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53)

52화

바뀌는 베른의 표정을 보며, 아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에서 그들의 첫 만남은 어땠더라. 마치 운명이 찾아온 듯 만난 것만으로도 전기가 파지직 튀었다고 들었었다.

어쩐지 자신들과 꼭 닮은 여주의 모습에 쌍둥이들은 단숨에 마음이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의 집착은 시작되었다.

‘자 이제 맘껏 여주에게 집착해. 지금부터 잘 지내보고.’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여주를 가만히 지켜보던 베른하르트는 쯧 하는 소리를 냈다.

“얜 뭔데.”

“어?”

원래 이런 반응이었던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뭐, 뭐기는……. 우리 이제 한 가족-”

“가족이 뭐 특별한 건줄 알았더니 다 가족이래.”

오히려 불편한 표정을 짓던 베른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아, 이게 아닌데. 이렇게 만나는 건 영 아니었나?

하지만 소설 속에서 쌍둥이들이 여주에게 마음을 갖는 건 처음부터 시작된 거였는데.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상황에 난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기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이른 만남이 문제였나. 아니면……. 뭐가 문제지.

그때였다.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던 칼리스토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희망은 네놈이다.’

다행히 칼리스토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밝은 상태였다. 내게 주던 시선과 여주를 보는 시선은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만큼 달랐다.

“이름이?”

칼리스토의 입에서는 꽤 다정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처음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어쩐지 그 목소리에 가슴 어딘가가 묵직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샘내는 것도 아니고, 나 왜이래.’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가슴이 불안정하게 쿵쿵 뛰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에 신경 쓰는 내 스스로가 웃길 따름이다.

원래라면 여주를 소개하고 친해지는 걸 보자마자 바쁜 일이 있다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엘리…….”

그 사이 여주인공은 칼리스토의 물음에 아주 조심히 제 이름을 건넸다.

원작 소설의 이름과 완벽히 다른, 아빠가 지어준 그 이름을.

“나는 칼리스토다.”

칼리스토는 엘리에게 손까지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내 걸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동안 좀 친하게 지냈다고 쌍둥이들과 무슨 마음이라도 생긴 건지.

“베른. 너도 인사해야지.”

“별로.”

“그래도.”

이제 나란 존재가 보이지 않는 듯 칼리스토는 베른하르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러는 와중에도 한번쯤은 볼만 한데 절대 시선을 주질 않는다.

“하. 알겠어. 형이 인사하라고 하니까……. 베른하르트.”

“아,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이들에게 쉽사리 손을 내밀지는 못했지만, 여주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물론 잠시 그들을 보던 여주의 시선이 내게로 바로 옮겨지긴 했지만.

“많이 불안해? 나가고 싶어?”

혹시나 싫은 일을 강요하는 걸까 봐 날 바라보는 여주를 응시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이 무작정 싫은 건 아닌 듯, 그녀가 작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 네가 두려워하는 건 어른이니까.”

“왜 무슨 문제 있어?”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른이 의아한 듯 우리 사이에 껴들었다.

“갇혀 지냈었어. 엘리도.”

“갇혀 지내?”

그제야 쌍둥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엘리에게 닿았다.

“이야기해도 돼. 오빠들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이야기해도 돼요?”

“응. 여기는, 아니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믿어도 돼.”

그 말을 들은 쌍둥이들은 급히 숨을 들이마시는 듯했다.

물론 여주를 보느라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정말로?”

“나 믿지?”

“응. 구원자……. 아니. 아마네트님을 믿어요.”

“그럼 이것도 믿어. 생긴 건 조금 험상궂게 생겼을지 몰라도, 착한 사람들이야. 마음의 상처가 많아서 조금 밉게 굴 때도 있긴 하지만.”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쌍둥이들의 볼은 붉게 상기되었다.

“내 말이 틀린 건가?”

“아니. 아니. 우리가 착하긴 하지.”

“…….”

착하다는 말에 웃고 있는 베른과 달리 칼리스토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읽을 수가 없었다.

뭐 어찌되었든.

다행히 여주는 내 말이라면 모든 걸 다 믿는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착한 사람들…….”

“그래. 그리고 서로 공통점도 있고 그러니까 이야기도 하고 그래.”

물론 이 정도에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엘리가 아니었다. 표정이 풀리긴 했지만 그녀는 다소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차근히 알아 가면 되겠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는 없기에 그냥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간식을 준비해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응!”

원래 친해지려면 맛있는 걸 같이 먹어야 하는 법.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방 한 켠에 놓여진 커다란 테이블로 여주를 이끌었다.

자석처럼 쌍둥이들도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상황에 대해 꽤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일까, 멜린지는 평소보다 더 과할 정도로 많은 간식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초콜릿으로 잔뜩 뒤덮인 케이크부터 시녀들이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딩, 방금 구운 듯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온갖 종류의 빵까지.

난 여주를 내 옆에 앉히고선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럼 먹어볼까!”

“이게…… 다 뭐예요?”

이런 걸 처음 본 여주는 놀란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 이건-”

설명하려는 순간, 베른하르트가 아주 못생기고 못난 표정으로 선수를 쳐버렸다.

“이런 것도 몰라? 케이크를 모르다니 바보네.

본인도 안 지 얼마 안 되었으면서, 마치 본인은 원래부터 먹었던 것처럼 어찌나 잘난 체를 해보이던지.

베른하르트가 성격이 나쁜 건 알고 있었지만, 여주에게도 저럴 줄은 몰랐던 터라 황당함에 입만 벌렸다.

“제가 몰라도……. 아마네트님은 절 좋아해주실 거죠?”

베른하르트의 말에 당황하거나 주눅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여주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

“이런 거 몰라도…….”

“그럼 이런 거 몰라도 괜찮아.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니까.”

“바보여도 좋아해주실 거죠?”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집착하는 걸까.

집착하는 상대가 심히 잘못되었는데. 어디서부터 고쳐야나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난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다행이다.”

베른하르트는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잔뜩 노려보았다. 케이크를 제일 먼저 먹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말이다.

‘아 내가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영 싫은 건가?’

그것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나 싶어서 더 보란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만히 나와 엘리를 바라보던 베른하르트는 옆에 놓인 우유를 한 번에 비워버렸다.

“마음에 안 들어.”

“뭐 언제는 내가 하는 일을 마음에 들어하긴 했었어?”

날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그 모습에 나도 괜스레 짜증이 튀어나왔다.

물론 내 말에 대답을 해줄 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좀 친하게 지내. 앞으로 오래 오래 함께 할 사이니까.”

“걱정 마. 잘 지낼 테니까.”

말없는 베른하르트 대신 칼리스토가 우아하게 포크로 자신의 앞접시에 덜어진 케이크를 먹으며 대답했다.

“다행이네.”

“이야기를 좀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갇혀 지냈다는 이야기는 뭐고, 왜 여기에 오게 된 건지.”

“아. 엘리가 직접 말할 수 있겠어?”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엘리는 이제야 말할 용기가 생긴 건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 이야기를 하시 시작했다.

엘리는 햇살 여주로 불렸다. 외향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온몸으로 무해하다는 걸 풍기는 아이였다.

소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풀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는 매력이 있는 무해한 여주인공이자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천사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래서 엘리의 표정을 자꾸만 살피게 된다. 나도 모르게.

“저는…….”

엘 리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기억이 있을 때부터 어느 방안에 있었어요.”

내가 아는 그 뻔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주제는 그리 뻔하지 않았다.

“매번 아팠어요. 그 때마다 원장님이 방을 찾아와 작은 구슬을 내밀곤 하셨어요. 그걸 만질 때마다 아팠구요…….”

“…….”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기한 몸을 지녔다면서 절 보며 만족해하셨어요. 비싸게 넘길 수 있겠다면서요. 그리고 아마네트님이 저를 구해주시기 얼마 전에 누군가가 저를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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