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38화
화려한 빛과 함께 긴 머리칼을 나부끼며 나타난 사라의 모습은 마치 여신이 강림이라도 하는 듯했다.
“……와.”
지금 마물과 대치 중인 상태라는 것조차 잊을 만큼 사라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눈.”
하지만 서늘하게 흘러나오는 주군의 목소리에 기사단은 일제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
유일하게 사심 없이 사라를 바라보던 제이드만이 반가움에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밀런 소백작님!”
“다들 모여 계셨네요!”
머리 위로 손을 들어 붕붕 흔드는 제이드를 보며 사라 또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일제히 칼을 뽑아 들고 있는 암브로시아의 기사단을 보고는 흔들던 손을 내리며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머?”
사라가 의문을 토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밑에 있던 마물들 또한 위를 바라보며 똑같이 고개를 기울였다.
“크르?”
그 소리에 사라의 시선이 그제야 아래로 향했다.
각양각색의 마물들이 그녀의 발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마물들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사라는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게 다 뭐람?”
그녀는 허공에 두 번째 손가락을 들어 가로로 쭉, 그어 버렸다.
아주 가볍고도 간단한 손길이었다.
콰과과과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땅이 솟구쳐 오르며 마물들의 강인한 육체를 간단하게 찢어발겼다.
“끄아아아!”
“커억!”
“끼이이이이!”
마물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하나하나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죽어 나갔다.
겨우 단 한 번의 손길에 그곳에 모여 있던 마물들의 절반이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훈련이 부족한 기사들의 검으로는 쉽게 베어 낼 수 없는 것이 마물의 가죽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물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내놓고 죽었다.
이 광경을 본 암브로시아의 기사들은 압도적인 힘 앞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사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게 마법사의 힘…….’
사라가 마법을 쓰는 것은 암브로시아 사람들에겐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몽글몽글하고 따뜻하게 클로드를 감싸 주는 따스한 마법을 많이 보아 왔다.
보고만 있어도 맑은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따스함과 유쾌함이 느껴지며 그녀의 푸른 마력은 에메랄드 바다 빛처럼 예쁘게 빛났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다.
“무서워.”
“응, 무섭네.”
“무서운 사람이었네.”
“응, 무서운 분이었어.”
암브로시아 사람들은 난생처음 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어째서 마법사라는 이유만으로 각국에서 눈에 불을 켜고 영입하려고 애쓰는지.
마법사를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륙의 세력이 요동칠 수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더 깨달을 수 있었다.
“밀런 소백작님께서 크롬벨에, 그리고 암브로시아에 계신다는 게 다행이야.”
“적으로 만났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기사단은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힘을 가진 존재가 여태까지 암브로시아 가문에 따뜻한 자애를 베풀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 다시금 새겼다.
“아이참, 깜짝이야.”
사라는 태연한 목소리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던 사라를 보며 암브로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인데, 하고 말이다.
“끄아아.”
“크허크허허.”
사라가 보여 준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겁을 먹은 마물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살육을 일삼는 흉포한 마물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던 암브로시아 기사단 중 하나의 입에서 허무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것들이 도망을 다 가네.”
“우리한테는 죽어라 덤벼들더니.”
그전에 만났던 마물 세 마리는 끝까지 살기가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었다.
자신이 마물이어도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만, 그럼에도 입 안이 썼다.
사라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혼내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런, 도망가면 안 되지.”
그러고는 천천히 내려놓았던 손을 다시 한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엔 어둑해진 하늘에 푸르른 마력을 담은 창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빛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생겨난 마력의 창들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마물들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컥!”
“크허헉!”
마물들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동시에 쓰러졌다.
“도망가서 이번엔 누굴 해치려고.”
사라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자애로움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암브로시아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
“…….”
산속은 비릿하고도 꿉꿉한 피 냄새와 함께 고요 속에 잠기게 되었다.
언제나 자애로우며 우아한 밀런 소백작, 클로드의 유모, 크롬벨 제국 사교계의 꽃.
그렇게 일컬어졌던 사라 밀런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절대자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토록 각국의 지배자들이 갈망하던 마법사의 진정한 힘을 맛본 기분이었다.
“혹시 다치신 분이 있으신가요?”
사라는 입을 떡 벌린 채 눈만 깜빡이는 암브로시아 기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들이 다들 어딘가 아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에단 암브로시아만이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는 부드러움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아주 적절한 때에 와 준 덕에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에단 암브로시아의 얼굴은 어두운 산속에서도 마치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암브로시아의 기사들이 놀람과 공포 속에서 떨었다면 그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
에단의 옆에 서 있던 제이드는 저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새삼 또 반하셨군.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시네.’
제이드는 하도 베론과 론다가 난리를 친 덕분에 에단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사라 밀런은 누구나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레이디였고, 암브로시아에서 클로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의 마음조차 술렁일 정도였다.
그러니 주군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상대가 사라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더 반할 수 있는 거지.’
물론 지금의 사라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푸른 마력에 휩싸여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전설 속에나 존재하던 요정이나 정령 같았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마물들을 단숨에 처리할 만큼 냉철한 손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사라에 대한 이미지를 모조리 다 흔들어 놓았다.
“위험하니 이리로.”
에단은 사라에게 다정히 웃어 주며 손을 내밀었다.
제이드는 ‘위험은 무슨. 지금 여기서 저분이 가장 위험하겠구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려갈게요.”
에단과 눈이 마주친 사라의 뺨은 은근히 붉어졌다.
그녀는 에단이 내민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땅 위로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사라의 허리를 감싸 제 쪽으로 이끌며 에단은 약간 타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지 않은 몸으로 다치면 어쩌려고 허공에서 나타납니까.”
“저 엄청 튼튼해요, 공작님.”
“이번에는 힘을 쓰지 않았습니까. 지난번처럼 쓰러지면 어쩌려고.”
“아…….”
사라는 에단의 염려증이 다시 돋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사라에 대한 에단의 염려증이라 하면 바로 이런 걸 말했다.
그녀가 아주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돌부리가 튀어서 언제든 다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그 상태를.
“암브로시아의 기사단이 그대의 생각보다 무능하진 않습니다.”
에단의 말에 암브로시아의 기사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무룩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밀런 백작님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멋진 모습…….”
“매일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되기 싫었는데…….”
사실 사라의 앞에서 용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기사단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런 기사단을 뒤로한 채 에단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여정에서 마물들 따윈 그들에게 넘기고, 그대는 내 쪽을 더 신경 써 주면 좋겠는데.”