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유용한 정보 따윈 없다.
“내가 얼마나 쓰레기였는지만 알게 될 뿐이야. 하. 진짜……. 과거의 나란 인간 진짜.”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 내 뼈에 내가 한 잘못들을 새겨놓은 듯 아주 또렷하게 하나하나 기억 난다.
결국 난 생각을 떨구며 사자 인형을 품에 안선 천천히 방 밖으로 나왔다.
“저기.”
“네, 네! 아가씨.”
방 앞을 지키고 있던 시녀는 좀 전까지 말끔한 모습으로 방에 들어가서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로 나온 날 보며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또 한바탕 짜증을 풀려는 건 아닌지 싶어 살짝 긴장하는 것 같았다.
“오늘 온 걔네들 어디 있어?”
“아. 그 후작님과 같이 오신 꼬마 손님들 말인가요? 아까 목욕까지 마치고 저쪽 끝 방에서 쉬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답니다.”
“그래? 걔네 혹시 방에 들어간 이후 뭐 별다른 건 없었어? 무슨 난폭한 행동을 했다거나.”
시녀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요. 저도 잘 아는 건 없답니다…….”
다른 이들에게 물어봐도 똑같았다. 별다른 게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 가까이 오는 걸 거부한 듯 쌍둥이들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말만 들었다.
처음 만난 시녀뿐만 아니라 다른 몇 명에게도 똑같이 물었지만 들려온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웬만하면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가씨께서 신경 쓸 이들은 아니랍니다.’
도움이 1도 안 되는 그런 말들. 결국 나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총거리며 쌍둥이들이 있는 끝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외로 활짝 열려있는 문 안으로 고개를 빼꼼 들이밀자 방이 덥다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초들이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두운 걸 겁내하는 듯 촛불에 의지하며 아이들은 방 안 구석에서 갑자기 들어온 나를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촛불과 초의 향이 엉켜 마치 주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방 안으로 나는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리고선 최대한 감정 없이 쌍둥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들, 밥은 먹었어?”
때마침 내 발치에 시녀들이 가져다 놓은 음식들이 툭 걸렸다.
일부러 위험한 것들은 다 뺀 듯 방 안에는 침대와 소파를 제외하곤 가구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때문에 음식이 놓인 그릇들은 죄다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름 명망 있는 후작가에서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다니, 유모가 보았으면 한 바탕 잔소리를 했을 일이었다.
“안 먹은 모양이네.”
조금도 입을 대지 않은 듯 음식들은 처음 모양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래도 가져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지 빵과 스프에서 따뜻한 김이 느껴졌다.
난 가만히 쌍둥이들을 바라봤다.
10년을 넘게 갇혀 지냈고, 어두운 걸 싫어한다. 그리고…… 사람을 적대한다. 특히 어른을.
지금 와서 보니 쌍둥이들은 날 두려워하진 않는 듯 했다.
그저 처음 보는 날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뿐. 어른들에게 보이는 반응과 내게 보이는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난 가만히 쌍둥이들을 바라보다가 음식 앞에 주저앉았다.
“있잖아. 우리 집 주방장 음식이 꽤 훌륭해. 특히 이 빵, 이 빵은 입맛 까다로운 우리 할머니도 인정한 진짜 겉바속촉이라니까. 너네 배고프잖아, 그러니까 이거 안 먹으면 후회할걸.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을 테니까.”
그리고선 손으로 접시의 빵을 북북 찢었다. 날 뒤따라 방 안으로 몸이 반쯤 들어와 있던 시녀는 내 행동에 놀란 기색을 했다.
“아, 아가씨. 이건 저희가 할게요. 아가씨께서 이 아이들 빵을 직접 손으로 하실 필요는-”
“나도 손이랑 발 있거든? 그리고 너희들 다 나가. 난 오빠들이랑 놀 거니까. 너희들이 거기 있으니까 무서워서 나랑 안 놀아주잖아!”
일부러 평소보다 더 강하게 시녀들을 내쳤다.
방금 전까지 하나 둘 안으로 들어오려던 시녀들은 그 기세에 입을 움찔거다가 밖으로 나갔다.
“네, 네…….”
“혹시 무슨 일 있으시거든 바로 말씀해주세요.”
물론 한마디씩 보태고 나가는 건 잊지 않았다. 어차피 내 일에 그렇게 관심도 없었으면서.
지금도 아빠의 허락없이 내가 이 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그런 것뿐이다. 내가 다치면 본인들에게 피해가 갈 테니까. 어느 누구하나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유모랑 똑같은 인간들. 가식적이기만 한 사람들. 난 그런 이들을 노려보다가 다시금 빵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 갓 구운 빵이라 맛있어. 이거에 꿀 찍어먹음 진짜 맛있다?”
그리고선 다시금 연기 아닌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너희도 먹고 싶어 못 견딜 거다.
방금 아빠랑 밥도 먹고 푸딩도 먹고 온 터라 배는 터지기 직전 이었지만, 쌍둥이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직접 먹는 걸 보여주는 게 최고다.
다행히 쌍둥이들 중 살짝 머리색이 짙은 편에 속하는 큰아이가 날 빤히 바라보다가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 시녀들을 내쫓을 때부터 쌍둥이들의 경계는 어느 정도 풀린 후였다.
아마 속으로 그러겠지.
‘어른들을 저렇게 쉽게 물리치다니!’
‘멋지다!’
아까보다 쌍둥이들에게 풍겨져 나오는 불편감은 처음 이방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덜 하다.
이참에 난 경계를 더 풀기 위해 빵을 입에 한껏 넣었다.
그것 모자라 빵을 꿀에도 찍어먹고 스프에도 푹푹 담가먹었다 .
“아, 맛있다.”
그제야 쌍둥이들은 슬금슬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선 배고팠던 건지 내가 방금 전 들고 있던 빵을 빤히 바라봤다.
이 와중에도 내가 먹은 빵이 아닌 건 의심스럽단 건가.
그동안 도대체 뭘 먹고 자랐길래, 배고픔이란 본능보다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거야.
그리고 도대체 난 이런 애들을 왜 그리도 미워한 거야.
난 잠시 쌍둥이들을 바라보다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빵들을 여기저기 뜯어먹었다.
그리고 나서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던 쌍둥이들은 서서히 음식들에 손을 대며 비워가기 시작했다.
“오빠들, 천천히 먹어. 여기 주스도 먹어도 돼. 먹고 싶으면 우유도 가져다줄까? 엄청 맛있는데.”
시녀들을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를 잡은 건 쌍둥이들 중에 머리색이 조금 더 짙은 편에 속하는 아이였다.
머리도 조금 큰 것을 보면 아마도 쌍둥이 중에 형이겠지.
“왜? 별로야?”
하지만 내 옷자락을 잡았음에도 쌍둥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응?”
“너도…….”
“나?”
“응. 혹시 너도 여기에 갇혀 사는 거야? 납치 당한 거야?”
과거에서부터 매번 날 볼 때마다 짐승처럼 언제나 가시를 세우던 쌍둥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건 처음이다. 거의 둘만 같이 지냈을 텐데도 말을 제법 또박또박하는 걸 보니 신기했다.
“어, 어?”
놀란 마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자, 뒤에서 음식 먹기 바쁘던 쌍둥이 동생이 입에 빵을 잔뜩 물리고는 입을 비죽거렸다.
“형. 이야기 하지 마. 쟤도 나쁜 사람일지 몰라.”
“…….”
“나는 나쁜 사람 아냐. 나쁜 사람인데 음식을 이렇게 해 주겠어?”
“못 믿어.”
그러더니 제 형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 당겼다.
예전에는 저런 행동들 자체가 선을 긋는거 같고 맘에 들지 않아 나도 같이 날을 세웠는데, 지금 보니 그냥 짐승처럼 자라서 보이는 본능적인 행동들 같다.
그 사이 동생 말에 홀라당 넘어간 듯 쌍둥이 형도 어느새 내게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그래. 당장 무언가를 바꾸려고 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이들의 공간에 있는 것만도 어디야.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난 가만히 두 쌍둥이를 바라만 봤다. 늑대 같다고 할까. 첫 생의 TV에서 보았던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 인간. 아니 다시 보니 늑대라고 하기에는 둘은 너무 하찮다.
그래, 마치 골목에 버려진 비 맞은 개 같다. 멍멍이.
음식을 도구로 먹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듯 쌍둥이들은 접시 옆에 포크와 스푼을 놔두고 손으로 허겁지겁 음식들을 먹기 바빴다. 덕분에 바닥은 빵 부스러기며, 스프 국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금세 지저분해졌다.
조금 불쌍하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이 쌍둥이들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흑막 쌍둥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만들어진 성격일지 몰라.
하긴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다. 결국은 어른들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이들. 쌍둥이들 역시 태어나기를 고귀한 공작가의 자식들로 태어났지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심지어 부모와 떨어졌고, 납치를 당하고 방임을 했으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가슴 한 켠이 조금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