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53)

26화

그 사이 마음의 준비가 끝난 듯 제 동생을 보던 칼리스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망 간 후를 준비한 게 없어. 그래서 가지 못했어.”

“응?”

“우리가 가진 외향이 흔치 않다고 들었어. 아마도 그렇다는 건 밖에 나갔다가 잡혀 들어오기 쉽다는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쌍둥이들은 몇 번 가출을 감행하긴 한다.

물론 특이한 외향 때문인지, 아니면 갈 곳이 정해져있어서인지 금방 잡혀오긴 했지만, 단 한 번도 가출을 성공한 적이 없다.

‘조금 더 크면 모르겠지만…….’

거기에 이들은 지금은 아무 능력이 없는 쌍둥이들이다.

엄청난 검술의 대가가 된다던지, 특별한 힘이 발휘한다던지 그런 일은 현재로선 일어날 확률이 없었다.

그 흔한 레파토리.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이 있거나 자신을 도와주는 엄청난 조력자를 만나거나 하는 일은 지금 이 시간에는 절대 일어날 일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나갈 수 있게 도왔던 건……. 어쩌면 쌍둥이들은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나의 안일한 생각 때문이겠지. 두 사람에게 믿음을 얻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조금 입 안이 썼다.

자신들이 무능력하다는 걸, 누군가 붙잡으면 다시 붙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그리 기분 좋은 감정은 아닐 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희망을 맛본 탓인지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뭘 해도 희망이 없는 것과 당장 나갈 순 없어도 희망을 본 것은 큰 차이였다.

“아, 그랬구나.”

“그 표정 뭐야. 네가 왜 그런 표정을 짓냐.”

이런 저런 생각들로 씁쓸해진 표정을 눈치 챘는지 베른은 나를 타박했다.

“어? 내 표정 이상했어?”

“어. 그니까……. 어. 많이 이상했어.”

잠시 내 얼굴을 매만졌다. 그걸 보며 베른이 입술을 볼록 내밀었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어……. 응 알겠어.”

“뭐……. 꼭 그런 연유는 아니야. 형이랑 이야기 해봤는데, 네가 나쁜 애도 아닌 것 같고. 너희 아빠도 우리한테 꾸준히 신경 써주는 거 같아서.”

틀린 말은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쌍둥이들을 바라봤다.

“그랬구나.”

“어쨌든 그랬다고. 그래서 당분간 더 여기있을거야. 네 덕에 어디로 가야 나갈 수 있는지 알았으니까.”

“으응……. 그런데 아빠가 너희를 신경 쓰는 거 같다는 건……. 혹시 아빠가 찾아왔었어?”

과거에 아빠는 일부러 그러는 듯 쌍둥이들을 별로 찾지 않았다.

사실 내가 난리를 친 탓에 거의 찾지 못했긴 했었다. 그래서 쌍둥이들 또한 아빠에 대해 그리 좋지 않게 생각했다.

처음 자신들을 납치해 가둔 사람이나, 이곳에 가둔 아빠나 쌍둥이들에게는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아빠가 신경 쓴다니.

물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응?”

“어어. 가끔 찾아왔는데, 어제는 아주 늦은 밤 와서는 화를 내더라 문 앞에서. 물론 조용조용 화낸 거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화를 냈다고?”

“무슨 소리긴. 말 그대로지. 우린 우리가 나갔다온 게 들킨 줄 알고 놀랐어.”

“근데 아니더라.”

서로 거울이라도 된 듯 쌍둥이들은 동시에 팔을 들어 자신들의 턱을 긁었다.

“우리한테 화난 게 아니었단 말이야.”

“화를 냈어? 아빠가?”

“어. 자정도 훨씬 넘은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침대에서 자는 척 누워있었고, 직접 안에 들어와서는 그릇들을 확인하더라.”

“달그닥 달그닥 소리가 한참이나 들리고, 한숨소리가 들렸어.”

“그러고 밖에 나가서 화내더라.”

줄줄이 사탕처럼 한마디씩 하는 쌍둥이들은 봇물이 터진 것처럼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제나 단답형이거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많이 편해졌는지 묻지 않은 얘기들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것 때문에 아침에는 고기도 나오고 맛있는 거 많이 나왔어.”

“맞아,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지.”

머리를 긁적이는 쌍둥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갇혀 지낸 쌍둥이.

정서적 학대를 받은 쌍둥이.

하지만 그런 쌍둥이들은 어린애들일뿐이었다. 아무리 흑막에 나쁜 놈들이 될 예정이라 해도, 지금은 아이다.

다른 것도 아닌 고기를 먹었다는 말에 저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앞으로 계속 잘 나올 거야.”

아빠도 꽤 신경 쓰고 있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역시 아빠에게 말해두길 잘했다.

“그럼 다행이지만……. 뭐 괜찮아. 사실 그 전에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맞아. 먹을 만했어.”

“그래도 안 돼. 나랑 같은 거 먹어야 돼. 그리고 이제부터 아침식사는 나랑 함께 할 거야.”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닿았다.

“너랑?”

“왜?”

베른과 칼리스토가 연달아 물어왔다.

“음, 우린 가족이니까?”

“아.”

“…….”

언제나 내가 말을 하면 먼저 대답하는 베른과 한 박자 쉬었다 대답하는 칼리스토는 이번에도 반응들이 사뭇 달랐다.

“와, 거기 가면 맛있는 거 많겠네?”

“많지! 엄청 큰 식탁에서 음식을 쫙 깔고 골라먹는 거야. 먹고 싶은 건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원하는 게 있음 바로 만들어다 가져다줘.”

“최고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단 사실만으로도 기쁜 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이제부터 맛있는 거 많이 먹음 된 거지. 방해하는 사람만 없으면.’

순간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이 방 앞을 지키던 그 시종이 생각났다.

“아 맞다, 근데 이렇게 눈이 쪽 째진 시종이 들어와서 노려보거나 하지 않았어?”

“아아 맨날 음식 가져다줄 때 뒤에서 우리 노려보고 있던 그 사람.”

“이것저것 알아내려는 듯 음식으로 우리에게 말 걸은 그 사람.”

역시나 마음의 문을 연건지, 지난번에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처럼 굴던 쌍둥이들이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말해준 것까지는 참 고마운데, 뭐가 어쩌고 저째?

“음식을 가져다줄 때 뒤에서 쳐다보고, 뭔가 알아내려고까지 했어? 그렇게 치사한 짓까지? 왜 말 안했어!”

생각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겪었을 쌍둥이들이 안쓰러웠다.

“……믿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솔직한 그 말에 아, 하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긴 하지…….”

“물론 그렇다 해서 너도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건 절대 아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모습을 보며 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어. 알아. 알고말고.”

“그래도 뭐……. 아예 안 믿다는 건 아니야.”

베른은 내 표정이 못내 신경 쓰인 건지 팔을 살짝 움직여 나를 툭 건드렸다.

“어어. 뭐 이정도 했다고 믿으면 다 믿게. 안 믿는 게 맞아. 맞고말고.”

어색하게 호응 아닌 호응을 해보였다. 솔직히 말해 섭섭한 건 별 수 없다.

난 최선을 다했는데, 아직 이들에게 있어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많이 믿어.”

“응응. 그럼 다행이고.”

순간 우리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적막이.

그걸 참지 못하겠는지 베른과 나를 번갈아보던 칼리스토가 슬쩍 창가로 몸을 숙였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아예 안 보이는 것 같더라. 그 목소리도, 그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도 안 나.”

야생 그것 그대로의 사람인 것처럼 코를 찡긋거렸다.

“그렇구나.”

“그 이후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잘해주는 느낌이더라.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서야 오늘 이 방 앞에 왔을 때부터 느낀 이상한 감정의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유난히도 방 앞에 있는 시녀들이 깍듯했던 건 아마도 아빠가 왔다가서인 듯싶다.

‘과거에는 아빠가 사용인들에게 난리를 친 적이 없었으니까.’

나 또한 내가 이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지 못했기에, 징징거리는 것 말고 아빠에게 정당히 이런 이야기들을 한 적이 없었다.

아빠 또한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도리어 사용인들은 뻔뻔하게도 내가 징징거리면 반대로 아빠에게 내 문제들을 지적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달래기 급급했고, 점점 나는 예민하고 성질 나쁘고 못된 아이가 되어갔다.

왜 아빠가 내게 그리 잘해주는지 모르고, 원하는 대로 다 이뤄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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