일에는 후보님이 앞서 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초반에는 용현철 게이트의 영향으로 지지율이 15%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 그런 암담했던 상황이 대한당의 네거티브 전략 이후 완전히 180도 뒤바뀌고 말았다.
아직은 오차범위 안에서 장문오가 미세하게 앞서고 있지만 기세가 달랐다. 장문오는 명백한 하락세였고, 이장길의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강 의원의 말처럼 지지율 역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으면 좋긴 한데 유권자 마음이라는 게 갈대와도 같아서 말입니다.”
“갈대와 같긴 하지만 색깔론, 지역감정, 북핵 문제는 언제나 통하지 않습니까?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이게 다 강 의원 덕분입니다. 강 의원이 만들어낸 전략이 신묘해서 하나같이 엄청난 효과를 보지 않았습니까.”
“과찬이십니다.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장문오 선거본부가 그렇게 무능력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네거티브를 사용했다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순진해서야. 사실 저는 그쪽에서 친일 문제를 걸고넘어지면 어쩌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공약으로 승부하겠다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어쨌거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강 의원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
“후보님! 큰일 났습니다.”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두 사람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장길의 수행비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최…건우가, 최, 최건우 그놈이 사고를 쳤습니다.”
“뭐? 최건우가 사고를 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일단 이것부터 보십시오.”
수행비서는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열어 모 인터넷 방송 뉴스를 플레이시켰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우의 상반신이 등장했고, 밑에는 자막으로 ‘속보! 최건우 대표, 장문오 후보 지지선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장 소리부터 키워봐!”
이장길의 지시에 수행비서는 스마트폰의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그러자 건우의 목소리가 방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갑자기 장문오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선언을 한 이유가 뭡니까?
[평소 청렴하고 정직한 장문오 후보를 존경해왔기 때문입니다.]
- 오늘 발표된 여론 조사에서 장 후보와 이 후보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번 지지선언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전혀 없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장문오 후보를 존경하고 신뢰합니다. 그분이 보여준 미래 대한민국에 대한 청사진에 공감했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그 마음이 이번 지지선언의 이유입니다.]
- 최 대표님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최 대표님의 선언으로 선거 결과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건 없으십니까?
[어떤 책임의식을 말씀하시는 거죠?]
- 최 대표님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위치에 있다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말해 저는 공인이 아니죠. 조금 유명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것 같으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죠. 조금 전에 저의 지지선언으로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바로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건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거침없는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 네?
[장문오 후보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길 희망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선 겁니다.]
-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해서라도요?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인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정치적 지지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번 선언은 어떤 위반행위도 아님을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 이렇게 투표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지지선언을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혹시 이장길 후보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건 아닙니까?
[억하심정이요? 있습니다. 이장길 후보 개인에게가 아니라 현 정권과 여당에 억하심정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 그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글쎄요.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학원 사업을 하며 현 정권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는 노골적인 압수수색까지 받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마치 탈세범인 것처럼 몰고 갔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어떤 문제점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그때부터 억하심정이 들었다는 말씀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저 형편이 어려워 마음껏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은 것뿐인데 현 정권은 그것조차 못하게 하는구나. 그렇다면 나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정치인을 찾아보자. 그렇게 시작한 것이 여주의 교육타운이었고 장문오 후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억하심정이라고 한다면, 그 비판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일부 기자들이 어떻게든 흔들려고 했지만 건우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계속 딴지를 걸던 기자들도 당당한 건우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더는 질문이 없으신 같으니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를 도와 온 제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문오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선거는 끝이 났다. 건우의 지지선언은 선거 결과에 그야말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불과 사흘 전 오차범위까지 좁혀졌던 두 사람의 지지율은 처음 조사를 시작했을 때 이상으로 벌어져 버렸다.
분명 건우의 선거 개입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이런 선언까지 했겠느냐는 동정론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건우는 기자회견에서 선거개입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보여준 건우의 모습을 보며 그의 말을 믿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건우는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62:31]
딱 두 배의 득표율 차이로 장문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언론의 대선 전 최종 지지율 발표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결과였다.
이 모두가 건우의 지지선언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