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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07화 (107/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07화

일레온은 두 눈을 빛내며 스산하게 웃었다.

“페넬로아, 날 믿는다면 내게 맡겨 줘. 나는 이모님이 가장 끔찍해하는 비밀을 알고 있거든.”

“……믿을게.”

페넬로아는 일레온이 저런 눈을 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일레온이 황족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가 바로 이럴 때였다.

“그럼 네가 잘 족쳐 놔. 다신 우리 일렉사를 두고 그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게.”

“응, 맡겨 줘. 나 정말 잘할 수 있어.”

일레온은 언제 스산하게 웃었냐는 듯 두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페넬로아는 마치 출전을 앞둔 기사를 격려하는 레이디처럼 그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일레온이 그녀의 손바닥에 제 뺨을 비비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밀런 소백작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페넬로아는 일레온이 보고 있던 영상 수정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께 큰 도움을 받았어.”

“그렇지.”

일레온은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보았던 사라 밀런과 클로드를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따스하고도 정다웠던 분위기는 그가 언젠가 일렉사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비록 그는 그렇게 해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현실을 깨닫자 저절로 입 안이 썼다.

“그녀가 마법사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일레온은 이제야 황제가 어째서 그렇게 밀런 소백작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황실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2황자와 3황자가 크게 다칠 뻔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밀런 소백작과 암브로시아의 입김에 조용히 넘어가게 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황제는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리오르 형님은 아마 모르고 있을 테고…….’

일레온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그는 이미 암브로시아 공작과 서로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클로드와 일렉사를 친구의 연으로 맺어 주자고.

그런 클로드의 유모가 마법사라니.

앞으로 일렉사가 황족으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클로드와 사라 밀런의 존재가 일렉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3황자인 일레온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터였다.

“일렉사 덕분에 좋은 연을 만들게 됐네.”

“이제라도 알았으면 앞으로 친하게 지내. 내 은인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네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잖아.”

“그래.”

일레온은 자신의 앞날을 살펴 주는 페넬로아에게 감동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았다.

“네가 하라는 건 다 할게.”

* * *

“아하하! 클로드 님! 잠시만요!”

“유모가 먼저 했잖아!”

창밖으로는 클로드와 사라의 청명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은 정원 곳곳에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들이 큼직큼직하게 허공에 떠 있었다.

사라와 클로드는 그 물방울들을 잡아 서로에게 던지며 놀고 있었다.

“아악! 다 젖었어요!”

“다시 말리면 되잖니!”

“사라 님, 저도 말려 주세요!”

“어딜!”

그중에는 메이와 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는 론다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다가 서둘러 사라의 뒤로 숨어 버렸다.

“어머, 내가 숨겨 줄 줄 알았니?”

그녀에게 유감이 있었던 사라가 메이의 두 어깨를 잡고 론다의 앞으로 쑥 밀어 버렸다.

“헉, 사라 님. 잠깐, 악!”

론다가 던진 물방울이 메이의 얼굴에 적중하며 퍽 하고 터졌다.

“아하하! 메이 다 젖었어!”

그러자 클로드가 맑게 웃으며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메이에게 다가갔다.

축 늘어진 그녀의 치맛자락을 쭉 짜니 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런 와중에도 메이의 옷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짜 주려고 하는 클로드를 보며 그녀는 심장을 감싸 쥐었다.

“감사합니다……, 클로드 님.”

메이는 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을 하고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라는 손가락을 튕겨 메이가 뽀송해질 수 있도록 물기를 단숨에 말려 주었다.

“아직 좀 더 놀아야지.”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에게서 푸른 마력이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반짝반짝 신비롭게 빛나던 마력들이 동그랗게 모이며 투명한 물방울들이 되는 광경을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그럼. 또 놀 준비가 되었나요, 클로드 님?”

“응!”

클로드는 눈을 빛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사라는 그런 클로드를 보며 햇살처럼 웃었다.

“…….”

그 얼굴을 보기 위해 에단이 집무실 창을 통해 정원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습관이라 불려도 될 정도였다.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매단 채 창밖을 보고 있는 에단에게 제이드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밀런 소백작님과 클로드 님은.”

“언제나 그렇지.”

“저렇게 마법을 쓰셔도 괜찮을까요?”

“사라가 괜찮다고 했으니 믿어야지, 어쩌겠나.”

에단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 아래에서 사라가 노니는 게 마음이 놓였다.

사라는 에단과의 약속을 아주 착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항상 집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에서 클로드와 함께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으니 좋아.”

어느 날은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티타임을 가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클로드와 잔디에 앉아 함께 책을 읽다가 잠들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제자들을 불러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가, 또 어느 날은 그들에게 신비로운 마법을 구현하며 마법 수업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집무실 창문을 통해 아래를 바라보자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던 사라와 쉽게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앗, 공작님!”

에단의 시선을 느낀 사라는 가끔씩 이렇게 그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줄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의 기분은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

그의 입매가 느슨하게 풀리며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사라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녀는 맑게 웃으며 클로드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러곤 클로드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아이가 에단을 보며 양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하하.”

결국 그의 입술 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라는 그것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하게 웃었다.

에단의 뒤에서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제이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네요.”

“경.”

“네?”

“일하지.”

“앗, 넵.”

잠시 멍하니 있던 제이드는 에단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신도 모르게 슬금슬금 앞으로 가 에단과 함께 나란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후.”

에단은 작게 한숨을 쉰 후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라와 클로드는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며 에단이 그들을 봐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목을 쭉 빼고 있었다.

그러다 에단과 눈이 마주치자 사라와 클로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공작님! 저희 잘 보여요?”

“아버지! 저 재밌게 놀고 있어요!”

“같이 놀자고 해 보세요, 클로드 님.”

“저랑 같이 놀아요! 재밌어요!”

제이드에게는 일하자고 한 주제에, 에단은 좀처럼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라와 클로드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다가 이내 창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놀자는 걸 힘겹게 거절하고 나서야 그는 다시 제이드를 볼 수 있었다.

“……좋으셨습니까?”

“그랬지.”

제이드의 목소리에서는 아주 미세한 원망이 묻어 나왔지만 에단은 가뿐하게 무시했다.

“아까 듣던 보고나 마저 듣지.”

“일전에 1황자가 지내고 있는 알톤 영지에 알 수 없는 장막이 생겼다고 보고 드렸던 것 기억하시지요? 파견 보냈던 정보원이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인간은 외부에서는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근처에 있던 식물들은 모두 죽고 장막에 닿았던 동물들 또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오직 마물들만 그 장막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게 확인됐습니다.”

“…….”

“하늘은 거무죽죽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근처 영지의 영지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제이드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에단의 얼굴은 점차 굳어졌다.

“주군 이건 아무래도……, 마법 같습니다.”

“그렇겠지.”

이 사태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사라에게 알릴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마냥 감싸 줄 수 없을 만한 일을 벌이고 있는 제자를 보면 제아무리 강한 사라라고 해도 결국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는 황실로 소식이 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황자와 알톤 영지로 쫓겨났던 귀족들의 소식까지 끊겼으니 황제가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분명 황제는 사라를 찾을 테지. 그자와 사라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을 만한 모든 걸 다 끊어 내.”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에단은 잠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에 잠겼다.

이번 일이 황실은 물론이고 귀족들에게 퍼졌을 때, 황제가 사라를 찾아 대기 시작하면 곤란했다.

그는 알톤 영지와 사라가 엮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전부 차단해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황제는 사라에게 빚을 지어 놓으려고 할 테고 그녀의 힘을 탐할 테니까.

“2황자와 3황자 측에 전해. 적당한 명분 없이는 암브로시아에서는 사라 밀런을 내어 줄 수 없다고.”

“네. 그리고 2황자가 밀런 소백작님에게 보낸 초대장들은 어떻게 할까요?”

제이드의 물음에 에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그러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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