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어. 어. 다른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뭘 주는 게 좋을까.”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단 걸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녀는 내게 가지고 있던 적대감을 살짝 풀어냈다.
원래도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나에 대한 적대감을 살짝 푼 그녀는 진심으로 내 고민에 대해 걱정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글쎄요. 음. 호감이라…….”
“응. 호감!”
“으으음. 뭐가 좋을까요.”
멜린지는 내 머리를 빗으며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생긋 웃었다.
“아아!! 그거군요!!”
“응?”
“좋아하실 거예요. 분명.”
“뭐를 좋아해?”
“아가씨께서 주시는 모든 걸 다 좋아하실 거예요. 제 생각에는 음……. 아가씨에게 소중한 걸 선물해주는 건 어떨까요?”
멜린지의 말에 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원래 친한 친구들끼리는 서로 아끼는 물건을 나눠가지지 않던가. 얼마 전까지 온갖 고초에 내몰리며 살다보니 이런 당연한 일들도 잊고 지냈던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졌다.
내가 아끼는 물건을 주면 쌍둥이들도 분명 좋아할 거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결론이 내려진 일에 난 환히 웃었다.
“좋다! 그래야겠다!”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 나 혼자 할 거야! 이건 특별한 선물이니까!”
쌍둥이들은 어른들을 싫어하니 나 혼자 준비해서 주는 게 딱이다. 뭐가 좋으려나.
그 사이 멜린지는 내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뒤 방울을 달아주었고, 준비가 끝난 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럼 저는 나가 있을까요?”
“응!”
왜 멜린지의 얼굴이 저리 밝은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난 그녀를 무시하고선 방에서 쌍둥이들에게 줄 선물이 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을 꺼내 보았다.
하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열 살 남자 쌍둥이들에게 줄 만한 선물 중에 마땅한 건 없었다.
인형놀이 세트를 줄 수도 없고, 내 드레스나 머리 핀이나 보석을 줄 수도 없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건 유모가 나간 이후 방 한 켠에 잔뜩 쌓여있는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타령을 조금 했더니, 아빠는 시녀들을 시켜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맘껏 초콜릿을 주라고 명령했다.
예전이라면 하루에 세알밖에 못 먹었을 초콜릿은 그 덕에 내 방 높이 쌓여있었다.
난 초콜릿을 잔뜩 집어서는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 지도록 넣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쌍둥이였다. 평소와 달리 쌍둥이들의 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이리 가벼울 수가 없다.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왔다. 매일같이 쌍둥이들 방을 들락거리다보니 갑작스럽게 내가 방을 나와 쌍둥이에게 가고 있었음에도 이젠 어느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 것처럼, 쌍둥이에게 가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저 변덕쟁이 아가씨가 이번엔 꽤 오랫동안 다른 일에 관심 갖는구나 정도?
“오셨어요. 아가씨.”
그 사이 쌍둥이들의 방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시녀가 한발 물러섰다.
“응! 문 열어!”
“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하지만 답답한 걸 참지 못하는지 창문은 다 열려 있었다. 2층에 있었던 터라 쌍둥이들이 뛰어내리지는 못했지만 답답함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역시나 내가 들어오자마자 버럭 짜증 섞인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왜 또 왔어. 밥 시간 아니잖아!”
재수라곤 똥으로 싸서 버린 건지, 오늘도 쌍둥이 동생은 날 불편하게 바라봤다.
쌍둥이지만 미묘하게 다르게 생긴 둘은 성격도 행동도 천지차이였다.
조금 더 천사에 가까운 쌍둥이 형은 깜짝 방문한 내가 반가운 듯 웃고 있었고, 아까 보다시피 재수라곤 밥 말아먹은 동생은 딱 보기에도 악마에 가까웠다.
남들이 볼 땐 똑같이 생겼다지만 내가 봤을 땐 단번에 구분이 가.
천사와 악마로. 쌍둥이라도 확연히 다르다.
“왜 왔냐고.”
앞 뒤 없이 쏘아 되는 동생을 내가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자, 이번에도 재수 없는 동생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말하면 후회할 텐데.”
“후회는 무슨 후회.”
난 여전히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쌍둥이 동생을 지나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쌍둥이 형에게로 다가갔다.
“짠!”
주머니에 넣어 오는 바람에 살짝 녹긴 했지만, 초콜릿은 본래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초콜릿! 먹어본 적 없지. 내가 오빠 특별히 주려고 가져왔어.”
자신만만하게 어깨까지 들썩거렸건만, 쌍둥이 동생은 도리어 제 형을 막았다.
“형 먹지 마! 뭘 줄지 알고.”
“그치만 이 아인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나쁜 걸 준 적이 없는걸. 잘 먹을게.”
하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쌍둥이 형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내 손에 있는 초콜릿을 냉큼 받아간 그는 주저하다가 초콜릿 껍질을 깠다.
“형. 먹지 말라니까.”
하지만 이미 초콜릿은 쌍둥이 형의 입으로 쏘옥 들어가 버린 후였다.
초콜릿은 신이 만든 완전식품이다.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방금 전까지 미묘한 표정을 보이던 쌍둥이 형의 얼굴이 조금씩 변했다.
이게 뭐지 싶던 표정에서 눈이 점점 커지더니, 광대뼈가 점점 승천하기 시작했다.
“와…….”
“맛있지.”
“정말 맛있다. 초콜릿이라고……?”
“응! 내가 말했잖아. 오빠들하고 잘 지내고 싶다고. 그런 의미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가져왔어.”
마치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쌍둥이 형의 얼굴이 변했다.
“처음이야. 누군가가 제일 좋아하는 걸 우리에게 준 건.”
“아 쫌 형! 쟤도 한패라고!”
그리고 난 주머니에 있는 초콜릿을 탈탈 털어 두 사람 앞에 두었다.
“뭐. 내가 믿음이 안 가면 안 먹어도 돼. 먹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조금은 마음 열어줬으면 좋겠어. 난, 정말 잘 지내고 싶거든!”
할 말을 모두 끝낸 나는 어김없이 몸을 휙 돌렸다.
“이대로 간다고? 정말 이것만 주러 온 거야?”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지, 쌍둥이 동생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
“응.”
“더 수상하잖아.”
“말했잖아.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그럼 볼일 다 봤으니 이만 간다.”
조금의 미련도, 바라는 것도 없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왔다.
저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오늘 일을 계기로 조금의 틈이 더 만들어 지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오늘 아침에 막 떠오른 그 일을 할 때에도, 내 도움을 받으려 할 테니까.
과거의 일은 솔직히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한 가지 일이 떠오른다.
내 여덟 살 생일 파티 전날, 할머니에게 갔다온 그날 벌어진다.
아빠는 쌍둥이들을 내내 가둬두는 것만 같다며 우리가 지내는 서쪽 별채에서만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쌍둥이는 그날 과감하게 탈출을 감행한다.
어차피 내가 도와준다 해도 쌍둥이들은 여기서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적어도 희망을 갖게는 해줘야지.
이곳은 너희들을 가둬놓는 곳이 아니라고. 그리고 다시 붙잡혀오더라도 이 안에서 자유를 빼앗기지 않게. 그것만으로 우리 사이에 변화가 분명 생길 거다.
난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삼키며 방으로 돌아왔다.
* * *
그날 오후. 역시나처럼 아빠는 나를 찾아왔다.
할머니가 있는 본채로 갈 때는 아빠와 항상 함께 했는데, 할머니가 나만 보면 온갖 트집을 잡아 구박을 하니 조금이라도 나를 방어하기 위한 아빠의 처사였다. 그래도 아빠가 옆에 있으면 이런 저런 구실로 아빠가 할머니의 거침 없는 입을 잘 막아주었다.
그리고 그날도 그랬다. 아빠와 나는 전장으로 떠나는 전사들처럼 비장하게 본채로 건너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단지 보통 때와 다를 게 있다면, 아빠는 어쩐지 굉장히 격양된 얼굴이었고, 나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 계속 입술을 달짝 거렸다는 거? 한참을 그러다 드디어 못 참겠다는 듯이 아빠가 입을 뗐다.
“아마네트. 흠흠. 아빠 준비되었다.”
“응! 어서 가자. 나도 준비 다 되었어!”
“아니 그거 말고.”
느끼하게 눈썹까지 이리저리 웨이브를 추게 만든 아빠는 자꾸만 피식 피식 웃었다.
“그 있잖니. 그…….”
“오늘따라 아빠 이상하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그……, 아빠를 위해 무언가 준비하고 있지 않니? 이야기 다 들었단다.”
엥?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준비하기는 뭘 준비해.
하지만 아빠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느낌이 여실히 풍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