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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98화 (98/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98화

사라가 피를 토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 뒤.

암브로시아 저택에는 정말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녀가 조금만 거동을 해도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노골적인 시선들이 줄기차게 따라붙었다.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이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밀런 소백작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뭐 하나 하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자신들이 하겠다며 거들지를 않나.

‘조금 무겁지 않나?’

‘공방에 연락을 넣어서 식기를 다시 제작하라고 해야겠어.’

‘여태 이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군.’

심지어 식사를 할 때도 그녀의 손에 들린 스푼이 무겁진 않을까 염려하기까지 했다.

“……유모, 어디 아파?”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클로드 하나뿐이었지만, 아이 또한 저택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클로드가 말간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묻자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사라는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다들 걱정이 늘었네요. 쓸데없이.”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사라의 취급은 아주 180도 달라졌다.

사라의 방문 앞에는 늘 꽃다발과 함께 각종 효험이 있다는 신전의 축복을 받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에 쥐면 터질까.

아주 전전긍긍하면서 노심초사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함에 사라는 처음으로 가출이라는 걸 해 보고 싶어졌다.

대마법사인 그녀에게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유리 인형 취급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리 오세요.”

사라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클로드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스푼조차도 거슬려 했던 암브로시아의 사람들이 그걸 가만두고 볼 리 없었다.

“제가 대신 안겠습니다.”

클로드가 사라에게 안기려던 찰나에 론다가 순식간에 아이의 몸을 달랑 안아 들었다.

사라가 아닌 론다의 품에 안기게 된 클로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

서로를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굳어 버린 사라와 클로드 사이에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저 멀리서 에단이 사라와 클로드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곤란한 상황에 에단이 다가와 주는 게 좋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좋지 않았다.

“사라, 몸은 어떻습니까.”

암브로시아 사람들 중 가장 요란을 떠는 것이 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색이 좋지 않은데. 얼굴도 좀 굳었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사라를 살피던 그가 굳은 얼굴로 론다를 보며 물었다.

“오늘 사라가 먹은 것이 뭐지?”

“신선한 샐러드에 버섯 수프를 드셨고 빵은 오늘 제빵사가 직접 구운 바게트를 드셨습니다. 속이 답답하시다 해서 고기류는 올리지 않았고 구운 연어에 부드러운 소스를 뿌린 요리만 조금 손대셨을 뿐입니다.”

론다는 오늘 사라의 입속으로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 줄줄 읊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사라의 얼굴이 조금 질린 듯이 창백해졌다.

클로드 또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체할 만한 것은 없는데…….”

에단은 심각한 얼굴로 제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사라는 미간을 은근히 좁히며 말했다.

“저 몸도 괜찮고요, 가뿐하고요. 아무런 이상 조짐도 없고 마력의 흐름도 아주! 좋아요.”

“그런데 왜…….”

“답답해서 그래요. 다들 지금 저한테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알아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요!”

사라는 정말 답답한 것처럼 가슴을 치며 울상을 지었다.

클로드도 못 안게 하고, 밥 먹는 것도 검수의 검수의 검수를 받아서 먹어야만 하고.

제자들이 암브로시아의 힘을 다시 연구하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근처에도 못 가게 하질 않나.

그간 꾹꾹 눌러 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저 좀 예전처럼 그냥 자유롭게 다니면 안 될까요?”

“사라…….”

울상을 짓는 사라의 얼굴을 보던 에단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사라를 상대로 고집을 피우기엔 에단은 그녀의 앞에서 철저한 약자였으니 말이다.

“공작님, 저 진짜 괜찮단 말이에요…….”

“맞아요, 아버지. 유모 안 아파요!”

이번엔 클로드까지 사라의 편을 들어주었다.

클로드도 이제 사라의 품에 안겨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예민하게 구는 사용인들에게 질린 참이었다.

그렇게 두 쌍의 간절한 시선이 에단에게 꽂혔다.

“…….”

그의 얼굴이 곤란한 듯 흐려졌다.

이제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은 느낌에 사라는 순간 눈을 빛냈다.

“잠깐 산책만 조금 하고 오면 안 될까요? 바깥나들이도 좀 하고 싶고, 클로드 님한테도 일렉사 님과 만나게 해 준다는 약속도 못 지키기도 했고…….”

일렉사라는 이름에 클로드는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일렉사가 저택으로 초대한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보지 못한 채 꽤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에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사라와 클로드가 환호성을 지르려던 순간이었다.

에단이 손짓하자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빠르게 달려왔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밀런 소백작님. 클로드 님.”

암브로시아의 휘장을 걸친 기사단이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암브로시아 기사단을 대동한다는 전제하에 외출을 허락하겠습니다.”

에단의 말에 사라와 클로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으로 변했다.

완전 중무장을 하다시피 한 기사단은 그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사라와 클로드를 지킬 것이라는 다짐이 뚝뚝 묻어 나오는 근엄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짜 밉다.”

“맞아. 진짜 미워.”

클로드 또한 사라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원망이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에단의 얼굴이 살짝 굳었으나, 그는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자 중에 올리븐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자가 언제 또 지난번과 같은 사고를 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작님!”

에단은 팔을 뻗어 사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나직한 시선을 내려 불만이 가득한 그녀를 바라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두 번 다시 무기력하게 그대가 피를 토하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윽.”

그 말에 사라는 잠시 몸을 떨며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에단이 저런 얼굴과 이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사라는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떨 때는 에단이 그녀가 이런 모습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저러나 싶기도 했다.

“……유모오.”

사라가 흔들리는 것 같자 클로드가 론다의 품에서 발버둥을 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클로드 또한 사라 못지않게 극도로 예민해서 과보호를 일삼는 저택의 분위기가 답답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사라는 이내 큰 결심을 한 듯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좋아요, 공작님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어쩔 수 없죠.”

“고맙습니다, 사라.”

에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는 안심이라도 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라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어요.”

그녀는 론다의 품에서 조용히 절망하고 있는 클로드를 잽싸게 낚아챘다.

그러고는 클로드를 단단히 옆구리에 낀 채 말했다.

“공작님 말 안 들을 거니까요.”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에단이 무어라 할 새도 없이 사라는 클로드를 들고 튀었다.

“사라!”

정말 말 그대로, 튀었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 에단의 손끝으로 흩날리는 사라의 머리칼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아무도 저 못 잡아요! 클로드 님이랑 놀다가 들어올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사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두 발 밑에 작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사라를 쫓던 기사단과 사용인, 그리고 에단은 경악하여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위험합니다, 사라!”

“괜찮아요!”

사라는 속 시원하다는 듯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허공에 뻗었다.

익숙한 마법진이 그녀의 눈앞에 빠르게 그려졌다.

순간 이동을 해 주는 마법진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클로드는 잔뜩 신이 난 얼굴을 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깔깔 웃으며 외치는 사라의 말과 함께 마법진이 순식간에 그녀와 클로드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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