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36화 (136/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36화

사라는 그렇게 한참 동안 이성을 잃고 클로드와 일렉사를 둥개둥개 안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벤야민에게 신호를 보내던 벨루나의 마력은 점점 격해졌고, 결국 사라는 아쉬움을 잔뜩 담은 얼굴로 아이들을 품에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 없는 동안 밥도 잘 드셔야 하고, 이도 잘 닦아야 하고요, 일렉사 님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내시고…….”

“알았어, 유모. 지금 다섯 번째 말하고 있어서 내가 다 외웠어!”

“아, 정말요? 그럼 또…….”

클로드를 붙잡고 이것저것 당부하던 사라는 자꾸만 아쉬운 듯 할 말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하였기에 사라는 입술을 꾹 깨물며 쪼그려 앉았던 다리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페넬로아 님도 암브로시아 저택 내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하셔도 좋으나, 밖으로 나가시는 건 삼가셔야 해요.”

“밀런 소백작님이 다섯 번이나 당부해 주셔서 저도 암브로시아 공자처럼 다 외웠답니다.”

“어머.”

자신이 페넬로아에게도 했던 말을 또 했는지 모르고 있었던 사라가 작게 놀라며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런 사라를 보며 클로드의 뒤쪽에 있던 메이가 제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제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맡겼으니 믿어야겠지.”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넬로아를 바라보곤 말했다.

“저 아이가 눈치도 행동도 빠르니 저택에서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밀런 소백작님을 모시던 시녀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신경 써 주어 감사합니다.”

페넬로아는 일렉사의 손을 잡은 채 메이를 바라보았다.

메이는 그런 페넬로아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페넬로아가 노예 출신이고 3황자의 숨겨진 연인이라는 것은 암브로시아 저택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사라는 메이의 나쁜 버릇이 또 도질까 봐 은연중에 걱정했으나, 지금 메이의 모습을 보니 그 걱정이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제야 겨우 마음이 놓인 사라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라의 발끝이 푸르른 마력에 감싸여졌다.

“……!”

신비하게 빛나는 마력이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결을 그리는 듯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그 광경에 벤야민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유모 빨리 와야 해!”

클로드는 푸른빛이 점점 사라의 머리까지 감싸려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와중에 제게 손을 흔들어 주는 클로드를 보며 사라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그녀가 빛에 완전히 휩싸이기 전, 사라는 묵묵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던 벤야민을 불렀다.

“벤야민.”

“예, 스승님.”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해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야. 그런데, 그렇기에 더 멋져 보일 때도 있단다.”

“알고 있습니다.”

“기대할게.”

“……!”

웃음기 담긴 사라의 목소리에 벤야민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멋진 모습 보여 주렴.”

그간 벤야민을 엄하게 대했던 사라였지만 이번만큼은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자애롭고 따뜻한 스승의 모습에 벤야민은 굳게 다짐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내 제자답지. 믿을게.”

사라의 말에 벤야민의 딱딱했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상기된 그 얼굴을 바라보던 사라의 얼굴에도 평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가 볼게요, 안녕!”

경쾌한 작별 인사와 함께 푸른 마력이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전부 다 그녀를 삼켜 버렸다.

그리고 발끝부터 서서히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앗!”

그렇게 사라지던 푸른빛은 마지막으로 클로드에게 다가가 아이의 머리를 한번 어루만져 주듯이 휘감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빨리 유모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클로드는 어쩐지 사라의 손길이 닿은 것만 같은 기분에 붉게 상기된 얼굴로 제 머리를 매만졌다.

그걸 보고 있던 벤야민은 클로드의 조그마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헤집어 놓으며 말했다.

“아주 좋아 죽는군. 누가 보면 스승님께서 다시 돌아오는 줄 알겠어.”

“아, 진짜!”

클로드는 와락 짜증을 내며 부스스한 머리를 들어 벤야민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뚱한 얼굴의 벤야민을 노려보다가 이내 픽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지금 나 질투하지?”

“뭐?”

“유모가 나만 이뻐하니까 질투해서 괜히 또 심술부리는 거지?”

클로드의 말에 벤야민은 정곡을 찔린 듯 움찔 몸을 떨었다.

눈치 좋은 꼬맹이 같으니라고. 벤야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미묘한 감정을 담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저 나이에 맞지 않는 눈치와 말재주는 어디서 배워 온 걸까.

클로드와 친구인 일렉사가 옆에 있으니 아이의 비범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유전인가?’

그는 클로드의 아버지인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 남자 아들이면 뭐.’

그러곤 바로 납득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벤야민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스승님께서 날 더 예뻐하실 텐데 질투는 무슨.”

“흥. 아저씨가 멋져 봤자.”

“방금 꼬맹이 너 말 심하게 했다.”

“알아!”

당돌한 클로드의 대답에 벤야민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알면서 그래? 스승님이 너 이런 건 알고 계시냐?”

“모르지!”

“내가 스승님께 다 말할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건가?”

“응. 다 큰 아저씨가 스승님한테 쪼르르 일러바치는 건 안 멋지거든.”

“하, 이 조그마한 게.”

벤야민은 결국 클로드와 말씨름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벤야민을 찍어 누른 클로드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선 팽하니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얄미운 뒤통수였다.

“……어! 저기!”

그때 페넬로아의 손을 잡고 클로드와 벤야민의 말싸움을 구경하던 일렉사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와 동시에 사라가 사라졌던 곳에서 은빛 마력과 함께 서서히 사람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벨루나 누나다!”

“……왜 나만 아저씨고 벨루나는 누나지?”

“누나는 아저씨가 아니잖아.”

“저게 진짜.”

벤야민과 클로드가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하려는 때에 벨루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후…….”

벨루나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쓰고 있었던 로브를 벗었다.

“벨루나 누나!”

클로드가 그런 벨루나를 향해 반갑게 달려갔다.

“아, 클로드 님.”

벨루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클로드를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클로드는 익숙하다는 듯 벨루나의 품에 뛰어들어 안겼다.

“하여튼 저 꼬맹이는 나한테만 뻣뻣하지.”

그 모습을 보며 벤야민은 작게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클로드를 안고 있는 벨루나의 얼굴을 보고는 눈썹을 좁히며 표정을 굳혔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벤야민의 말에 클로드는 그제야 벨루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으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은근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아.”

벨루나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너도 공작님과 계속 같이 있어 봐.”

“아……, 그건 좀.”

그녀의 말에 벤야민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클로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아버지가 무섭게 굴었어?”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스승님의 제자라고 공작님께서 정중하게 대우해 주십니다.”

“근데 왜?”

“그건…….”

벨루나는 난감한 듯 말을 흐리며 벤야민을 바라보았다.

에단의 안에 있는 암브로시아의 힘은 마법사인 벨루나와 벤야민에게는 너무나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심지어 그 힘을 사라와 함께 연구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이 폭주하면 어떻게 될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사라가 넘어오는 게 늦어질수록 에단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졌고, 그런 그의 옆에 있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스스로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힘이니만큼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로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력이 제대로 소모된 것이다.

“하.”

그녀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는 벤야민은 한숨을 내쉬며 클로드의 머리를 다시 한번 헤집어 놓았다.

“네가 모르는 그런 게 있다, 꼬맹아.”

“아, 진짜! 아저씨!”

“알고 싶으면 더 커서 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