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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21화 (121/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21화

* * *

똥강아지.

미묘하게 귀엽고 미묘하게 정감이 가지만 미묘하게 하찮은 그 이름이 벤야민의 앞에 붙자 모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벤야민의 손에서 일렁이던 마력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똥강아지?”

벤야민은 순간 제 머릿속을 파고드는 단어에 날아갔던 이성의 끈을 다시 잡아 왔다.

물론 얼굴은 와락 일그러뜨린 채였다.

그는 잠시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변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 안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리고 꼴이 엉망인 소년과 그런 소년을 잡고 협박하고 있는 용병.

“……하.”

벤야민은 순식간에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얼추 이성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는 벤야민의 모습에 긴장으로 굳어 있던 페넬로아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유모가 최고야.’

클로드는 제 유모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끼며 벤야민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유모가 했던 당부 잊었어요?”

“……아.”

벤야민은 그제야 사라의 당부를 떠올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클로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깊은 한숨이었다.

“또 유모한테 혼나고 싶어요?”

클로드는 한 손은 옆구리에 척 하고 얹고 다른 한 손으로는 벤야민을 손가락질하며 본격적인 잔소리를 쏟아 냈다.

“아저씨가 이렇게 사고치고 다니면 수습은 우리 유모가 다 하는 거 알아요?”

“……이봐.”

“왜 아저씨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뒷일은 우리 유모한테 맡기는 건데요?”

“……어이.”

“대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기는 해요? 아저씨 혹시 바보예요? 머리 나빠요?”

“잠깐…….”

“유모 말로는 집 나간 아저씨가 제일 바보라고 했는데. 내가 봤을 땐 아닌 거 같아. 지금 내 눈앞에 제일 바보가 있는 거 같아.”

클로드가 속사포처럼 잔소리를 쏟아 내고 벤야민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는 사이.

소년을 인질로 잡고 위협을 하고 있었던 용병은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새끼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야!?”

용병은 다시 한번 소년의 목을 팔로 세게 조르며 고함을 내질렀다.

“……뭐야.”

그 모습을 본 클로드는 미간을 좁히며 벤야민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해요, 아저씨?”

“……너한테 혼나고 있는 중인데.”

“혼나더라도 할 건 해야지.”

“알았다.”

클로드의 말에 벤야민은 조용히 한숨을 삼키며 가볍게 손을 휙, 하고 휘둘렀다.

“억!”

그러자 용병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뒤로 고꾸라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클로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의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고 했던 사라의 말을 벤야민이 무시한 것만 같아 클로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아저씨, 유모가 하지 말라고…….”

“이걸로 처리했으니 잔소리는 적당히 해, 꼬맹아.”

벤야민은 다른 손에 들려 있는 돌멩이를 던졌다가 받으며 클로드에게 보여 주었다.

기절한 용병을 자세히 보니 이마에 동그랗게 빨간 자국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휴.”

클로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인질로 잡혀 있던 소년은 덜덜 떨면서 제 몸 위로 쓰러진 용병의 몸을 밀어냈다.

“가, 감사……, 흑. 감사합니다…….”

소년은 성치 않은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을 벤야민은 한참 동안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그 무거운 눈동자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

클로드는 그런 벤야민의 표정을 살피다가 툭툭 그의 다리를 주먹으로 쳤다.

“왜.”

“데려가고 싶어?”

“…….”

클로드의 말에 벤야민은 잠시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여기서 흔적만 정리하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다. 나중에 내가 따로 처리하지.”

벤야민은 그렇게 말하며 클로드를 스쳐 지나갔다.

페넬로아와 일렉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벤야민과 그런 그를 바라보는 클로드를 번갈아 보았다.

“빨리 가지.”

그러다 벤야민의 재촉에 페넬로아는 이내 일렉사의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저희도 빨리 가요.”

페넬로아는 그 자리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클로드를 재촉해 불렀다.

하지만 클로드는 페넬로아의 뒤를 따르지 않고 소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있잖아, 이름이 뭐야?”

소년은 자신을 구해 준 남자와 함께 있었던 클로드가 말을 걸자 극도로 긴장하며 답했다.

“……듀이입니다.”

그는 벤야민의 위압적인 말투와 그 압도적인 기운에 완전히 눌려 버렸다.

듀이는 벤야민이 귀족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용병 길드에 가입된 용병단을 건드릴 수 있는 평민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벤야민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클로드 역시 귀족일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클로드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소년을 최대한 편하게 해 주고 싶어 일부러 더 밝게 웃었다.

사라는 항상 클로드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클로드 님은 아주 고귀한 신분이에요. 그리고 고귀한 만큼 의무를 가지고 있지요.’

‘고귀한 신분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누릴 수 있고, 자격을 행사할 수 있죠. 하지만 언제나 잊어서는 안 돼요.’

‘그 모든 것은 제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요.’

‘더 약하고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도우셔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 클로드 님의 손에 힘이 쥐어진 거예요.’

‘클로드 님은 언젠가 가진 것을 이로운 곳에 쓸 줄 알게 되실 거예요.’

‘그날이 기다려지네요.’

클로드는 어쩐지 사라가 말했던 그날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듀이. 혹시 저 못된 사람들에게서 도망칠 곳이 필요하면 암브로시아 공작가로 와.”

“예?”

클로드의 제안에 듀이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키웠다.

암브로시아 공작가. 평민인 듀이에겐 평생을 가도 인연이 닿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호, 혹시……, 두 분은 귀, 귀족이셨습니까……?”

암브로시아라는 이름만으로도 다시 덜덜 떨기 시작하는 소년을 보며 클로드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방금 듀이를 구해 준 아저씨 이름은 벤야민이야. 벤야민 아저씨를 찾아왔다고 해. 저 아저씨는 사정이 있어서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있거든.”

“아……. 아, 암브로시아 공작가에서 일하시는 분이었군요.”

듀이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했다. 떨림이 점차 멎어 드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귀족이 아닌, 귀족가에서 일하는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니라고는 안 했어.’

클로드는 뭔가 거짓말을 하는 기분에 찝찝해졌다.

하지만 귀족이 아니라고는 한마디도 안 했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저 나쁜 사람들은 감히 암브로시아 공작가의 대문을 넘지 못할 거니까. 안전해질 수 있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듀이는 연신 고개를 숙여 보이며 클로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클로드는 그런 그를 잠시 눈에 담아 두다가 이내 몸을 돌려 페넬로아에게 다가갔다.

“이제 가요.”

“…….”

페넬로아는 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선 걸어가는 클로드를 아주 유심히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지?’

일렉사와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은 클로드를 보며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일레온에게 여러 귀족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브로시아 부자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일렉사와 동갑이라는 말에 조금 더 유의 깊게 클로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암브로시아 공자는 굉장히 유약하고 소심하다고 했는데.’

클로드는 굉장히 소심하고 사교 활동에서도 눈에 띄게 뛰어난 점은 보이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건 밀런 소백작이 유모가 되기 전이겠지.’

하지만 그건 밀런 소백작이 클로드의 유모를 맡기 전에 들리던 이야기였다.

그녀의 눈으로 직접 본 클로드는 암브로시아의 후계자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굉장히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아이다운 천진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럴 때는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주 날카로웠다.

“으응? 어머니, 왜 그렇게 보세요?”

자신의 눈에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일렉사와는 달리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일렉사, 암브로시아 공자의 손을 꼭 잡아야 한다?”

“네, 꼭 잡고 있어요.”

그녀는 다른 한 손엔 자신의 손을 그리고 또 다른 손에는 클로드의 손을 꽉 잡고는 흔들어 보이는 일렉사를 보며 생각했다.

‘밀런 소백작이 대체 어떤 교육을 한 거지? 우리 일렉사도 암브로시아 공자와 함께 배울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정말 암브로시아 공작은 어떻게 사라를 클로드의 유모로 데려올 수 있었을까.

페넬로아는 그 능력이 무척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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