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53)

6화

“유모.”

순식간에 바뀐 아빠의 표정과 목소리를 느낀 사용인들은 다들 순간 경직되었다.

단 한사람, 유모만 빼고.

“네. 주인님.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언제부터 이랬나?”

“네?”

“아이의 버릇을 언제나 그대가 고쳤냐고 묻는 거다.”

유모는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에 급급해서인지 아빠의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제가 아가씨를 돌봐왔으니까요! 그러니 이번에도 문제없습니다. 일단 아가씨를 방으로 모셔가 제가 따끔하게…….”

당당히 말하는 그 목소리에 아빠는 코웃음을 쳤다.

“내 아이가 버릇없든 말든 유모가 무슨 상관이지?”

언제나 다정했던 아빠의 목소리는 완전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네?”

“남들이 보면 유모가 내 딸의 엄마라도 되는 줄 알겠어.”

“아…… 주인님. 그게 아니라.”

돌아가는 분위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유모가 급히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굽신 거렸지만, 모든 이들에게 다정했던 아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제대로.

“항상 이랬나?”

“네?”

“언제나 내 아이의 잘못이라고 그렇게 몰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던 유모는 멍청하게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 주장하기 급급했다.

“아니 그것이……. 엄마가 없다고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다른 분들보다 더 호되게 군 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아가씨를 위해-”

모터라도 단것처럼 유모의 입은 빠르게도 움직였다.

하지만 그 말에 아빠의 얼굴은 더더욱 굳을 뿐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그 유약하게 보이던 아빠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역시 인생 두 번 살고 볼 일이었다.

“난 맨 처음 유모로 들였을 때, 내 아이를 잘 돌볼 이를 구했다.”

“저, 저도 충분히 잘 돌봤습니다!”

“글세. 그 동안은 아마네트도 별 말이 없었기에 몰랐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야. 그저 아이가 잘 클 수 있게 돌보기만 하라 했는데 선을 지나친 것 같군.”

파리하게 굳은 얼굴로 유모는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정말 최선을……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건가? 고작 유모라는 인간이. 후작인 나의 딸을 자기 맘대로 했단 말인가.”

“그것이…….”

“왜. 아닌가?”

거짓말은 하지 못하는 듯 유모는 입만 벙긋거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라고 해보지.”

“저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 과정중에서 제 의도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정말 아가씨를 모심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과정은 중요치 않아. 과정이 중요한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나 중요한 거지. 지금 중요한건 유모 그대가 저지른 일에 대한 결론이다.”

또박 또박 말하는 아빠의 말에 유모는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기 바빴다.

“그게 분명…… 아가씨께선 절 좋아하셨어요. 그러니 결론적으론-”

“그만 하도록. 더 이상의 핑계는 듣고 싶지 않으니.”

“핑계가 아니라-!”

결국 아빠의 이성의 끈이 톡 끊어진 듯,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 아빠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꺼지도록.”

“네, 네?”

“좋은 말로 할 때. 계속 버티다가 볼품없이 이곳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다면.”

아빠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건지 우리와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시종들이 하나 둘 다가왔다.

그제야 유모는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주인님.”

“그대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아마네트였다. 그러니 인사는 아마네트에게 해야지.”

“네. 아가씨.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난 그런 그녀를 향해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오늘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나쁜 의도가 없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응! 유모 잘 가.”

물론 그런 내 행동에 유모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지만, 이제 와 내게 어쩔 수 없다 생각한 건지 그녀는 그렇게 물러났다.

“우선 아마네트. 유모에 관한 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지만…….”

하지만 역시나 아빠는 만만찮은 사람이었다. 뭐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내 모든 걸 도와주던 유모가 갑자기 공석이 되어버리면 아빠도 꽤 난처할 테니까.

“왜!”

“아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렇게 하겠지만, 아무래도 넌 어린아이고 하니까…….”

“그래서!”

“당장은…….”

눈을 잔뜩 흘겨가며 아빠를 바라봤다. 그제야 무언가에 깜짝 놀란 것처럼 아빠의 몸이 살짝 움찔 거렸다.

아까의 카리스마 넘치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소의 잔뜩 주눅 든 딸 바보 우리 아빠로 돌아와 버렸다.

“우, 우선은 밥먹으러 갈까?”

“아까 그이야기는!”

“그건 신경 쓰지 말거라.”

“응! 아빠만 믿어!”

난 더 보란 듯이 아빠의 품에 안겨 고개를 파묻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유모를 내쫓는 건 무리인거 알면서도 난 일부러 더 앙탈 아닌 앙탈을 부렸다.

그리고 나서야 아빠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었다.

“예쁘구나. 우리 딸.”

“응. 나 예쁜 거 알아.”

유모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아침에 갑작스레 벌어진 일들 때문에 눈치를 보는 걸까.

오늘따라 후작가의 사용인들은 티가 날 정도로 거리를 둔 채 우리의 뒤를 졸래졸래 따랐다.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 나를 앉고 한참 걷던 아빠가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마네트.”

“응! 아빠!”

“미안하구나.”

“응?”

오늘따라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아빠의 손길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다섯에 아빠가 떠난 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한 손길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손길이 오랫동안 그리웠었다.

하지만 아빠의 표정은 나와 정 반대의 표정이 실렸다.

“정말 미안해.”

“아빠,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유모가 네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아빠가 더 주의 깊게 살폈어야 했는데. 우리 똑똑한 아마네트. 그래서 유모를 바꾸고 싶다 한 거야?”

아주 느릿하게 이야기하던 아빠는 안쓰러운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아빠 말이 맞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가 그런 영악한 생각을 했다고 말을 할 필요까진 없었다.

지금도 갑작스레 어려운 말을 하는 나를 의심하는데.

그러면 분명 아빠는 갑자기 내가 변한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고 마음 아파할 게 분명하니까.

아빠는 나한테 최선을 다한걸.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잘 모르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나는 그냥 아이처럼 굴면 돼.

나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 때문에 바꾸고 싶다 한 거 아냐!”

“응?”

아빠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 할 필요 없잖아.

난 아빠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그럼 왜 갑자기 유모를 바꾸고 싶다 한 거야?”

“유모는 초콜릿을 자주 안줬거든! 헤헤. 나는 초콜릿이 아빠 다음으로 좋은데. 다음 유모는 초콜릿을 잘 줬으면 좋겠다!”

제 나이 또래의 아이처럼 굴어야 아빠도 걱정하지 않겠지.

“그런 거야?”

“응!”

“훗, 그래……. 우리 딸. 네가 밝아보여서 다행이구나.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빠가 꼭 다 해결하마.”

아빠의 얼굴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일부러 당장 유모를 내쫓으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너무 의심이 없어. 사람을 너무 믿어서 문제야.

물론 그런 아빠여서 내가 다루기 쉬운 거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다루기 쉬운 사람이다. 그러니 할머니가 더욱 아빠를 꼭두각시처럼 세우려고 했겠지. 갑자기 속이 답답해졌다.

안되겠어. 다음에는 사기꾼 구별하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야겠다.

난 다짐을 하며 아빠를 바라봤다. 그 사이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아빠는 옆자리에 나를 앉히고선 본인도 자리 잡고 앉았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하나 둘 우리 앞에 놓여졌다.

“잘 먹겠습니다!”

내 명랑한 목소리가 식당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릴 때는 이렇게 자주 아빠랑 식사를 했는데,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이런 날이 적어졌다.

후작가에서 버티는 쌍둥이들 때문에 아빠에게 불만을 가졌고, 식사 자리도 피했다.

게다가 아빠는 쌍둥이들과 내가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식사시간에 자꾸만 둘을 데리고 나왔다. 아빠와 같이 식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식당을 기웃하다가도 쌍둥이들이 있으면 아닌 척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아빠의 슬픈 듯한 표정을 보고서도 모른 척 했다.

그때 그냥 식사할걸. 그 시간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미 한국에서 한번 살아봤으면서, 영원한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그랬다.

결국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난 아빠 생각에 이곳에서 다시는 밥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음식을 하나씩 집어서 먹여주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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