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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19화 (119/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19화

에단이 무어라 사라에게 말을 하려던 찰나.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수정구를 빤히 바라보던 2장로가 사라를 불렀다.

“대장로님?”

“……네?”

“자세히 보니 조금 알 것 같은데 말이죠.”

“뭐를요?”

사라의 시선은 금세 2장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영상구를 향했다.

에단은 어쩐지 아쉬움에 숨을 삼키며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예에, 그러니까……. 여기 올리븐이 평소에 연구하던 마법진의 일부가 보이는 것 같은데요.”

“어디 봐요.”

사라는 영상구를 집어 들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영상구에 비치는 화면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흠.”

처참한 시체들 사이사이로 팔뚝에 화상처럼 남은 마법진의 문양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올리븐의 연구실에서 이런 걸 찾았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연관이 좀 있는 것 같단 말이에요.”

2장로는 자신의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어 사라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도 몇 번 올리븐에게 조언을 줬던 마법 수식이 보였다.

그렇게 몇 장을 넘겨 가면서 보던 사라는 무언가 의아한 점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기억에 관련한 마법을 많이 연구했네요. 하나하나 전부 다 다른 마법 같지만, 이어지고 있어요.”

“예에,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단 말이죠?”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사라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 * *

“이것도 필요 없어. 이것도, 저것도. 전부 다.”

서늘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일렉사의 작은 몸이 움찔움찔하고 떨렸다.

페넬로아는 벤야민의 손짓에 따라 바쁘게 챙긴 짐을 덜어 내고 있었다.

“이딴 건 왜 챙긴 거지? 버려.”

“아……!”

짐 덩이 속에서 작은 토끼 인형을 찾아낸 벤야민은 미간을 좁히며 두 손가락으로 인형을 잡고 달랑달랑 흔들었다.

자신의 애착 인형이 벤야민의 손에 들려지자 일렉사는 창백한 얼굴로 작게 신음했다.

일렉사가 애타는 시선으로 간절하게 벤야민을 바라보자 그는 흥, 하고 혀를 찬 뒤 짐 가방에 인형을 던져 넣었다.

“……!”

그러자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 일렉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클로드는 못마땅하다는 듯 날이 선 눈빛으로 벤야민을 응시했다.

“아저씨.”

“왜, 꼬맹아.”

“아저씨가 뭔데 자꾸 버리래?”

클로드의 말에 벤야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뭐가 불만이지?”

클로드는 손가락 끝으로 아이 하나가 웅크리고 들어가면 비좁게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짐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방은 너무 작잖아.”

벤야민은 일렉사와 페넬로아가 챙긴 짐 중에 저 짐 가방 하나만 가져가겠노라 선언했다.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페넬로아와 일렉사는 각자 챙긴 많은 짐을 결국 다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드의 눈에는 벤야민이 괜한 심술을 부리는 것만 같아 입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하.”

얼굴에 뭐가 불만인지 투명하게 떠오르는 클로드를 보며 벤야민은 소리 내어 헛웃음을 삼키고는 말했다.

“굳이 저런 것들을 다 챙기지 않아도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전부 다 마련되어 있어. 있는 것을 왜 굳이 다 챙겨가야 하지?”

“그치만!”

“그리고 우리는 지금 나들이 온 게 아니고 저 두 사람을 비밀리에 공작저까지 데려가야 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야. 저 많은 짐을 들고 암브로시아로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말이 나올 텐데. 그걸 네가 감당할 건가?”

“…….”

클로드는 쏟아지는 벤야민의 말들을 들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일렉사가 안절부절못하며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클로드와 벤야민의 눈치를 보았다.

“괜찮아요, 암브로시아 공자. 우리는 소중한 것들 몇 개만 챙기면 되니까.”

페넬로아가 그런 일렉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클로드와 벤야민의 사이를 중재했다.

“흥.”

벤야민은 휙 하고 고개를 돌렸고 그건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보아도 사이가 무척이나 나빠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렉사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걸 느끼며 가슴께를 꾹 눌렀다.

“다 챙겼으면 이만 가지. 지금 수도에 용병들이 모이고 있어서 더 늦으면 술판 한가운데를 지나가야 할 테니.”

벤야민은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는 얼굴을 하며 재촉했다.

“아, 네!”

페넬로아는 서둘러 벤야민이 허락해 준 유일한 짐 가방을 챙겨 들었다.

마지막으로 넣은 일렉사의 애착 인형을 제외한다면 그리 챙길 것이 없었다.

일레온이 준 선물들과 단검, 직접 제조한 단검에 바르는 독 몇 개 정도만 챙긴 것이다.

페넬로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비장하게 말했다.

“가죠.”

일렉사를 출산한 뒤로 저택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었던 페넬로아였다.

그녀에겐 정말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페넬로아는 한 손에 일렉사의 손을 꼭 쥐며 각오를 다졌다.

“하아…….”

그 모습을 보며 벤야민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그가 저택으로 들어올 때 통과했던 개구멍을 마력으로 좀 더 넓혔다.

페넬로아와 일렉사가 걸어서 충분히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씩씩하게 개구멍을 걸어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뻣뻣하게 굴다간 다 티가 나게 될 텐데.”

“……!”

그 소리에 몸을 움찔하고 떤 페넬로아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워진 걸음걸이에 벤야민은 피곤이 몰려오는 걸 느끼며 클로드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도 가지.”

“우리라고 하지 마.”

“뭐?”

“흥!”

클로드는 콧방귀를 뀌며 앞서서 쪼르르 걸어 나갔다.

벤야민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마력이 일렁이는 손을 휘둘렀다.

“악!”

그러자 개구멍을 가리고 있던 넝쿨이 클로드의 앞을 확 하고 가려 버렸다.

놀란 클로드가 비명을 지르는 걸 보고 벤야민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비웃었다.

“훗.”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클로드의 앞을 다시 틔워 주며 아이를 스쳐 지나가는 벤야민은 속이 다 시원해 보였다.

까딱거리는 벤야민의 손가락을 따라 저택의 개구멍은 감쪽같이 없어졌다.

아예 입구를 막아 버린 것이다.

“아저씨 진짜 미워!”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더 미워!”

“마찬가지라니까.”

그 둘은 투닥투닥거리는 걸 멈추지 않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머니, 두 사람 괜찮을까요?”

“그럼 괜찮고말고.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는데?”

“지금 싸우는데도요?”

“글쎄.”

페넬로아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는 작게 웃었다.

“내가 보기엔 사이가 좋아 보이는걸.”

“어머니 말은 다 맞지만…….”

일렉사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 한번 앞장서 걸어가는 클로드와 벤야민을 보았다.

“아저씨 바보.”

“성질 더러운 꼬맹이.”

“유모한테 다 이를 거야.”

“나도 스승님께 다 이를 거다.”

“유모는 내 편이거든?”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스승님은 내 스승님이셨다. 멍청한 꼬맹아.”

“나 멍청이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유치한 말싸움을 쉬지도 않고 이어 가는 두 사람을 보면 이번만큼은 어머니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계속 보다 보면 네 눈에도 보이게 될 거란다.”

“네에…….”

페넬로아의 말에 일렉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구경했다.

저택 근처에 있는 시장은 낮과는 달리 밤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약간 으스스한 기분이 든 일렉사가 페넬로아를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암브로시아 저택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어머니?”

“글쎄. 나도 저택 밖으로는 도통 나와 보지 않아서…….”

페넬로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앞서 걸어가던 벤야민이 뒤를 돌아보며 일렉사와 페넬로아를 향해 말했다.

“시장을 통과하면 마차를 하나 잡아 올 테니 그때는 걷지 않아도 될 거다.”

여기서 앞으로 쭉 가서 상업 지구를 지난다면 곧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 지구가 제국의 수도인 만큼 아주 크고 귀족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걸어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배려는 무슨.”

벤야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앞을 보았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클로드를 찾다가 이내 미간을 좁혔다.

“꼬맹아?”

좀 떨어져서 걸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옆에 있었던 클로드의 모습이 그 잠깐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벤야민이 단숨에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자 클로드가 옆쪽 골목 안을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순간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알았던 벤야민은 크게 숨을 내쉬며 클로드에게 다가갔다.

“혼자 딴 길로 새면 어쩌자는 거냐, 꼬맹아.”

“여기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가…….”

클로드의 말에 미간을 좁히던 벤야민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제가 잘못, 악,…….”

아주 앳된 목소리와 함께 둔탁하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러게 얌전히 시키는 대로……, 우리 용병단을 건들―.”

그리고 그 뒤로 걸걸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까지 들리자 벤야민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그는 단숨에 손에서 마력 실을 길게 뽑아 소리가 들린 곳으로 보냈다.

마력을 통해 그곳의 광경을 살펴보던 벤야민의 얼굴에 점점 스산한 한기가 돌았다.

“저기서 어떤 사람이 맞고 있나……, 아저씨?”

클로드는 자신을 스쳐선 골목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벤야민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던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순간 사라가 당부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벤야민은 용병들을 끔찍하게 싫어해. 그 아이는 소년병이었거든, 용병들의 시중을 드는. 지금 수도에 용병들이 많이 있다고 그래서 조금 걱정이구나. 눈이 돌아가면 분명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조금 전 희미하게 들렸던 목소리로 용병 어쩌고 했던 걸 들은 클로드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아, 망했다.”

“응?”

클로드가 작게 중얼거리자 일렉사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저 아저씨 잡아야 해!”

일렉사의 의문은 해결해 주지 않은 채 클로드는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

페넬로아와 일렉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클로드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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