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53)

29화

“여기가 제일 예뻐.”

“그건 알지만…… 그래도…….”

거기에 레트와 칼은 이정원에 오는 걸 꽤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니 저런 반응이 어느 때보다 이해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놈들을 이곳에서 마주치는 것인 걸.’

마치 모든 게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참으로 완벽한 타이밍이다. 오늘은 아빠가 할머니가 있는 본성에 가는 날인데다 본성에 갔다가 어디로든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정원을 꼭 지나야만 했다.

지나지 않고 가는 길이 있긴 했지만 굳이 뺑뺑 돌아가는 길을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만큼 완벽한 날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리려는 멜린지를 지나 꽃에 손을 가져갔다.

“아아…….”

“오늘따라 멜린지 이상해. 내가 여기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솔직한 마음으로는……. 네.”

“왜? 역시 멜린지도 내가 이곳에 오면 안 된다 생각하는 거야? 나는…… 나는 엄마가…….”

엄마 이야기까지 나오자 멜린지는 손과 고개를 동시에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아요!”

“우웅……. 하지만 멜린지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본능적으로 이곳을 싫어하던 내가 갑자기 이곳에 미련을 갖는 것도 이상해보일까 봐, 또 멜린지의 말을 너무 반대하는 걸까 봐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나이의 아이처럼.

“아 아니요. 제가 감히 그럴 순 없죠. 후작가 안에서 아가씨가 가지 못할 곳은 없는 걸요.”

“응 그럼 오늘은 여기서 놀게. 아주 조금만! 가져가고 싶은 꽃이 있거든.”

“알겠습니다…….”

이제는 포기한 듯 멜린지가 한발 물러섰다. 난 그런 그녀를 보며 활짝 웃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붉은 장미서부터 하얀색, 노란색 귀하디 귀한 푸른 장미까지.

정말 없는게 없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아주 느리게 꽃을 하나하나 땄다. 곧 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양반은 되지 못하는 듯 익숙한 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똥냄새가 나나 했더니, 여기 똥이 있었네.”

역시나 오늘도 시비를 잔뜩 들고 온 망아지들은 저 멀리서 내가 보이자마자 단숨에 달려왔다.

‘이정도면 나를 향한 레이더가 따로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아니고서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여길 올 리가 없지.

“야. 똥.”

꽃을 몇 개 꺾고 있던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더 꽃을 꺾었다. 원래 시비를 거는 것도 호응이 있어야 재미있는 거지, 호응이 없으면 화만 날 뿐이다.

그리고 오늘은 저 쌍둥이들의 화를 제대로 돋우기로 결심한 날이다.

“…….”

“귀까지 먹은 거냐? 우리 말 안 들리냐고!”

성질을 버럭 버럭 내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멜린지를 바라봤다.

“멜린지. 역시 꽃은 빨간색이 예쁘지?”

“네? 네……. 그, 그렇죠?”

“역시 빨간 꽃으로 꺾어 갈까나.”

“이게 진짜. 야!”

역시나 쌍둥이들은 오늘도 분노해서는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나를 밀쳤다. 덕분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난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

“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급히 멜린지가 주저앉아서는 날 일으켜 세웠다.

“응! 괜찮아. 내가 요새 몸이 허해졌나. 바람에도 몸이 넘어가네.”

남들도 다 들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 나는 엉덩이를 털어내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진짜. 미쳤나. 네 까짓 게 뭔데 우릴 무시해.”

“꽃은 얼마나 가져가는 게 좋을까.”

꺾은 꽃을 이리저리 엮었다. 같은 붉은빛이라 할지라도 어떤 건 타오르는 불처럼 새빨간 색이었고, 또 어떤 건 내 볼처럼 연한 붉은빛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골라가며 꽤 열심히 꽃을 꺾어댔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역시나 망아지들을 자극시켰나보다.

“무시하냐고!”

결국 두 사람이 다시금 나를 밀쳤다.

하, 이러다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겠네. 쿵하는 소리를 내며 내 몸은 다시금 바닥에 엎어졌다.

한 번은 참았지만, 두 번은 못 참는다.

멜린지가 거의 울상이 되어서는 날 다시금 일으켜주었다.

“아가씨이…….”

“멜린지. 이 꽃 좀 맡아줘.”

스물에 달하는 꽃을 멜린지에게 내밀었다.

“네?”

“보관. 내가 가지고 있다가 꽃이 엉망이 될 거 같아서.”

“아…….”

그제야 그녀는 내가 내민 꽃을 받아들었다. 꽃잎에 묻은 흙을 살짝 털어내는 멜린지를 바라보다가 망아지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야 우리가 보이는 거야?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우리 말이 들리지도 않고, 우리가 이제 보이는 거 보면.”

“아니면 이렇게 맞는 걸 좋아하는 건가?”

서로 키득거리며 웃기 바쁜 두 사람을 보며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

“뭐?”

“좋아서 내게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미쳤나. 우리가 왜 너한테 관심받고 싶어 해!”

“아니고서야 이렇게 난리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할 줄 아는 말이 그런 것뿐이야? 조금 어휘력을 높여 봐. 맨날 놀지만 말고 책도 좀 보고 말이야.”

눈을 반달로 접어가며 두 사람을 자극했다. 예상치 못한 말들인 건지 망아지들은 허, 허 하는 소리만 낼뿐이었다.

“참 이상해.”

“뭐가 또……!”

정곡을 찌른 듯 입만 어물거리던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맨날 나한테 잡종이니 똥이니 이딴 말 하는 거 말야. 왜 그렇게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은 말이었다

“그건 당연히……!”

“당연히 뭐?”

“다, 당연히…….”

딱히 핑계가 생각나지 않는 듯 두 사람은 서로를 보기에 급급했다.

“왜. 어떤 이유도 생각나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괴롭히고 싶은 거야?”

“그, 그거지!!”

칼이 내말에 급히 호응했다. 멍청하게도.

“왜일까. 나보다 가진 것도 많은 너희들이 왜 그렇게까지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걸까.”

“뭐?”

“그렇잖아. 할머니가 누구보다 예뻐하는 건 너희들이고, 가문의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않아. 원하는 건 다 이룰 수 있고, 엄마도 살아있잖아? 그런 너희들이 뭐가 아쉬워서 나를 괴롭혀.”

두 사람은 서로를 보기에 급급했다.

“설마 내게 너희들이 가진 걸 빼앗길 것 같은 그런 두려움 때문이야?”

“웃기지 마! 뺏길 리가 없잖아!”

“그러면 왜?”

“그건, 그건…….”

말도 잇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난 참 이해가 가지 않거든.”

“뭐?”

“내게 이렇게까지 성질내고 화내는 이유 말이야.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

“이유가 있어야 보기 싫은 건 아니잖아. 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가 싫어!”

둘 중에 형인 레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나 칼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너는 그냥 존재자체가 문제인 거야! 그 어, 생일 때 봤잖아. 너는 그냥 태생 자체가 불행한 거야. 그런 머리색이랑 눈동자 색을 타고났으니까.”

“맞아. 맞아.”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그들에게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주변사람들이 불행해진다 했었나. 할머니가.”

“멍청이는 아닌가보네. 그걸 기억하는거보면.”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이랑 친하게 지내야겠다. 그럼 정말 내 주변사람들이 불행해지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냐.”

“미쳤어?”

레트가 사정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치지 않았어. 매우 정상이라 문제인거지.”

“하, 뭐 뭐라는 거야!”

“진짜 궁금하지 않아? 할머니의 말대로 내가 문제인 건지? 그러니 한번 친하게 지내보자. 너희들도 솔직히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는 거……. 관심의 표현 아냐?”

은근슬쩍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한발 두발. 언제나 당당하게 굴던 두 사람은 날 보며 뒷걸음질 치기 급급했다.

참으로 볼품없게.

“오지 마!”

“왜. 무서워? 에이. 설마 이런 걸 무서워한다고? 그런 미신을 정말 믿는 거야?”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이런 걸로 무서워하다니. 설마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잘 통한다. 아마도 할머니가 한 이야기들이 망아지들을 상대로 더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듯하다.

“하긴, 조금 그렇긴 하지. 뭐라더라…… 내 생일 파티에 온 그 여자는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지.”

그 사람에게 아픈 상처고, 굳이 남의 상처를 꺼내고 싶진 않았지만 망아지놈들에게 효과가 너무 탁월했기에 난 다시금 두 사람을 위협했다.

“…….”

“이게 진짜 미쳤나……!”

“미치기는 할머니가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것뿐인걸.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보자. 나도 궁금해.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되는 건지.”

두 사람이 어버버 하는 사이 바짝 다가갔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흥분은 어떻게 시킬지. 그런 고민들을 하던 난 순진무구한 그 놈들을 향해 매우 수상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흐흐흐. 음흉한 미소를 보내며.

효과는 탁월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은 듯 두 망아지들은 동시에 나를 떨쳐냈다. 물론 떨쳐낸다 하여 밀려질 내가 아녔다.

“아가씨!”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렇다 해서 한발 물러설 수도 없는 멜린지만이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물론 난 두 사람이 밀치면 밀칠수록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만 오라고!”

“싫은데? 두 사람도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온 거잖아. 원래 이런 건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하더라. 내가 받아준다니까. 앞으로 잘 지내 보자니까?”

“야!”

결국 아무리 밀쳐도 달라붙는 내 모습을 견디지 못한 건지 레트가 내 팔을 꺾어버렸다.

“아앗……. 아프잖아!”

“이런 건 아프긴 한가 보지?”

내가 드디어 주눅이 든 게 보이자마자 칼도 바짝 달라붙어서는 내 팔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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