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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2화 (92/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2화

사라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에단의 상태에 걱정 어린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너무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겠어요?”

“물론입니다.”

그런 그를 잠시 살펴보다가 사라는 손에 마력을 일으킨 채 에단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자 화악, 하고 사라의 부드러운 마력이 그의 몸을 감싸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에단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라에게 잡힌 손을 힘겹게 뿌리쳤다.

“……공작님?”

“몸을, 회복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마법을 쓰는 건 최대한 자제하고 쉬도록 하세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시잖아요.”

“사라 제발, 이번만큼은 그냥 내 말대로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라는 간절하지만 단호하게 흘러나오는 에단의 목소리에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굳었던 에단의 어깨가 풀어졌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에단은 뒤를 돌아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뿌리쳐진 손에 어쩐지 한기가 드는 것 같았다.

사라는 에단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클로드에게 말했다.

“공작님이 어딘가 이상해요. 그쵸?”

“맞아. 조금 이상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있었나 봐.”

사라와 클로드가 서로를 마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사이, 뒤를 돌아 집무실로 돌아간 에단은 바로 론다를 호출했다.

에단이 찾는다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로 간 론다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저 무표정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론다.”

그저 그녀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팔에 소름이 삐쭉 돋았다.

분명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한 론다는 긴장하며 대답했다.

“네.”

“사라와 가장 가까운 사용인이 누구지?”

“메이 첸블런입니다. 밀런 소백작님이 유일하게 이름을 허락하시고 말을 놓기도 하는 시녀입니다.”

“이리로 데려와. 사라가 모르게.”

“네.”

론다는 왜 에단이 메이를 찾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저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가 사라와 연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집무실에서 나온 론다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베론에게 물었다.

“주인님께서 이상해.”

“맞아, 주인님은 지금 화가 나셨어.”

“왜지? 나에게 메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어.”

“나한테는 밀런 소백작님의 제자 두 명을 데려오라고 하셨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쌍둥이는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설마.”

“설마.”

더는 말하지 않아도 마주 보는 시선만으로 알 수 있었다.

베론과 론다는 동시에 뒤를 돌아 각자 에단의 명을 수행하러 갔다.

“뭐, 뭔데……. 왜 저걸로 대화가 되는 건데. 어떻게 하는 거야 대체?”

그 두 사람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지 못하는 건 멀뚱하게 서 있던 제이드 하나뿐이었다.

* * *

먼저 에단의 집무실 문을 두드린 건 메이였다.

론다는 사라가 알지 못하게 아주 은밀히 메이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사라에게도, 클로드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자리를 비우게 된 메이는 초조한 낯빛으로 에단의 앞에 섰다.

“사라의 몸 상태에 대해 알고 있나?”

“예? 그게 무슨…….”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본 것과 들은 것이 전혀 없냐는 소리다.”

사라가 쓰러지고 회복한 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 이제 와 새삼 물어보는 것이 의아했지만, 메이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눈치가 좋은 메이는 에단이 무언가 알아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티장에서 그렇게 피를 쏟으며 쓰러지셨으니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신 걸 거야.’

그녀는 사라에게 암브로시아의 힘을 상대하면 피를 토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지키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사라의 인정을 받고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메이는 사라가 가끔 피를 토할 때마다 진심으로 걱정됐다.

저러다가 정말 사라가 죽어 버리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클로드 님도 엄청 슬퍼하실 거야.’

클로드를 위해서라도 사라는 건강해야만 했다.

하지만 메이는 마법사인 사라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걱정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공작이라면, 에단 암브로시아라면 다를 것이다.

메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남자였으니까.

‘공작님은 대단하신 분이니까 분명 사라 님을 저대로 놔두진 않으실 거야.’

클로드에겐 사라가 필요했다. 곁에서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그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비단 암브로시아의 저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암브로시아 저택 모두가 점차 사라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언제나 다정한 그녀에게, 딱딱하고 묵직했던 저택에 따뜻한 바람을 불게 해 주는 사라에게.

‘하지만 내가 사라 님의 몸 상태에 대해 말하면 분명 신뢰를 잃어버릴 거야.’

메이는 사라를 따르는 게 좋았다. 그녀는 이상적인 레이디이기도 했고, 틈틈이 그녀에게 부족한 교양을 알려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저택의 사용인들 중 메이에게만 이름을 허락하고 반말을 편하게 했다.

그 사실을 저택에 있는 다른 사용인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몰랐다.

심지어 베론과 론다까지도 은근히 시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라 님의 신뢰를 잃는 건 싫은데…….’

메이는 사라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그녀가 클로드를 배신하라고 하면 할 거냐고 물었었다.

그때 메이의 답은 아니요였다.

클로드를 위하는 것이 사라가 진정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그 대답에 크게 만족해했다.

마치 사라의 곁에서 그녀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메이의 주인은 클로드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는 듯.

그래서 메이는 줄곧 클로드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움직여 왔다.

‘클로드 님은 사라 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바라실 거야. 그렇다면…….’

머리를 다 굴린 메이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클로드를 위해서라도 사라의 몸 상태에 대해 공작에게 알려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비록 사라의 신뢰를 잃게 되더라도, 클로드를 위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면 받아 주실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메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부디 자신의 말이 사라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라 님께서는……, 그 힘을 제어해 주시고 나면 항상 피를 토하십니다.”

“……!”

메이의 말에 에단은 주먹으로 책상을 크게 치며 벌떡 일어났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며 손톱에 찢긴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처음 저택에 오셨던 날, 제가 우연히 보았습니다. 집사님과 시녀장님의 표정을 되돌려 주고 혼자 남아 계실 때 피를 토하는걸요.”

에단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택에 온 첫날이라면 황궁에서 쓰러진 이후부터 몸이 안 좋아진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힘 때문에 피를 토해 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 왔으면서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에단의 앞에서 웃어 보였던 것이었다.

“또 언제 사라가 피를 토했지?”

“지난번 1황자님과 마찰이 있었을 때, 피를 엄청 토하셨어요. 그리고 그 뒤로 5일 동안이나 주무셨고요.”

메이는 그때 사라가 토했던 피의 양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빨래방에서 그 흔적들을 치우며 섬뜩함에 얼마나 몸을 떨었는지 모른다.

“사라 님은 별거 아니라고 하셨어요. 마력을 과하게 사용하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에단 또한 그 말을 직접 사라에게 전해 들은 적 있었다.

하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몸에 힘을 주지 못하긴 했으나 피까지 토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에단은 그 사실에 더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왜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지?”

“암브로시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요. 클로드 님과 공작님을 포함해서요.”

“…….”

에단은 어렴풋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암브로시아 사용인들이 그의 힘이 폭주한 이후부터 부쩍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그도 눈치챘다.

클로드를 조금씩 피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사라는 아마도 그걸 염려했을 것이다.

마법사인 사라조차도 암브로시아의 힘 앞에서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면 인간은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체……. 왜 나와 클로드에게 그렇게까지.”

사라는 6년 동안 이 힘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황궁에서 그녀를 쓰러지게 만든 그 마력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녀는 6년 동안 암브로시아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토해 왔을까.

어떻게 그런 일을 그 여린 몸으로 다 견뎌 내며 그와 클로드의 앞까지 왔을까.

마치 구원과도 같았던 기적이 한순간에 그를 지옥으로 다시 처박았다.

‘소중한 것을 잃을 것이다……!’

어머니의 저주가 실현되는 순간이 바로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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