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오빠들?”
“응!”
“아아. 쌍둥이들을 말하는 건가?”
“응 오늘도 놀아줘야 해. 오빠들은 맨날 방에만 갇혀있으니까, 내가 맨날 가줘야지.”
그 말에 아빠는 자신의 턱을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그렇긴 하지…….”
“응. 조금 불쌍해. 맨날 창밖만 보더라구.”
“마음 같아서는 편하게 지내라 풀어주고 싶지만, 나도 부탁받은 거라…….”
“부탁?”
예상치 못한 아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나 쌍둥이들을 데려온 건 아빠의 의지가 아니었나.
그럼 누구의 부탁으로 아빠는 아직 어린 쌍둥이들을 데려온 걸까. 대충 봐도 쌍둥이들이 어떻게 살아왔을지 알 텐데, 아빠는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 그런 꼴인지.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건지.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쌍둥이들에 대해 안다는 뜻인데.
‘아빠는 쌍둥이들이 누군지, 누가 가둬놓은 건지 모든 진실을 아는 걸까.’
과거에는 어떤 얘기도 듣지 못한 채 아빠가 세상을 떠났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 순간 확신이 들었다.
아빠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야.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산책도 마음껏 하라고 하고, 편하게 지내라고 하마.”
“으응. 알았어.”
“그런데 아마네트.”
“응!”
“다 좋은데, 아빠가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친하게 지내는 건 너무 좋은데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빠는 한참동안 입을 우물거렸다.
“무슨 말 더하려고?”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말거라.”
아빠는 얼마만큼 알고 있는 걸까.
친하게 지내지 말라니. 문득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정말 다 아는 걸까. 다 알면서도 데려와서 저렇게 방치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그때였다.
“조금 샘이 나는구나.”
“응?”
“샘이 나. 우리 딸이 요새 아빠가 아닌 쌍둥이들하고만 노는 거 같아서.”
“아?”
설마 정말 그런 이유인가 싶어 아빠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데 정말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인 듯 아빠의 입술이 개미 똥꼬만큼 살짝 튀어나왔다.
“정말 그거 때문이야?”
“응?”
“오빠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이유가 그 이유뿐이야?”
“당연하지. 아빠 은근히 질투가 많아. 그래서 걱정이야. 나중에 우리 딸이 커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그 모습을 어떻게 지켜볼지…….”
아빠의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황당함에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난 또.”
“응?”
“다른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오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해서.”
그 말에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그저 환경이 좋지 않았던 거지. 적어도 나쁜 아이들은 아닌 것 같구나. 정말 나쁜 아이들이었다면 소중한 너에게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아빠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서 데려왔으나, 그 아이들이 누군지 완벽히는 모른다는 건가.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참 예뻐. 아빠 말을 이렇게나 잘 지켜 주려는 아마네트를 보면. 정말 다른 아이라도 된 거 같아. 아직도 매일 걱정이 되긴 하거든. 우리 딸이 성질 내진…….”
“성질?”
“아, 아니다. 절대 우리 딸 성질이 나쁘다든가 못됐다든가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란다. 아빠 눈에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착한 천사님인걸.”
“아빠. 마지막 말은 안 하는 게 좋았을 것 같아.”
아니. 저렇게 빠르게 자신의 딸을 디스하는 아빠가 있던가.
“응?”
“아니야. 아 아빠랑 더 놀기 싫어졌어.”
“어어?”
“이만 나가. 나 오빠들 보러 갈래.”
휙 뒤를 돌아 문으로 다가갔다.
“어디 가?”
“멜린지한테 옷 갈아입혀 달라 하게. 몇 번 넘어졌더니 옷이 더러워졌어.”
“아빠랑 더 이야기 안 하고? 아빠는 할 말이 많은데…….”
“아빠 오늘 엄청 멋있었는데, 그거 다 사라졌어.”
“아아……. 아마네트.”
아빠는 꽤 충격을 받은 듯, 급하게 나를 잡으려 했지만 난 문을 열고 밖에 있던 멜린지를 불러왔다.
“아빠가 무슨 실수했니?”
우물거리는 아빠를 보며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응. 아빠 사람은 말이야 진실을 말하면 화가 나는 법이야.”
“진실?”
“응. 못되고 성질 나쁘다는 말에 상처받는 거 보면 그 말이 사실인가 봐.”
“아아…….”
그제야 자신이 무의식중에 뱉어낸 말들이 생각난 듯 아빠가 탄식했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 딸이…….”
눈치 없는 아빠. 물론 마음이 조금 상한 것도 있었지만, 그런 아빠라서 좋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는 완벽한 아빠라서. 불완전한 사랑이기에, 더 완벽한 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더 잘 보이니까.
“알아.”
“응?”
“그런데 사실은 맞잖아.”
눈 접힐 만큼 환하게 웃었다.
아빠 세상은 말이야. 착하게만 살면 안 돼. 그래봐야 호구만 되고, 무시만 당할 뿐이야.
“하지만 아빠. 난 내가 좋아. 그냥 내 모습 그대로가 좋아. 일부러 바꾸지 않을 거야.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야!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날 나쁘게 본다 해도 상관없어.”
단풍 나뭇잎 같은 손으로 아빠의 볼을 쓰다듬었다. 유난히도 까칠까칠한 아빠의 피부가 최근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니까 아빠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어?”
“아빠답게. 날 향한 마음은 그대로. 아까처럼 할 말은 다하면서!”
내 말이 반은 이해되고 반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한참동안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런 아빠가 다시 입을 연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음의 정리를 한 것처럼, 아까보다 아빠 얼굴은 훨씬 편안해보였다.
“아마네트.”
“응?”
“그래도 일부러 강한 척 할 필요는 없어.”
아빠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다정히도 쓰다듬었다. 보드랍고, 따뜻하게.
“웅…….”
“아빠처럼 약하게 굴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강해질 필요는 없어. 강하다고 믿어버리면 사람들이 쉽게 생채기를 내거든. 이 사람은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이 사람은 강하니까 이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아빠는 늘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였다.
“강한 건 아빠가 하마. 그러니 너는 약해져도 돼. 아빠가 너의 버팀목이 되어줄 테니까. 울타리가 되어주마.”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들이었다. 이전 삶에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울타리도 버팀목도 없이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수백, 수천 번 무너졌던 내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그 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아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이제 어서 가. 나도 오빠들한테 갈래!”
“그래.”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아빠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 딸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아빠는 이따가 올게.”
“응!”
혹여나 아빠가 또 있겠다고 할까 봐 급히 손을 흔들었다. 어쩐지 아빠랑 더 이야기하면 내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그 말이 자꾸 생각나서 눈물날 것 같은 마음에 멀어져가는 아빠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아빠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멜린지를 비롯해 방에 들어오지 못한 시녀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 다시 나갈래!”
“준비 도와드리겠습니다.”
평소에도 딱히 다른 이들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았던 멜린지만 이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나를 다시 단장시켜 주었다.
“아가씨. 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응?”
“아까 일이 너무 신경 쓰여서요. 팔도 꺾이시고…… 아이고. 무릎도 다치셨네요.”
그녀의 눈동자에 안쓰러움이 녹아들었다. 정말 나를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
“의원은 괜찮댔어! 약도 안 발라줬어!”
“네? 하지만 여기 피가 나는걸요. 물로 소독만 해드릴게요.”
아닌 게 아니라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게 무릎에서는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마 치마가 길었던 탓에 아빠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진짜 끝까지 마음에 안 드네.’
의원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내가 왜 다쳤는지 이미 오면서 다 들었을 거다.
할머니의 손주놈들, 망아지들 때문에 다쳤다는 사실을. 내가 다친 걸 본인이 증명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한 게 분명하다.
‘나쁜놈.’
할머니의 눈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인간이라 예상은 했지만, 대놓고 이럴 줄은 몰랐던 터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선 지금은 괜찮아. 나중에 아프면 잘라 버려야지.”
손으로 목을 긋는 행동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안쓰럽게 보던 멜린지의 얼굴이 굳은 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