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그러고 보니 저 아이도 전쟁고아 출신이군. 태생적으로 저런 아이들은 비슷하게 생긴 건지.”
“어머니! 지금……! 전쟁고아 출신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저렇게 생긴 애들의 부모들이 단명하는 건지. 쯧. 참으로 안 되지 않았느냐. 누구 생각도 나고. 레오칼.”
여러 연유들로 아빠는 전쟁고아를 싫어한다. 고아, 특히 전쟁으로 인해 원하지 않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
전쟁만 아니었으면 부모가 살아있는지도 모를 아이들이었다. 아등바등 애써봤자 평민보다도 못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전쟁을 벌인 건 다른 사람들인데 피해는 모조리 다른 이들이 받았다.
엄마 또한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모두 잃은 자였기에 아빠의 분노는 점점 커졌다.
“알고 보니 저렇게 생긴 아이들의 문제일지도 모르겠구나. 누구처럼. 어디서 들었었지. 저렇게 생긴 애들은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부모과 자식, 그리고 남편조차.”
솔직히 왜 이렇게까지 할머니가 하는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아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한 거 같긴 한데, 도리어 지금 이 모습들은 아빠의 반발심만 돋울 뿐이었다.
‘할머니는 그냥 모든 게 다 엄마를 닮은 저런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거나 아니면 그런 엄마를 닮은 나를 깔아뭉개려는 거겠지. 새순이 돋지도 않은 풀을 밟아버리려는 것처럼.’
“지금……. 그래서 저 여인을 일부러 데려온 겁니까? 절 보여주기 위해?”
“그래. 그 전까지는 뭘 했냐 물었더니 길에서 구걸을 하고 살았다더구나. 부모도 전쟁 때문에 죽고 가족이라고 있던 것들은 모두 죽었다고. 꼭 누가 생각나지 않더냐.”
“어머니!”
과거에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더라.
초상화로만 봐온 엄마와 꼭 닮은 여자의 등장에 꽤 놀랐었다.
내 엄마는 이미 죽었다고, 저런 허름한 모습일리 없다고 충격을 꽤 크게 받아서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던 거 같다.
엄마가 아닌 여자를 보고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아빠가,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다는 할머니의 말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저 모습을 제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겁니까.”
“그래.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거든. 저 여자뿐만 아니라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다 불행하다고. 지금도 허드렛일이나 하지 않느냐.”
피식 웃는 할머니의 시선이 내게 닿고 나서야 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겠다. 할머니가 왜 저 여자를 이곳에 데려온 건지.
정신을 차리고 싶게 하고 싶었던 건 아빠가 아니라 나다.
내 머리색과 눈동자, 엄마를 꼭 닮은 내 모든 것들은 주변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네가 바로 그런 존재라고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 시켜 주려는 거다.
“하. 꼭 이렇게 하셨어야 했습니까. 아마네트를 예뻐하진 않아도 생일날까지 꼭 망치셔야 했습니까.”
잔뜩 성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망친 건 네놈이지.”
“어머니!”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으면 되었지 않느냐.”
아빠의 안색이 하얗게 변한 건 그때였다.
“네가 그렇게 네 딸을 아낀다면, 적어도 내 말을 잘 들어야지. 저런 모습을 네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지독한 미움이다.
아빠가 나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게 그리 미운지. 어린아이의 생일날 꼭 저래야만 했는지.
“제 잘못이군요…….”
과거와 똑같이 아빠는 충격 받은 얼굴로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 와중에 아빠의 시선은 내가 아닌 엄마와 닮은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과거처럼.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와 꼭 닮은 그 여인에게로 향했다.
허름한 차림의 저 여자가 내 엄마일지 모른다는 눈빛들이 과거와 똑같이 내게로 쏠렸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 온 거 아니야?’
‘아마네트랑 너무 닮았어.’
‘애초에 아마네트 엄마가 죽은 건 맞는 거야?’
뒤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들에겐 지금 이 상황이 그저 흥미로운 가십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 생일에 나타난 죽은 엄마와 똑 닮은 여자, 얼마나 자극적인 드라마인가.
‘이미 할머니는 아빠에게 충격을 준 것만으로 충분하겠지. 이건 과거와 똑같아.’
하지만 난 미래를 바꿀 사람이다. 과거대로 당하지 않을 거다.
“와! 나랑 똑같은 머리랑 눈동자 가진 사람 처음 봐 아빠!”
해맑게 웃자 여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아빠는 놀랐는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
“신기해.”
“어어……. 그러니까. 아마네트. 신기하지? 하, 하지만 네 엄마는 아니란다. 네 엄마는 저런 허름한 모습이……. 아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응 알아! 엄마는 아닌걸! 그런데 불쌍하다. 할머니. 왜 저렇게 옷도 제대로 안 챙겨주는 거야?”
아무 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빤히 바라봤다.
“무어라?”
“할머니가 데려온 사람이잖아.”
“아니다.”
“하지만 저 여자에 대해 할머니는 무지 많이 알았던걸. 그럼 할머니가 데려온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옷도 제대로 안 챙겨줬어. 불쌍하게. 일부러 그런 거야?”
내가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할머니는 내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자 도리어 본인이 충격 받은 얼굴을 해보였다.
“그, 그건…….”
어느 누구도 할머니에게 그런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나랑 똑같은 외향을 지닌 사람의 등장으로 놀라고 있을 뿐.
어느새 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 둘 근처로 모여들고 숙덕거리기 바빴다.
“할머니 나빴다!”
“허. 나, 나쁘기는……!”
“하지만 진짜 나쁜걸. 불쌍한 사람이라며 그럼 잘해줘야지.”
너는 왜 충격을 받지 않지? 너랑 꼭 닮은 사람이 저런 꼴로 왔는데.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은 불행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충격을 받지 않냐고.
수많은 종류의 물음이 할머니의 눈동자를 통해 내게로 전해졌다.
“앞으로 잘해줘! 할머니는 못된 사람 아니잖아!”
입만 뻐끔거리는 할머니는 황당한 듯 나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착한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불쌍한 사람 너무 괴롭히지 마. 옷도 좀 주고 챙겨주고.”
충격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내가 너무 태평하게 반응하자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그럼 이만 가야지. 아빠. 나 조금 졸려.”
“어어……. 가자꾸나.”
그제야 아빠는 팔을 움직여 제대로 나를 제대로 안았다.
그 모습이 황당한 듯 할머니 옆에 서있던 큰아빠 베헬의 얼굴도 같이 굳어졌지만 그들을 신경 쓰느라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많이 피곤하지? 어서 돌아가자꾸나. 아마네트.”
“응!”
파티홀에서 나오는 내내 우리를 신경 쓰거나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황당한 듯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뿐.
“아마네트. 처음부터 네가 나오자고 할 때 나올걸 그랬구나.”
“응?”
“아빠가 추태를 부렸어. 순간…… 네 엄마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지만 절대 네 엄마는 아니란다. 그러니까…….”
“알아. 엄마 아닌 거. 그리고 엄마였어도 상관없어. 저런 허름한 모습이었어도. 정말 괜찮아.”
과거에는 괜찮지 않았으나 정말 지금은 괜찮다.
“정말……?”
“응!”
“하지만…….”
“할머니가 저런 사람들이 불행한 건 모두 저사람 들 때문이라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냥 상황이 그랬던 것뿐이잖아.”
내 말에 잠시 걸음을 멈췄던 아빠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꽤 충격을 받은 듯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네트, 네가 나보다 훨씬 낫구나.”
“응?”
“순간 네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단다. 저런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걸까 봐, 미칠 거 같았어. 저런 볼품없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떠한 결론이 나지 않는 듯 아빠의 입술이 연신 떨렸다.
“거기에 네 할머니의 말들이……. 내 마음속에 꽂혔단다. 정말 내 잘못인가 싶어서.”
과거의 아빠는 이 일을 계기로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
내게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 때문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쁜 일들조차 할머니가 의도한 건지도 모르겠네.’
공개적으로 내 외모에 대해, 나같이 생긴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다했으니.
일부러 더 그래 보이라고 여러 가지 일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
“아빠 잘못도 내 잘못도 엄마 잘못도. 저렇게 생긴 사람의 잘못도 아닌걸!”
“아…….”
“그러니까 정말 난 괜찮아. 그리고 아빠. 난 엄마가 저런 모습이었다면 오히려 반가웠을 거 같아.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살아 돌아온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