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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7/53)

27화

“걱정 마 계속 잘해줄 거야. 나는 오빠들을 정말 가족으로 생각하니까. 아! 맞다.”

가족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묘하게 표정이 바뀌는 두 사람을 보다 문득 케이크가 생각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방 문 밖으로 나갔다.

“케이크 들여보내줘.”

“네!”

내내 케이크를 들고 왔던 시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자 조금 경계하는 듯 쌍둥이들은 창문 쪽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그 모습만 봐도 쌍둥이들이 얼마나 어른들에게 거리를 둬왔는지,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며 이곳에 있었던 건지 알 정도다.

그 사이 방 한 켠에 있던 테이블 위에 케이크가 놓여졌다.

“이제 나가. 난 오빠들이랑 오붓하게 먹을래.”

“그, 그러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던 다른 이들이 아쉬움을 담아 우리를 바라봤다.

‘저런 행동들을 보면 방 안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는 게 확실하네.’

난 잠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케이크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 시녀들은 밖으로 나갔고 다시금 문이 닫혔다.

“와도 돼.”

“어. 가려했거든!”

베른이 호다닥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건 뭐야 근데.”

“내 생일케이크. 오빠들이랑 먹고 싶어서 따로 빼달라고 했어. 엄청 맛있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새하얀 케이크. 하지만 무슨 음식이든지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고, 쌍둥이들은 먹어 보지 않은 케이크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난 포크 한가득 케이크를 잘라서는 둘에게 내밀었다.

“먹어봐봐. 새로운 기분이 들 테니까.”

그 말에 고민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케이크를 먹었다. 처음에 내가 먹기 전까지 먹지도 않던 처음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말 맛있다.”

“응. 맛있지!”

“이런 맛은 처음이야. 음식이 입안에서 사라졌어.”

신기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도 같이 케이크를 조금씩 비워갔다.

점점 먹으면 먹을수록 두 사람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케이크처럼 녹아갔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상대가 있다는 것. 과거에는 이들과 같이 음식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아니 내 것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들의 입에서 맛있고 좋은 것들이 돌아가는 게 너무나 싫었다.

‘이렇게 좋은데.’

내가 좋은 선물을 받는 것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상대가 좋아하는 것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기에 난 두 사람과 한참동안 케이크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 * *

생일 파티가 지나고 며칠 후.

언제나처럼 씻고 멜린지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던 난 미간을 찌푸렸다.

무능할 정도로 할머니의 말에 수긍하던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를 데리고 못된 사람 만들기, 성질 나쁜 사람 만들기를 빨리 시작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거울 너머를 바라봤다.

이제는 꽤 친해진 멜린지는 오늘은 어떤 머리를 해줄까 꽤 열중한 듯 해보였다.

“멜린지.”

“네! 아가씨.”

나름 나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전보다 그녀는 훨씬 편안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멜린지를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세상에 그러셨어요? 너무 기쁘네요! 저도 아가씨가 너무 좋답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웃음을 지어보인 그녀는 손을 하나로 포개었다.

“웅웅. 그래서 물어보는 건데.”

“네. 말씀하세요.”

“어떻게 하면 못되질 수 있을까.”

“네, 네?”

“못되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진지하게 궁금했다. 그냥 나처럼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 성질을 낸다던가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성질이 나빠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특히 아빠처럼 태생이 착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 그, 그러니까 못된 사람이 되시려구요?”

“응!”

“으음……. 어…….”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하염없이 흔들렸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주황빛으로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어음…….”

“뭐든 솔직하게 말해줘. 어떤 의견이든 좋으니까!”

멜린지는 어른이니까. 아빠의 마음을 더 잘 알지 않을까. 이번이 세 번째 삶이지만 난 단 한 번도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했다. 첫 번째 삶에선 과로사로 일찌감치 죽었고, 두 번째 삶이서는 이 세계에서 말하는 성인의 나이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죽었으니까.

그래서 잘 모르겠다. 어른들의 생각을. 안다 해도, 너무 편협할 게 뻔했다. 그래서 멜린지를 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정말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응! 뭐든!”

“화내시거나, 마음 상해하시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걱정 마! 절대 안 그래!”

그렇게 말했음에도 걱정이 된 건지 멜린지는 자신의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었다.

“진짜야! 나는 멜린지랑 엄청 엄청 친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것도 다 말해주면 좋겠어!”

그래. 못된 사람이 된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니까. 보통 못되려면 못된 짓을 해야 하고, 시녀인 멜린지가 말하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것들이 있을 만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말 못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렇게 고민할 만하지. 난 계속해서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녀를 재촉했다.

“그렇죠. 저희 엄청 친하죠?”

“응! 나는 시녀들 중에 아니, 여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 멜린지가 제일 좋아.”

내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받은 듯한 얼굴을 하던 멜린지는 드디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그럼 아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어떤 방도를 말하려고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걸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실 아가씨께선 못되게 굴 필요가 없으실 것 같아요.”

“응?”

아. 이게 아닌데. 내가 못되게 군다는게 아니라, 아빠를 어떻게 하면 못되게 만들까. 그것에 관한 건데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한 듯싶다. 그래서 손을 내저으려던 그때, 멜린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도 충분히 못되세요!”

“아?”

“무, 물론 못된 게 나쁜 건 아니예요. 자기 표현도 잘 하시고 할 말도 다 하니까요. 그런 의미의 못된 거라면 이미 충분히 하고 계시니 더 고민하실 필요는 없다 생각해요. 아, 아니면 혹시 제가 잘못을 해서 제게 더 못되게 구시려고…….”

내가 착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그런데 못된 인간이라고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 아가씨. 제가 너무……. 버릇없이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뒤늦게 내 표정이 좋지않다는 걸 느낀 듯, 그녀가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 아냐. 아냐. 내, 내가 못되긴 했지.”

지금의 나는 덜 하지만, 원래의 아마네트는 못되처먹은 인간이니까.

‘그래. 내가 아니라 원래의 아마네트가 못됐다는 걸 말하는 거잖아.’

그러니 기분 나빠할 필요도, 마음 상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 지금의 나는 착하니까.

“괘, 괜찮으세요?”

“으응…….”

“저는 아가씨께서 정말 솔직히 말하기를 바라시는 줄 알고……. 정말 죄송해요.”

착하긴 하나, 눈치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던 터라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이게 아니다 싶었던 건지, 그녀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하하. 그리고 멜린지 내가 오해하게 했나 봐! 내가 못된 사람이 된다기 보단 어떻게 해야 못되게 굴 수 있는지, 못되게 보이는지 말이야! 아……. 물론 나같이하면 되는 거 같긴 하지만…….”

말해놓고 스스로 찔렸던 터라 사담을 덧붙였다. 찔리는 게 있는 듯 멜린지는 연신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가씨는……. 그러니까…….”

“아냐. 괜찮아. 정말로…….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못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나처럼 행동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어느 정도 다잡은 나는 마음을 차분히 내려앉히고 그녀에게 다시금 물었다. 그제야 멜린지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듯 무겁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니까……. 못된 사람처럼 보이려면 화를 내거나, 성질을 내거나……. 짜증이 많거나 그래야 사람들이 못되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 면에서 아빠는 탈락이다. 화를 내는 일도 성질을 내는 일도 거의 없으니까.

“아아!”

그때. 아빠가 사용인들에게 처음으로 화냈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유모에게. 꺼지라고 했던 그 말이. 계속해서 자기변명만 늘어놓는 유모에게 심하게 화를 냈었다.

“그게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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