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이 가라사대-256화 (완결) (256/256)

제256화

“아…, 알겠습니다.”

일본대사도 당장 확답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건우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여기까지만 몰아붙이기로 했다. 결국 시간은 일본이 아니라 건우의 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대사님이 주신 선물은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대표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일본대사가 물러가자 건우는 곧장 차지훈을 호출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대표님?”

건우의 호출에 황급히 달려온 차지훈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받으세요. 일본대사가 선물로 주고 갔습니다.”

“선물이요?”

“100여 년간의 용씨 가문 친일 행적과 간첩행위 기록들입니다. 거기에 교피아의 다른 한 축인 이씨 집안 자료도 있다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교피아를 몰락시킬 수 있겠습니까?”

“간첩행위요? 다른 것도 아니고 정말 간첩행위를 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교피아는 끝장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이 이걸 가지고 제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겁니다. 이제 교피아와의 전쟁이 끝이 보이는 기분입니다. 잘 마무리해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 봤다. 서로를 보는 눈동자엔 굳건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십니까, 최 대표님.”

건우가 집무실로 들어서자 장문오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대통령님.”

격조(隔阻).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장문오의 대통령 취임식 이후 2년 반만의 만남이니 그럴 만도 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았으니 만나려고 했다면 만나지 못했겠느냐마는, 혹시라도 정치개입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동안 건우는 한 번도 청와대를 찾지 않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초대했는데 계속 거절하셔서 항상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뵙고 싶었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요. 괜히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대통령님 하시는 일에 누를 끼칠 것 같아 일부러 거절해왔습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진 말아 주십시오.”

“허허허. 서운하다니요. 최 대표님의 배려에 항상 감사할 뿐이지요.”

“사실 오늘 방문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직접 뵙고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건우의 말에 장문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고 있습니다. 교육타운은 차질 없이 잘 건설되고 있고, 학원 사업은 경쟁자가 없어서 미안할 정도로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일로…?”

“예전에 차 실장이 대통령님에게 중요한 선물을 드린 적이 있지요?”

“아! 그럼요. 두 번이나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 덕분에 제 인지도도 많이 올랐지요.”

한 번은 용현철 녹취록이었고 또 한 번은 용현철의 납치 시도 동영상이었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선물입니다. 단지 그때보다 더 큰 이슈가 들어 있어 제가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일본대사가 건네고 간 자료를 검토하던 차지훈은 용씨 가문은 엄청난 간첩 행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이 정도로 명확한 증거물이 있다면 장문오에게 넘겨 국가 차원에서 단죄하도록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장문오의 교피아에 대한 원한은 건우보다 컸으면 컸지 절대 작지 않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문오라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교피아를 무너뜨리려고 할 게 분명했다.

건우와 차지훈은 그 타이밍에 맞춰 한 손 거들기만 하면 된다.

“네? 더 큰 이슈요? 그때보다 더 큰 이슈라고 하니 무섭기까지 합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겁을 주는 겁니까?”

“교피아라고 아시죠?”

“흠…. 어떤 교피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교피아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장문오의 얼굴은 이미 차갑게 굳었다. 그들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쉽게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건우는 역시 청와대를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문오라면 자신이 직접 하는 것 이상으로 교피아를 단죄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제가 알아본 바로 교피아는 다섯 개의 유력 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일명 용씨 가문과 이씨 집안이라고 불리는 곳이 가장 핵심이고요.”

“최 대표님도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으셨군요.”

“이전 정권의 교육부와 갈등이 생기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육부 장관이 이완종이었는데 그 사람 형이 이태종이라고 이씨 집안의 수장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파고들다가 용씨 가문과 교피아의 실체를 알게 된 겁니다.”

“조사하셨으니 알겠지만 절대 쉬운 놈들이 아닙니다. 교육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서 100여 년 이상 한국을 좀먹던 놈들이죠.”

“그렇긴 하더군요. 그런데 만약 제게 두 집안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집안을요? 설마 용씨와 이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정말 그런 게 최 대표님에게 있습니까?”

조금 전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던 장문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며칠 전에 일본대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온갖 생떼를 쓰며 버티더니 그놈들이 결국 굴복했나 보군요.”

“네, 맞습니다. 이게 바로 콜드바이를 일본에도 유통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제게 건네 자료들입니다. 여기 보시면 용씨 가문과 이씨 집안이 저지른 친일 흔적과 간첩 행위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에? 가, 간첩행위요? 대체 어떤…?”

“세계 각국과 협약을 맺은 한국의 외교 문서들과 우리나라의 핵심 군사정보들을 빼내서 일본의 호소카와 가문에 넘겼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아무리 권력이 좋고 돈이 좋아도 사람이 할 짓이 있지.”

장문오는 건우가 건넨 서류가방을 다급히 펼쳤다.

“군이나 외교부에도 일명 용씨 키드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으니 자료를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았겠죠. 보시면 알겠지만 심지어 대통령님 임기기간인 작년에 넘긴 자료들도 있습니다.”

“허허.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두 가문을 몰락시킬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행위를 용서할 국민들은 없습니다. 마침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대한당도 절대 교피아를 옹호하지 못할 겁니다.”

“저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때문에 서둘러 이걸 가져왔습니다.”

총선이 아직 많이 남았다면 대한당도 어떻게든 교피아 편을 들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 곧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시작된다.

이런 타이밍에 매국행위를 한 교피아 편을 든다? 그건 곧 총선에서 지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문오 입장에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 과반수가 넘는 의석으로 내리눌러도 그만이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감사합니다, 최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장문오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빛으로 건우의 손을 붙잡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하하. 이렇게 감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도 전부 저 좋자고 하는 일인 걸요. 제가 하려는 교육 목표에 교피아는 너무나도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그들만 치워주시면 한결 쉽게 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일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아, 그리고 내일 중으로 차지훈 실장이 명단 하나를 보내 드릴 겁니다.”

“무슨 명단을요?”

“용씨 가문에 의해 강제로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 명단입니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용씨 가문이 학교를 많이 보유한 이유가 있더군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인수하려고 했으면 불가능했을 텐데, 일본이나 군사정권을 등에 업고 반강제로 빼앗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확실한 근거가 생겼으니 소송을 걸어서라도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줘야지 않겠습니까?”

“오! 그것 반가운 명단이군요. 간첩행위 등의 이유로 강제추징하기엔 재산이 너무 많은데,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저도 좋습니다. 만약 안 된다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가능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대통령님만 믿고 그 명단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 다음 주 안으로 일본 총리가 대통령님에게 공식 사과를 할 겁니다.”

“네? 일본 총리가 갑자기 제게 왜 사과를요?”

“북핵 문제를 과대 포장해서 대통령님의 외교 정책을 무능하다고 몰아붙였지 않습니까? 그럼 당연히 사과를 해야죠.”

“설마 콜드바이를 유통해주는 조건으로 그걸 건 겁니까?”

“네, 일 년 한정이긴 하지만요.”

“허허. 최 대표님. 내가 앞으로 최 대표님 은혜를 어떻게 갚으라고 이런 도움을 자꾸 주시는 건지.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일본 총리가 공식 사과를 하게 되면 장문오의 위상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나게 올라가게 된다. 지금까지 계속 외교 문제로 물고 늘어지던 대한당은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될 테고.

“알고 보면 저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대통령님.”

꾸벅 인사를 하고 건우가 돌아가자 장문오는 류명훈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 류명훈 전 대통령을 기리는 방법이었다.

“류 선배. 솔직히 내 임기까지 선배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는데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조금만 기다려요. 선배의 억울한 마음을 반드시 풀어줄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장문오는 측근만 호출한 채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그들은 이미 예전부터 교피아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과 대한당의 노골적인 흔들기를 견디면서 침착하게 칼을 갈고 있었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곳은 검찰청이었다. 그곳엔 용씨 가문 키드들도 많이 포진된 만큼, 성급하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고 인내하며 안에서부터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했다.

그 기간만 2년이 걸렸다. 아직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장문오가 준비한 칼들을 검찰청에 완벽하게 심을 수 있었다.

어렵게 칼을 만들어 놓고도 당분간 휘두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건우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사용할 기회가 찾아왔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면 기회가 와도 허둥지둥하다가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용씨 가문 키드들이 곳곳에 얌약해 있는 이상 철통 보안은 기대하지 않는다. 괜한 소문이 나서 상대가 대비하기 전에 한두 발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장문오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칼들에게 건우가 준 자료를 넘기며 최대한 빨리 교피아를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

“회장님. 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용씨 가문 원로회 수장인 용정환에게 그의 비서가 다가와 속삭였다.

총선을 앞둔 시기. 이번 선거에서 대한당이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장문오가 하는 일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다.

그러려면 북핵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와 현 정권을 끊임없이 흔들어야 하는데 최근 일본정부는 그런 쪽의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본가인 호소카와 가문에 연락을 넣어보라고 했는데 비서는 가지고 온 대답은 기대했던 것과 거리가 멀었다.

“설마 아직 연락이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닌데 담당자와 통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꼭 저를 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럴 리가 있나. 본가가 뭐 때문에 너 따위를 피해. 네가 제대로 말을 못 전 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지시하신 대로 분명히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다시 연락해볼까요?”

“됐어. 네가 하는 걸 기다리느니 내가 직접 연락하는 게 낫지. 대기하고 있어, 전화해볼 테니.”

용전환은 전화를 걸기 위해 못마땅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낯선 남자들이 마당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희는 누구지?”

“안녕하십니까, 용정환 회장님. 저희는 광역수사대 소속 경찰입니다.”

“광역수사대 경찰이 무슨 일로 여기를?”

“무슨 일이긴요, 회장님을 체포하러 왔죠.”

“뭣이?”

“용정환 씨. 당신을 군사비밀보호법 위반 행위로 체포합니다.”

“군사비밀보호법?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그딴 걸 어겨?”

경찰의 말에 용정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헐, 이 양반 보게. 그동안 일본에 팔아먹은 우리나라 외교 문서와 군사 기밀이 몇 갠데 그렇게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겁니까? 왜요? 그동안 너무 많이 해서 그동안 죄로 못 느낀 겁니까?”

“너희가 감히 나를 체포할 수 있을 것 같아? 윤 비서.”

“네, 회장님.”

“당장 가주부터 불러. 그리고 우리 재단 소속 변호사도 부르고.”

“혹시 가주라고 하면 용선국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용선국도 지금쯤 체포됐을 겁니다. 당신과 같은 죄목으로요. 그럼 순순히 따라오시죠.”

자신을 경찰로 밝힌 덩치 큰 두 남자는 강제로 용정환의 팔을 잡았다. 힘으론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용정환에게 막강한 권력이 있다고 해도 현실은 나이 많이 먹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놔! 이것들아, 당장 놔.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이딴 짓을 벌여. 이 손 안 놓으면 내일 당장 너희들은 모가지야.”

“할 수 있으면 그러시던지요.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님.”

“뭐?”

“이봐요, 용정환 씨. 우리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움직였을 것 같습니까? 당신은 이제 끝장이야. 간첩행위가 얼마나 나쁜 짓인 줄 알아?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당신은 늙어 죽을 때까지 감방에서 썩어야 해.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이것들. 내가 네놈들 절대 가만 안 놔둔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경찰이 이죽거리자 용정환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볼품없이 강제로 연행되어 가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대문을 나서면서 멈추고 말았다.

집 앞엔 경찰차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자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용정환이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거침없이 셔터를 눌렀댔다.

용정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가문 전체가 몰랐다? 순간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경각심이 들었다.

누가 준비한 함정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마음먹고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용정환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경찰차는 빠르게 창경궁로를 지나 서울지방경찰청에 도착했다. 용정환은 경찰들에 의해 거칠게 이끌려 취조실로 옮겨졌다.

당장 취조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위에 작은 TV가 켜져 있을 뿐이었다. 시끄러워서 끄고 싶었지만 전원 스위치도 리모컨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TV에서 속보를 시작했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거슬리는 단어들이 귀에 박혔다. 일본 총리니 사죄니 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용정환은 경악하고 말았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속보입니다. 일본의 모리 신조 총리가 방금 각국 외신들을 부른 자리에서 대한민국 장문오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모리 신조 총리는 그 자리에서 가짜 북핵 문제를 만들어 한국의 외교 정책이 실패했다고 비난한 것에 반성하며….

- 또한, 모리 신조 총리는 한국의 모 가문이 외교와 군사 정보를 몰래 빼내 일본의 호소카와 가문에 전달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와 일본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관계를….

- 다음 뉴스입니다. 검찰은 오늘 한국 최대의 교육 재벌로 불리던, 일명 용씨 가문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펼쳤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미 확보한 간첩행위 증거를 가지고 용정환 회장과 그의 아들인 용선국 이사장을 체포했다고….

에필로그

2019년 06월. 제20대 총선에서 민국당 과반수 의석 확보. 대한당 19석 확보로 원내교섭단체 구성 실패.

2019년 10월. 일명 용씨 가문 재산 몰수법 국회 통과.

2019년 12월. 초이스 픽처스가 출시한 게임 ‘에일리언 어택(Alien Attack)’ 엄청난 흥행 돌풍. 누적 접속자 1,000만 돌파.

2020년 05월. 에일리언 어택(Alien Attack) 매출 5조 원 돌파.

2021년 02월. 초이스 이노베이션 첫 발명품인 전파의 진동을 이용한 무선 충전기 출시.

2021년 06월. 초이스 제약(콜드바이 생산업체) 상반기 매출 30조 원 돌파.

2021년 12월. MS Choice 연 매출 100조 원 돌파. 전 세계 교육시장 석권.

2022년 MS Choice, 초이스 픽처스, 초이스 이노베이션, 초이스 제약 차례로 주식 시장에 상장.

2022년 10월. 초건우, 포브스 발표 세계의 부호 순위에서 빌게이츠를 누르고 처음으로 1위 등극.

2022년 12월. 교육타운 완성.

그리고.

2023년 1월 초이스 그룹 신년회 개최.

여주시 남쪽에 자리하고 있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은 초이스 이노베이션과 초이스 제약(콜드바이 아시아 공급업체)의 성공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10여 년 전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혼바위 아래 지역에는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새 단장을 끝내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초이스 그룹의 커멘드 센터 역할을 할 새로운 본사다. 엄청난 높이와 거대한 몸짓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는 그런 건물이 아니라, 남한강 위로 떨어지는 붉은 낙조와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자연 친화적 건물이었다.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구글 본사를 능가할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정성을 들인 건물이기도 하다. 빠르게 건물 짓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건축기간만 6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그들의 설레발이 아주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신년회는 본사 건물 오픈식과 맞물려 엄청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6년의 세월이 걸린 건물, 세계 제일의 부자로 등극한 건우, 신년회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는 세계 두 번째 부자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지금 이곳은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올 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넘쳤다.

“최건우 대표님. 앞으로 교육타운을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이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년회 행사 시작 전 기자회견에서 젊은 기자가 선망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집안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 그게 바로 제가 만든 교육타운의 목적입니다.”

“지금 교육타운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 학생들도 많이 입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처음엔 한국 학생들만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노골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제가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혜택은 한국 학생들에게만 주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과감하게 정책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주 교육타운은 국제 교육 도시가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다행히 현 정부와 여주시의 협조로 교육타운 부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전 세계의 재능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또한, 국제 규모인 만큼 인종, 국가, 종교 따위의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지금 여주 교육 타운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제2의 교육도시를 만들 생각은 없으십니까?”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두 번째 교육타운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각 대륙에 하나씩 교육타운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각 대륙에 있는 교육타운끼리 서로 교류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곳도 이곳과 마찬가지 사회적 약자가 주가 되는 무상 교육 체계입니까?”

“물론입니다. 교육타운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그러니 대륙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이 생길 리가 없지요. 이제 곧 식이 시작된다고 하니, 남은 질문은 나중에 다시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간단한 기자회견을 마친 건우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교육타운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건우가 들어서자 운동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박수를 쳤다. 서른도 안 된 어린 나이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낸 천재 청년에 대한 경의였다.

뉴욕필하모니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행진곡이고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건우는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친가와 외가 친척들, 조유미, 장만복 회장, 이승훈, 윤은영, 강경준, 바틀리 사장, 스트리 교수, 옐로우 레이디, 하도훈, 안우현, 고자성, 윤종수, 이준규, 윤대엽 셰프, 데이빗 송, 데이비드 하워드, 사티아 나델라, 빌 게이츠, 마동수 등 수많은 사람들이 건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단상에는 건우가 가장 믿는 차지훈과 손다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건우는 두 사람과 힘차게 악수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단상 왼쪽에 서 있는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작가로 최고의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동우. 여러 가지 꿈을 모두 뒤로하고 경영학과를 선택해 건우와 가족들을 모두 놀라게 한, 지금은 하버드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는 정우.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음악적 재능을 뽐내는 바람에 잠깐 건우의 골치를 아프게 했지만, 지금은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인기몰이 중인 은우.

회귀 전 세상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적성에 맞는 자기 일을 하며 즐거워하는 동생들을 보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건우는 세 동생을 조용히 안아주고 마이크 앞에 섰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대운동장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건우가 천천히 다시 한번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완결>

<형이 가라사대>를 마무리하며.

안녕하세요. 러브와퍼입니다.

그동안 형이 가라사대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 4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이제 연재가 끝이라고 하니 시원한 마음보다 서운한 마음이 더 큽니다. 좀 더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훨씬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합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제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마음고생을 하며 독자님들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갈고닦으며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좋아진 글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 주신 독자님들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1월.

러브와퍼 드림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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