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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53)

19화

“응! 그럼 이제 아빠 나는 일찍 자야하니까 여기서 빠빠이해.”

“어? 벌써 자게? 아직 잘 시간 아닌데. 거기에 아빠 좀 더 있고…….”

“안 돼. 아빠는 바쁜 사람인 걸. 나 때문에 그렇게 시간 쓰면 안 돼!”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빠에게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후작의 일도 중요하지만 아마네트의 아빠 일도 중요한걸.”

“응. 그래도 나는 아빠가 자기일은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그제야 아빠는 알아들었다는 듯 날 침대로 데려가 앉혔다.

“어쩔 수 없구나.”

“응. 그럼 어서 가. 아 피곤하다아. 얼른 잠자고 싶다.”

“그럼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찍 보자꾸나.”

“응 아빠 잘 가!”

내 말에도 아빠는 끝까지 아쉬운 듯 발걸음을 떼지 못했지만, 난 더 간결하게 손을 흔들었다.

결국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아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물론 가는 내내 뒤돌아보면서 아쉬운 티를 팍팍 냈지만, 언제나 내가 호응해주면 아빠는 끝이 없다.

‘날 사랑하는 건 참 좋은데 말이지.’

하. 내가 너무 매력적인 탓이다.

이렇게까지 딸에 목숨 거는 걸 보면.

내 매력이 장난 아니긴 하지. 하지만 아빠를 더 멍청이로 둘 수 없기에 난 단호함을 무기로 아빠를 내쫓았다.

그러고 나자 시녀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씻을 거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빠르게 나를 씻기기 바빴고 그렇게 하루가 천천히 저물어갔다.

잠이 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일을 위해 그렇게 이른 밤을 맞이했다.

* * *

과거와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생일 파티. 내 생일파티이지만 난 전혀 행복하지 않을 예정인 그 파티.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생일 날, 내가 겪어야 했던 불행들을 떠올리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의 손주 놈들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파티는 엉망이 될 예정이란 거다.

‘후. 심지어 엄청 일찍 깨버렸다.’

과거에는 내 생일파티에 대한 설렘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자서 늦잠을 잤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찍 잠들어버린 탓에 새벽 동이 트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다시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자리에 누워 눈만 깜빡이길 몇 분 째.

‘하아. 차라리 도망이라도 칠까.’

준비해준 아빠의 성의 때문에 도망을 칠 순 없지만, 아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할머니는 밖에서는 날 아끼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생일파티를 찾아왔다.

과거에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북적 북적한 파티가 마치 날 신경써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라 그게 참 좋았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축복 받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만큼 절망은 컸었다. 내 주제를 파악해버렸으니까.

이 파티로 인해 할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 위치를 확실히 알아버렸다.

덕분에 할머니의 손주 놈들이 나를 더욱더 괴롭혔지.

‘그로인해 더 이상 내 협박도 통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대외적으로 나를 아끼고 있다는 건, 내 생일을 기점으로 통하지 않는 말이 되었다.

평등하게 우리를 사랑해준다는 겉모습을 깨지 않으려던 할머니는 생일 파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그 탑을 무너뜨리려 했다.

물론 바로 정신을 차리고 행동을 바꾸긴 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암암리에 내가 이 가문에서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아차리고 만다.

물론 할머니와 친한 이들이 가득했던 파티였기에 다들 쉬쉬했고, 이후에는 대외적으로 날 다시금 아끼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손주 놈들은 내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아차렸기에 날 더 발에 치이는 돌멩이보다도 못한 취급을 했다.

‘후. 진짜 싫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질 일. 그건 일부로 누군가 내 위치를 파악하게 하려는 것처럼 벌인 일이다.

‘그 일을 벌인 사람은 큰아빠겠지만.’

어제 내편 아닌 내편을 들어준 그 사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이조차도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만, 이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아가씨 안 주무셨습니까?”

그때였다. 머릿속 정리가 한참인 그 시각 내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당연히 아직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노크도 없이 들어온 시녀는 불도 안 켜고 침대에 앉아있던 모습을 본 건지 방으로 들어오던 화들짝 놀랐다.

막 동녘이 트고 있었고, 창문을 통해서 미미한 빛이 들어왔다. 시녀는 뒷걸음질 쳤다.

“아. 다시 잘 거야.”

“아. 그, 그렇군요. 일어나신 거 같아서…….”

“일어난 것도 맞는데, 더 잘 것도 맞아.”

“나가서 알리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이렇게나 파티를 기대하실 줄이야.”

하지만 소통자체가 일방적인 건지, 아니면 착각하는 건지 시녀는 어느 때보다 신난 얼굴을 해보였다. 내가 파티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잠을 설친 걸로 착각했나 보다.

“으응…….”

‘하긴 시녀들이 신날 만하지.’

보통 귀족가에서 파티 같은 일을 한번 하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사용인들에게 휴가를 주곤 했다.

말에게 당근을 주는 것처럼 더 고생하라는 의미로.

그러니 저런 반응도 매우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빨리 끝내고 휴가 갈 생각일 테니.

“네. 그럼 밖에 말씀을 드릴게요.”

“응.”

어느 때보다 신나 보이는 시녀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비슷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건가.’

잠시동안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밖에서부터 시녀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행동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들은 날 준비시켰다. 이미 모든 게 다 준비되어있던 탓에 준비는 생각보다 빨랐다.

파티는 저녁인데, 점심때부터 이 난리를 쳐야 하는 거냐고 예전이라면 물어야겠지만, 난 준비하자마자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 아가씨. 아직 준비가 더 남았는데요.”

“지금 준비하면 누워있지도 못할 거 아냐. 아직 파티까지는 한참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 준비할래.”

“아아…….”

“왜. 안 돼? 내가 아가씨인데!”

“아. 그, 그렇죠.”

이럴 줄 알았다고. 역시나 이번에도 이렇게 성질내고 화낼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세상은 조금 못되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다들 나가.”

“머리랑 옷은…….”

“이따가 시간되면 멜린지한테 맡길래.”

역시 멜린지한테 맡기는 게 제일 편하다.

“멜린지는 오후출근이라 조금 늦을 수도 있습니다. 아가씨.”

“상관없어. 왜. 내가 받고 싶은 사람한테 받는 것도 안 돼?”

그제야 그들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요.”

“그럼 저희는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중에서 눈치 빠른 몇 명이 계속해서 말을 덧붙이는 시녀의 옆구리를 쿡쿡 쑤셨다.

결국 시녀들은 우물쭈물 거리다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생일이라고 제일 먼저 왔을 거라 생각했던 아빠는 이날 생일파티까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꽤 마음이 상했었는데. 아빠가 날 위해 뭘 하는지 모르겠다.

“아휴 모르겠다.”

오늘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겪을 수밖에 없다.

그저 아빠가 괜찮을지 걱정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럴 때면 되게 별로란 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는 것. 내가 말하는 게 그저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말로 넘겨버린다는 것.

그래서 기분이 별로다. 조금 더 컸으면 오늘 벌어질 일들도 내가 어떻게 해결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

결국 침대에서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던 나는 결국 까무룩 잠에 들고 말았다.

내가 다시금 눈을 뜬 건 저녁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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