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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53)

13화

“아빠. 안 갈 거야?”

자신들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건지, 내가 아빠를 재촉하자마자 그들은 앞다투어 이야기하기 바빴다.

“왜 꿀리나 보지?”

“지가 한 말에 책임을 못 지겠으니까 도망치는거 봐.”

“자신 없음 말이나 하질 말던가. 멍청이 같은 잡종이.”

“그만!”

결국 참지 못한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인에 관한 건 어떤 말을 들어도 참던 아빠가 유일하게 참지 못하는 게 나에 대한 비난과 폭언이었다.

언제나 형들의 자리를 자신이 빼앗은 거 같다며 최대한 숙이고 살아왔던 아빠였다. 그게 맞는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항상 참고 살았다.

‘물론 과거에는 이 정도까지 난리친 적은 없었으니까, 아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도 없었지.’

언제나 케일럽, 레트, 칼. 할머니의 손주놈들하고는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놨었다.

엮여봤자 좋을 것 없었고, 할머니에게 미움만 당했던 터라 언제나 저들이 날 보고 어떤 말을 하든 무시했었다.

그래서 이 정도의 난리가 난 적은 당연히 없었다.

“너희들 그만 하거라. 잡종이니 뭐니 그딴 소리는 그만 해. 어디서 그런 나쁜 소리를 들은 거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래.”

우리 아빠가 후작이건만, 아이들은 그런 건 생각지도 않는 듯했다.

하긴 지들 아버지가 우리 아빠를 막 대하니, 자식들도 똑같이 하는 거겠지.

“하. 너희 정말 못된 아이들이구나. 우리 아마네트랑 너희들은 다를 거 하나 없어.”

“형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레오칼.”

“형님!”

“아무리 네가 후작이라고는 하나 이런 말들은 매우 불편하구나. 네가 이리 나오니 가문이 엉망인 게지. 쯧쯧.”

“어릴 적에는 말도 잘 듣던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된 거냐.”

가스라이팅. 딱 그 꼴이다. 어릴 적부터 당연하단 듯이 가족들 의해 정신적인 지배를 받아버린 상태.

역시나 아빠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정말 내가 잘못한 건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보였다.

“네 딸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 또한 네 탓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을 넘어 내가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때보다 주눅 들고 말았다.

“아…….”

짧은 탄식을 내뱉는 아빠를 보며 고구마를 몇 백 개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하긴 원래의 나도 저런 말들을 들으며 주눅 들기 바빴지.’

상대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모두 몰아가는데 거기서 당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래 저 인간들은 저런 사람들이다.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어야 하는. 동생이라 할지라도 정신적인 학대를 서슴지 않는. 이제는 내가 그 꼴은 못 본다.

‘내 아빠는 내가 지켜!’

결국 내 손을 잡지 못하고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고 있는 아빠의 손을 냉큼 잡았다.

“내가 받는 취급이 어때서요?”

“뭐?”

“나는 내가 별 다른 취급을 받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죠?”

“조용하거라. 어른들 대화에 어디 애가 껴들어!”

큰아빠는 당장이라도 무슨 짓을 할 것처럼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물론 그렇다고 주눅 들 내가 아니었다.

“어른들 대화에 끼어든 건 맞지만,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아. 저 차별받고 있던 거예요? 조금 다른 사랑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부적으로 할머니는 모든 가족들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애롭고 인자한 할머니. 때문에 외부 행사에 가면 단 한 번도 나를 나쁘게 대한 적은 없었다.

‘내가 버리는 패임을 들키면 안 되니까.’

물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했던 것처럼 극단적인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겐 나도 자신의 소중한 가족임을 표현했다. 어찌나 훌륭하게 연기를 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사랑 받는 손녀딸로 단단히 오해했다. 심지어 할머니의 인품을 칭찬하며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그걸 철석 같이 믿었다. 그저 할머니가 나를 대하는 방법이 서투른 것뿐이라고, 멍청하게도 그리 생각했다.

“그건…….”

“멍청하긴! 할머니가 널 좋아할 리가 없잖아! 아까도 들었잖아. 널 좋아할 리 없다고.”

“움. 차별이구나.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할머니가 좋아해준다고 말했는데, 이제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되겠다아.”

“뭐?”

“너희들이 말한 거니까 확실한 거 아냐? 할머니가 차별은 아니라고 해서 아닌 줄 알았는데.”

방금 전까지 당당하던 망아지놈들의 얼굴이 더 뻔뻔하게 변했다.

“멍청하게!”

“진짜 바보네! 그 말을 믿은 거야?”

하지만 큰아빠 베헬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다. 차별.”

“차별이잖아요! 아버지.”

“조용. 케일럽. 차별 아니다.”

할머니가 공들여온 탑이 혹여나 무너질까 봐, 내가 허튼소리를 하고 다닐까 봐 베헬은 고개를 저었다. 집안에서 일어난 균열을 사람들이 알아차리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할머니였다. 그리고 베헬은 이 모든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큰아빠가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들도 조용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티는 팍팍 내고 있었다.

“아마네트.”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 베헬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머니가 너를 대하는 방법이 다를 뿐, 너를 차별할 리는 없지 않느냐.”

“그래요? 하지만 쟤네들은 그렇다는데요?”

“아니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마려무나. 정말 너를 싫어했으면 이곳에 너를 부를 리 없지 않느냐. 거기에 네 생일까지 챙겨주는 건…….”

나름의 변명을 하는 그를 보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웅.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 오해하지 마렴. 아이들이라 그저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차별이니 뭐니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으니까.”

“음.”

“내 말 알겠지? 이 가문에서 제일 똑똑한 내가 하는 말이니.”

“별로 잘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쟤네들 말보단 훨씬 믿음이 가네요.”

믿음이 갈 리가. 하지만 차별받는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으려는 듯 아니, 할머니가 만들어놓은 탑을 망가뜨릴까 걱정하는 베헬을 보며 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럼 내일 네 생일 파티 때 보자꾸나. 네가 좋아할만한 선물을 들고 가마.”

“알겠어요. 아빠, 우린 이제 가자.”

“하지만! 쟤가 미움 받는 건 맞잖아요! 할머니가 되게 싫어하는데. 쟤 알면서 저러는 거잖아요!”

“맞아요! 자꾸 저러면 콧대만 높아져서 또 헛소리하구 다닌단 말이에요!”

둘째 큰아빠의 아들인 레트와 칼이 차례로 소리를 질렀다.

“둘 다 그만 하거라. 막내 여동생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허튼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던 베헬은 아이들을 다그쳤다. 상황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라는 걸 빠르게 눈치 챘다.

“아, 아니 그건……!”

“쉬잇.”

베헬의 붉은 눈동자가 유난히도 더 빨갛게 변했다. 마치 위험신호를 주는 것처럼. 내내 망아지처럼 말을 안 듣고 소리치던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 이상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그 무언의 압박은 꽤 강력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보거라. 내일 생일 파티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

“레오칼. 대답 안 하냐. 네 딸은 네가 잘 챙겨야지.”

“알겠습니다. 가자꾸나. 아마네트.”

한껏 기가 죽은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아빠는 베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아빠의 손은 어느 때보다 작아 보였다.

나뭇가지처럼 버석하게 마른, 그런 손. 난 그 손을 잡고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흔들었다.

자신의 가족들 때문에 작고 소중한 딸이 상처 받았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눈치 보는 아빠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 사실 나보다 상처를 더 많이 받은 건 본인이면서 말이다.

“어서 가자!”

“그래야지.”

“가서 초콜렛을 잔뜩 먹을 거야, 아빠.”

“그래, 이런 날엔 달콤한 게 딱이지. 오늘은 마음껏 먹으렴, 아마네트…….”

불만스러운 이들의 표정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내 머릿속엔 집에 돌아가서 먹을 초콜렛 생각뿐이었다. 오히려 할머니와 큰아빠, 그들의 자식들에게 할 말을 다 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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