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53)

9화

“너 왜 자꾸 쳐다 봐.”

하지만 비 맞은 멍멍이라 할지라도 짐승은 짐승이다.

내가 가만히 먹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자 쌍둥이 동생이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두 사람을 보던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냥, 신기해서.”

“너도 우리가 짐승처럼 먹는다고 뭐라 하려는 거야?”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편한 대로 먹겠다는데. 그런 걸로 뭐라 할리 없잖아. 그리고 지금 보니 오빠들처럼 먹는 게 더 맛있어 보이는데.”

움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쌍둥이들이 동시에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런 그들을 두고 난 휙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이제 갈게.”

“가든지 말든지.”

“…….”

하여튼 말이라도 안 하면 예쁘기라도 할 텐데. 저놈의 입이 문제다. 불쌍한 마음이 들어 잘 해 주려 하다가도 마음이 쏙 들어가 버린다. 하긴, 과거에도 그랬다.

한 마디 뱉을 때마다 미운 소리만 해댄 건 쌍둥이 동생 쪽이 더 많았다. 그때는 한 없이 재수 없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저게 쌍둥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나름의 방법이겠지.

약한 동물일수록 일부러 몸집을 크게 보이고 독을 품는다. 그런 것처럼 쌍둥이들의 저런 행동들도 나름의 생존 수단이겠지.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도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거나 짜증을 부렸던 건 은근히 나에게 소홀했던 사용인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나만의 생존 수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난 여러 생각이 들었음에도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둘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둘의 표정이 미묘하게 아쉬운 빛을 띄었지만, 그곳에 있을 더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도 괜찮은 성과였다.

“아가씨! 별 일 없으셨어요?”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을까봐 걱정이 된 건지 문 밖에는 시녀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물론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어디 다쳐서 나왔을까 봐 내 몸 여기저기를 보기에 바빴으니까.

“응. 아무 일도 없었어.”

“휴. 다행이에요. 저희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걱정 마. 내가 들어가서 보니 오빠들이 나를 해칠 사람들도 아닌 것 같으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오빠’라는 소리를 하자 시녀들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 그런가요…….”

“그래도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그래봐야 어린애인걸!”

어색하게 웃는 이들은 아직도 방 안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일 뿐이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그냥 날을 세우는.

“다들 겁먹지 마. 정말 어린애일 뿐이니까.”

“아.”

짧은 탄식을 내뱉는 이들에게 아까보다 더 빠르게 말을 이으며 당부했다.

“그리고 절대 강압적으로 대하지 마. 둘 다 겁먹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런가요.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불편한걸요.”

뻔히 문이 열려있음에도 쌍둥이들이 들으라는 듯 시녀들은 쌍둥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놓지 않았다. 도리어 내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집에 오늘 처음 왔으니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건 당연하잖아. 부모도 없이 유모도 없이 딸랑 둘이 왔는데. 나 같아도 어색하고 불편해서 저랬을 거야.”

“세상에. 아가씨 굉장히 어른같이 말씀하시네요.”

“그러게요…….”

어린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내비친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시녀들은 앞 다투어 내 칭찬하기에 바빴다.

“어어. 어쨌든 내가 매일 식사 시간마다 찾아올 테니까 오늘처럼 식사를 안에다 놔줘. 그리고 식탁은 좀 가져다 놓고. 아무리 그래도 바닥에서 먹게 하는 건 좀 아니잖아.”

“아아.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본인들의 말에 별 다른 호응은 하지 않고, 도리어 내 할 말만 또박 또박 하자 그들의 눈에 의심이 깃들었다.

오늘따라 아가씨가 이상하다는 저들의 눈에 드러난 명백한 감정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내 할 말만 하고선 몸을 휙 돌렸다.

그제야 어버버거리던 이들은 급히 고개를 숙였고, 난 방으로 돌아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맛있게 먹으며 웃던 쌍둥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가에 아른거렸다.

저렇게 웃기도 하는 애들인데. 그러고 보니 소설 속 쌍둥이 흑막도 불쌍했잖아.

이 쌍둥이들은 소설 속 여주인공을 동시에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당연히 남자주인공인 황태자를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여주인공은 쌍둥이들을 내치지 못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 따위 받아본 적 없는, 안쓰러운 어린 새끼 강아지 같은 두 쌍둥이들을 도리어 여주인공을 보듬는다.

어장관리이긴 했지만, 쌍둥이들은 여주인공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쌍둥이들에게 여주인공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여주인공과 쌍둥이들을 강제로 떨어뜨려놓는다.

그리고 여주인공을 잃은 상실감에 괴로워하던 쌍둥이들은 여주인공을 납치하고 말지.

열여덟 살의 나이동안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는 게 무색하리만큼 3년 만에 공작가를 장악해 가던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가감 없이 표출해낸다.

무서울 정도로 뛰어난 두 놈들은 제국의 어둠에 점점 더 동화되었다. 마치 본래의 자리를 찾은 것처럼. 공작가를 접수함과 동시에 그들은 암흑가의 제왕이 된다.

소설 속 제국의 좋지 못한 일들은 모두 이 쌍둥이들이 만들어 낸 일이다. 그들을 건드려서 살아 난 이들이 없다. 얼마나 사람을 죽이고 다녔는지, 쌍둥이들 곁에서는 피냄새가 진동했다, 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들은 음습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납치한 여주인공과 한 달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은 서브 주인공일 뿐. 여주인공의 손길 하나면 충분했던 두 사람은 결국 황태자에게 발각되고, 흑막답게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난 그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 빙의된 거다.

“하아. 우선은 이정도로 하고, 어떻게 하면 환심을 살지는 차차 생각해 봐야겠어.”

방에 도착하자마자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이의 몸은 어찌나 연약하고 불편한지, 조금 움직여도 금방 잠이 온다.

게다가 밥까지 배불리 먹었으니 잠이 솔솔 올 수밖에 없다. 결국 난 더 생각하기를 멈추고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누가 토닥여주지 않아도 아주 깊이 잠들어버렸다.

* * *

그로부터 6일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

여전히 쌍둥이들은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냈고, 아빠는 매일 같이 내게 집착했다.

난 매일 아빠에게 나의 사랑을 확인시켜드리며 달래고, 쌍둥이들의 식사시간을 챙기기 바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쌍둥이들은 경계심을 쉬이 풀지 않았다. 그저 밥시간에 옆에 동석해서 너희들이 먹는 음식은 문제가 없다 라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어느 정도 경계가 풀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기미상궁만 된 기분이다.

쌍둥이들에게 음식 먹는 걸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아빠와의 식사 후에도 이것저것 쌍둥이들 식사를 주워 먹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다른 방도를 생각해야겠어.

머리를 빗어주던 시녀와 거울 너머로 눈을 맞췄다. 내가 본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란 듯, 시녀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내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하루아침에 유모가 쫓겨나면서 유모가 하던 일까지 나누어 하고 있으니 다들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난 시선을 피하는 시녀의 눈을 계속 쫓았다.

“있잖아.”

“네, 네? 저를 찾으셨나요?”

뒤늦게 내가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가 꽤 놀란 얼굴로 몸을 떨었다.

이번에 새로 뽑힌 시녀들 중 하나였는데, 유모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건지 나를 꽤 무서워하고 있다. 무서워하는 건지, 아니면 거리를 두는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과거와 확실히 달라졌다. 새로 뽑힌 시녀들은 이전의 삶에선 아예 보지도 못한 이들이다. 이전의 삶에서의 시녀들은 유모를 따라 나를 모시는 듯 하면서도 꼭 일부러 빈틈을 남겨 나를 곤란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시녀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전보다 나은 건 확실하다.

개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지금 머리를 빗어주는 이 사람이다.

시녀 멜린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원래 나에게 배정된 시녀가 아니었음에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천덕꾸러기가 된 나를 안쓰럽게 여겨 계속해서 서쪽 저택에 머물 수 있게 챙겨주었던 시녀 중 하나였다.

눈치는 별로 없었으나, 밝은 편에 속했고 속정이 깊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안타까이 여겼던 멜린지.

물론 그게 전부이긴 했다. 한낱 시녀가 나를 살리겠다고 자기 목숨 받쳐서 뭔가를 하진 않았다.

솔직히 그런 건 환상속의 유니콘을 볼 확률과 같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이 모시던 이가 불쌍하단 이유로 목숨을 내놓고 도망가게 해주는 거? 그런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역시나 현실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난 차선책 중에서 이 시녀를 고른 거고.

“아가씨?”

내가 한참동안 말이 없자, 시녀는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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