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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21/53)

21화

“맞아맞아. 그거네. 조금이라도 더 관심 받으려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해.”

도리어 내가 본인들 말에 별다른 반응 없이 가만히 앉아있자, 세 사람은 재미가 없는지 더욱 더 나를 자극하기 이르렀다.

“아니면 현실파악한 걸지도. 생일파티조차 이렇게 거지같은데.”

“맞아. 하긴 가진 게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맘대로 생각하세요~”

그런 내말에 더윽 흥분하고 난리치는 건 저놈들이었다.

“야!”

“어~”

“너 진짜 미쳤어?”

“미칠 게 어디 있어. 도리어 할머니가 허락한 생일 파티 와서 이렇게 난리치는 너희들이 미친거지.”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는 거야? 이 잡종이!!”

레트와 칼은 이때다 싶었던 건지 더욱 더 목소리를 높였다.

“잡종이든 뭐든 부르고 싶은 건 네놈들 자윤데 말야. 이거 할머니가 열어준 파티인 건 알지? 여기서 말 잘못했다가 어찌되는지도 알 텐데?”

그 말까지 듣고 나서야 레트와 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무슨 말만하면 할머니 할머니……! 니가 그런다 해서 할머니가 널 이뻐할 거 같아?”

“글쎄에. 근데 할머니가 이 상황에서 난리치는 너희들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씩 웃으며 근처를 지나가던 시종을 불렀다. 마침 투명한 컵에 푸딩을 가져가던 시종은 내게 그것을 하나 내밀었다.

“음, 맛있다. 명색이 파티인데 다들 배불리 먹어야 하지 않겠어? 얼른 좀 먹어봐.”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푸딩을 먹고 있자, 두 사람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 저게 진짜!”

“그리고 있잖아. 아무리 내 생일에 억지로 왔다고 하지만, 그 꼴로 오는 건 좀……. 귀족가의 자재들로서 좀 아닌 거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둘은 제대로 옷조차 갖춰 입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들의 옷차림을 보던 두 사람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아무리 우리 가문에 우호적인 귀족들만 모여있다고 하나, 적어도 이들은 말 많은 귀족들이다.

그런 곳에 평상복 차림이라니.

레트와 칼은 내 말에 무언가 느낀 게 있는지 케일럽 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과 달리 오늘도 날 갈구는데 일조한 케일럽은 적어도 제대로 갖춰 입고 온 상태였다.

“아아…….”

“혀엉…….”

레트와 칼이 볼멘소리를 해보였지만, 케일럽은 어깨만 들썩일 뿐이었다.

“앗. 할머니다.”

그때였다.

과거보다는 조금 빠르게 할머니가 파티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아빠도 함께였다.

과거에는 이미 할머니와 아빠가 파티홀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할머니는 늦게 온 나에게 잔뜩 화가 나있었고, 아빠는 그런 할머니를 달래느라 바빴다.

눈치 없이 나는 그런 와중에 귀족들하고 인사하기 바빴고, 선물을 뜯느라 할머니를 살피지도 않았다. 그땐 주변 상황 보다 내 생일 파티가 더 중요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나를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 그리고 가득 쌓여있는 선물들까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자 할머니는 꽤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네가 벌써 와있다니. 의외로구나.”

“할머니가 직접 열어준 파티이니까 일찍 와야죠!”

파티를 준비한 할머니를 치켜세우며 감사한 척 아부를 덧붙였다.

“그래. 조금 낫구나.”

배실 배실 이야기하며 웃자 할머니는 칭찬에 만족했는지 굳은 얼굴을 조금 풀어냈다.

그렇다 해서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일 따윈 없었다.

“우리 딸. 미안하구나…….”

역시나 할머니 옆에 있던 아빠는 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응?”

“네게 먼저 갔었어야했는데.”

“아니야! 괜찮아 아빠. 혼자서 준비 잘 하고 왔어.”

“그래……. 그런데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거야. 생일인데?”

자기가 없는 동안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봐, 아빠는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 그냥 있었어.”

“선물도 풀어보지 않고?”

“응, 그냥 여기 있고 싶어서.”

“어? 그냥? 다른 이유 없이?”

“응! 그냥!”

여전히 걱정이 많은 아빠에게 해맑게 웃어보였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혹시 아빠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쌍둥이들에 대한 걸 숨기고 있었기에 아주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찔리긴 했지만, 우선은 틀린 말은 아녔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나 아빠는…….”

우물쭈물하는 아빠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

“걱정 마. 어쨌든 할머니 파티 열어줘서 감사합니다!”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살짝 몸을 숙여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흠흠. 마치 다른 아이라도 된 것 같이 구는구나.”

“원래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은 달라지는 거라잖아.”

“참 재미있는 소릴 하는구나.”

헤벌쭉 웃은 나는 아빠의 손을 냉큼 잡았다. 과거의 ‘그일’이 벌어지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아빠! 어쨌든 이제 돌아가자.”

“벌써? 하지만 선물도 다 안 풀어 봤고, 케이크 컷팅도 안 했는데?”

“응! 이정도면 충분해.”

그러니까 얼른 가자. 아빠.

여기에 아빠가 있으면 안 돼. 적어도 그 일은 피할 수 없이 벌어질 거니까.

내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그래도…….”

“어서어.”

꽤 난처한 얼굴을 하던 아빠는 별 수 없다 생각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내게 끌려왔다.

“어머님. 아마네트가 돌아가자 하니. 별 수 없군요.”

“이대로 가겠다는 것이냐.”

“네.”

아빠까지 단호하게 나오자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끝까지 없구나.”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생일이기에 파티까지 열어줬는데, 열리자마자 가겠다? 이래서 난 아이가 싫구나. 참으로 변덕스러워.”

그 와중에 자신이 하는 말을 남들이 듣는 건 원하지 않은 듯 할머니는 몸을 숙여 내 쪽으로 속닥속닥 거렸다.

“난 할머니가 좋아.”

“하. 정말 뻔뻔하구나.”

“응! 그래서 아마네트는 사랑스러운걸.”

“허.”

“그럼 사랑스러운 아마네트는 이만 갈래.”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선 아빠를 질질 끌었다. 어린아이의 변덕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 아무런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내 어깨를 급히 부여잡았다.

“내 정성을 무시하는 것이냐.”

파티 주인공이 중간에 가버리는 것만큼 난감한 일은 없기에 할머니는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 물론 나 때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여서 그런 걸 테지만.

“아니요! 그랬으면 안 왔을 테죠! 하지만 나 졸려요 할머니.”

“허, 허!”

어린 아이가 막무가내로 졸리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졸린 손녀를 억지로 붙잡는 모진 할머니로 비춰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 안아줄까 아마네트?”

“응!”

투정을 부리듯 그렇게 아빠의 품에 냉큼 안겼다. 내 어깨를 잡고 있던 할머니의 손이 떨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입술만 바르르 떨다가 어딘가를 바라봤다.

한발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큰아빠 베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 건 그때였다.

‘아직 시간이 안 되었는데.’

원래라면 훨씬 더 늦게 시작될 일인데 어떻게든 그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아빠! 우리 얼른가자.”

내가 아닌 아빠에게 벌어질 일. 그래서 난 아빠를 다시금 재촉했다.

“으응. 어머니.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마네트가 몸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두 번 몸이 안 좋았다가는 온갖 무례를 끼치겠구나. 여기 모은 사람들에게 무슨 민폐인지.”

“죄송합니다.”

차라리 죄송하다는 말로 넘기는 게 최고다. 이 자리만 피할 수 있다면.

“뭐. 그래. 네 딸의 생각은 잘 알겠다. 하지만 레오칼. 네게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아마네트를 방에 데려다 준 후에 제가 어머니를 찾아가겠습니다.”

“그럴 거 없다. 그저 간단하게 물어볼 거니.”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는 할머니.

그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결국 할머니는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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