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하지 않은 건 나 혼자뿐이었다.
멜린지도 가문의 기사들도 고아원 사람들도 모두 목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거렸다.
단단한 목소리와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투.
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아빠!”
알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해맑게 웃었다. 아빠가 올 거라는 건 예상되는 일이었다.
아빠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밤에 출발했던 것, 그리고 이에 대해 크게 뭐라 하지 않았던 건 다 내 뒤를 따라 올 아빠를 알고 있기에 한 행동이었다.
“우리 딸.”
아빠는 내가 자신을 부르자마자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처럼 빠르게 내 앞에 왔다.
그리고선 날 단번에 안아들었다.
“헤헤. 아빠 어떻게 왔어?”
아빠의 등장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많이 놀랐어?”
“응 엄청 까암짝 놀랬어! 아빠가 여기 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거든!”
그 말에 아빠는 꽤 기쁜 얼굴을 했다.
“감동 받았어?”
“응! 그럼!”
내 말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려면 아빠가 어느 때보다 필요했으니까.
실제로 어린아이인 내 말에 호응하지 않으려던 고아원장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아…… 그, 저……. 후, 후작각하를 뵈옵니다.”
“오랜만이로군.”
“네,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지난 번왔을 때와 달리 아이들의 상태가 꽤 별로군.”
“그, 그게 최근에 후원금이 적게 들어오다 보니……. 하하……. 이렇게 오신 거 제 방으로 가서 차라도 한잔 드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심이 어떠실까요.”
“그것도 좋지.”
날 품에 안은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말에 그나마 희망을 찾은 건지 원장의 얼굴은 서서히 밝아졌다. 하지만.
“그 전에 저 아이를 한번 제대로 봐야겠는데. 내 따님이 친구를 찾은 것 같으니까.”
“치, 친구라니요. 저 아이는 많이 아픈 아이입니다. 혹여라도 아가씨께서 저 아이 때문에 아플까 걱정이 되옵니다.”
아프다는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아빠는 나와 여주인공을 번갈아 봤다.
“아프다?”
“네.”
“어디가?”
“그러니까 그게…….”
“어디 아픈지도 모른단 건가. 의원 진료는 제대로 보기나 한 것인가?”
아프다는 말에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정도 많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도덕성이 높은 아빠는 이런 걸 그대로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가지고 있는 귀한 팔찌를 내어줄 정도로 타인에게 사려 깊은 사람이다.
설령 전염병에 걸린 아이라 할지라도.
“그게……. 그러니까 병명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럼 병명이 밝혀질 때까지 또 다른 의원을 만나도록 해야지. 저대로 방치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 방은 도대체…….”
그 사이 날 안은 아빠가 방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창문을 모두 나무로 막아버려서 환기도 되지 않았고, 남겨진 음식들 찌꺼기 때문에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하필 마구간 옆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말의 냄새인지 아니면 인간의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악취가 가득했다.
“하. 도대체 이곳은…….”
날 품에 안았다는 사실조차 잊은 듯 아빠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매서운 얼굴을 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아이를 혼자 둘 수 있는 거지? 관리를 하지 않은 건가?”
“혹시나 아픈 아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내가 주는 돈이 꽤 될 텐데.”
“그, 그래도 힘듭니다.”
“그래서 제대로 의원도 부르지 않고 무슨 병인지도 몰랐다?”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돌아온 문제에 대해 원장은 입술만 잘근 잘근 깨물기 바빴다.
그 사이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뚱멀뚱 서있는 여주인공에게로 다가갔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마치 신 같았다. 나를 이곳에서 구해줄 신.]
여주인공이 처음 이 고아원에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여주의 능력을 알아차린 고아원의 어느 선생이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여주를 이용하려고 도망치게 해준 거였다.
구조자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여주인공에게 그는 내가 아니었으면 너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며, 너는 여전히 거기서 살고 있었을 거라는 말을 일삼았다.
그렇게 여주인공은 자신을 구해준 신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어느덧 그건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어쩌면 여주가 자신과 평생 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조차 구조자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했던 걸지도.’
그때는 이해가지 않았으나, 한 마디 한 마디 곱씹어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잘 기억도 나지 않던 이야기들이 이렇게까지 기억나는 것도 웃긴데 왜 여주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거지.’
내 몸은 자연스럽게 여주에게로 쏠렸다.
내려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아빠는 날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리 아파보이지도 않는군요. 그저 마른 것뿐.”
“아, 그것이…….”
무언가에 홀린 듯 난 여주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내내 아무 말 없이 세상 밖에서 들어온 이방인을 바라보던 여주가 드디어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
“아…….”
목이 쉰 듯 겨우겨우 입을 뗀 아이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나를……. 구원…….”
그 말이 끝이었다. 여주의 시선은 명확하게 날 향해 있었고, 아이의 입에서는 과거에 구원자에게 향했던 말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아, 이게 아닌데.’
아이의 구원자는 내가 아니라 아빠나 어른이길 바랬는데.
아니 당연히 어린 아이인 나를 구원자로 알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과거에 여주를 구원해주었다던 그 보육교사 또한 혼자 오지 않았다.
이 방에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원장의 방에서 열쇠를 훔쳐서 교사에게 건네준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처럼 보육교사는 그 아이와 함께 이방에 들어왔으나, 여주의 선택을 받은 건 보육교사였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나냐고…….’
일부러 멜린지까지 데려왔는데.
난 조금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조금은 개운한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날 바라보던 여주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인형처럼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쿵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말았다.
“아가!”
놀란 아빠가 여주를 단숨에 안아들었다.
“이게 어찌된…….”
놀라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아빠와 달리 원장은 이런 일이 흔한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
“제, 제가 아프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쓰러진 것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장은 아빠가 끌어안은 아이에게로 다가왔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보지?”
“혼자 흥분해서 쓰러지는 일이 잦은 아이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거 하나 없으십니다.”
“걱정할게 없다라. 정말 개소리같군.”
험한 말을 잘 하지 않던 아빠가 아이를 안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작 각하?”
“아이가 전염병일지도 모른다고, 아프다고 한 것과 달리 이곳에는 참 잘 들어오는군 원장.”
“아.”
“평소 본인 건강을 엄청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이가 전염병이 없다는 소리겠지.”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걸 느낀 건지 원장이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 저는 그러니까 어른들에겐 괜찮으나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허튼 소리는 그만하도록 해. 자주 쓰러진다고 해놓고 제대로 의원 한 번 부르지 않는다는 게, 여러모로 실망이야.”
“제 말을 좀 들어주십쇼!”
하지만 아빠는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지.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간다.”
“네? 아, 안 됩니다.”
“안 될 게 뭐있지. 여기 있어봤자, 제대로 된 진료하나 보지 못할 텐데.”
“하, 하지만.”
“내 딸아이가 친구삼고 싶다했으니 잘되었지. 막지 말도록.”
보육원장에게 여주인공은 보석상자 안에 귀하게 담아놓은, 아니 방치하긴 했으나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보석 중 하나였다.
거기에 아픈 곳도 없는데 방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장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아원 최대 후원자인 아빠가 그걸 봐버렸으니.
“고아원에 있는 아이는 데리고 나가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
“네. 고아원 소속의 아이는…….”
“그럼 내가 입양하도록 하지.”
아빠의 충격적인 한마디에 계속해서 말리던 원장은 입만 뻐끔거렸다.
“이, 입양이요?!”
“그래. 입양에 따른 후원금은 따로 보내도록 하지. 사안이 급한 일이니 서류도 나중에 쓰고.”
“네, 네? 자, 잠시만요!”
“왜. 후작인 내가 직접 데려가는데 믿지 못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보증이다. 그러니 데려가도록 하지.”
하지만 원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뚜벅 뚜벅 걸어 다가왔다.
“아마네트. 오늘은 아빠가 못 안아주겠구나. 친구 상태가 별로라서.”
“응 괜찮아! 나는 멜린지 손 잡구 가면 돼!”
그리고선 멜린지의 손을 냉큼 잡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런지 그녀도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난 그녀가 당황하지 않게 씩씩하게 걸었다.
“후작 각하! 각하!”
그렇게 앞서 걸어가는 우리를 따라오며 원장은 소리를 치기 바빴지만, 기사들에 의해 그의 앞길이 막혔다.
‘일단 합격이다.’
아빠가 아닌 나를 보며 구원자라고 한 점이 어지간히 신경 쓰이지만 우선 이걸로는 충분한 상황이었기에, 난 발걸음 가볍게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