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35화
“크라시다 오를린이 페넬로아 님에게 건넨 약에는 독이 들어 있었어요. 그것도 질이 아주 좋지 않은…….”
“역시 그럴 줄 알고 있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내게 약을 줄 여자가 아니니까요.”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페넬로아 님에게 달려 있어요.”
사라는 느긋하게 웃으며 페넬로아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미래의 황후는 아마 훌륭하게 잘 해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페넬로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클로드 님과 작별 인사를 하러 가 봐도 될까요? 귀여운 일렉사 님과도 인사를 하고 싶은데.”
“아, 그럼요. 일렉사도 내심 서운한 기색이랍니다.”
페넬로아는 자신이 사라의 시간을 많이 빼앗았다는 것을 깨닫고 퍼뜩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일렉사 또한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아는 어른인 사라가 멀리 떠난다고 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클로드가 있긴 했지만, 사라가 돌아오기 전까지 벤야민이 곁에 찰싹 붙어 있을 거라고 들었을 땐 긴장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되기도 했다.
“일렉사 님을 위해서라도 빨리 돌아와야겠네요.”
사라는 걸음을 옮겨 페넬로아의 방을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
그 말에 페넬로아는 살짝 묘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사라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도 좀 느긋하게 있다가 오시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네? 어째서요?”
“그야, 공작님과 둘이 시간을 보낼 기회잖아요?”
“어머.”
페넬로아의 말에 사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걸음을 멈춘 사라를 보며 페넬로아는 살짝 웃어 보였다.
“아까 창가에서 전부 다 지켜보았어요. 밀런 소백작님, 암브로시아 공작님께 관심이 있으시지요?”
“아, 그게…….”
조금 전 태산처럼 크고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던 사라가 당황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보며 페넬로아는 소리 내어 작게 웃었다.
우아하기 그지없던 사라의 수줍어하는 모습은 아까와는 너무나도 대비되어 보였다.
흰 피부에 살며시 올라오는 붉은 홍조가 사라를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게끔 만들어 주었다.
“제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눈치가 빠르다는 거예요. 살아남기 위해 아주 날카롭게 길러 두었죠.”
“…….”
“보아하니 제 말이 정답인 모양이네요.”
페넬로아는 유쾌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을 바라보던 사라의 얼굴이 사랑에 빠졌던 그날의 스스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는 황급히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잡으며 입을 열었다.
“비밀이에요, 비밀!”
“걱정하지 마세요. 밀런 소백작님은 제 은인이시니 저도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페넬로아의 말에 사라는 눈에 띄게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곤 은근한 목소리로 페넬로아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많이 티가 나던가요?”
“밀런 소백작님은 항상 암브로시아 공자와 함께 있으면 도통 시선을 떼는 법이 없지요?”
사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야 그렇죠.”
“그런데 유일하게 암브로시아 공자보다 시선을 더 많이 주더라고요. 공작님에게.”
“아…….”
입술을 살짝 벌리고 감탄하는 사라를 보며 페넬로아는 살포시 웃었다.
시선은 마음을 대변하는 길과도 같아서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쪽에 더 많이 머물기 마련이었다.
클로드와 함께 있으면 다른 곳을 보다가도 금방 아이를 찾던 시선이, 에단과 함께 있으면 아이를 보려다가도 자꾸만 그에게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걸.’
찍어 보았는데 맞혔다. 페넬로아는 당혹스러워하는 사라의 모습이 갓 마음을 자각했던 그때 그 시절 자신의 모습 같아서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덮…… 아니, 어떻게 공작님의 마음을 얻어 낼 셈이세요?”
“글쎄요…….”
사라는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선 그 전보다 더욱 느려진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그녀의 고민이 뚝뚝 묻어 나오는 듯했다.
“창가에서 보니까 공작님께 관심을 가진 레이디들이 아주 많아 보이던걸요.”
“정말요?”
페넬로아의 말에 사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정말 많아 보였어요.”
“아, 정말. 다들 잘생긴 건 알아 가지고…….”
“암브로시아 공작님이 아름다우시긴 하죠.”
“그뿐이겠어요? 능력도 좋지, 매너도 좋지, 자상할 때는 또 얼마나 자상하시다고요.”
사라는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이라는 듯 말했지만, 결국은 에단이 너무 잘나서 피곤하다는 말이었다.
클로드의 방에 가는 내내 에단의 아름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라의 말을 들으며 페넬로아는 생각했다.
에단 암브로시아가 대체 사라에게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하고 말이다.
‘무섭던데.’
사라의 말만 들어 보면 에단 또한 그녀에게 무척이나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인 것처럼 들리는데.
잠깐이나마 에단과 마주했던 페넬로아는 공작의 완벽한 외모 말고는 사라의 말에 동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호의조차 서늘하고도 무심한 눈빛 아래 철저하게 구분하였던 에단이었다.
일레온 또한 암브로시아의 호의에는 대가가 따른다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치 다른 사람을 설명하는 것 같네.’
원래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기도 하니까.
페넬로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어 보였다.
“유모!”
저 멀리서 클로드가 밝은 얼굴로 사라를 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세상에, 클로드 님! 넘어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너무 늦었잖아!”
있는 힘껏 사라에게 안기는 클로드를 보며 페넬로아는 생각했다.
저렇게 클로드가 좋아하고 따르니, 암브로시아 공작 또한 아무 생각도 없진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묘한 예감이 들었다.
“우리 클로드 님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가예요. 우리 클로드 님을 두고 가야 하다니…… 너무 슬퍼서 어떡하죠.”
“나 아가 아니야! 다 컸단 말이야.”
“우리 아가만 두고 어떻게 가지. 아아, 너무 슬퍼라.”
“아가 아니라니까!”
사라는 클로드를 끌어안고 아이의 뺨에 제 뺨을 비비며 안타까워했다.
이 감촉을 한동안 느끼지 못한다니.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 서운했다.
“저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셨죠?”
“응, 나 잘 있을게!”
“벤야민 말 잘 들으시고요.”
“그건 싫어!”
“그럼 클로드 님 말을 벤야민이 잘 듣게 만드시고요.”
“그건 좋아!”
사라와 클로드는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벨루나도 곁에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베론과 론다도 여기 있잖아요.”
“그래도 나는 유모가 제일 좋아. 그러니까 빨리 와야 해?”
“최선을 다할게요.”
사라와 클로드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동안 벤야민은 삐딱한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벨루나에게서 신호가 왔습니다.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이 꼴을 계속 보느니 차라리 재촉이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서로가 좋아 죽는 사라와 클로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알고 있단다. 그런데 클로드 님이 너무 귀여워서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하니?”
“……하아.”
벤야민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내쉬다가 자신의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일렉사를 발견하였다.
‘얘는 또 왜 이래.’
끙끙거리며 사라 쪽을 바라보는 것이 뭐 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페넬로아가 일렉사를 보며 눈치를 주는 걸로 보아 사라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맹랑한 클로드와는 달리 소심하기 그지없는 일렉사를 보며 벤야민은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너도 가서 인사하든가.”
그는 일렉사의 등을 툭 하고 쳐서 떠밀었다.
“……!”
졸지에 사라와 클로드를 향해 우다다 달려가게 된 일렉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나, 일렉사 님도 안아 드릴까요?”
사라는 제 앞으로 다가온 일렉사에게 웃으며 클로드를 안지 않은 다른 쪽 팔을 뻗었다.
“……그래도 돼?”
일렉사는 조심스럽게 페넬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페넬로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일렉사의 뽀얀 볼에 붉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일렉사는 그제야 사라가 뻗은 손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사라가 힘을 주어 일렉사를 단숨에 안아 들었다.
“와아!”
일렉사와 동시에 사라의 품에 안기자 클로드가 기분 좋은 탄성을 내질렀다.
클로드와 일렉사는 사라의 품 안에서 서로를 보며 씨익 웃다가 동시에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폭 기댔다.
“헉.”
아기 고양이와 아기 강아지를 동시에 품에 안았던 사라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벤야민, 벨루나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 줄래?”
“예?”
“지금 이 순간……, 놓치기 싫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