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00화
“흑, 흐윽…….”
가까이에서 일렉사의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거리던 클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라를 바라보았다.
“저기에 일렉사가 있나 봐!”
“그런가 봐요. 어쩜……,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또 울고 계시니 마음이 좋지 않네요.”
“그러게. 저번에는 아버지를 자주 못 봐서 슬프다고 했었어.”
클로드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다가 다시 번쩍 들었다.
“내가 일렉사를 웃게 해 줄게!”
“그래요, 우리 클로드 님은 못 하는 게 없으니까! 분명 일렉사 님도 클로드 님을 보면 힘을 내실 거예요.”
“응!”
사라의 격려에 클로드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걸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사라는 웃음을 흘리며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따라갔다.
그렇게 조금만 더 걸어가니 저 구석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일렉사의 동그란 머리가 보였다.
“일렉사!”
클로드가 사라의 손을 놓고 일렉사를 향해 뛰어갔다.
“……클로드?”
그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일렉사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렉사의 눈에는 클로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려온 클로드의 목소리에 일렉사는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클로드,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클로드는 일렉사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런 클로드의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리자 일렉사가 깜짝 놀라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으악!”
“어머나!”
사라가 재빨리 마력으로 일렉사의 등 뒤를 받쳐 주었다.
일렉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의 등을 밀어 주는 힘에 놀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먹였다.
“저런……. 클로드 님, 지금 일렉사 님에겐 우리가 안 보일 거예요.”
“아, 맞다!”
클로드는 사라가 힘을 불어 넣어 준 브로치를 잠시 옷에서 떼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부릅뜬 일렉사의 눈에 천천히 클로드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비쳤다.
“클로드?”
일렉사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놀라자 클로드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 브로치 때문에 내가 안 보였나 봐! 나 유모랑 같이 일렉사를 보러 왔어!”
“안녕하세요, 일렉사 님.”
이제야 사라와 클로드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된 일렉사가 두 눈을 손으로 비비며 물었다.
“정말 클로드야?”
“응!”
“……흐으.”
정말 눈앞에 있는 것이 클로드라는 것을 확인한 일렉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곤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클로드를 꽉 끌어안았다.
“클로드으…….”
그를 끌어안고 서럽게 우는 일렉사를 보며 당황한 클로드가 어색하게 등 뒤로 팔을 둘러 토닥여 주었다.
“왜 그래? 왜 울고 있어?”
혼란스러운 클로드의 시선이 다급하게 사라를 찾았다.
사라는 그런 클로드와 눈을 맞추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슬픈지는 몰라도, 갑자기 클로드가 나타난 것에 대해 일렉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아 무언가 일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사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자 일렉사는 클로드를 놓아주며 크게 훌쩍거렸다.
“……어머니가 많이 아파.”
“왜?”
“몰라. 유모가 하는 말을 몰래 들었는데 엄청 아프다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일렉사의 말에 클로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클로드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했다.
“어떡하지?”
“흑, 흑…….”
털어놓고 나니 더 서러운지 일렉사는 크게 가슴을 들썩거리며 울었다.
사라는 안타까움에 숨을 삼키며 일렉사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이럴 때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되겠어요?”
“나는 평소에도 어머니를 볼 수 없는걸…….”
“평소에도 볼 수 없다뇨?”
“유모가 어머니 옆에 가까이 가면 안 된대. 더러운 피가 옮는다고 그랬어.”
“뭐라고요?”
사라는 일렉사의 말을 전부 들었음에도 경악하여 되물었다.
어머니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게 하고, 더러운 피가 옮는다는 막말까지 퍼붓다니.
이 저택은, 그리고 일렉사의 유모는 오롯이 3황자가 자신의 연인과 아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모자가 나란히 천대받고 있었다.
‘크라시다 오를린, 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말 못 쓰겠군.’
본인도 오를린 가문의 사생아라는 아픔을 지녔을 것이 분명한데, 똑같이 사생아로 태어난 일렉사에게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의사는 부르던가요?”
“아니……. 들키면 안 된다고 신중해야 한대.”
“그럼 일렉사 님의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바빠서 아직 모르셔.”
“하…….”
사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만 싶어졌다.
3황자가 알게 된다면 이 저택을 전부 뒤집어엎고야 말 것이다.
크라시다 오를린이 이렇게 독단으로 저지를 수 없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3황자의 실수였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그렇지.”
“유모…….”
그때 클로드가 사라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으로 사라를 보며 작게 손짓했다.
“왜 그러세요?”
“있잖아…….”
클로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무언가 결심했는지 사라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유모는 대마법사니까, 일렉사의 어머니를 고쳐 줄 수 있지 않을까?”
“……음, 심각한 병이 아니라면요.”
사라의 대답에 클로드의 안색이 조금은 좋아졌다.
어쨌든 무언가 희망이 있다는 거였으니까.
“그럼 유모가 마법사라는 걸 일렉사에게 말해도 될까?”
“이미 다 들켰으니까 괜찮아요.”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어둠의 꽃에서 황제가 되는 사람은 3황자였다. 그런 3황자의 아들인 일렉사는 장차 황태자가 될 인물이었다.
크롬벨 제국의 황제가 될 3황자는 사라가 마법사라는 걸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물론, 미래를 모르는 에단은 약간 걱정할 테지만 말이다.
“일렉사 님만 알고 있으라고 하면서 살짝 말해 주세요.”
“알았어.”
클로드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렉사에게 다가가 그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그러자 클로드의 말을 듣고 있던 일렉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되물었다.
“마법사가 뭐야?”
“…….”
거기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마법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듯한 일렉사를 보며 클로드는 당황한 듯 사라를 바라보았다.
사라는 웃으며 클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클로드의 얼굴에 비장한 자부심이 깃들었다.
“마법사는 있잖아, 신기한 일을 잔뜩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하늘도 날 수 있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고, 막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클로드의 두서없는 설명에도 일렉사는 잘 알아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도 울어 짓무른 눈으로 그렇게 눈을 크게 뜨니 그 모습이 퍽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사라는 조용히 마력을 일으킨 손으로 일렉사의 눈가를 쓸어 주었다.
“……!”
그러자 부어오른 눈이 가라앉으며 일렉사의 시야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지끈거리며 아프고 열이 나던 몸도 가뿐해졌다.
“와…….”
일렉사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감탄사를 터트리며 더듬더듬 눈가를 만져 보았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사라는 혹시 여신님이야?”
“어머, 저는 그냥 마법사랍니다.”
순진한 물음에 사라는 웃으며 일렉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신기하게 눈을 깜빡이던 일렉사는 순간 퍼뜩 무언가 생각났는지 다급하게 사라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러면, 그러면 어머니한테 갈 수도 있어?”
“물론이죠.”
“……!”
“잘됐다, 일렉사!”
사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일렉사와 클로드의 얼굴이 동시에 환해졌다.
토끼 같은 두 아이가 동시에 눈을 반짝이자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러곤 조용히 손끝에서 마력을 일으켜 일렉사의 어머니인 페넬로아가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이 저택에서 가장 큰 방, 그리고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
그곳에 일렉사의 어머니인 페넬로아가 누워 있었다.
사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일렉사를 향해 물었다.
“어머니를 만날 준비가 되었나요, 일렉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