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20화 (120/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20화

클로드는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벤야민의 뒤를 쫓았다.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그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쾅! 하고 땅이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악!”

“아아악!”

“살려 줘!”

클로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더욱 얼굴을 굳혔다.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니?”

클로드의 뒤를 따라가던 페넬로아가 깜짝 놀라며 품에 안고 있던 일렉사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벤야민 아저씨가 눈이 돌아간 소리죠!”

“세상에, 세상에!”

유모가 그랬다. 이성을 잃은 벤야민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벨루나와 그녀뿐이라고.

클로드는 사라가 황궁에서 피를 토했던 날, 눈이 돌아갔던 벤야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벤야민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생각해 보니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말려야 해요!”

말리지 않으면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클로드는 더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려 노력했다.

“아악! 컥, 헉!”

비명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선명해졌다.

클로드의 눈에 저 멀리서 벤야민이 어떤 남자의 목을 한 손으로 쥔 채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벤야민이 마법을 쓰지 않고 순수한 힘으로 저러고 있다는 것에 클로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헷갈렸다.

“사, 살려……. 컥!”

남자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버둥거렸다.

“세상에!”

페넬로아는 클로드를 제 쪽으로 끌어당긴 뒤 일렉사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은 이미 벤야민에게 당한 것 같았다.

몸을 움찔, 움찔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죽진 않은 모양이다.

“아저씨!”

클로드는 날 선 목소리로 벤야민을 불렀다.

하지만 벤야민에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남자의 목을 쥐고 있는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잘못, 잘못했으니까……, 헉, 제발!”

점차 숨이 막혀 오는지 남자는 버둥거리는 것도 포기하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이 벤야민의 어깨 너머 누군가를 향했는데, 클로드가 그 시선을 따라가자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허억, 허억.”

소년은 벤야민이 오기 전까지 구타를 당하고 있었는지 온몸에 성한 구석이 하나 없었다.

누가 보아도 눈살을 찌푸릴 만한 광경이었다.

“저 사람 괜찮은 건가?”

클로드는 그 소년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페넬로아가 재빨리 아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

“잠깐만 여기 있어.”

클로드는 의아하다는 듯 페넬로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클로드가 아닌 소년 근처에 누워 있는 용병에게 향한 채였다.

“……저 사람 의식을 잃은 척하고 있어.”

페넬로아는 클로드에게 그렇게 속삭이며 품에 안은 일렉사를 땅에 내려놓고 제 등 뒤에 숨겼다.

그리고 클로드와 일렉사가 서로 손을 마주 잡게 하고는 짐 가방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손에 꽉 쥐었다.

“그러니 다가가지 말고 기다리렴. 내가 뛰라고 하면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뛰어.”

“어, 어머니…….”

“괜찮아. 아빠한테 못 들었니? 엄마가 왕년에는 마물도 때려잡았단다.”

페넬로아는 일렉사에게 생긋 웃어 주며 단검을 손가락 사이로 휘리릭 돌려 보았다.

단검은 마치 그녀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일렉사와 클로드는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끄으…….”

그때 벤야민이 목을 쥐고 있던 남자가 거품을 물며 기절하자 그는 남자의 몸을 아무렇게나 땅에 던져 두었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소년을 바라보려던 찰나.

“으아아아!!!”

페넬로아가 말했던, 의식을 잃은 척하고 있었던 용병이 품에서 칼을 꺼내 들고는 벤야민에게 달려들었다.

“…….”

벤야민은 그런 용병의 칼날을 상체를 비틀어 가볍게 피했다. 그러고는 발로 그의 옆구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억!”

용병이 옆구리를 감싸 쥐면서도 손에 들린 칼을 다시 한번 가로로 크게 휘둘렀지만, 벤야민은 순식간에 몸을 뒤로 젖혀 피해 냈다.

“어, 어떻게……!”

자신 있었던 급습조차 피해 내는 벤야민을 보며 용병의 얼굴이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제아무리 공격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통하지 않자 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검을 꺼내 들고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페넬로아와 그녀의 등 뒤에 숨은 두 아이.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년.

“이익!”

용병은 그중에 소년을 인질로 잡는 것을 택했다.

쥐고 있던 칼을 갈무리하고는 재빨리 옆으로 굴러 땅에 앉아 있는 소년의 목을 팔로 감아 끌어당겼다.

“다, 다가오면 이 새끼 목을 단숨에 꺾어 버리겠어!”

용병들을 마주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그들을 때려눕혔던 벤야민의 행동이 그제야 멎었다.

왜 이러냐고, 누구냐고, 대체 왜 우리를 공격하냐고 수도 없이 용병들이 고함을 칠 때는 열리지 않았던 벤야민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죽고 싶은가?”

스산하게 흘러나오는 낮은 목소리에는 명백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 어떠한 마물의 앞에서도,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던 용병은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며 소리를 질렀다.

“감히 우리 조르세 용병단을 공격하다니……. 용병 길드에서 네놈을 가만히 둘 것 같아?! 평생을 쫓기면서 살고 싶냐!”

“…….”

벤야민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느리게 까딱이는 손가락만이 벤야민이 지금 저 용병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아, 안 되는데…….”

클로드는 그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사라는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마법은 흔적을 남기니까.

아직은 제국에 마법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고 했었다.

지금은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을 벤야민의 이성이 그가 마법을 쓰지 않게 하고 있었지만, 클로드가 보기에 조만간 그 남은 이성조차 날아갈 것 같았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또다시 사라와 나누었던 대화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벤야민이 눈이 돌아…… 이성을 잃을 때는 다 방법이 있어요.’

‘뭔데?’

‘벤야민을 처음 데려왔을 때는 반항이 심했거든요. 그때마다 제가 ……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걸로 많이 놀렸거든요. ……라고 불리면 정말 싫어해요.’

‘그럼 이성을 잃었을 때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 불러야 해요. 벤야민은 ……라고 불리는 걸 소스라치게 싫어해서 그 감정이 이성을 돌아오게 만들거든요.’

‘아, 너무 싫어서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는 거구나.’

‘네, 맞아요. 우리 클로드 님 똑똑하기도 하지!’

클로드는 머릿속으로 사라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눈을 꾹 감았다.

무어라 부르면 벤야민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한다고 했는데.

딱 그 부분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딱 듣기만 해도 벤야민과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정말 싫어할 것만 같은 그런 별명이었는데.

“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정말 이 새끼가 죽는 걸 보고 싶어?!”

그때 벤야민은 점점 소년을 인질로 삼은 용병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까딱이는 그의 손가락 끝에 희미한 마력이 나타날 듯 말 듯 하며 타닥타닥거리고 있었다.

“헉, 큰일 났다.”

마음이 급해진 클로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음이 급해지니까 떠올라야 할 것도 떠오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이는 다시 한번 사라의 목소리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근데 나름대로 귀여운 별명 아닌가요? 저는 평소에도 부르고 싶은데, 벤야민이 너무 싫어하더라고요.’

‘귀엽긴 하네. 나도 나중에 아저씨한테 그렇게 불러 볼래.’

‘안 돼요. 그 아이가 이성을 잃었을 때 되돌려주는 마법의 단어니까 쉽게 남발하면 나중엔 효과가 없어지거든요.’

‘그렇구나. 아쉽네.’

‘그쵸. 너무 아쉽다. 매일 마력으로 글자를 써서 부르거나 벨루나에게 대신 말해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내 목소리로 ……아지야, 하고 얼마나 불러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때 클로드의 머릿속으로 그제야 사라가 말했던 벤야민의 목줄을 잡아당겨 줄 별명이 생각났다.

“이거야!”

클로드는 일렉사의 손을 놓고 페넬로아의 앞으로 나섰다.

“위험해요, 암브로시아 공자!”

“괜찮아요!”

페넬로아가 다시 클로드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아이는 당차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배에 힘을 강하게 준 뒤 모은 숨을 단번에 쏘아 낸다는 생각으로 아주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이 똥강아지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