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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13화 (113/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13화

에단이 내쉬는 숨결 하나하나가,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쿵쾅이며 격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머릿속을 온통 뒤흔들었다.

“아직도 그날 황궁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가질 않습니다.”

“……공작님.”

“내 품에서 피를 토하던 당신 모습이…….”

에단은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감았다.

그는 그때의 무력감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사라가 피를 토하는 이유가 그의 안에서 잠자고 있는 암브로시아의 힘 때문이라는 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온몸을 긁어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한다.

“이번에도 당신이 홀로 그곳에서 쓰러지게 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에단은 감았던 눈을 뜨고 사라와 눈을 마주했다.

굳은 결심이 서린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사라는 심장이 아주 빠듯하게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저런 얼굴을 하도록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죄송해요.”

“사라가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온전히 내 문제니까.”

씁쓸하게 흘러나오는 에단의 목소리에는 자괴감마저 묻어났다.

그가 느끼고 있을 괴로움이 너무나 절절하게 흘러나와서, 사라는 다급해졌다.

“공작님 문제가 아니에요. 그저 제가 조금 더 주의했었더라면…….”

“사라.”

에단은 먹먹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당신이 이렇게 나와 클로드를 위해 희생할 일은 없었을 겁니다.”

“…….”

“그러니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하게 해 줘요.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지킬 수 있도록.”

에단의 말을 듣고 있던 사라는 귓가를 웅웅 울릴 정도로 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클로드의 유모로서, 암브로시아의 힘을 제어해 줄 마법사로서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그의 얼굴과 그의 행동을 보고 느끼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에단에게 그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떡하지…….’

에단 암브로시아는 강한 사람이었다. 귀족들에게 막강한 황권을 휘두르는 황제조차도 그의 앞에서는 쉬운 명 하나도 내리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암브로시아 공작가의 명성을 더 드높게 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진 남자였다.

그녀도 밀런 백작가의 사람으로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저 먼발치에서 그를 본 적 있었다.

쉬이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 호시탐탐 그를 바라보던 귀족들의 탐욕스러운 시선.

그 시선 끝에 무덤덤한 얼굴로 자리하던 에단의 다른 모습을, 사라는 알고 있었다.

‘착각하게 될 것 같아.’

에단 암브로시아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가끔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어쩌면 그녀 혼자만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화끈한 열이 올라왔다.

“그렇게 할게요. 같이 가요…….”

사라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에단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클로드 님은…….”

“데려갈 순 없습니다. 그자가 알톤 영지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저택에 클로드 님 혼자 남게 될 텐데요.”

“괜찮지 않겠습니까. 저택엔 사라의 다른 제자들이 있으니까요.”

“아.”

사라는 그제야 저택에 남아 있는 벤야민과 벨루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는 두 아이 모두 마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마탑의 마법사들이 곧 암브로시아 저택에 도착할 것이다.

마탑에서 흑마법을 연구하던 이들이 대거 빠져나간 일로 조금 늦어졌지만, 곧 그들과 협상해 벤야민과 벨루나에게 처분을 내릴 생각이었다.

“이 시점에서는 암브로시아 저택에 남아 주는 편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에단의 설득에 사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흑마법은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확실히 벤야민과 벨루나가 암브로시아 저택에 남아 준다면 클로드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클로드 님이 벨루나는 좀 좋아하는 것 같은데, 벤야민은 아직도 경계를 해서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에단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하며 말했다.

그는 벤야민을 바라보던 클로드의 장난스러운 눈동자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꽤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클로드 님이 벤야민을요?”

“뭐, 조금 더 시간을 가져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사라에게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두 사람이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보죠.”

“그럴까요?”

사라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에단은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

“아, 그리고 3황자 측에서 연락을 해 왔습니다.”

“뭐라던가요?”

“황제가 알톤 영지에 3황자와 2황자를 둘 다 보내기로 결정했답니다.”

“두 황자 다요? 위험할 텐데요.”

“어느 황자가 황궁에 남든 결국 황궁에 남아 있는 쪽에 힘이 실릴 테니까요.”

“저런.”

사라는 작게 혀를 찼다. 황제는 1황자를 제외한 두 아들 모두 경계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에게 힘이 실리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처사였다.

아직도 1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저버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3황자가 알톤 영지에 가 있는 동안 일렉사와 연인의 보호를 부탁했습니다.”

“그렇군요……. 3황자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사라는 잘됐다는 듯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3황자에게는 일렉사와 페넬로아를 맡길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믿었던 일렉사의 유모인 크라시다가 그의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방금 전 그녀는 크라시다가 페넬로아의 약에 독을 넣었다는 정황을 알아낸 차였다.

3황자에게 이 일을 알리기만 한다면 그는 정말 홀로 그 둘을 보호해야만 했다.

이런 시점에서 암브로시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

“두 사람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3황자가 황제의 동태를 전부 다 파악해 이쪽에 넘겨주기로 하였으니, 나쁜 거래는 아닐 겁니다.”

“좋은 조건이네요. 클로드 님도 저희가 없는 동안 심심하지 않을 거예요. 일렉사 님이 곁에 있을 테니까.”

사라는 은근히 걱정되었던 클로드를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외로움을 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친구가 곁에 있다면 조금은 덜할 것이다.

“알톤 영지까지 2황자가 먼저 출발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 뒤를 3황자와 함께 움직이게 될 겁니다. 구체적인 것은 황제와 협상을 해 봐야 알겠지만.”

“황후 폐하와 제가 나눌 이야기가 많아지겠네요.”

“그 부분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라는 자신 있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황후와의 만남은 황제와 독대를 하기 위한 명분에 가까웠지만, 그녀는 황후와 나눌 말이 아주 많았다.

3황자와 그의 연인, 그리고 아이에 관한 일이었다. 황후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크라시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황후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보다, 준비해야 할 게 많아졌네요. 일단은 클로드 님과 벤야민이 친해지는 것부터 해야겠네요.”

“사라의 제자가 고생을 좀 하겠지만, 필요한 과정이니 충분히 인내해 주겠지요.”

“그럼요. 벤야민은 어른이니까, 클로드 님을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길 바랍니다.”

에단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벤야민이 클로드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는 사라에게 굳이 말해 주지 않았다.

그편이 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으니 말이다.

“일렉사 님과 페넬로아 님을 먼저 이쪽으로 모셔와야겠어요. 벤야민과 클로드 님을 보내 마중하게 할까요?”

“좋은 생각이군요. 그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죠?”

사라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에단 또한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여태 잡고 있었던 사라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보낼 시간도 생각해 주면 좋겠군요, 사라.”

“네?”

“3황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알톤 영지까지 쭉 함께하게 될 테니까.”

“아…….”

“클로드 없이 오직 나와, 둘이.”

에단의 말에 사라의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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