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난 가식적인 웃음 때문에 경련이 일어나는 얼굴을 유지한 채 쌍둥이들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론 그렇다 해서 쌍둥이들과의 관계가 당장 바뀔 건 없었지만.
적어도 두 아이들이 과거처럼 나를 적대시하지만 않으면 돼. 이제부터 매일 맛있는 것도 먹이고 좋은 옷도 입게 해줘야지. 같이 데리고 꽃구경도 가줘야지. 사랑받지 못해 음습한 놈들 말고 꽃같은 놈들로 키워야지.
이전 생에 쌍둥이들을 괴롭히던 아마네트는 바이바이다.
그렇게 해서 최대한 끔찍한 살해 엔딩만은 막을 테다.
그때, 나와 쌍둥이들의 상태를 살피던 아빠가 깊은 침음소리를 내며 시녀들을 바라봤다.
“그럼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우선 데려가서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도록 해. 먹을 것도 충분히 주고.”
그 말에 잠시 움찔하는 쌍둥이들을 보며 내 눈도 그들을 살폈다.
온 몸에 난 생채기가 두 사람이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증명했다. 얼마나 맞고 지냈는지,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을 어떻게 견뎠는지 온 몸으로 보여줬다.
지금도 자신들을 데리고 가는 시녀들의 행동에 겁먹으면서도 어른들이 이끄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시녀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며 고개만 갸웃거렸다. 지금 보면 저렇게 불쌍한 아이들인데, 과거엔 내가 왜 그랬을까. 첫 번째 생에서 나도 저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었는데. 정말 아이의 몸이 되었다고 아이의 생각에 동화되어 버린 건지, 그게 아니고서야 과거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흑막이 된 쌍둥이들을 떠올리면 치가 떨리지만, 지금의 저 아이들을 생각하니 과거의 행동이 미안했다.
“그래서 우리 따님은. 아빠 보려고 여기 나와 있던 거야?”
“어. 겸사겸사.”
“겸사겸사? 오늘따라 우리 딸이 다른 것만 같구나.”
다르고말고. 이전 생에서의 나는 아빠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기 바빴고,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사용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그런 막무가내의 아이였다.
원래의 아마네트였다면 지금 들어온 아빠에게 버럭 짜증을 냈을 것이다.
“다르기는. 원래 이 나이 또래 애들은 이래!”
“그, 그래?”
“응!”
아빠를 가만히 바라봤다. 쌍둥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아빠는 내게 있어 참 다정했다. 일찍 엄마를 여읜 나를 보며 언제나 안타까워했고, 엄마가 주지 못하는 정까지 본인이 채워 주기위해 노력했다.
쌍둥이들만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더욱 완벽했을 테지만 그래도 아빠가 좋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난 아빠의 품에 폭 안겨들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아빠는 자연스럽게 날 안아 들었다. 유난히도 따스한 냄새가 난다.
아빠 좋아…….
사랑 받는다는 게 뭔지 알려 준 소중한 아빠. 첫 번째 생에서 받지 못한 사랑까지 더 많이 주려는 것처럼 아빠는 겪어본 적도 없는 애정과 사랑을 주었다.
지키고 싶었으나 지키지 못했던 아빠. 그의 존재가 더 소중한 건 나 때문에 목숨을 잃어서였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빠가 후작이 되었으나, 아빠는 할머니의 꼭두각시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빠가 아닌 엄마를 쏙 빼닮은 나를 퍽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전쟁고아출신 평민이었던 엄마가 낳은 나를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때문에 할머니는 몇 번이나 귀족가의 새엄마를 들여 후작가를 이를 다른 자식을 만들려 했으나, 아빠가 그 모든 걸 거부했다.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점점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결국 제 뜻을 따르지 않는 아빠를 치워 버릴 심산으로 할머니는 아빠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아빠는 거기에서 사고를 당한다. 아빠의 사고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어 기억할 정도로 꽤 유명한 일화였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사고가 분명했으나, 어떤 수를 쓴 건지 그 일은 쉽게 단순 사고로 마무리 되었다.
그 흔하디 흔한 마차 사고도 아니고, 주인이 없는 말이 흥분해서 아빠를 덮친 일이었다. 그 말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이 무슨 약을 먹은 건 아닌지. 그런 조사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를 당하자마자 후작가의 기사가 흥분을 가라앉힌 말을 바로 죽여 버렸다고 했으니까.
누가 봐도 할머니가 수를 쓴 게 분명했지.
아빠에게 내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새로운 여인을 부인으로 들였다면.
할머니가 바라는 대로만 했더라면 아빠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을 일은 없었을 거다.
그래서 지금의 아빠를 보니 반가우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시큰거리면서도 두근거린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빠가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그래도 우리 딸이 이렇게 예쁜 얼굴로 아빠 보며 웃어주니까 좋네?”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좋아?”
“좋지.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좋지.”
“응! 그러면 아빠 오래오래 살아야 해?”
“그럼. 우리 딸이 다 커서 결혼할 때까지. 아니지. 결혼하는 건 안 돼. 평생 아빠랑 살아야해.”
“응! 아빠랑 오래오래 살 거야!”
그러니까 어디 가서 죽지 말라고. 그것도 말한테 치여 죽는다니. 절대, 절대 이번에는 그리 만들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수상했던 건, 아빠를 이어 큰아빠가 후작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삼형제 중 제일 형편없는 형 베헬. 얼마나 형편이 없었냐면 가문을 망하게 하는데 일조한 게 그 놈이다.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아빠와 똑같은 교육을 받고 자란 인간이면서 어찌나 형편없던지.
가문의 사업을 다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 본인에게 옳은 말을 하는 이들을 모두 잘라 버리고, 입 바른 소리만 하는 이들을 곁에 두어 귀를 막은 인물이다.
덕분에 가문의 사업은 점점 쇄락의 길로 향했다.
할머니도 큰아빠의 그런 모자람을 익히 알고 있어서인지 후작으로 동생인 아빠를 밀어주었는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인간이 아빠가 죽고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버린 나를 선심 쓰듯 양녀로 거뒀다. 말이 거둔 거지 방임과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이런 상황을 또 겪게 되니 그 때는 정말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와중에 큰 아빠는 서쪽 저택에 남겨진 쌍둥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큰 아빠가 쌍둥이들의 정체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나도 모르게 분노에 손이 덜덜 떨린다.
“아, 아빠 때리려고?”
“어?”
날 품에 안고 있던 아빠가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 따님이 주먹을 꽉 쥐길래!”
“때리기는! 아빠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난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아빠의 몸을 쓸었다.
너무 말랐다. 다른 귀족들은 덩치가 좋거나 근육이 빵빵한데, 우리 아빠는 귀족 같지 않다. 참으로 빈약하다. 말이 아니라 망아지로 쳤어도 비명횡사할 것 같이 비쩍 말랐다.
“아빠.”
“응?”
“이참에 덩치를 키워 보는 건 어때?”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몸이 이리도 비실비실하니 더 무시를 당하는 거지. 하지만 아빠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이런 몸이 좋은걸. 엄마도 아빠의 있는 그대로가 좋다 그랬어.”
“…….”
“우리 딸은 싫어?”
“응. 싫어.”
단호한 내 말에 큰 상처를 받은 것처럼 아빠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
마치 사슴 같다. 눈썹은 왜 이리 긴 건지. 마음이 흔들거린다.
“시, 싫어……?”
물론. 그 말에 홀딱 넘어갈 내가 아니다.
“응! 싫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꼬박꼬박 운동도 잘 하고 잘 먹어야 해? 난 아빠의 배가 빨래판처럼 탄탄했으면 좋겠어!”
“어?”
“팔뚝은 통나무처럼 단단하고 굵으면 좋을 것 같구.”
“아아…….”
“허벅지는 말처럼 튼튼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픽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생긴 거 말고.”
작은 탄식을 내뱉은 아빠는, 마치 고백하고 차인 남자처럼 입술만 바르르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한 살 때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던 할아버지도 풍채가 좋고, 아빠가 죽은 이후에 이 가문을 먹어버리는 큰아빠도 풍채가 좋은데, 아빠만 쪼그라든 풍선 같다.
내 단호한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눈만 이리저리 굴리던 아빠는 허허 웃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예전엔 이런 아빠도 좋다 하더니…….”
“원래 애기 때는 다 좋다하지. 나 지금은 애기 아니니까, 이제 안 좋아. 그러니까 운동도 하구 그래.”
아빠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언제까지 멍청하게 당하지 말라구!
간헐적 천재도 아니고, 아빠는 꼭 한 번씩 똘똘했다가 바보 같았다가 그런다. 그 속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중요할 때 바보가 되어 버리니…….
긴장하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나 뭐라나. 그게 아니라 덩치 큰 인간들이 압박을 주니 본능적으로 피하는 거겠지.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하면 풍선처럼 쪼그라들 일도 없을 거다.
그래서 난 아빠를 다시 한번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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