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3)

24화

아, 하는 작은 탄식을 내뱉은 아빠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

“엄마가 살아있으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

“그, 그러니?”

처음 듣는 얘기에 아빠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응! 그걸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는 거야.”

“미안하다 아마네트……. 아빠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빠의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보이는 건 단순한 나의 착각일까. 아마도 아닌 듯하다.

‘착하다니까.’

그냥 할머니 앞에서 화내면 될 일이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뭘 원하기에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때 그렇게 말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지독히도 착했고, 소심했고, 눈치를 많이 봤다. 남들은 답답하다 생각했겠지만 그 상황에서 아빠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았다.

“그러니까 걱정 마. 아빠 난 정말 괜찮으니까 아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아아.”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는 아빠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었다.

“우리 아빠 예쁘다.”

“…….”

“잘하고 있어.”

“…….”

“아빠가 내 아빠라서 참 다행이다. 아빠도 날 지켜주려고 그런 거였잖아.”

내 마지막 말에 정신을 차린 건지 아빠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날 잘 지켜. 아까 그런 모습 말고 당당하게. 나는 아빠만 있으면 돼.”

제발 과거처럼 되지 말라고, 위로라는 걸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내가 아빠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언제나 내 위로는 서툴렀고, 아마네트가 되기 전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내 위로를 가지고 나중에 트집을 잡았다.

네 까짓 게 무슨 위로냐고.

나보다 가진 것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네가 무슨 위로냐고. 자존심 상한다고.

그래서 위로를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에는 착하면서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게 힘들어졌다.

혹시나 내가 한 행동 때문에 나를 보는 시선들이 달라질까 봐. 하지만 아빠는 아니다.

“아마네트가 아빠를 참 많이 좋아해!”

폭군처럼 마음대로 모든 걸 하는 아빠는 아니었다. 강한 권력을 지녀서 주변 사람들이 납작 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빠가 좋다. 강하지 않은 아빠가 나를 지켜주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보여서.

“아빠도 아마네트가 참 좋구나.”

“응. 그러니까 앞으로 오래오래 아마네트 사랑해줘야 해?”

“그럼. 죽는 날까지 사랑해주마.”

“응! 오래오래 살아야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를 보며 나또한 다시금 다짐했다.

아빠를 어떻게든 살리겠노라고.

아니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겠노라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내 방에 도착했다. 파티홀로 가지 않고 방에 있던 시녀들은 퍽 놀란 기색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아빠와 나는 그들의 시선엔 대답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와 달리 창가로 나를 안고 간 아빠는 창틀에 나를 내려두었다.

“그러고 보니 선물도 제대로 뜯지 못했구나.”

“선물은 필요 없어!”

진심이었다. 아빠가 내 선물이니까.

“응? 왜. 원래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았니.”

“응! 하지만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면 다 사주는 것들이잖아.”

그제야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아빠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구나.”

“그러니까 그런 수십 개의 선물보다 난 아빠의 선물이 궁금해! 설마 선물 없는 건 아니지?”

“그럼.”

씩 웃은 아빠는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되었단다.”

“응? 준비?”

아빠가 아직 말 못하는 내 선물.

난 그 선물이 뭔지 안다. 나중에 아빠가 죽은 뒤에 그 선물이 내게 도착했으니까.

“우선 지금은 이걸로 대신 하자.”

아빠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서는 그걸 열었다.

안에 있던 건 오묘한 색을 띄는 목걸이였다.

“이건 뭐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목걸이의 존재를 물어봤다.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온 물건이란다. 가지고 있는 이를 지켜준다는 물건이라 해. 그런 걸 믿진 않지만…….”

신비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 마법인지 요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실제로 아빠가 준 저 목걸이 덕분에 큰일은 없었다.

‘물론 아빠가 죽은 뒤……. 죽어버리긴 했지만.’

그때 저 목걸이를 하고 있었던가.

신기한 건 자잘하게 다치는 일은 목걸이를 한 이후에 점점 더 사라졌다.

‘깨졌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투명한 목걸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검게 변했던 거 같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 하지만 이건 힘들게 구한 거란다. 조금 모양이 투박하긴 하지만 효과는 좋을 거야.”

“응! 고마워!”

아빠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 할 줄 알았는데……. 정말 다른 아이라도 된 거 같구나. 예전에는 비싼 것들, 귀하기 어려운 것들만 좋아하더니.”

“응 지금도 그렇긴 해. 하지만 아빠가 선물해준 건 그 무엇보다 귀하고 좋은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내 반응에 아빠의 얼굴이 살짝 붉게 변했다.

“다행이구나.”

“그래서 준비한다는 그건 뭔데?”

“그건……. 아주 나중에. 나중에 알려주마.”

아빠가 말은 안 했지만 난 다 알고 있었다. 아빠가 준비하고 있는 건 저택이었다. 제국 외곽에 있는 곳에 지어지고 있는 저택. 넓은 평야가 있고, 앞으로는 시냇물이 흐르는.

‘아빠는 모든 걸 내려놓고 나와 그곳에 살기 바랐어.’

매일 바쁜 삶에 치여 서로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빠는 할머니가 날 미워한다는 걸 알자마자 땅을 사고 공사를 시작했다. 나랑 함께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아빠가 죽은 뒤, 온전히 내 이름으로 된 땅과 집문서 그리고 아빠의 편지가 발견됐다.

너는 온전히 사랑만 받아야 하는 몸이라고. 그러니 나중에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자고.

그곳에서 매일매일 아빠가 널 사랑해줄 거고, 언젠가 너도 결혼을 한다면 너와 너의 자식들 또한 이곳에서 사랑만 하길 바란다고.

제대로 짓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지어지던 그 건물이 아빠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아, 궁금한데…….”

“궁금하면 나중에 함께 가볼까?”

아빠의 말에 눈을 빛냈다.

과거에는 이상한 목걸이나 주고, 제대로 된 선물을 주지 않는 아빠에게 성질을 냈었다.

뭘 준비하고 있는지조차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귀하고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것에 삐졌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선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전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좋아! 좋아 너무 좋아!”

“그래. 그럼 다음에 꼭 같이 가자꾸나.”

난 아빠가 아직도 들고 있는 상자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이거 해줘!”

“정말 괜찮겠어? 그냥 하지 않아도 가지고만 있어도…….”

“아니야. 지금 할래. 아빠가 선물해준 거니까!”

조금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던 아빠는 급히 손을 움직여서는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그 목걸이가 목에 걸렸다. 보석의 질량 때문에 살짝 목이 묵직해졌다.

“마음에 드니?”

“응! 좋아!”

“다행이구나.”

아빠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다정함을, 그 부드러움을 느끼며 난 어느 때보다 기쁜 얼굴을 했다.

‘과거는……. 바뀔 수 있는 거야.’

망할 신이 나를 과거와 똑같은 길로 인도하려 할지라도 난 과거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을 테다.

다시 한번 다짐한 나는 그렇게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빠는 생일 파티가 그렇게 끝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은 꺼내지 않겠노라 마음먹은 건지 결국 아빠는 다른 이야기들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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