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빠가 먹여주니까 엄청 맛있는 거 같아.”
“그래?”
“응! 그런데 아빠.”
“왜? 아빠가 먹여주니 너무 좋아서 그래?”
“아니. 아까부터 느낀 건데 왜 자꾸 풀떼기만 먹여? 나도 고기 좋아해! 고기 줘 고기!”
내 말에 포크 한가득 푸릇푸릇 싱싱한 야채를 가득 꽂아 놨던 아빠는 어색하게 웃었다.
“고, 골고루 먹어야지.”
“골고루 먹으라면서 고기는 왜 안주는데.”
“주, 주려 했어.”
그러면서 한쪽에 미뤄뒀던 소고기를 슬쩍 가져왔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기들을 꼬챙이에 꽂듯이 포크에 꽂았다.
“그걸 다 먹으려구?”
내 행동에 놀란 듯 아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나 말구. 아빠 먹으라구. 튼튼한 몸이 되려면 고기 많이 먹어야한댔어.”
“아빠는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하는걸.”
이그. 그러니 그렇게 비실비실했지.
“어서! 아~ 크게 벌려.”
내가 주는 건 거부할 수 없는지 아빠는 한참 주저하다가 입을 벌렸다.
난 아빠의 입에 포크에 꽂았던 고기를 잔뜩 넣어버렸다.
“맛이찌! 아마네트가 아빠한테 주니까 더 맛이찌!”
진짜 어린아이처럼,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 건지, 아빠는 붉은 머리칼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더 맛있구나. 정말 맛있어.”
“다행이다.”
좋으면서도 가슴 한 켠이 떨려왔다.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난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해.
이전 생에서도 죽기 전, 쌍둥이들 핑계로 아빠와 함께 하지 못했던 식사 시간들이 얼마나 후회되었는지.
그러니까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해요.
과거에 당신이 나를 지켜준 것처럼 이번엔 내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
난 환하게 웃으며 아빠를 바라봤다. 가식이 담긴 웃음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우리의 식사시간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푸딩이 나올 때 쯤, 난 아빠와 눈을 맞췄다.
“아 맞다. 아빠, 오빠들한테도 새 유모를 붙여줄 거지?”
“응?”
“설마 생각 안하고 있던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 아이들이 어른을 꽤 어려워 하는 거 같아서 말이지.”
아빠는 난처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움. 그러면 내가 뽑는 걸 도와줄게! 오빠들이나 나나 어리니까, 어린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뽑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오빠들도 어려워하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아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마네트는 누굴 닮아 이리 똑똑할까. 그런 방법은 생각도 하지 못했구나.”
“헤헤. 똑똑해?”
“그럼. 똑똑하고 말고. 네 말을 들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응!”
아빠의 칭찬을 들은 난 스푼 한가득 푸딩을 퍼서 베어 물었다. 마치 솜사탕을 입안에 넣은 듯, 푸딩은 순식간에 입에서 녹아 없어졌다.
“그보다 우리 딸이 오빠들이 좋은가보구나.”
아니. 절대 싫어! 과거에 날 죽인 놈들이 뭐가 좋아. 아무리 이제와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고 해도, 좋을 수는 없지.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뭐. 조금은?”
“정말? 그래도 아빠보다 더 좋아하면 안 된다.”
“글쎄~ 어떻게 되려나.”
그 말에 아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마네트…….”
걱정 마. 아빠. 절대 그 놈들을 더 좋아할 일은 없을 거야. 그저 살기 위해 적당히 잘해주고 적당히 빠질 거니까.
소설 속 흑막이 뭐가 예쁘다고.
“아. 배부르다.”
그 사이 접시 위 푸딩을 다 먹어치운 난 만족스럽게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우리 따님이…… 대답을 안 했어.”
“그럼 난 이제 방으로 돌아갈래. 오늘은 하루 종일 뒹굴뒹굴 할 거야.”
“정말 아빠보다 오빠들을 더 좋아할 거야?”
“그건 아빠 하는 거 보구! 그러니까 아빠 제대로 된 유모 뽑아줘!”
큰 임무라도 받은 듯, 최종 퀘스트를 받은 용사처럼 아빠는 붉은 머리칼을 흔들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거라. 이번엔 아빠가 직접 뽑으마. 나라를 다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마네트에게 최고의 유모를 뽑아줄게.”
“그 전엔 아빠가 뽑은 거 아냐?”
“음, 이곳에 있는 사용인들 대부분 할머니가 뽑은 거란다. 이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만은 아빠가 직접 뽑으마.”
“응. 알았어.”
어쩐지. 그래서였구나. 유모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인 건. 혹시나 했는데 할머니가 직접 뽑은 사람이었다니. 할머니가 뽑은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나중에 나에게 없던 일까지 보태가며 불리한 증언을 하던 유모의 행동이 더욱 납득이 되었다. 그것도 할머니가 시킨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할머니 꽤 열받아 있겠는데.
생각만 해도 입에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내내 날 잡종 취급하며 첫째 큰아빠와 둘째 큰아빠의 자식들과 차별했던 할머니가 아니던가.
고작 할머니가 꽂아 놓은 유모 하나 바꾸는 건데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과거에는 할머니의 말에 단 한 번도 반박하지 못했던 걸 떠올리면. 어휴, 반박이 뭐야. 큰 눈을 부라리며 내게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닭 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또 울기만 하는 내가 더 꼴 보기 싫다며 다시 타박하기 시작했다.
다 커선 더 이상 울진 않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빠의 결혼과 재혼만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없던 할머니.
유모 소식을 들으면 어떤 얼굴일지 당장이라도 보러 가고 싶네.
난 웃음이 나오려는걸 애써 참아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 잘 부탁해. 새 유모는. 난 이제 배불러서 누우러가야겠어. 이 몸 유지하려면 잘 먹고 잘 뒹굴어야 해.”
아빠에게 통보를 하고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아빠랑 산책은?”
“오늘은 산책할 기분이 아냐. 오늘은 뒹굴뒹굴할 기분이야. 그러니 아빠. 괜히 밥먹은 거 소화시킨다고 움직이지 말고 아빠도 뒹굴뒹굴해. 그래야 살도 붙고 튼튼해지지.”
눈이 보이지 않게 환히 웃고선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아빠가 방까지 데려다줄까?”
“아니. 나 어린애 아닌걸.”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 쌍둥이들을 대책도 마련해야 하고.
그리고선 호다닥 밖으로 뛰어 나왔다. 아빠랑 산책을 가는 것도 좋고 아빠가 데려다주는 것도 다 좋았지만…….
“아빠는 나한테 너무 집착한단 말이지”
입을 뽀로통하게 내민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엄마가 없어서일까, 아빠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시간을 허비했다.
때문에 몇 번이나 후작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깜박하기도 했다.
때문에 난 아빠가 따라오기 전에 내 방으로 향했다. 우리 각자 할 일을 하자구요.
유모를 대신해서 몇몇 시녀들이 나를 급히 따라왔으나, 그들은 날 제지하지 않고 그냥 두었따.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방에 오자마자 침대로 뛰어든 나는 사자 인형을 품에 안았다.
“흐으음.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오늘 문득 생각난 일에 데굴데굴 구르고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할머니는 쌍둥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아빠와 내가 지내고 있는 서쪽 저택에 관심을 두지 않은 덕에 쌍둥이들이 이곳에 있단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라면……?
이곳 사용인들을 모두 관리하고 있던 할머니는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알고서도 묵인한 걸까. 묵인했다며 왜?
아니면 할머니도 쌍둥이와 공범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쌍둥이들을 이곳에 둔 그 범인인 걸까.
고민하던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내가 알 수 있는 게 없다. 어른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나는 아이고, 과거를 알고 있다 해도 과거에 내가 알려하지 않았던 일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아. 몰라!”
버둥거리던 나는 사자인형을 품에 안고 다시 누워서는 침대 위에서 좌우로 구르기를 반복했다.
“지금 당장 문제는 할머니가 아니라 쌍둥이잖아. 할머니는 한동안 잠잠할 테니까. 그래. 우선 쌍둥이에 관한 것들부터 하자. 외로운 아이들에게 뭐가 제일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에 어땠는지 떠오르기만 한다면 쉬울 것 같은데.
그때는 그저 패악을 부리기 바빴다. 누군가 쌍둥이에 말하려고 하면 발작버튼이 눌려진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난리 치기 바빴으니까.
그후론 내게 점점 쌍둥이에 대해 알려오는 사람이 사라졌다.
“하아…….”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구르던 난 결국 고민 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선 부딪혀 봐야지.”
아무리 고민한다 한들, 과거에 내가 쌍둥이들에게 벌인 못되고 나쁜 일들만 생각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