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33화
에단은 사라에게 쏟아질 더러운 수작들을 생각하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사라의 정체는 그녀가 밝히길 원한다고 해도 내 쪽에서 그럴 생각이 없어.”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사람이니 그 누구라도 그 빛을 알아보고 끌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자들이 자꾸만 꼬여 드는데 더 보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의 가치를 아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
벨루나는 에단의 목소리에서 은연중에 묻어 나오는 독점욕을 느끼고는 미간을 좁혔다.
사라의 가치야 이 제국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겠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어감이 달랐다.
마치 에단이 사라를 독점이라도 하겠다는 듯.
“아, 우리 클로드까지. 둘이면 충분하겠군.”
“예, 그러시겠죠.”
하지만 에단이 뒤에 덧붙이는 말을 듣고 벨루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다가 이내 끄덕였다.
벨루나가 이런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리기에는, 마탑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스승님의 가치는 감히 평가될 수 없죠.”
“그 누구에게도 자격이 없지.”
“누구의 것이 될 분도 아니십니다.”
“쓸데없이 당연한 말을 하는군. 사라의 것이 된다면 모를까.”
“맞습니다.”
“맞지.”
에단과 벨루나는 그들의 대화가 미묘하게 어긋나면서도 술술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
“…….”
잠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던 차에, 에단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대……, 말이 통하는 상대군.”
에단의 말에 벨루나도 동감했는지 그전보다는 조금 더 평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님께서도 탐욕스러운 인간들과는 다른 것 같군요.”
벨루나는 오해를 풀었다는 듯 좀 더 신뢰가 담긴 시선으로 에단을 보았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힘이 아닌, 사라 밀런 그 자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울 에단이 뻔뻔하게도 멀끔한 얼굴을 하곤 선을 그었다.
에단의 얼굴은 그 누가 보아도 청렴하고 곧은 성직자처럼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모습이 벨루나가 보았던 더러운 욕망과 욕심이 들끓던 귀족들의 얼굴과는 너무나 달라서 에단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더 상승했다.
“아까 전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저를 바라보던 그 들개 같은 귀족들의 시선을 스승님께서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 뒤엎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벨루나의 말에 에단의 눈이 가늘어지며 만족스러운 숨이 입술 사이로 나른하게 새어 나왔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니, 퍽 만족스러웠다.
“아아, 나도 그 눈들을 다 뽑아 버리고 싶었지.”
“제 몫도 하나 남겨 주시면 좋겠군요.”
“생각해 보도록 하지.”
벨루나와 에단은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은 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은 저 대신 사라에게 접근할 인간들을 모두 쳐 낼 기세인 벨루나를 보며 크게 만족했다.
사라의 곁에 붙여 두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 있다면 벨루나일 것이라고 그는 인정했다.
물론 벨루나에 의해 쳐 내질 사람들 중 에단 암브로시아는 없을 것이다.
“저는 이만 가 보아야겠습니다. 이제 슬슬 인파에서 멀어졌으니 말입니다.”
드디어.
에단은 마차 밖으로 충분히 멀어진 사람들의 기척을 헤아려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이동하기로 했던 3황자는 황제의 명 때문에 조금 늦어진다고 하여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만나기로 한 참이었다.
이제 벨루나까지 가 버린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사라와 둘만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어서 가 보도록.”
“…….”
벨루나는 화색이 도는 에단의 얼굴을 보며 일순 눈을 가늘게 떴다.
미묘하게 찝찝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남녀 관계에 둔한 벨루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승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두 손에서 마력을 피워 올렸다.
은색 마력이 실처럼 뻗어 나가 순식간에 마차 위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사라를 부르는 신호였다.
“우리 클로드도 잘 부탁하지.”
“……걱정하지 마시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단의 말에 벨루나는 아까 전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비비던 클로드를 떠올렸다.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벨루나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왔다.
그때 클로드를 안고 달래 주던 스승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스승의 압도적인 힘을 목격했을 때에도 그만큼 부럽지는 않았었다.
‘암브로시아 공자님은 어쩜 그리 귀여우신지…….’
너무나 작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은 클로드를 떠올리며 벨루나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클로드 하나만큼은 지키겠다고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작고 귀여운 것에 약하다는 것을 클로드를 통해 깨달아 가던 참이었다.
“절대 방심하지 말고. 일렉사 드 크롬벨 역시 함께 지켜야 하네.”
“두 분께서 항상 붙어 계실 테니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만일의 만일을 생각하도록.”
“예.”
에단의 당부에 벨루나는 일렉사의 얼굴 또한 떠올렸다.
클로드의 옆에 일렉사. 귀여운 것 옆에 귀여운 것.
“자신 있습니다.”
벨루나는 진심으로 제 모든 힘을 다하리라고 결심했다.
* * *
암브로시아 저택의 가장 가장자리 쪽에는 페넬로아의 방이 위치해 있었다.
비록 저택의 구석이기는 했지만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방이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 암브로시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된 페넬로아를 배려해 사라는 방의 한 면 전체를 통유리로 만들어 두었다.
그러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마법진을 새겨 놓았다.
그 덕분에 페넬로아는 창가 쪽에 서서 암브로시아 공작의 행렬을 지켜볼 수 있었다.
“죄송해요, 페넬로아 님. 생각보다 행사가 길어졌네요.”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던 페넬로아의 등 뒤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던 페넬로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 끝났나요?”
“네. 전부 다 돌아갔답니다.”
“아…….”
사라의 대답에 페넬로아는 잔뜩 힘을 주었던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멀리서나마 귀족들을 보신 소감이 어떠세요?”
“……긴장했어요.”
귀족들의 우아한 몸짓과 서로를 살피는 시선, 자연스럽게 여러 갈래로 갈리는 무리들.
오고 가는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신경전과 어느 구석에서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고위 귀족들까지.
멀리서 보아도 알톤 영지의 일 하나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일레온이 황위에 오르게 된다면…… 나도 저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해.’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콱, 하고 막혀 왔다.
페넬로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사라를 소파로 안내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에 사라는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클로드를 내려놓았다.
“클로드 님, 일렉사 님과 함께 놀고 계실래요?”
“……으음, 하지만 유모 이제 곧 갈 거잖아. 유모랑 더 있으면 안 돼?”
클로드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사라의 옷자락을 잡으며 울망울망한 시선을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윽.”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은 모습에 사라는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보던 페넬로아는 웃으며 클로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면 된답니다, 공자. 제가 그리 긴 시간을 빼앗지는 않을 거예요.”
“……알았어요.”
일렉사의 어머니인 페넬로아의 부탁에 클로드는 큰 결심을 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이 못마땅한 상황에서 보이는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하는 클로드를 보며 사라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빨리 와야 해?”
“네, 그럴게요.”
사라는 뒤를 돌아 방 밖을 빠져나가면서도 힐끔힐끔 그녀를 바라보는 클로드에게 끝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쉬움이 잔뜩 남은 듯한 발걸음이 너무나 귀여웠다.
클로드가 방문을 열고 나갔어도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는 사라를 보며 페넬로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밀런 소백작, 이제 공자는 나갔어요.”
“알고 있어요. 다만…….”
사라는 어쩐지 클로드의 이런 모습까지 전부 다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너무나 빨리 자라니까.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니까.
알톤 영지에 있는 동안 클로드의 그런 사소하고도 커다란 변화들을 놓칠 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조금 쓰려 왔다.
사라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생긋 미소 지으며 페넬로아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게 할 말이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