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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1화 (91/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1화

* * *

올리븐이 클로드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못하고 에단에게 갔을 때, 클로드는 사라에게 두 팔을 벌리며 졸랐다.

“유모, 나 안아 줘.”

사라는 웃으며 클로드를 안아 들고는 물었다.

“제가 못난 제자에게 사과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질 못했네요. 죄송해요.”

“괜찮아, 유모는 잘 가르쳐 줬는데 저 아저씨가 바보라서 모르는 거야.”

클로드의 목소리는 퍽 단호했다.

사라는 그 말에 부정할 수 없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사람과 떨어져 짐승들과 섞여 살았던 아이였으니, 좀 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게 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동물의 세계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그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데는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잘 교육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올리븐의 사고가 아직도 그 짐승들의 숲에서 더 자라지 못한 것 같아 사라는 마음이 아팠다.

“다시 가르쳐야죠. 더 엄하게 대하더라도 말이에요.”

“어떻게?”

사라는 클로드를 다시 한번 고쳐 안으며 말했다.

“내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상처받았는지, 제대로 알아야 사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어요. 그걸 모르고 하는 사과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는 법이죠.”

사라는 알고 있었다. 올리븐은 아마 그걸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게 하는 것이 스승으로서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것이 되었으면 했다.

“그걸 알고 나면?”

“그때 사과해야죠. 그리고 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해요.”

사라 또한 그 과정에 있었다.

‘어둠의 꽃’ 때문에 평안하게 살았어야 할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올리븐 또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나는 똑똑하니까 유모한테 잘 배울게!”

“세상에!”

클로드가 호언장담하는 소리에 사라는 밝게 웃었다.

사라의 마음이 불편한 것을 알고 일부러 더 그녀를 웃게 해 주려는 클로드의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애정을 주는 만큼 더 돌려주는 클로드로 인해 사라는 매번 심장을 부여잡으며 행복해했다.

“우리 클로드 님이 최고예요!”

사라는 클로드를 크게 칭찬했고, 아이는 뿌듯하게 웃었다.

누가 보아도 유모는 제자들보다 자신을 더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이겼어.’

아이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맺혔다.

클로드는 아까 올리븐이 오기 전 자신의 방에 들어온 아버지가 했던 말을 똑똑히 새겨 두었다.

‘사라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분명 제자들에게도 상냥할 테지.’

‘맞아요.’

‘아마 사랑하는 제자들이 사고를 쳤으니 골치도 아프고 속도 상할 거야. 이럴 때 사라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줘야 한다.’

‘어떻게요?’

‘우리 아드님은……, 평소대로만 하려무나. 그럼 나머지 제자들은 이 아버지가 다 처리하마.’

‘네!’

에단은 그렇게 당부하고는 클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갔다.

클로드는 아버지와 자신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있다는 게 너무나 뿌듯하고 좋았다.

유모는 아버지와 자신이 제자들을 전부 쫓아낼 생각이라는 걸 알까?

클로드는 사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응?”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에 사라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클로드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유모를 뺏기긴 싫어.’

클로드는 오직 자신만이 유모의 아가였으면 했다.

“유모, 아버지한테 가자!”

“지금요? 지금 공작님은 올리븐과 함께 있을 텐데요?”

“알아, 그러니까 가자!”

클로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다.

아까 에단은 클로드에게 당부했다. 자신이 사라의 제자를 만나게 된다면 사라를 그리로 데려오라고.

“아이참, 알았어요.”

그렇게 사라는 클로드를 안고 걸음을 옮겼다.

올리븐이 부디 에단에게는 사과를 잘 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

에단의 방에서 눈이 벌게진 채 나오던 올리븐과 딱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사과는커녕 잔뜩 그를 도발하고 나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올리븐을 바라보는 사라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올리븐.”

사라가 이름을 부르자 그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죄송해요, 스승님. 스승님을 실망시켰어요.”

분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사라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사라는 더는 올리븐을 오냐오냐 봐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너는 나를 실망시켰어. 네 행동에 대한 반성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구나.”

“…….”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할 뻔한 것, 그리고 내 의지를 전부 무시하고 멋대로 일을 저지른 것 모두 반성할 때까지 내 눈에 보이지 말렴.”

“스승님!”

“마탑에 돌아가기 전까지 부디 깨우쳤으면 좋겠구나.”

쉽지 않겠지만, 이라고 덧붙이며 사라는 그대로 올리븐을 스쳐 지나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휘청이는 올리븐이 안쓰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뒤를 돌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올리븐과 눈이 마주칠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그러지 않았다.

“유모, 저 아저씨 울어.”

사라에게 안긴 채 뒤쪽을 보고 있던 클로드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울어도 돼요. 저지른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데, 제가 저 아이의 마음까지 편하라고 원하는 대로 대해 줄 순 없어요.”

“그렇구나.”

클로드는 사라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에게는 마냥 착하고 상냥했던 사라가 이토록 냉철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유모를 실망시키지 않을게.”

클로드의 말에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로드 님은 이대로 잘 자라 주시기만 하면 돼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응, 그럴게!”

“그럼 여태 몰래 당근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도 그만하시는 거예요?”

“윽, 알고 있었어?”

“그럼요. 그래도 눈을 꼭 감고 드시려는 노력은 하니까 내버려 뒀을 뿐이죠.”

“……알았어. 노력할게.”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클로드를 더 꽉 끌어안으며 사라는 방금까지 씁쓸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꼭 제자들을 마탑으로 하루빨리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클로드에게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어머나, 클로드 님! 저기 공작님이 오셨어요!”

사라는 저 멀리서 이쪽을 보고 있는 에단을 발견했다.

그는 어쩐 일인지 희게 굳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는데 어딘가 분위기가 이상해 보였다.

“……?”

사라는 의아해하며 빠르게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다가오는 사라와 클로드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올리븐이 공작님께 너무 무례했나요?

“……사라.”

“네, 말씀하세요.”

그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머리를 크게 쓸어 올리며 초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묻고 싶은 말들이 켜켜이 쌓여 가는데 그것이 문드러져 금방이라도 썩어 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저 단순한 가정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

누가 보아도 이상한 상태인 에단을 보며 클로드가 그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최근 들어 에단이 자주 그를 안아 주었으니 품에 안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에단은 그런 클로드를 보며 잠시 미간을 좁히다가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확인했다.

사라가 채워 넣어 준 힘이 충만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

에단은 사라의 품에서 클로드를 넘겨받아 안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아직 작고 여린 부드러운 몸이었다. 크게 힘을 주어 안지도 못할 정도로.

만약 사라가 없었더라면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클로드를 이렇게 안아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일 있죠? 공작님 표정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단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가정일 뿐이었다.

“조금 피곤하군요.”

에단의 목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그는 오늘따라 많이 지쳐 보였다.

“죄송해요, 제 제자들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내보내도록 할게요.”

“아닙니다, 그보다. 올리븐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사용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벤야민과 벨루나가요?”

“누구 하나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나서서 일을 돕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마탑으로 돌아가기 싫은 모양이네요.”

“저지른 일이 있으니 만회하려는 노력이겠지요. 그런 김에 몇 가지 부탁을 좀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에단의 말에 사라의 고개가 기울었다.

그녀의 제자들을 탐탁지 않아 하던 에단이 갑자기 부탁할 것이 있다니 의아해진 것이다.

“마법을 쓰는 일이라면 제가 더 잘해요!”

“압니다. 다만 이번에 부탁할 건 그게 아니라서.”

“음, 그럼 일단 제가 벤야민과 벨루나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사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시 클로드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클로드 님, 공작님은 이제 일하셔야 할 시간이에요. 저랑 놀아요.”

“응…….”

클로드는 조금 이상한 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사라에게 가 안겼다.

방금 전 그에게 안겼을 때 희미하게 아버지의 몸이 떨렸던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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