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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35/53)

35화

“설마……. 계속 이곳에서 나갔던 거야?”

“글쎄.”

씩 웃는 베른의 표정을 보자 내가 그동안 쌍둥이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외출을 이렇게 쉽게 하고 있었다고?”

“정확히는 네가 우리를 나가게 해주겠다고 그걸 준 이후였지만. 그때부터 우리도 조금 살피고 다녔어.”

“하지만 갇혀 산 거 아니야? 분명 그랬는데…….”

내 말에 베른은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과거의 갇혀 산 일이 언급하면 안 되는 것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 베른은 가만히 창밖만을 내다봤다.

“미안…….”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나도 모르게 사과가 튀어나왔다.

“뭐가.”

“그냥……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 같아서.”

“하면 안 되는 말이 어디 있어.”

“그래도…….”

베른은 말없이 내 머리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못난이.”

“왜 내가 못난이냐.”

“못난이니까. 못난이라고하지.”

나보다 아주 조금 큰 손이, 유난히도 따뜻한 손이 오늘따라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마치 머리에 오징어가 올라가있는 기분이랄까. 아주 간질간질하다.

“손 치워.”

“싫은데?”

“그럼 누르지 마!”

“왜!”

“누르면 키 작아져! 가뜩이나 작아서 억울한데, 내 키 줄이지 마. 키 안 크면 어쩔 거야. 책임질 거야?”

버럭하는 내 말에 베른이 피식 웃었다.

“책임질 리가 있나. 내가 왜 널 책임 지냐.”

“…….”

“네가 편식해서 안 크는 거잖아. 잘 먹어. 지금도 비리비리 말라가지고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생겨서.”

“비리비리? 내가……? 아닌데?”

난 볼도 통통하고, 몸도 전혀 마른 스타일이 아닌데.

“내가 봤을 때 그래. 그러니까 더 잘 먹어. 그래야 키도 크고 더 귀여워지지. 어?”

실컷 혼잣말을 하던 베른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혼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 갑자기 졸려. 자야겠어.”

“지금? 칼리스토도 안 왔는데?”

“아. 맞다. 아니 자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생각났어.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

그의 재촉에 난 별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나 정말 가?”

“어.”

“알았어…….”

처음으로 내가 내쫓긴 상황에 난 우물쭈물하다가 다른 말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아가씨. 아가씨. 두 분이 좋아하세요?”

“으응?”

앞에 있던 멜린지는 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꽤 기대감에 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꽃이요!”

“아아. 뭐……. 좋아하기는.”

“안 좋아하세요? 오늘 그 고생을 하면서 가져온 건데…….”

“아냐. 칭찬 받으려고 해온 것도 아닌데 뭐. 이만 돌아가자.”

그 말에 멜린지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방문을 바라봤다.

“그래도 잘 지내는 거 같아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응?”

“처음엔 정말 걱정 많았거든요. 그…… 손님들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난 씩씩하게 걸었다.

“걱정할 게 뭐있어.”

“그래도요. 처음 오셨을 때 모습은…….”

“처음이 어떻든 두 사람은 내 오빠들이야. 누가 뭐라 해도 내 가족. 알았지? 그러니까 과거의 모습이 어떻든 생각할 필요 없어.”

그제야 멜린지가 빙긋 웃었다.

“네. 다행이에요.”

“이번엔 뭐가 또 다행이야?”

“주인님께서 걱정이 많으셨어요. 혹시나 아가씨께서 두 분을 가족이 아닌 다른 존재로 생각할까 봐. 만나지도 못하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하시더라구요.”

우리 아빠라서 그럴 줄은 알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황당함이 몰려왔다.

“허.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돼?”

“그만큼 걱정이 많으셨으니까요.”

“정말……. 걱정 말라 해. 오빠들은 나한테 정말 가족일 뿐이니까.”

아까보다 훨씬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멜린지는 이 이야기는 꼭 전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후, 며칠이 더 지났다.

예전처럼 편하게 쌍둥이들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날 내가 왜 다친 건지 이미 다 알고 있을까 봐.

‘안다 해도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난 뭐가 두려운 거지…….’

어쩐지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그런 수준 낮은 애들한테 맞고 다니냐고.

정말 친오빠들한테 혼나는 동생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난 방에 간식만 보낼 뿐 그 방으로 찾아가지 못했다.

물론 아빠와 함께 넷이서 식사를 하곤 했지만, 그들은 아빠 앞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특별히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 날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한 달에 한 번, 본채에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날.

아직 시간이 2주정도 남아있었지만, 이번엔 할머니가 외부로 길게 나갈 일이 있다며 날짜를 꽤 앞당겼다.

이것 마저 과거랑 똑같다. 이 날 할머니의 손주놈들은 사고를 치고 만다.

그걸 알기에 난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준비를 끝마치고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마네트.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응! 오늘 기분이 엄청 좋아.”

배시시 웃으며 아빠와 눈을 맞췄다.

“최근에는 걱정이 많아 보이더니.”

“내가 그랬어?”

“응. 항상 미간을 이리 찌푸리고 다녔지. 아빠랑 밥 먹을 때도 그랬고, 어딜 갈 때마다 그랬단다.”

“그, 그랬나.”

손가락으로 급히 미간을 쭉쭉 폈다.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여.”

“헤헤. 오늘 기분 좋아! 아빠랑 할머니 보러가는 날이잖아.”

나를 품에 안았던 아빠의 걸음이 조금은 느려졌다.

“아마네트. 할머니가 밉진 않아?”

“응?”

“그냥 궁금해서.”

어떻게 대답할까. 몸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아빠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며칠사이 아빠는 얼굴에 살도 붙고 가슴팍도 이전에 비해 조금 단단해졌다. 묘하게 아빠의 가슴팍에 손을 대니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아마네트?”

“응?”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아빠 가슴을 만지는 것 같아서…….”

“맞아. 아빠 운동 열심히 했구나? 건강해졌다. 가슴이 단단해졌어.”

“그래? 효과 좀 있어? 예전에는 운동해도 힘들기만 했는데, 요새는 좀 할 만하더구나. 우리 따님이 기운을 복돋아줘서 그런가.”

자신이 한 질문을 금세 잊어 버린 건지 아빠는 신나서는 턱을 주욱 빼고 팔을 만져보라며 내밀었다.

“오오. 아빠 좀 멋진데?”

“정말? 듣기 좋은 칭찬이구나. 멋지다니. 앞으로 아빠가 더 노력하마.”

“응응!”

그렇게 한참동안 근육 자랑을 하던 아빠는 정원을 통해 본성에 도착을 했다. 그 곳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말을 조심하려는 듯 아빠는 입을 다물었다.

방으로 들어갔지만 평소와 달리 할머니의 손주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기분이 나빠 보이는 할머니만 상석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오늘은 빨리 왔구나.”

“평소와 똑같이 왔습니다. 그보다 어머니, 가실 준비는 모두 끝나신 겁니까. 갑자기 한 달간 친정에 가신다니 걱정이 됩니다.”

아빠는 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할머니를 살펴봤다.

그래도 아빠는 자기 자식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할머니는 나한테 하는 것 만큼 아빠를 막 대하진 않았다.

“걱정할 거 없다. 내가 늙은이도 아니고, 오라비가 아프다는데 가 봐야하지 않겠느냐.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안가면 얼굴도 못보고 죽을 텐데.”

쯧 하는 소리를 내던 할머니는 못내 못마땅한 얼굴을 해보인다.

하지만 할머니는 말과 달리 친정에 가지 못한다.

원래라면 아픈 제 오빠를 몇 십 년 만에 보고 장례식에도 갈 겸 가야했지만, 오늘 손주들이 벌이는 일 때문에 본인도 건강이 악화되어 가질 못한다.

때문에 결국 할머니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제 오라비의 식구들까지 이곳으로 데려온다.

개판인 인간들이 더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이랄까. 처음부터 그들을 데리고 올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가만히 할머니를 바라보며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 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차례로 인사를 하고 들어온 이들. 노크도 없이 들어왔건만, 할머니는 그들을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반겼다.

큰아빠 베헬의 아들인 케일럽과, 둘째큰아빠 아펠의 아들 레트와 칼.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한 번에 들어와서는 마치 개떼처럼 할머니에게 우다다 다가왔다.

“늦었죠!”

“늦기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이 할미는 걱정했단다.”

할머니가 머리를 돌아가며 쓰다듬자 손주놈들은 더 기고만장해져서는 날 보며 비죽거렸다.

‘멍청한 놈들. 너희들 속셈이 뻔히 보이거든. 그리고 그 일은, 너희들한테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바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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