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16화
화려한 촛대에서 일렁이던 촛불이 은은한 빛을 내며 식당을 은근한 분위기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긴 식탁에는 척 보아도 주방장이 혼신의 힘을 쏟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흰 테이블 커버 위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뿌려져 있었고, 크리스털 물잔에 담긴 물이 투명한 빛을 내뿜으며 오팔처럼 반짝였다.
누가 보아도 평소보다 더욱 힘을 준 저녁 식사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
“…….”
그리고 사라와 에단은 그 긴 식탁의 끝에 각각 앉은 채 가운데에 자리한 클로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흐응, 흥흥.”
클로드는 기분이 좋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하.”
사라와 에단은 한껏 분위기를 낸 식사 자리에서 기분 좋게 발을 구르는 클로드를 보며 각자 헛웃음을 삼켰다.
에단의 시선이 조용히 론다를 향하자 그녀는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그 뒤에는 메이를 포함한 다른 사용인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지만, 이번만큼은 그들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맛있어요, 클로드 님?”
“응!”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버지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유모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 클로드의 기분은 아주 최고조였다.
사라는 잠시 허탈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클로드를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클로드 님이 좋으면 저도 좋아요.”
“헤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에단 역시 조용히 한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너무 급히 먹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네, 아버지!”
클로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아이의 두 뺨에 발그레하게 오른 홍조를 보며 에단은 작게 웃을 수 있었다.
“귀여우셔라.”
사라 또한 기분 좋은 아기 고양이 같은 클로드와 그런 아이를 보며 웃는 에단을 바라보며 뺨을 붉혔다.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저택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두 남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래, 곧 알톤 영지로 떠나게 된다면 클로드 님이 얼마나 외로우시겠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 둬야지.’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식기를 들었다.
그때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에단이 나직한 목소리로 클로드를 불렀다.
“……클로드.”
“네?”
“우리 사이의 거리가 조금 먼 듯하구나.”
“……?”
에단의 말에 클로드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자신과 아버지의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사라와 에단은 각각 끝에 앉아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클로드는 그 가운데에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과도 꽤 거리가 있었다.
평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옹기종기 앉아 아침 식사를 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맞아요.”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저런.”
에단은 그런 클로드를 보고 살짝 웃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며 클로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으로 가도 되겠니.”
“……!”
클로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식기를 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클로드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에단은 제 앞에 놓인 접시를 집어 들고는 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주군, 제가…….”
“괜찮다.”
옆에서 베론이 접시를 옮겨 주려고 했지만 에단은 손수 접시와 와인 잔을 들고 클로드의 옆으로 갔다.
론다가 재빨리 의자를 들어 클로드의 옆에 놓아 주었고 사용인들은 테이블보를 다시 세팅했다.
“히히.”
클로드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제 옆으로 온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댄 에단은 잠시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한번 바라보다가 이내 그대로 클로드의 머리에 얹었다.
그러곤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 주며 말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더 많이 보내자꾸나. 그래야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의젓할 수 있겠지.”
“네!”
클로드는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듯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다정하게 시선을 마주하던 두 부자의 눈길은 저 멀리 반대편에 있던 사라를 향했다.
“으음.”
사라는 두 사람의 시선에서 반짝반짝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아 작게 신음을 삼켰다.
그녀도 이리 오라는 듯이 클로드는 비어 있는 제 다른 쪽 옆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사라를 봤다.
에단 또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은근히 미소 짓고 있었다.
“으, 정말.”
세상에서 그녀의 마음을 가장 말랑하게 녹일 수 있는 두 남자의 시선에 사라는 결국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라가 앉았던 의자와 접시들이 반짝이는 빛에 휩싸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와!”
클로드는 순간 넋을 잃고 감탄했다. 사라의 접시와 의자를 옮겨 주려던 사용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혼자서도 잘한다고요.”
사라는 생긋 웃으며 클로드의 옆으로 갔다.
그녀의 접시와 의자는 사라가 손짓하는 대로 허공을 날며 클로드의 옆에 착착 하고 자리했다.
사라는 그렇게 놓인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에단과 클로드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옆에 앉으니까 좋네요.”
“맞아, 너무 좋아!”
클로드는 한껏 들뜬 기분으로 왼손으로는 사라의 손을, 오른손으로는 에단의 손을 잡았다.
“어머?”
“음?”
각각 손을 잡힌 사라와 에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로드는 그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헤헤 웃었다.
“이래서는 식사는 어떻게 하시게요?”
“유모가 먹여 주면 되잖아!”
“아하.”
클로드의 작은 투정 어린 애교에 사라는 사르르 녹아내리는 심장을 부여잡고만 싶어졌다.
그녀는 결국 클로드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포크로 샐러드를 푹 찍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자아. 아, 하세요.”
“아.”
클로드는 귀여운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려 사라가 주는 샐러드를 받아먹었다.
‘……귀여움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닐까?’
사라는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여움이 너무 과했다. 심장에 좋지 않았다.
“골고루 먹어야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에단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작게 타박하며 작은 크기로 자른 구운 오리고기를 포크로 찍어 클로드에게 내밀었다.
“아.”
클로드는 눈이 다 휘어지게 웃으며 에단이 주는 고기도 냉큼 받아먹었다.
그리고 에단의 손을 잡고 있는 제 손을 작게 흔들며 속삭였다.
“아버지, 유모도요.”
“음?”
“유모도 골고루 먹어야 해요.”
“아, 그렇지.”
클로드의 재촉에 에단은 웃으며 구운 오리를 포크로 찍어 이번엔 사라에게 내밀었다.
사라는 순간 강하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가 먹을 수 있는데.”
“아, 하세요. 사라.”
웃음기를 담았지만 단호한 에단의 목소리에 그녀는 결국 작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
“옳지.”
에단은 웃으며 그녀의 입에 오리고기를 넣어 주었다.
사라는 오물오물 고기를 씹으며 에단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차례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사라의 앞에 놓인 샐러드를 바라보았다.
“……윽.”
그 시선에 못 이겨 사라는 포크로 샐러드를 찍고는 손을 뻗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따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포크 끝이 떨리는 게 보였는지 에단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 제 손을 겹치며 부드러운 손길로 끌어당겼다.
그러곤 사라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술을 벌렸다.
“……!”
에단의 수려한 입매가 천천히 벌어지고 그 안에 붉은 혀가 보이자 사라의 얼굴은 타오를 것처럼 달아올랐다.
샐러드를 받아먹던 에단의 입꼬리에 소스가 살짝 묻었다.
에단은 사라의 손을 놓아주면서 엄지로 제 입가에 묻은 소스를 훔치며 사르르 웃었다.
“고맙습니다, 사라.”
“……으, 네.”
그 모습이 어쩐지 굉장히 야릇한 분위기를 풍겨서, 사라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말았다.
어쩐지 아까부터 거세게 뛰던 심장이 쉬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암브로시아의 두 남자는 그녀의 심장에 해로웠다.
“…….”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바로 눈앞에서 직관한 클로드는 가늘게 뜬 눈으로 사라와 에단을 번갈아 보았다.
“흐응?”
눈치가 아주 빠른 아이의 한쪽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