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알았어. 할머니가 듣기 싫다면 말 안 할래.”
“그래. 오늘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구나.”
여전히 어린 아이의 쓸데없는 말이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더 이상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응! 근데 말이야 할머니. 정말 안 들어도 돼? 요새 할머니 숨쉬기 힘들잖아.”
그 한마디에 방금 전까지 손을 휘적거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저번에 할머니 봤을 때도 그랬으니까. 지난 번에 가족들끼리 식사했을 때.”
그제야 할머니는 내 말을 들으려는 듯 꼿꼿이 세우고 있던 몸을 살짝 내 쪽으로 굽혔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할머니 아무래도 알레르기 있는 거 같아.”
“알레르기?”
“응응! 나이 들면 갑자기 없던 알레르기가 생기곤 한대. 저번에 보니까 할머니 꼭 후식 먹을 때 그러더라. 할머니 레몬이 들어간 상큼한 후식을 좋아했잖아. 그래서 레몬 알레르기인 거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릴 .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허튼 소리를 하는구나. 이렇게라도 관심을 받고 싶은 건지. 쯧쯧”
둘째 큰아빠 아펠은 우습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지만 할머니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건 생각하지 못했구나…….”
내내 날서있던 목소리와 행동은 사라졌다. 관심을 끌기위한 행동도 맞았고, 원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나를 싫어하는 할머니한테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이유는 하나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픈 걸로 아빠를 내내 괴롭혔다.
그녀는 특이체질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온갖 알레르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걸 알지 못한 아빠는 나를 할머니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가지고 가게 했다.
때문에 할머니는 점점 더 건강이 나빠졌고, 그 원인은 모두 내게로 돌아왔다.
그걸 방지하기 위한 것뿐. 할머니가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걸로 인해 할머니가 먹게 되는 음식은 할머니를 더 괴롭히게 될 거야. 아주 장기적인 복수다.
아주 나중에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레몬에 알레르기가 있는걸 알고 할머니는 과일을 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먹기 시작한 음식은 할머니에게 더한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부어오르는 음식. 그 음식을 만드는 게 바로 할머니가 그리 아끼는 저 손주 놈들이니까.
새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손주들은 새로이 음식을 만들어온다.
레몬과 비슷한 느낌의 신맛이 나는 그 재료는, 설익으면 설익을수록 신맛이 강해진다. 신맛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 설익은 상태에서 수확하고, 또한 재료 자체에 맞지 않는 조리법을 하는 게 문제다.
결국 할머니는 죽다 살아날 거다
지금 할머니에게 알레르기를 알려준 건 모두 그 일을 위한 전초단계일 뿐이다.
물론 이걸 밝혀낸 의원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의 업적을 뺏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에게는 심히 미안하긴 하지만, 난 그 의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 또한 다른 이의 업적을 빼앗아버렸으니까.
맨 처음 할머니의 알레르기를 밝혀낸 건 약초꾼 출신의 시종이었다. 대대로 약초를 캐며 살아온 가문의 시종이었는데, 그가 할머니에 대해 이상하다는 걸 먼저 알아차리고 의원에게 보고를 한다.
계속되는 병치레로 할머니가 힘들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데다가, 그 자는 원래도 의원이 되고 싶었기에 공부까지 한 사람이기에 그걸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국 의원은 그 시종이 이야기로 할머니의 병을 알아냈고, 덕분에 후작가의 주치의가 되었다.
사실 누가 후작가의 주치의가 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 놈은 전혀 다르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때부터는 말이 달라진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아빠와 내게 피해를 주었다. 아빠의 건강이 나빠졌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내가 아프다는 말에는 바쁘다거나 할머니의 손주들을 보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안 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 주치의에게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
생각이 끝난 건지 할머니가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 그렇다 해서 네가 똑똑하단 건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른 아이들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거니까.”
방금 전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할머니는 역시나 나를 향해 짜증을 팍 냈다. 어떻게든 너는 내 핏줄로 인정받을 수 없단 것처럼.
“응! 나도 그리 생각해.”
예상보다 내가 별 다른 타격이 없자, 할머니는 흠흠 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오늘 모임은 그만 끝내야겠구나. 아마네트 너 때문에 영 신경 쓰이는 게 생겨서 말이지.”
정말 레몬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는지 검사하고 싶은 거겠지.
어차피 아빠와 내가 오면 모임은 언제나 끝났기에 이상할 것도, 놀랄 것도 없었다.
“그럼 먼저 가마.”
“어머니, 벌써 가시게요?”
첫째 큰아빠 베헬과 둘째 큰아빠 아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할머니를 붙잡았다.
“영 속이 좋지 않구나.”
“아마네트가 괜한 얘기를 했나 보군요.”
끝까지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려는 큰아빠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애써 반응하려 하지 않았다.
“들어가서 얼른 좀 쉬세요. 이 자리는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할머니는 급한 사람처럼 그렇게 방에서 나갔다. 이내 큰아빠와 둘째 큰아빠가 아빠를 에워쌌다.
“레오칼. 네 딸은 이번에도 쓸데없는 일을 하여 어머니의 심기만 거슬렀구나.”
역시나 내 공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두 큰아빠들은 굉장히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쓸데없는 일이라니요. 어머니를 위한 일이었던 걸요.”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니.”
아빠를 에워싼 두 남자는 한마디씩 보태며 아빠를 위협했다. 아빠 보다 훨씬 덩치 큰 성인 남자 두명이 마르고 연약한 아빠를 둘러싸자 그 모습이 커다란 맹수가 작은 사슴 한 마리를 위협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도 똑같았다. 세 명의 자식들은 기다렸다는 듯 내 주위를 에워쌌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 할머니가 있을 땐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면서 꼭 나 혼자 있을 때만 센 척이다.
“너 요새 할머니한테 예쁨 받으려고 애쓰는 거 같네?”
큰아빠와 똑 닮은 큰 아빠의 자식 케일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아서 시비 거는 꼴 하고는.
거기에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에 딱 걸맞게 아주 재수가 없다.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방금도 예쁨 받으려고 그런 거잖아. 그래봤자 벌레 같은 너랑 우리랑 급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난 내 앞에 선 케일럽을 가만히 바라봤다.
“너와 나랑은 급이 다르긴 하지.”
네 놈들은 쓰레기 급. 내가 죽임을 당할 때 나보다 먼저 성인이 된 네 놈들을 비롯해 네 놈들의 아빠라는 인간은 내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웠지.
너희들도 마찬가지였어. 혹여나 불똥이 튈까 봐 도망치기 급급했으니까.
멍청하고 멍청한 인간들.
“하하. 이제야 인정하는 거야?”
“아마네트, 네가 드디어 철이 좀 들었구나.”
“응.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멍청한 오빠들은 나랑 급이 다르지.”
난 오랫동안 속에 담고 있던 말을 가감 없이 뱉어냈다.
“멍청……. 뭐?! 지금 우리한테 멍청하다고 한 거야?”
“응!”
우리의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던 큰아빠들이 동시에 신경질을 팍 냈다.
“지금 뭐라 했지?”
“아마네트!”
“아빠 이제 가자. 나 재미없어졌어.”
예전 같았으면 저들이 나를 향해 싫은 기색을 보일 때마다 섭섭하고 울기 일쑤였다.
왜 저렇게 나를 미워하냐고 아빠에게 하소연한 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쁨 받을 수도 없다는 걸 안다. 이미 저들은 나를 원수보다 더 싫어했으니까.
‘이제는 애정 따윈 바라지 않아.’
과거의 내 삶이 투영되어 싫었다. 가족이란 존재들에게 난 사랑 받을 수 없는 건가. 내가 잘하면 예뻐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까. 다른 핏줄들이 날 미워하고 싫어해도 아니, 다른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그런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사랑 따윈 갈구하지 않을 거다. 다이아 수저인줄 알았던 이 삶 또한 하루하루 살기 바쁘니까.
‘사랑은 믿지 않아.’
세 번째 삶을 겪는 동안 다짐한 건 이것뿐이었다. 때문에 난 적대심을 폴폴 풍기는 저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